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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이 소설은 1967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당시에는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소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론가들이나 출판 관계자들에게는 꽤나 좋은 평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 작품성이 널리 퍼지진 않아서 몇 부 팔리지 않은 비운의 소설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소설 전반에 걸쳐서 은근하게 내비치고 있는 동성애적 요소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들춰내서 분석하지도 않았고 알아채지도 못 했다고 하니(모른 척 한 것이겠지만) 1960년대에 나오기에는 꽤나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2000년대 들어서야 작가 애니 프루가 쓴 '작품해설' 덕분에 재평가 되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애니 프루는 어쩌면 이 소설에 영감을 얻어 “브로크백 마운틴”을 집필한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토록 책 자체로도 사연이 많은 이 소설은 읽기 전부터 내 기대감을 한껏 끌어 올려놓았고 부푼 가슴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너무 좋았다. 기대이상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책이 정말 만족스럽고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 책이 좀 더 두꺼워서 계속해서 읽어내려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한 결말이지만 이것보다 더 장황한 묘사도, 더 많은 사족도 기꺼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 소설의 이야기도 인물들도 문장들도 다 좋았다.
이 소설은 긴장감으로 꽉 채워진 심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목이 바싹 마르는 갈증을 느꼈는데 이것은 추리소설 같은 장르를 읽을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느낌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피가 마르는 느낌, 정신적인 피폐함으로 몸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느낌의 긴장감이랄까?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이런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매력적이지만 사악한 악당 필이 내뿜는 여성과 여성스러운 남성에 대한 혐오감은 최고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비밀을 실수로라도 내뱉을까봐 술조차 마시지 못 하는 남자의 진심은 수면 아래에서 도사리고 있는 은근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로즈는 필의 괴롭힘 앞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약자의 모습으로, 피터는 속을 알 수 없는 예민함으로 필의 대척점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온화하지만 둔한 조지는 형과 아내 사이의 악의와 두려움을 중재하지 못 하고 방관하는 입장이라는 것에서 또 한축의 느슨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에 몬태나주의 광활한 풍경과 인간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거친 자연이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도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인물과 풍경의 묘사가 대단히 뛰어난 점도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도 이런 뛰어난 묘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다고 본다.
특히나 동성애자지만 그것을 부인하고 숨기려 하는 필을 거친 자연을 누비는 누구보다도 가장 터프한 남자로 묘사하면서도 언뜻언뜻 비치는 단편적인 모습 속에서 진실이 또아리 틀고 있는 듯 힌트를 주는 묘사를 하는 점은 참 절묘한 부분들이었다.
조만간 이 소설로 만든 영화도 나온다고 하니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가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가 좋은 소설을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상상하던 풍경을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을 거 같다.
아무튼 주말동안 너무 좋은 소설을 읽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책 표지는 마음에 안든다. 제목 글씨도 눈에 잘 안들어 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