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이 작가의 “결혼이라는 소설”을 인상 깊게 읽고 난 후 2003년에 퓰리처상을 탔다는 “미들섹스”도 사두었었다. 그런데 책 표지만 보면 별로 읽고 싶지 않게 생겼기도 했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간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예상 가능함에 이런 것은 딱히 내가 흥미 있어 할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책장에 그냥 꽂아만 두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책장 어디 구석에 눕혀놓은 것이지만^^ 그러다가 그냥 문득 최근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어차피 읽으려고 사 둔 것 왜 안 읽고 방치해 두나 하는 생각에 얼른 읽어버리자 싶었던 거다.
처음 내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단지 여성도 남성도 아님에만 주목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스계 미국인이라는 작가의 경험이 물씬 풍기는 소설이기도 했다. 크게 보면 이 소설은 미국으로 이주한 그리스인 가족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서부터 베트남전 종전 후까지의 미국의 현대사를 그리스계 이민 가족의 삶 속에 잘 녹여내었고 거기에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특별한 역사까지 조명한다.
1권이 주로 화자인 주인공의 조부모와 부모대의 이야기 즉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오면서 가족을 꾸리고 미국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라면 2권에 가서는 조부모대부터 내려오는 집안의 비밀로 인해 생겨난 주인공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바로 이 책의 첫 번째 문장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이아로, 유난히도 맑았던 1960년 1월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그리고 사춘기로 접어든 1974년 8월 미시간 주 피터스키 근교의 한 응급실에서 남자아이로 다시 한 번 태어났다”에 대한 문제.
제목의 “미들섹스”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주인공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소설이 나아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가족의 역사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특별한 한 사람이 만들어지기 까지 사회와 역사가 가족과 시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훑어 보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다.
읽는 내내 이 책은 가히 퓰리처상을 탈만하다고 생각했다. 장황한 이야기로 글을 지루하게 쓰느냐하면 그것도 아니고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 전반적으로 경쾌한 느낌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작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출중하다.
하지만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이 소설을 훨씬 더 재밌게 읽었을 거 같다. 그들의 이민의 역사나 현대사를 미국인이라면 더 잘 알고 즐겼겠지만 한국인인 나는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부분들이 꽤 있어서 100퍼센트 이 소설을 즐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별4개^^
(아참 그리고 이 책 읽다보면 오빠라고 하다가 동생이라고 하는 번역오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