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버스의 극장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키 새버스는 아주 매우 굉장히 극도로 추잡스러운 인간이다. 64세의 작고 뚱뚱하고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굽고 수염을 길게 기른 이 노인은 52세의 드렌카와 13년 동안 불륜관계에 있으면서 온갖 드럽고 기이한 섹스에 탐닉하며 살아왔다.

젊은 시절엔 인형극 예술가로 활동하다가 관객 성추행으로 체포된 적이 있고 그 후 대학에 출강하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세배는 적은 학생과의 노골적인 폰섹스가 발각되어 망신살이 뻗쳐 강단에서 잘리고 몇 년째 백수로 고등학교 교사 아내의 월급에 기생해서 살고 있는 위인이다. 젊을 때부터 머릿속에는 강렬한 성적 욕구가 가득 차 있었으며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서슴지 않았는데 64세의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미키 새버스의 영혼의 단짝인 듯한 드렌카는 그의 변태적인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 주고 더 나아가 그보다 더 과감한 행위를 즐기는 듯한 여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암으로 죽고 만다. 그때부터 미키 새버스는 드렌카와의 섹스가 사라진 이상 자기 자신도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매일 드렌카의 무덤에 찾아가 울고 무덤에 대고 저질 변태 행위를 하다가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던 중 젊은 시절 인형극을 할 때 알았던 친구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미키는 자신이 스스로 죽기 전에 친구의 죽음을 한번 봐보자 하는 심정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러 30년 만에 뉴욕에 온다.


미키 새버스가 지금의 아내 로즈애나와 뉴욕을 떠나 한적한 소도시로 옮겨가 은둔하듯 살아왔던 이유는 30년 전 그의 첫 번째 아내 니키의 실종 때문이었다. 예쁘지만 심약했던 니키는 미키의 극단 배우였는데 어느 날 무대에 오르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이후 그는 니키를 찾으려고 뉴욕을 헤매고 다녔고 결국 어디에서도 니키를 찾지 못 하자 더 이상 뉴욕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뉴욕에 있으면 계속해서 니키를 찾아다니게 될 것이기 때문에.


뉴욕에 오자 니키 생각에 더 울적해지기만 하고 죽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던 미키는 또다른 옛 친구 노먼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노먼의 딸의 방을 사용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밀어내게 된다. 노먼의 대학생 딸의 물건을 뒤져 팬티를 훔치면서 욕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자 삶의 의욕이 다시 생겨나게 된 것이다. 미친 변태 노인! 게다가 노먼의 아내까지 꼬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열리자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며 흥분한다.

그러나 미키가 딸의 팬티를 훔친 걸 알게 된 노먼은 그를 자신의 집에서 쫓아내게 된다.


좌절된 성욕은 다시 죽음을 불러낸다. 미키는 이제 진짜 삶을 끝내고자 새버스 가족들이 묻힌 묘지를 찾는다. 그 묘지에서 자신이 묻힐 무덤 자리와 비석 값을 묘지지기에게 지불하는 촌극을 연출하는데 이 부분은 정말 진지하게 웃기는 장면이었다.

이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다로 가서 죽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 순간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친척 아저씨 피시의 집을 찾아 가게 된다. 100살의 노인이 된 피시는 미키를 기억하지 못 하지만 미키는 이 우연히 나누게 된 대화에 고무된다.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좋았다고, 죽어야 하는 게 싫어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100살 노인의 말. 죽으려고 하는 미키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노인의 소회.


그리고 피시의 집에서 미키는 어머니가 형 모티의 유류품을 모아 놓았던 상자를 발견한다.

그 상자에는 전쟁에서 죽었던 모티의 물건들과 편지 그리고 그의 관을 감쌌던 성조기가 있었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미키는 모티의 상자를 이대로 남겨 두고는 죽을 수 없다고 결심하며 부인 로즈애나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상자를 집안에 안전하게 두고 로즈애나의 비위를 맞춰주며 살겠다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미키 새버스

그러나 또다시 미키의 계획은 좌절된다. 로즈애나는 이미 남편을 대체할 사람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이제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미키는 드렌카의 무덤을 찾아가고 드렌카가 살아있을 당시 함께 했던 변태행위를 무덤에 대고 하다가 그녀의 경찰 아들에게 딱 걸리고 만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죽음의 위기.

