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10분 정도만 가면 호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물론 댐으로 생긴 인공호수다. 왔다 갔다 하면서 자주 호수를 본다. 산책길에 나서기도 하고. 사실 그렇게 큰 감흥은 없다. 늘 보던 풍경이라 그런 거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호수를 지나가면서 뭔가 자꾸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가령 호수 밑바닥과 호수 표면의 온도차로 인해 물속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라던가 부영양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생기는 현상인가 라던가 호수가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간직하고 기록하는가 라던가 사해와 갈릴리해가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는 상식이라던가 등등을 마구마구 얘기하고 싶어지는 거다. 뭐 좀 읽었다고 바로 이렇게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좀 꼴사납긴 하다.

호수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이 책은 나처럼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책 한권 읽고 바로 머릿속에 지식이 쌓였다며 뽐내고 싶어 할 만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호수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적인 현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어서 뿌듯한 마음도 들게 한다.


 

사실 이 책은 호수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호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내내 일깨워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곤 하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인류의 역사가 호수 환경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준다. 호수 밑바닥의 퇴적물을 채취해서 연구해 보면 호수가 간직하고 있는 지구의 사건, 사고가 훤히 보인다는 사실이 참 경이로웠다.

아무리 오지의 고립된 호수라도 연구해보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가령 핵무기 실험이 한창일 시기에 나온 방사능 물질은 전혀 상관없는 멀리 떨어진 지역의 호수 퇴적층에서도 발견된다는 식이다.

 

이토록 호수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 초반의 뉴욕주에 있는 블랙 호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주에서는 블랙 호수의 고유종인 송어를 보존한다는 구실로 호수에 독을 풀었다. 외래종인 물고기들은 독으로 싹 죽이고 송어를 방류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호수의 퇴적물을 연구해 본 결과 외래종이라고 알고 있던 물고기의 DNA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이 호수에 있었다. 블랙 호수에는 송어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도 고유의 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호수에는 치명적인 독을 풀어버린 후였다. 과학적인 연구 없이 예전의 기록만으로 블랙 호수엔 송어만이 고유종이라고 땅땅 결론을 내고 보존이라는 나름대로 좋은 의도로 벌인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러한 실수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오로지 정확한 분석과 연구를 통한 과학으로 호수를, 그리고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읽으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책 읽는 내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과학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산책하다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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