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미국 여행기를 읽으면서 미국의 휑하고 여백이 많은 풍경과 거대한 자연이 보고싶어져서 영화를 봐야겠다 생각했다. 멋진 풍경과 황량한 도로가 나오는 영화로. 그러다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 풍경을 잘 찍은 영화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게다가 와이오밍주가 배경이어서 내가 여행기를 읽으면서 눈에 담고 싶다고 생각했던 장소를 보는 것으로도 딱이다 싶었다.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기로 했다

사실 이미 본 영화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내 머릿속에서는 중간 부분 내용이 뭉텅 잘려나가 있었다. 초반이랑 끝부분만 기억이 나는거다

내용이 전개되는 중간부분은 과연 내 머릿속에서 다 어디로 갔을까? 거의 안 본 것처럼 기억이 새하얗더라


아무튼 그래서 영화를 봤다. 아니 근데 이 영화가 이렇게나 감동적인 영화였단 말인가

그 당시에도 물론 좋은 평을 받았고 수상내역도 화려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본 거였다. 하지만 내가 그때 좀 어렸어서 이런 느긋한 영화들을 잘 이해를 못했던 것이었을까? 뭔가 방방뜨는 마음에 이 조용한 영화에 지루함을 느꼈던 것일까? 사실 당시에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 다 울 때 난 안 울고 멀뚱히 있는 뭐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중간부분도 뭉텅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겠지만, 여튼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이번엔 혼자서 보고 다음날 엄마한테도 보라고 강권해서 엄마 보실 때 옆에서 같이 봤다. 연달아 두 번을 봐도 감동이 밀려오더라. 두번 연속으로 보는데도 막판에 눈물 찔끔 흘리면서ㅋㅋㅋ

 


그래서 이건 꼭 책으로 봐야겠다 생각했다. “시핑 뉴스로 애니 프루는 이미 내가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올라있었는데도 브로크백 마운틴이 들어있는 단편집은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책을 주문했다. 이왕이면 원서로 읽고 싶어서 중고로 샀다. 중고도 최상 품질이라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샀는데 받아보니 오래되어서 책냄새가 나는거 빼고는 정말 거의 새책이 와서 너무 좋았다.





읽어보니 단편소설의 그 짧은 분량으로 2시간짜리 영화를 참 잘도 만들었다 싶었다. 진짜 너무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짧게 스치는 문장 하나하나 까지 모두 서사를 입혀서 영화 속에서 구현해 낸 솜씨에 감탄했다. 소설의 문체와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잘 맞아 떨어진 점도 놀랐다. 이래서 작가 애니 프루가 영화를 보고 상당히 만족했다고 한 거였구나 싶었다.

영화와 소설이 모두 다 좋았는데 그래도 결말의 “I swear” 부분은 영화가 좀 더 좋았다. 히스 레저가 어떻게 연기 했는지 알고 소설을 읽으니 상상이 되긴 하는데 소설만 읽었다면 감동이 덜 했을 느낌이다. 조금 갑작스럽다고나 할까...

근데 격정 멜로 부분은 소설이 훨씬 좋았다. 사람의 감정을 고조 시키면서 줄줄 이어지는 문장이 화면으로 보는 것 보다 더 격정적이고 강렬했다소설이 더 야한느낌^^;;

 


아련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영화와 소설이 둘다 좋았던 부분은 여기



이 둘이 처음 브로크백산에 갔을 이당시는 나이가 스무살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풋풋하다.

에니스가 잭을 조용하게 깨울때 엄마와의 추억을 소환하는데, 고아인 그의 그리움과 서글픔의 감정이 은근히 스며있어서 마음이 조금 찌릿해지는 부분이다. 나른한 비몽사몽간에 "내일 보자"하는 에니스의 목소리를 똑똑히 분간해내는 잭의 감정도 참 아련하게 느껴지고~

이부분 너무 간지럽게 좋다ㅎㅎㅎ

잭이 평생을 간직한 가장 행복한 순간~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도 가슴이 두근두근 해지는구만ㅋㅋㅋ




다른 단편은 아직 안 읽었는데 당분간은 못 읽을듯 하다. 읽을게 쌓여서ㅠㅠ

브로크백 마운틴만 읽었지만 그래도 이 단편집의 소감을 말하자면 역시 작가 애니 프루는 글을 참 잘 쓴다가 되겠다.