미키 새버스는 과연 이번에는 죽을 수 있을 것인가?

 

 

미키 새버스는 대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끊임없이 죽음에 집착하고 비정상적으로 성욕을 드러낼까? 왜 이렇게 비뚤어지고 역겹게 행동할까? 왜 이렇게 정상적인 삶에서 도망치며 살까?

자신이 실패자라고 자책하면서도 왜 자꾸만 변태 속성을 감추지 못 할까?

살기 위해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 이 소설은 700페이지에 걸쳐 미키 새버스라는 인물을 보여 주고 있다.


미키의 다섯 살 많은 형 모티는 2차 대전 중 일본군의 폭격으로 사망한다. 그 이후 미키의 어머니는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그전에 하던 모든 생활을 멈추고 멍하게 슬픔에 젖어 사는 삶을. 90살이 되어 죽을 때 까지 큰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 하고 살았다

미키는 그런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17살에 배를 타는 선원이 되어 세계 여러 항구를 떠돌아 다녔고 곳곳의 창녀들과의 섹스에 탐닉한다. 이때부터 미키에게 죽을 정도의 슬픔을 피하기 위한 해결책은 바로 그짓이 되었다. 끊임없이! 설사 부인이 있어도 한눈을 팔아재끼며 원초적인 본능을 찾아다니는 삶은 그가 어머니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살아도 산 거 같지 않은 반송장 상태. 슬픔이 달라붙어 멈춰있는 상태로 둘째 아들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어머니 같은 삶을 그 안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그는 성욕을 도구로 삼았다.


이런 비정상적인 열정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또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부인 니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애착관계가 너무 깊어서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 했다. 죽은 어머니 옆에서 시체를 살아 있는 사람인양 대하며 며칠을 보내던 니키는 장례식을 치르고도 계속해서 어머니를 그리워 하다가 실종된다. 미키의 인생에서 그의 어머니 다음으로 두 번째로 사라져버린, 끝내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지 못 했던 여자.

두 번째 부인 로즈애나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적으로 괴롭히던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큰 충격을 겪었다. 그 충격은 마음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가 미키가 어린 여대생과 추잡한 짓을 했는데도 그를 내치지 못 하게 한다. 자신이 미키를 버리면 돈 없고 늙고 병든 그가 아버지처럼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점점 술독에 빠져들다가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색정광 드렌카. 암으로 죽어서 진짜로 미키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여자.


이토록 미키가 살고자 매달려 왔던 여자들은 그의 인생에서 점점 사라졌다

형의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슬픔 때문에 죽어 있는 상태여야 했던 그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했던 여자들은 모두 떠났고 결과적으로 그를 더 비참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인생에서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64살 먹은 늙은 몸뚱이와 관절염과 가난 그리고 치욕뿐이다.


그런데 그는 아직 무엇인가가 남아있다.

로즈애나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커다란 분노가 일고 드렌카의 아들에 의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끔찍한 공포를 느낀다

아직 펄떡펄떡한 감정이 살아있다

이런 강렬한 분노, 죽음의 공포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미키 새버스는 과연 죽을 수 있을까?

대답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하겠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씨발 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가버릴 수 있겠는가? 그가 증오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는데.     (723)

 

결국 이 소설은 미키 새버스라는 불결한 호색한이 죽고 싶지 않아서, 죽지 않기 위해 장황하게 쏟아내는 살고자하는 욕망을 풀어 놓은 요설이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 염병 화가 나서 못 죽겠네 그냥 살고 말자!

