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냄새를 잘 못 맡기도 하고(..) 어디를 가거나 누군가를 만났을 때 냄새를 기억 속에 간직한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살지 않았다. 근데 따지고 보면 나도 동물인데 의식을 못 하고 있다 뿐이지 냄새를 분명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긴 할 거다.

그래 생각해 보자... 내가 맡았던 냄새들... 어릴 때 놀았던 아파트 앞마당 잔디밭 냄새, 토끼풀 냄새, 어떤 잎에서 났던 사과 냄새, 학교 냄새, 여름 방학 냄새, 비올 때 놀이터 냄새 등등이 떠오른다. 오오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나도 냄새로 그 순간을 기억하기도 하는 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냄새를 찬찬히 소환해 본다. 떠오른다 떠올라 냄새도 기억도...ㅎㅎㅎㅎㅎㅎ

 

 

이 소설은 보통의 사람보다 월등히 냄새를 잘 맡고 잘 구분해 내고 잘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 에멀라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냄새만 맡고도 위험을 느끼기도 하고 사람의 성격도 파악하고 거짓말인지 아닌지도 단번에 알 수 있으며 냄새가 색깔로도 표현이 되고 또 냄새가 에멀라인에게 말도 걸고 한번 맡은 냄새는 절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도 하고... 냄새능력자라고나 할까? 어쩐지 히어로물에 나올거 같은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이 소설은 분위기가 서정적이고 동화 같기도 한 성장소설의 냄새를 풍긴다.

 

 

에멀라인은 어린 시절을 외딴 섬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서만 지냈다. 섬 밖의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전기도 수도도 안 들어오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아버지가 세상의 전부인 채 자랐다.

오두막집 한쪽 면은 작은 서랍들이 꽉 들어차 있었는데 그 서랍 속에는 작은 병이 봉인된 상태로 하나씩 들어있고 그 병 속에는 종이 한 장씩이 들어있었다. 그 종이들 각각에는 바로 아버지가 모아놓은 냄새가 스며있었다. 즉 냄새를 사진처럼 종이에 담아 보관해 놓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냄새를 찍어내는 기계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그 기계를 꺼내서 작동시키고 그 순간의 냄새가 종이에 찍혀 나오면 병 속에 담아 서랍 안에 보관했다.

에멀라인이 성장하여 12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점점 더 서랍속 병들에 집착하게 된다. 냄새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 하고 계속해서 우울해 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고 있던 아버지를 에멀라인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소중한 병들을 바닷속에 전부 던져버리게 되고 그 행동을 알게 된 아버지는 에멀라인을 말리려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결국 아버지는 죽고 섬에는 어린 에멀라인 혼자 남게 된다.

 

육지로 나오게 된 에멀라인은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씨도 모르고 생일도 모른다. 다행히 바닷가에서 민박집을 하는 마음씨 좋은 부부가 에멀라인을 돌봐주게 되고 학교도 다니면서 13살에 처음으로 섬 밖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게 새롭고 적응이 쉽지 않은 와중에 학교에서 피셔라는 소년과 친구가 된다. 피셔는 에멀라인이 냄새로 세상을 읽듯이 시각으로 세상을 읽는 아이다. 피셔가 그런 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피셔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집에서 피셔와 그의 어머니를 학대하던 아버지로 인해 피셔는 늘 긴장 상태에서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관찰력이 생겨났던 것이다. 에멀라인과 피셔는 감각기관은 다르지만 어쨌든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피셔는 아버지의 학대로 결국 가출해서 도시로 나가게 된다. 한편 에멀라인은 그동안 계속 추적해 오던 아버지의 과거를 드디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고 자신에게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래서 연락이 없는 피셔와 한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도시로 나간다.

 

결국 도시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빅토리아를 찾은 에멀라인은 어머니 또한 그녀처럼 냄새에 대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그 능력을 활용하여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냄새를 만들어서 매장에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에멀라인도 회사에서 냄새를 개발하는 일에 참여한다. 호화로운 아파트와 자신만의 연구실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는 생활에 에멀라인은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고 강단있는 어머니를 닮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도 에멀라인만의 능력으로 새로운 향기를 개발하면서 어머니한테 인정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섬에 들어가 숨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에멀라인은 어머니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섬에서 에멀라인에게 들려주곤 했던 냄새사냥꾼과 그를 홀리던 마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멀라인은 다시 어머니를 떠나 사랑하는 피셔와 바닷가 마을로 돌아간다.

 

 

섬에서의 어린시절, 육지의 바닷가에서의 중고등학생시절과 성인이 되기 바로 직전까지의 도시에서의 생활을 겪으며 에멀라인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평범치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의 영향 아래에서의 삶을 겪어본 후 에멀라인이 선택하는 삶은 외딴 섬도 번잡한 도시도 아닌 바닷가 민박집이다. 에멀라인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양부모가 있는 곳 말이다. 냄새를 추억으로 간직하려고만 하던 아버지의 방식도 냄새를 적극 이용해서 돈을 버는 어머니의 방식도 아닌 냄새는 그냥 냄새인 채로 둘 수 있는 곳에서 에멀라인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에멀라인은 깨닫는다. 좋은 향기만 있다고 그것이 좋은 냄새는 아니라고 그 안에 슬픔과 아픔의 냄새가 함께 공존하고 있을 때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서로의 냄새가 섞이는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한 후 에멀라인은 삶의 진득한 냄새를 알게 된 것이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동화같은 분위기로 조용하고 차분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이었다. 냄새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같은 것도 아이디어가 넘쳤고 문체도 예뻤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바다냄새가 맡고 싶어졌다. 소금 바람 냄새도. 모래냄새도.

바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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