문체가 감성적인데 공허하지 않다. 말랑한 감성이 아닌 고된 삶 속에서 오래 우려서 건져올린 진득진득한 감성으로 마음을 울리는 그런 감성이다. ㅠㅠ

시간을 두고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는데 나무에 열린 도토리를 발견했다.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여기에 도토리 열린걸 처음봤다.

도토리 귀엽구나 귀여워


도서관에서는 새책이 많이 들어왔길래 4권이나 빌려왔다.

요즘 도통 책을 안 읽었는데 이제 책 좀 읽어야지ㅜ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읽는 내내 너무 재밌었다. 여행 중에 경험한 일화나 감정들이 내가 예전에 미국 여행 중에 느꼈던 것과 겹치는 부분들도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영국인인 두 친구의 여행이다. 이 여행기를 쓴 조지와 조지의 친구 마크가 뉴욕에서 시작해서 자동차로 캘리포니아까지 대륙횡단 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 부분은 마크가 비자 문제로 캘리포니아에서 여행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가고 조지의 여자친구 레이첼이 영국에서 와서 조지와 합류해 뉴욕까지 다시 횡단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조지, 마크, 레이첼이 이 여행기의 주요한 등장인물이라면 이 책의 제목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조세핀은 과연 누굴까? 바로 여행의 가장 중요한 수단 자동차. 바로 그 차의 애칭이 조세핀이다. 조지와 마크는 뉴욕에 도착하자 신문 광고를 보고 중고차를 한 대 산다. 바로 1989년형 닷지 카라반. 딱 보기에도 오래되고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뒷 창문에는 총알 구멍같은 것도 나있었다. 하지만 값이 싸고 차가 커서 그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서 850달러에 그 의문스러운 차를 사고 만다. 원래의 차주인이 이 차를 조세핀이라 불렀고 그 이름 그대로 여행 내내 조지와 마이클도 부르게 된다. 하지만 그 조세핀이 우리 조세핀, 사랑스러운 조세핀이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행 시작부터 조세핀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차를 고치고 또 고치고 그렇게 다니면서 찻값보다 고치는 값을 훨씬 더 많이 지출하며 여행을 이어간다. 기특하게도 그렇게 차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도 어찌어찌 8개월간의 대륙 왕복 횡단을 무사히 마친다는 점이다. 차로 인해 생기는 고생스러운 일화가 읽는 사람에겐 적지 않은 재미를 주기도 한다.

 

미국의 시골 마을들 곳곳에 들러서 주차장에서 잠을 자거나 싸구려 모텔을 빌리고 작은 식당들에서 밥을 먹고 황량한 도로를 달리며 약 8개월간 거리 생활 비슷하게 하며 여행을 한다.

독특한 사람들과 이상하지만 재밌는 대화도 나누고 형편없는 시골 음식점에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음식을 줘도 그런대로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여행하며 이곳은 정말 이상하다 고쳐야 한다 등의 비판의 시선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황량한 시골 마을에 대한 따스한 애정어린 시선도 느껴진다. 물론 유머도~ 그렇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여행중에 조지와 마크가 나누는 대화도 재밌었는데 그렇게 대화하다가 가끔씩 회상하는 두 사람의 어릴적 일화도 너무 귀엽고 웃겼다. 어릴 때 처음 조지가 마크네 집에 초대받아 가서 했던 실수나 하굣길에 둘이 소떼들한테 갇혔을 때 리코더를 불어서 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도 얼마나 웃겼던지. 이 두 친구의 우정이 참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미국의 도로를 달리던 생각이 났다. 평평한 풍경에 끝도 없이 나 있던 도로. 황무지 같지만 가끔가다 보이던 집들. 이곳엔 누가 살기나 할까 싶었던 고립감과 외로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늘 언제나 훨씬 컸던 미국의 자연. 생각보다 친절했던 사람들 등등.

