가짜전쟁 - 제2차 세계대전의 미실행 작전
마이클 케리건 지음, 박수민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어떠한 사실이 되었든 알려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은 색다른 흥미와 적당한 흥분을 제공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군사작전과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일반인으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사실들이란 실로 커다란 궁금증을 자아내는 법이다.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계획되었지만 실행되지 않았거나 못했던 여러 가지 작전들을 조사하여 한 권의 결과물로 만든 것이다. 실재 작전 명령서라든가 계획서는 그러한 사실에 확실한 증거가 되어 독자들에게 믿음을 준다. 제목의 “가짜전쟁”은 제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지지부진한 국면을 빚댄 표현으로, 미국 상원의원인 윌리엄 보라의 발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가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승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온갖 계획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에 계획되었던 추축국과 연합군의 작전들은 실로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매우 독창적이거나 기발한 작전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었지만 너무나 독창적인 계획들은 말문을 막히게 만들기도 했다.


 전쟁은 그것을 승리한 쪽이나 패배한 쪽 모두 패자로 만드는 매우 비참한 일이다. 그러한 사실을 상호간에 알고 있음에도 전쟁을 행하는 인간은 매우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부분 인간을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성을 가진 존재로 여기지만 역사 속의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존에 가졌던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을 점점 사라지게 되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계획들은 상당히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연합군의 리신이라는 독을 이용한 독침 투하계획은 인상깊었다. 이 방법은 만화나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공격방법이 아니던가. 하지만 건물안에 들어가 있거나 헬멧만 써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약점으로 인해 취소되었다고 하니 역시 상상과 현실은 매우 다른 법이다. 그 외에도 얼음으로 만든 항공모함이라든가 독일의 엄청나게 큰 전차 생산계획, 일본의 거대 잠수항모 개발 계획과 거대한 폭격기를 이용한 뉴욕 폭격들은 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적보다 거대하고 큰 것들을 추구하는 모습이란 어리석게 보이기도 했다. 물론 당시 그것을 고안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러한 다소 허황된 작전말고도 상당히 성공가능성이 높았던 계획이 있었다. 연합국의 회담이 벌어지는 장소를 습격하여 암살하려 했던 롱 점프 작전은 거의 성공할 뻔 했다. 술에 취한 한 장교가 적진에서 누설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렇듯 거의 성공할 수 있는 작전들도 있었지만 아주 작은 구멍으로 인해서 실패한 사례도 간간히 보였다. 이러한 것을 보면 아무리 치밀하게 작전을 짜도 될 작전은 되고 안 될 작전은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운명결정론적인 생각을 잠시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뭐 거창하게 받아들여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문득 드는 생각이 그랬다.


 명맥하게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 많은 저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밀어 붙이려고 하는 사람은 각국의 정상들이었다. 우리가 위대한 정치가로 알고 있던 처칠도 그랬으며 독일의 히틀러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그보다 더했다. 책에 담긴 계획들은 성공가능성이 높았으나 상황이 달라지면서 폐기된 것도 있고, 처음부터 아주 비현실적인 계획도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작전들을 계획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이성은 사라지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결국에는 광기에 휘말려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으로 재직하던 처칠은 갈리폴리 전투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사퇴한 적도 있었다. 그런 큰 과오가 있었음에도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작전을 실행해보려고 했다는 저자의 글을 보니 사람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냉철한 이성은 온데 간데 없어 보이는 행동이라니... 하지만 추축국의 일본과 독일에 비하면 매우 양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은 시간이 흘러 결국 궁지에 몰리게 되고 그러한 상황은 결국 알프스 요새에서의 결사항전을 계획하게 했다. 더군다나 일본처럼 자살공격이나 다름없는 작전까지도 실행하려 했다. 결국 전쟁 속에서는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이나 이성 따위는 찾을 수 없는 듯하다. 있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인간의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 같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조차 저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 휘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비참하고 잔인하고 모든 가치들이 부정되는 상황 속에서 결국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갖출 수 없게 되나 보다.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실행되지 못한 군사계획들을 담은 책이지만 내 눈에는 전쟁의 광기로 인해 인간을 상실한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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