 

 

 

700페이지가 넘는 이 두툼한 소설은 불쾌하고 강렬하고 혼란스럽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큰소리로 외치고 분노하는 압도적인 문장들에 단숨에 빨려 들어갔다가 뒤에 남겨진 어질러진 잔해들 때문에 심란해지는 느낌의 소설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성적인 묘사들은 너무 노골적이고 기형적이라 야하다기 보다는 이제 그만해 미친놈아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역겹고 지루하다. 미키 새버스라는 비호감의 인물을 작가는 이런 식으로 계속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놈은 정상이 아니다 이놈은 미친놈이다 이놈한테 동정심을 느끼지 말라고

그런데 이 소설은 이런 비호감의 인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강력한 문장의 힘이 있다. 분노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화를 낼 지점에 가서는 엄청나게 화를 내는데 또 인물을 감싸고 있는 배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들은 너무나 뛰어나서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게 한다.

필립 로스는 이것을 자신의 소설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아끼지는 못 하겠고 -내가 필립 로스 소설중 제일 좋아하는 건 미국의 목가- 그냥 필립 로스다운 문장을 양껏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은 꽤 좋았다.

 

꿈에 나올까 겁나는 미키 새버스. 이제 머릿속에서 지워야지ㅎㅎㅎ



(띠지가 있는게 더 예쁜 책. 띠지 벗겨내면 휑하게 비어서 띠지를 꼭 둘러줘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립 로스의 ˝새버스의 극장˝ 읽다가 우리나라가 나와서 깜놀했네ㅎㅎㅎ 

일본인 학장한테 분노하며 혼자서 속으로 욕폭탄을 마구 퍼붓던 중 그와중에 역사를 제대로 알고 언급중인 새버스 되시겠다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1967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당시에는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소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론가들이나 출판 관계자들에게는 꽤나 좋은 평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 작품성이 널리 퍼지진 않아서 몇 부 팔리지 않은 비운의 소설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소설 전반에 걸쳐서 은근하게 내비치고 있는 동성애적 요소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들춰내서 분석하지도 않았고 알아채지도 못 했다고 하니(모른 척 한 것이겠지만) 1960년대에 나오기에는 꽤나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2000년대 들어서야 작가 애니 프루가 쓴 '작품해설' 덕분에 재평가 되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애니 프루는 어쩌면 이 소설에 영감을 얻어 브로크백 마운틴을 집필한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토록 책 자체로도 사연이 많은 이 소설은 읽기 전부터 내 기대감을 한껏 끌어 올려놓았고 부푼 가슴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너무 좋았다. 기대이상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책이 정말 만족스럽고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 책이 좀 더 두꺼워서 계속해서 읽어내려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한 결말이지만 이것보다 더 장황한 묘사도, 더 많은 사족도 기꺼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 소설의 이야기도 인물들도 문장들도 다 좋았다.

 

이 소설은 긴장감으로 꽉 채워진 심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목이 바싹 마르는 갈증을 느꼈는데 이것은 추리소설 같은 장르를 읽을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느낌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피가 마르는 느낌, 정신적인 피폐함으로 몸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느낌의 긴장감이랄까?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이런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매력적이지만 사악한 악당 필이 내뿜는 여성과 여성스러운 남성에 대한 혐오감은 최고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비밀을 실수로라도 내뱉을까봐 술조차 마시지 못 하는 남자의 진심은 수면 아래에서 도사리고 있는 은근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로즈는 필의 괴롭힘 앞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약자의 모습으로, 피터는 속을 알 수 없는 예민함으로 필의 대척점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온화하지만 둔한 조지는 형과 아내 사이의 악의와 두려움을 중재하지 못 하고 방관하는 입장이라는 것에서 또 한축의 느슨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에 몬태나주의 광활한 풍경과 인간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거친 자연이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도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인물과 풍경의 묘사가 대단히 뛰어난 점도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도 이런 뛰어난 묘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다고 본다.

특히나 동성애자지만 그것을 부인하고 숨기려 하는 필을 거친 자연을 누비는 누구보다도 가장 터프한 남자로 묘사하면서도 언뜻언뜻 비치는 단편적인 모습 속에서 진실이 또아리 틀고 있는 듯 힌트를 주는 묘사를 하는 점은 참 절묘한 부분들이었다.

