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의 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는 정말 너무 좋아서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소설이 번역 되었다 길래 두근두근 하면서 책을 사서 당장 읽어 내려 갔다. 그런데......그렇게 믿었건만 윌리엄 트레버! 이번 소설은 좀 별로였다.

서정적인 문체는 여전했고, 문장 사이사이에 여기저기 끼어드는 회상으로 조금씩 힌트를 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독특한 스타일도 여전했다.

문제는 펠리시아와 힐디치라는 두 캐릭터의 매력에 있었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캐릭터는 힐디치다. 그가 엄청나게 구역질나는 악인이긴 하지만 내용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작가도 힐디치에 대해서 얼마나 입체적으로 묘사해 주는지 모른다. 그가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의 일상, 펠리시아를 만나고 나서 변화하는 모습 등등 힐디치에 대해서는 정말 친절하게 속속들이 알려준다. 약간 동정심이 생길정도로......

반면 펠리시아는 너무 착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하다. 이렇게 끝까지 캐릭터를 유지하다가 기가 막히게도 힐디치를 용서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힐디치의 마지막을 알게 되고나서 그거면 됐다라고 하면서 그의 악행에 대해 입을 다물어 버리는 거다! 너무 답답했다.

끝까지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힐디치가 벌인 일들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펠리시아는 여전히 거리를 떠돌면서 착한 사람들의 선행에 의지한다.

책 뒤의 해설을 읽어보니 작가는 이 책을 선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고 한다. 선은 악이라 부르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가까이에서 접한 후에야 눈에 보인다며 이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주변에 선이 보이는 이유가 그래서라고 한다. 작가의 의도는 잘 알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감동할 수 없었다. 악을 보고 나서야 선이 보인다라는 여정을 밟아 나가는 와중에 왜 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슬픈 사연도 있다라는 길을 지나가야 했는지 자꾸만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 종착역은 왜 스스로 벌을 했으니 그거면 되었다가 되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책을 덮고 나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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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간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 마고 샤프가 맺는 관계는 상식 밖의 행동이고 부도덕하기도 해서 정말 저럴 수가 있나 싶게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는 마고 샤프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에 앞서 이 인물이라면 그런 관계를 맺기도 하겠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인물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집중력 있는 시선에 결국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마고 샤프는 23살 대학원 1년생때 밀턴 페리스 교수의 신경심리학 연구소에 발탁되어 들어온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버지뻘 되는 페리스 교수의 불륜상대가 된다.

 

 

실험실에서 페리스가 그녀를 꼭 집어 칭찬할 때면, 마고는 힘없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굴에 피가 몰려 화끈거리고 커다란 행복감으로 심장이 뛴다. 마고는 줄곧 모범적인 여학생으로, 딸로 살아 왔기에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순결한 딸이다. 당신이 그녀를 믿으면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다.

(65)

 

 

하지만 이런 관계가 늘 그렇듯 교수는 다른 여자한테 관심이 옮겨가고 마고는 버림받는다. 사실 페리스 교수는 제자들의 연구를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발표하고 이에 반항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막강한 권력과 인맥을 이용해 좋은 자리를 주지 않는 것으로 보복하며 젊은 여자들을 이리저리 사귀고 다니는 유의 사람이다. 이런 것을 마고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라면 그의 실체가 어떻든 눈 감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마고 샤프다. 어찌되었든 자신은 페리스 교수 덕에 연구소에 들어왔고 교수까지 되었으니 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고 샤프는 페리스 교수 앞에서는 말 잘 듣는 순결한 딸이 된다고 말한다.

 

 

맹목적인 마고의 페리스 교수에 대한 사랑은 어쨌든 내쳐지고  마고는 슬퍼한다. 그 슬픔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 한다.

하지만 연구대상인 기억상실증 환자 엘리후 후프스에게만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을 수가 있었다. 그는 현재의 일을 70초밖에 기억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마고가 페리스 교수와의 감정을 기억상실증 환자에게 고백하면 그는 친절하게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준 다음 그 일을 다 잊어버린다. 손상을 입은 뇌는 기억을 저장하지 못 한다.

