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개혁가 룰라 (양장)
백계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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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룰라대통령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ebs의 지식e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학력이 전부인 금속노동자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어 브라질을 바꾼 대통령,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라는 내용은 참으로 놀라웠다. 아니 경악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일어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대대통령은 외국에 망명해서 죽었고 이후 나온 대통령도 암살당하고 또 다른 대통령들은 감옥을 오갔다. 그것이 우리나라 대통령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브라질의 룰라-루이스 이나시우 다 시우바-라는 대통령은 퇴임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지지율이 87%에 달했다고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 룰라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나는 참 궁금했다. 그를 다룬 책이 얼마 되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이 룰라라는 인물에 대해서 좀 알 수 있었다.


  이 룰라라는 인물을 알기 전에 우선 브라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브라질이란 나라가 남미에 있다는 사실 빼고는 그다지 브라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축구에 열광하는 삼바의 나라라는 이미지만 가진 나라였다. 한반도의 38배나 되는 광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이 나라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한 뒤 군부독재시절을 지나 지금의 민주국가로 진입했다. 이런 브라질에는 “신은 브라질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브라질이 엄청난 자원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경작지에 날씨도 매우 좋아 ‘천상에나 있을 법한 날씨’ 라는 말을 듣는다. 17세기 초엽에는 세계 최대의 사탕수수 생산국으로 부상했으며 18세기에 들어서는 대규모 금광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어 18세기 중엽에는 전 세계 금 공급량의 80%를 차지했다고 하니 “신은 브라질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던 것이다. 이러한 축복받은 땅으로 인해 브라질 사람들은 자신들이 좀 어려워지면 신이 뭔가를 왕창 내려준다는 잠재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좋은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은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고 남미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다. 10%도 안되는 부유층이 국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니계수는 0.59나 된다. 상당히 양극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작년 지니계수가 0.311이라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내가 가장 호기심이 생긴 것은 브라질 사람의 특성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타협하기 좋아하고 타협하기 잘 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어떠한 결정을 할 때 브라질 사람들은 최대한 절충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어 결정하고 추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정면승부를 내기보다 타협을 택해 문제를 원만이 풀었다고 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룰라는 평생을 금속노동자로 노동운동을 했다.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던 그가 브라질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브라질을 반석에 올려놓기까지 한 업적이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룰대통령이 혜성같이 나타나 단숨에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었다. 노동운동을 하며 노동자들을 위해 온 힘을 바쳐 일했으며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노동자당을 만들어 직접정치에 투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룰라는 노동운동을 통해 다져진 지지율을 기반으로 3번이나 대선에 도전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같은 노동자이지만 무식한 그보단 똑똑한 기존정치인을 택하겠다는 대중들의 마음은 참 아이러니했다. 3번이나 낙선한 후 다시 도전한 대선에서 결국 그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당선된 후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름 아니라 브라질에서 가장 못 사는 피아우이 주, 그 주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이었다. 그것도 배를 타고 피아우이 주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못사는 오지를 방문했다. 이렇듯 룰라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은 빈곤층, 그중에서도 절대빈곤층이었다. 결국 룰라는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고 퇴임했다.


  룰라가 임기동안에 계속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불거져 나온 선거자금 비리로 인해서 궁지에 몰려 측근조차 퇴진하기를 조언했지만 룰라는 끝가지 버텼다. 나도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이런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브라질의 여건상 선거를 하려면 돈이 매우 많이 들었다. 결국 노동자당도 그러한 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검은 돈을 어디선가 받았을 거라 저자는 말한다. 대가로 무엇인가를 주었을 것이고 말이다. 룰라도 이런 사실을 묵인했을거라 보는 시각이 저자의 글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브라질 사람의 특성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당이니 돈이라고 해봐야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다였다. 그렇다고 그 당시 당이 거대한 당도 아니었고 말이다. 노동자출신으로서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기업인들로 대변되는 기득권과 맞선 것도 아니었다.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하여 기업인들도 끌어안고 갔던 것이다.


  룰라의 정책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빈곤을 위한 ‘볼라 파밀리아’ 였다. 기준에 따라 한 가정에 120 헤알을 넘지 못하는 수준에서 지원을 해 주었던 바로 그 정책이다. 룰라는 출범과 동시에 ‘포미 제루’라는 빈곤퇴치 정책을 폈다. 다만 준비부족 등으로 실패를 했지만 다음해 ‘볼사 파밀리아’ 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행되었다. 그 결과 룰라 집권 1기에만 5~6천만명의 사람들이 절대빈곤상태를 벗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펼친 정책으로 중산층으로 도약한 사람들만 수천만명에 달하고 이는 결국 중산층이 두터워지게 되고 내수가 살아났다. 때마침 중국발 수요급증으로 인해서 경제에 상당한 훈풍이 불었던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룰라는 대선이라는 마법의 강을 건너기 위해 크고 작은 타협을 했다. 노동자당의 이념과 상충되는 대외부채상환에 대한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켰다. 전임 대통령의 재정 및 통화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좌파들의 핵심 요구사항인 외채 불상환, 민영화 기업들의 재국유화, 그리고 토지 개혁을 모두 외면했다.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 시장친화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었지만

                              사회정책은 뚜렷이 분배지향적이면서 적극적이었다.” p-245


 아마도 룰라는 가장 큰 문제였던 빈곤층 해결을 위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타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기득권의 강력한 반발을 누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실천한다는 것은 통치자에게 불가능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득권과 대놓고 맞섰지만 결국 실패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브라질 사람 특유의 타협정신이 마냥 좋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절한 타협은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몇가지 문제점에도 결국 아름답게 물러난 그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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