그때 그 여행의 추억에 젖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잘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단 나는 냄새를 잘 못 맡기도 하고(..) 어디를 가거나 누군가를 만났을 때 냄새를 기억 속에 간직한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살지 않았다. 근데 따지고 보면 나도 동물인데 의식을 못 하고 있다 뿐이지 냄새를 분명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긴 할 거다.

그래 생각해 보자... 내가 맡았던 냄새들... 어릴 때 놀았던 아파트 앞마당 잔디밭 냄새, 토끼풀 냄새, 어떤 잎에서 났던 사과 냄새, 학교 냄새, 여름 방학 냄새, 비올 때 놀이터 냄새 등등이 떠오른다. 오오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나도 냄새로 그 순간을 기억하기도 하는 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냄새를 찬찬히 소환해 본다. 떠오른다 떠올라 냄새도 기억도...ㅎㅎㅎㅎㅎㅎ

 

 

이 소설은 보통의 사람보다 월등히 냄새를 잘 맡고 잘 구분해 내고 잘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 에멀라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냄새만 맡고도 위험을 느끼기도 하고 사람의 성격도 파악하고 거짓말인지 아닌지도 단번에 알 수 있으며 냄새가 색깔로도 표현이 되고 또 냄새가 에멀라인에게 말도 걸고 한번 맡은 냄새는 절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도 하고... 냄새능력자라고나 할까? 어쩐지 히어로물에 나올거 같은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이 소설은 분위기가 서정적이고 동화 같기도 한 성장소설의 냄새를 풍긴다.

 

 

에멀라인은 어린 시절을 외딴 섬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서만 지냈다. 섬 밖의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전기도 수도도 안 들어오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아버지가 세상의 전부인 채 자랐다.

오두막집 한쪽 면은 작은 서랍들이 꽉 들어차 있었는데 그 서랍 속에는 작은 병이 봉인된 상태로 하나씩 들어있고 그 병 속에는 종이 한 장씩이 들어있었다. 그 종이들 각각에는 바로 아버지가 모아놓은 냄새가 스며있었다. 즉 냄새를 사진처럼 종이에 담아 보관해 놓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냄새를 찍어내는 기계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그 기계를 꺼내서 작동시키고 그 순간의 냄새가 종이에 찍혀 나오면 병 속에 담아 서랍 안에 보관했다.

에멀라인이 성장하여 12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점점 더 서랍속 병들에 집착하게 된다. 냄새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 하고 계속해서 우울해 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고 있던 아버지를 에멀라인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소중한 병들을 바닷속에 전부 던져버리게 되고 그 행동을 알게 된 아버지는 에멀라인을 말리려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결국 아버지는 죽고 섬에는 어린 에멀라인 혼자 남게 된다.

 

육지로 나오게 된 에멀라인은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씨도 모르고 생일도 모른다. 다행히 바닷가에서 민박집을 하는 마음씨 좋은 부부가 에멀라인을 돌봐주게 되고 학교도 다니면서 13살에 처음으로 섬 밖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게 새롭고 적응이 쉽지 않은 와중에 학교에서 피셔라는 소년과 친구가 된다. 피셔는 에멀라인이 냄새로 세상을 읽듯이 시각으로 세상을 읽는 아이다. 피셔가 그런 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피셔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집에서 피셔와 그의 어머니를 학대하던 아버지로 인해 피셔는 늘 긴장 상태에서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관찰력이 생겨났던 것이다. 에멀라인과 피셔는 감각기관은 다르지만 어쨌든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피셔는 아버지의 학대로 결국 가출해서 도시로 나가게 된다. 한편 에멀라인은 그동안 계속 추적해 오던 아버지의 과거를 드디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고 자신에게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래서 연락이 없는 피셔와 한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도시로 나간다.