 


E.H.가 마고를 안아 위로해준다. 이제껏 이런 식으로 마고 샤프를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마고 샤프와 엘리후 후프스가 이토록 친밀하게 몸을 맞대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단둘이 었었던 적이 없었다. 방금 전 자신이 한 행동과 지금 하는 행동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마고는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뛰는데도 이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녀의 얼굴이 닿아 있는 부드러운 캐시미어 울과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가슴 속에는 기억상실증 환자의 심장이 따뜻하게 뛰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야. 아름다운 영혼. 이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 아니고.

(129)

 

 

이렇게 마고의 사랑은 엘리후 후프스에게 옮겨간다. 늘 현재를 사는 사람, 사고를 당하기 전인 37살에 기억이 멈춘 사람, 언제나 상냥하게 인사하는 사람에게,

엘리는 마고를 기억하지 못 한다. 그는 늘 처음만난 사람으로서 마고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고 마고는 똑같은 자기소개를 반복해야 한다. “저는 마고 샤프에요하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이 반복에 어쩌면 마고는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엘리는 70초 마다 처음 만나는 마고를 결코 배신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그는 페리스 교수처럼 마고를 절대 버리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마고는 엘리와 공식적으로는 연구대상으로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상대로 30년을 함께한다. 마고는 엘리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우리가 서로 부부라고 속인다. 그러면 엘리는 그 말을 믿고 당장 마고에게 사랑하는 여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다시 70초가 흐르면 모든 걸 잊는다. 마고는 이런 식으로 엘리와 사랑을 했다.

마고에게는 친구도 가족도 없다. 그녀에게는 감정을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녀 자신이 30년 동안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뒀다. 그 연구의 대상은 바로 기억상실증 환자 그녀가 사랑하는 엘리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입장에서는 30년 동안 열렬히 사랑을 한 셈이다.

 

 

기억상실증에 관한 메모 : E.H. 프로젝트(1965~ 1996)

그녀는 그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잊는다.

그녀는 그를 만다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잊는다.

그녀는 그를 만다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잊는다.

그들이 처음 만난 지 31년이 되던 해, 마침내 그녀는 그에게 작별을 고한다.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그는 이미 그녀를 잊었다. (9)

 

 


나는 사실 마고 샤프의 사랑이 너무도 허망해서 마음이 안 좋았다. 나는 마고가 했다는 사랑이 결코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사랑은 그녀가 마고 샤프이기 때문에 하는 거다. 그녀는 외골수다. 과학자로서 연구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안에서도 지독한 외골수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절대로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페리스 교수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에 동참하지 않았다. 또한 엘리에 대한 혼자만의 사랑도 얼마나 지독한 외골수인가.

 

이런 인물을 작가는 진득하게 따라가면서 그 외양에서부터 심리까지 상세하게 펼쳐 보여준다. 그렇게해서 마고 샤프라는 개연성이 창조되었다. 마고 샤프니까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납득이 갔다. 그래서 점점 엘리와의 관계에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마고에게 섬뜩함을 느끼다가도 아무리 해도 상대방에게 응답받지 못 한다는 외로움이 그녀에게 보일 때 참 슬프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성향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인물과 함께 했다. 이런 인물을 보는 건 역시 마음이 안 좋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마고 샤프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똑똑한 사람이 사랑은 똑똑하게 하지 못 했다. 감정이란게 그렇게 작용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한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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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나의 사촌 레이첼"


"레베카"를 재밌게 읽어서 바로 이 책도 망설임없이 읽게 되었다. 역시 재밌었다.

밤에 읽다가 그만 멈추지 못 하고 새벽까지 읽었다. 한번잡으면 끊지 못 하고 기어이 끝을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사랑에 푹 빠진 미숙한 남자의 심리를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그야말로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면서 앞뒤 상황을 전혀 재지 않고 우다다다 달려가는 그 심리. 그 벅차오름을 참 절묘하게도 표현해냈다.

게다가 자신만의 사랑의 감정에 취하여 상대방을 바로 보지 못 하던 남자가 사랑에 응답을 받지 못 하자 그렇게나 휘몰아 치던 사랑이 바로 폭력으로 돌변하고 만다는 것도 얼마나 섬뜩하지만 현실적인지!