 

 

조만간 이 소설로 만든 영화도 나온다고 하니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가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가 좋은 소설을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상상하던 풍경을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을 거 같다.

아무튼 주말동안 너무 좋은 소설을 읽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책 표지는 마음에 안든다. 제목 글씨도 눈에 잘 안들어 오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0-2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영화로 나오는 군요 별 🖐이라니 기대 됩니다 ^ㅅ^

망고 2021-10-27 12:54   좋아요 0 | URL
12월1일에 넷플릭스 공개래요^^소설은 진짜 좋았어요 강추~
 

(이것은 내가 나에게 증정한 내돈 내산 책이닷ㅎㅎㅎㅎㅎ)




나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장편소설 미들섹스결혼이라는 소설두 편을 읽었고 그 후 작가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신간으로 이 단편집이 나왔을 때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사실 나는 단편 취향이 아니라서 단편집은 잘 사지도 읽지도 않지만 이 작가의 단편이라면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정도로 장편을 꽤 인상적으로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단편집을 다 읽어본 결과 기대와는 다르게 썩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들도 여러 편 있었다. 물론 좋았던 것도 있었고. 그러니까 좋았던 것과 별로였던 것이 골고루 들쭉날쭉 섞여 있다고나 할까.

 

 

먼저 이 작가의 장편 소설을 읽었으면 친숙할 단편이 두 편 보인다. “항공 우편신탁의 음부”. 

항공 우편결혼이라는 소설속에서 짝사랑으로 마음 아파하다가 친구 래리와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여행가는 미첼이 등장한다. 작가가 미첼이라는 캐릭터를 장편소설을 쓰기 전에 어떻게 구상하고 있었는지 살짝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롭긴 했다. 하지만 모호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신탁의 음부에서는 미들섹스에서 주인공에게 여성으로 살 것을 진단했던 박사가 다시 등장한다. 근데 이 단편은 좀 너무 징그럽고 상상하기 싫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가 않다. 너무 어린 아이가 그렇게 달려드는 장면은 정말이지.......

 

베이스터는 통통 튀는 시트콤 같은 느낌의 단편이 될 뻔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공포물이 되어버렸다. 이런 결론을 내놓고 발랄한 톤이 끝까지 유지 된다는 게 너무 섬뜩했다.

40살에 잘나가는 방송국 PD인 미혼의 토마시나는 아이를 낳고 싶어서 정자만 얻고자 한다. 우월한 유전자의 남자들을 물색하던 중 드디어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운 남자를 찾아냈다. 그런데 이미 누구의 정자를 받아서 아이를 가질 것인지 합의가 다 된 이 상황에 키가 163cm라 우월한 유전자로 선택받지 못한 전 남친이 끼어든다. 그는 받아놓은 정자에 몰래 심술 맞은 짓을 해버린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나레이터인 전 남친이 너무 소름끼치고 결말도 저걸 어쩌나 싶어서 참 심란하면서 약간 불쾌하기까지 했다. 토마시나 입장에서는 진짜 너무 뜨악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이 단편집 중 가장 최근작은 2017년에 나온 신속한 고소인데, 이거 읽으면서도 기분이 영 좋지가 않았다. 인도계 미국인 소녀 프라크르티는 16살인데도 벌써 부모님이 정한 인도인 결혼 상대자가 있다. 프라크르티는 그렇게 결혼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계략을 꾸민다. 처음 보는 중년의 물리학 교수 매슈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진 후 강간으로 고소를 한다는 엄청난 일을 계획한 것이다. 프라크르티는 16살이라 성인이 상대일 경우 강간으로 고소가 가능하다는 것까지 다 알고는 매슈에게 접근한다.