 

결국 도시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빅토리아를 찾은 에멀라인은 어머니 또한 그녀처럼 냄새에 대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그 능력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냄새를 만들어서 매장에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에멀라인도 회사에서 냄새를 개발하는 일에 참여한다. 호화로운 아파트와 자신만의 연구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는 생활에 에멀라인은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고 강단있는 어머니를 닮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도 에멀라인만의 능력으로 새로운 향기를 개발하면서 어머니한테 인정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섬에 들어가 숨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에멀라인은 어머니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섬에서 에멀라인에게 들려주곤 했던 냄새사냥꾼과 그를 홀리던 마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멀라인은 다시 어머니를 떠나 사랑하는 피셔와 바닷가 마을로 돌아간다.

 

 

섬에서의 어린시절, 육지의 바닷가에서의 중고등학생시절과 성인이 되기 바로 직전까지의 도시에서의 생활을 겪으며 에멀라인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평범치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의 영향 아래에서의 삶을 겪어본 후 에멀라인이 선택하는 삶은 외딴 섬도 번잡한 도시도 아닌 바닷가 민박집이다. 에멀라인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양부모가 있는 곳 말이다. 냄새를 추억으로 간직하려고만 하던 아버지의 방식도 냄새를 적극 이용해서 돈을 버는 어머니의 방식도 아닌 냄새는 그냥 냄새인 채로 둘 수 있는 곳에서 에멀라인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에멀라인은 깨닫는다. 좋은 향기만 있다고 그것이 좋은 냄새는 아니라고 그 안에 슬픔과 아픔의 냄새가 함께 공존하고 있을 때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서로의 냄새가 섞이는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한 후 에멀라인은 삶의 진득한 냄새를 알게 된 것이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동화같은 분위기로 조용하고 차분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이었다. 냄새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같은 것도 아이디어가 넘쳤고 문체도 예뻤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바다냄새가 맡고 싶어졌다. 소금 바람 냄새도. 모래냄새도.

바다...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를 몰고 10분 정도만 가면 호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물론 댐으로 생긴 인공호수다. 왔다 갔다 하면서 자주 호수를 본다. 산책길에 나서기도 하고. 사실 그렇게 큰 감흥은 없다. 늘 보던 풍경이라 그런 거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호수를 지나가면서 뭔가 자꾸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가령 호수 밑바닥과 호수 표면의 온도차로 인해 물속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라던가 부영양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생기는 현상인가 라던가 호수가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간직하고 기록하는가 라던가 사해와 갈릴리해가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는 상식이라던가 등등을 마구마구 얘기하고 싶어지는 거다. 뭐 좀 읽었다고 바로 이렇게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좀 꼴사납긴 하다.

호수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이 책은 나처럼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책 한권 읽고 바로 머릿속에 지식이 쌓였다며 뽐내고 싶어 할 만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호수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적인 현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어서 뿌듯한 마음도 들게 한다.


 

사실 이 책은 호수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호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내내 일깨워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곤 하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인류의 역사가 호수 환경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준다. 호수 밑바닥의 퇴적물을 채취해서 연구해 보면 호수가 간직하고 있는 지구의 사건, 사고가 훤히 보인다는 사실이 참 경이로웠다.

아무리 오지의 고립된 호수라도 연구해보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가령 핵무기 실험이 한창일 시기에 나온 방사능 물질은 전혀 상관없는 멀리 떨어진 지역의 호수 퇴적층에서도 발견된다는 식이다.

 

이토록 호수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 초반의 뉴욕주에 있는 블랙 호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주에서는 블랙 호수의 고유종인 송어를 보존한다는 구실로 호수에 독을 풀었다. 외래종인 물고기들은 독으로 싹 죽이고 송어를 방류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호수의 퇴적물을 연구해 본 결과 외래종이라고 알고 있던 물고기의 DNA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이 호수에 있었다. 블랙 호수에는 송어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도 고유의 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호수에는 치명적인 독을 풀어버린 후였다. 과학적인 연구 없이 예전의 기록만으로 블랙 호수엔 송어만이 고유종이라고 땅땅 결론을 내고 보존이라는 나름대로 좋은 의도로 벌인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러한 실수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오로지 정확한 분석과 연구를 통한 과학으로 호수를, 그리고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읽으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책 읽는 내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과학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산책하다 찍은 사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