레이첼은 어떤 여자였을까? 필립이 화자로 등장해 그의 시선으로만 레이첼이 묘사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춰지는 레이첼의 모습 속엔 필립의 오해가 분명히 보인다.

여전히 필립은 콩깍지가 씌어서 레이첼을 끝까지 제대로 보지 못 한 느낌이었고 결말 상황으로 보자면 의심받고 그렇게 되어버린 레이첼이 많이 억울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관계에 있어서 훨씬 노련했던 레이첼이 필립의 감정을 알고 살짝씩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건 맞는거 같다. 여자의 다정함과 친절함이 미숙한 남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지는가를 분명히 알고 행동했지만 범죄에 해당하는 그런일들은 글쎄? 모두가 필립의 오해였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은 필립은 평생동안 짊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의 괴로움이 남게 되는거고.




그리고



책 사진 찍고 있는데 마당에서 놀고있던 동네 고양이가 구경하길래 책을 보여줬다




나 : 나의 사촌 레이첼이야. 




고양 : 뭐래


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마당에 한가득 핀 보라색 꽃. 이름은 자주닭개비. 5월에 피는 꽃이다. 

한낮엔 오므리고 있다가 아침에만 활짝 핀다. 흐린날에는 하루종일 펴있기도 한다.

그러니까 밤새 책 읽다가 해뜰무렵 나가보면 얘네들이 한가득 펴있어서 무척 반갑다. 

오늘도 참 반가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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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이 작가의 결혼이라는 소설을 인상 깊게 읽고 난 후 2003년에 퓰리처상을 탔다는 미들섹스도 사두었었다. 그런데 책 표지만 보면 별로 읽고 싶지 않게 생겼기도 했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간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예상 가능함에 이런 것은 딱히 내가 흥미 있어 할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책장에 그냥 꽂아만 두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책장 어디 구석에 눕혀놓은 것이지만^^ 그러다가 그냥 문득 최근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어차피 읽으려고 사 둔 것 왜 안 읽고 방치해 두나 하는 생각에 얼른 읽어버리자 싶었던 거다.


 

처음 내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단지 여성도 남성도 아님에만 주목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스계 미국인이라는 작가의 경험이 물씬 풍기는 소설이기도 했다. 크게 보면 이 소설은 미국으로 이주한 그리스인 가족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서부터 베트남전 종전 후까지의 미국의 현대사를 그리스계 이민 가족의 삶 속에 잘 녹여내었고 거기에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특별한 역사까지 조명한다.

 


1권이 주로 화자인 주인공의 조부모와 부모대의 이야기 즉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오면서 가족을 꾸리고 미국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라면 2권에 가서는 조부모대부터 내려오는 집안의 비밀로 인해 생겨난 주인공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바로 이 책의 첫 번째 문장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이아로, 유난히도 맑았던 19601월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그리고 사춘기로 접어든 19748월 미시간 주 피터스키 근교의 한 응급실에서 남자아이로 다시 한 번 태어났다에 대한 문제.


 

제목의 미들섹스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주인공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소설이 나아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가족의 역사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특별한 한 사람이 만들어지기 까지 사회와 역사가 가족과 시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훑어 보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다.

 

 

읽는 내내 이 책은 가히 퓰리처상을 탈만하다고 생각했다. 장황한 이야기로 글을 지루하게 쓰느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 전반적으로 경쾌한 느낌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작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출중하다.

하지만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이 소설을 훨씬 더 재밌게 읽었을 거 같다. 그들의 이민의 역사나 현대사를 미국인이라면 더 잘 알고 즐겼겠지만 한국인인 나는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부분들이 꽤 있어서 100퍼센트 이 소설을 즐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별4^^



(아참 그리고 이 책 읽다보면 오빠라고 하다가 동생이라고 하는 번역오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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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섹스˝ 2권 읽는중에 갑자기 빵터졌네ㅋㅋㅋㅋㅋㅋㅋ

 심각하게 읽고 있었는데 아니 이거 미국 의사 사투리 너무 구수한거 아닙니까?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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