여기서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근데 굳이 왜?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라는......이 소설에서 말하길 이렇게 해야 프라크르티는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으면서 처녀성을 잃었다고 소문이 날 것이고 그래서 정략결혼은 없던 일이 될 것이며 앞으로도 쭉 부모님이나 그 누구도 프라크르티를 시집보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인도남자들도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나?

여전히 설득이 안 된다. 정략결혼이 싫으면 가출을 하든지, 부모를 설득하든지 뭔가 다른 방법을 시도해봐야지 너무 급발진이잖아 이건! 굳이 자신의 책임이 아닌 타의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어야 한다고 남을 이용하는 짓을 하는 소녀 캐릭터를 어떤 독자가 좋게 볼 수가 있나?

이건 너무 작가의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중간 없이 극단으로 폭주해버린 느낌. 명문대 갈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영특한 소녀가 저런 큰일을 저지른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가면서 이런 설정을 굳이 했어야 하는 작가의 의도가 심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이게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어서 책을 덮고 나서 굉장히 찝찝했다.

 


좋았던 단편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고음악”. 음악학 박사과정에 있던 부부가 아이가 생기자 생활고 때문에 자신들의 꿈을 접고 남자는 피아노 레슨을 여자는 인형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에 치여 살아간다. 둘 다 지금의 삶이 힘들고 꿈을 포기한 게 후회스럽지만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일. 할부를 갚지 못해 압수 위기에 처해 있는 남자의 악기 클라비코드의 운명처럼 이 부부의 삶도 희망 없이 먹구름이 끼어있다. 우울한 생활감이 가득한 이야기였는데 현실적인 이야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위대한 실험고음악과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이 나온다. 젊은 시절엔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문예지에 시도 실린 꿈 많고 유망한 시인이었던 주인공이지만, 현재는 의료보험도 들어주지 않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보온이 거의 되지 않는 오래된 집, 맞벌이 부부라 늘 지저분한 집안 풍경, 난방비 아끼려고 난방을 거의 틀지 않아 추워서 친구네로 피신해버리는 아이들, 이 모든 궁핍한 상황이 이제 중년의 주인공을 자꾸 비참하게 만든다. 그래서 범죄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게 된다. 하지만 결론은 예상대로 처참하다.

이 단편 또한 젊은 시절 좌절된 꿈과 닥쳐오는 생활고라는 냉정한 현실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는 소설이었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작가는 꽤 할 말이 많고 또 잘 쓰는 분야인거 같다. 그래서 꿈꾸는 시간이 지난 후 지독한 현실이 닥쳐올 때의 씁쓸하고 우울한 정서를 담아낸 이야기들엔 공감이 가고 울림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여기 실린 모든 단편이 내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보니 스멀스멀 장편에 대한  갈증이 밀려온다.



작가님 이제 슬슬 장편소설 낼 시기가 오지 않았나요? 두툼한 장편을 내 주세요

작가님은 아무래도 장편이 훨씬 좋은 거 같아요^^




일단 초기작 "처녀들, 자살하다"나 구해서 읽어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에 핀 나팔꽃)




오늘 백신 2차 접종 완료했다. 홀가분하다

근데 1차때는 음주 자제하란 얘기만 들었고 카페인에 대해서 별 말 없었던거 같은데 이번엔 술은 당연히 먹지 말고(원래 안 먹는다) 카페인도 당분간 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1차때 팔이 붓고 벌개졌다고 얘기했더니 2차는 더 심해질 수 있으니 타이레놀 먹으며 참지 말고 이상증상 나타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당부도 듣고ㅠㅠ

아흐 제발 조용히 지나갔으면....

근데 카페인도 안 된다니...... 하루에 커피 2잔은 꼭 마시는뎅ㅠㅠ 어떻게 참지


아무튼 간만에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백신도 다 완료하고 신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1-10-1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고님 2차 백신 완료!!

별 탈 없이 지나가길 바랍니다
전 1차 맞고
골골 zZZZ

망고 2021-10-17 12:58   좋아요 0 | URL
이미 2차 맞고 이틀 앓다가 일어났어요ㅜㅜ 지금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