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편과 달리 이 번 2편은
범인인 직쏘가 드라난 상태에서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싸움이다.
어두운 창고 한 남자가 눈을 뜬다. 정신을 차리고 본 자신의 몸은 육중한 알 수 없는
살인기계가 감싸고 있고 곧 이어 가면을 쓴 남자가 보내는 메시지가들려오는
TV를 보게된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는 자신의 목에 감긴 타이머 살인기계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너 자신의 눈속에 감추어진 열쇠로 기계를 열어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결국 칼로 자신의 눈을 도려내지 못한 남자는 기계가 작동하고
죽고 만다.
이 문제를 조사하러 온 경찰 메튜스형사.
이상한 건 천장에 쓰여진 글에 자신의 이름이 있고 살인자는 자신에게
보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또 다른 비디오에서는 자신과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여느 연쇄 살인마들이 하는 행동에 놀아나고 싶지 않은 형사.
형사로써 직무보다고 이혼소송과 점점 범죄의 굴로 들어가는 아들이 더 걱정인 형사.
하지만 이제 메튜스형사는 게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됬다.
범인인 직쏘를 잡았지만 직쏘는 알 수 없는 장소에 갇힌 여러명의 사람들을 보여주며
이들은 몇 시간후 지속적으로 들이마신 독가스로 죽는다는 것이다.
2시간안에 해독제를 맞아야하는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의 아들 대니얼이 포함되 있는 것이다.
한편 직쏘에게 갇힌 사람들,,
직쏘가 남긴 메시지는 삶에 대한 본능과 욕망이 자신들을 살리 수 있으며
그러기위해서는 게임을 해야한다고 한다.
방안에 갇힌 이들의 공통점과 그들 자신의 머리안에 열쇠의 키가 있고
이로 인해 해독제가 있는 금고를 열 수있다는 것.
막막한 힌트에 이들은 흥분하고 내려진 메시지를 무시하고 출구를 찾기위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무모한 시도로 인해 한 사람씩 죽고 드디어 그들의 공통점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모두 감옥에 갔었다는 것, 하지만 대니얼 형사의 아들은 말썽은 부렸지만
소년원 신세를 진 적은 없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은 연관성이 곧 드러난다.
모두 대니얼의 아버지가 감옥에 보낸 사람들이며 이들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메튜즈는 증거를 조작했던 것이다.
메튜즈는 기억을 잘 못하지만 메튜즈를 아주 잘 기억하는 이들.
이들과 죽음의 늪에 있는 아들 대니얼..
결국 이성을 잃은 메튜스는 직쏘를 폭행하고 위협해
직쏘와 메튜즈는 다른 동료형사를 따돌리고 아들이 갇힌 집을 향해 달린다.
이와 동시에 집의 위치를 파악한 경찰들도 출동한다.
하지만 경찰들이 찾은 집은 속임수였고 경찰들이 보고 있던 모니터상의
갇힌 사람들의 상황도 라이브가 아닌 녹화된 것이었다..
이미 벌어져버렸던 과거의 일이 었던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제 직쏘와 같이 떠난 메튜스만이 알 수있다.
한편 메튜스는 직쏘가 알려준 바로 그 장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모두 죽고 욕실안 욕조안에 덮개를 덮고 있는
또 다른 시체만이 있다.
자신의 아들일 것이라 생각하며 덮개를 연 메튜즈는 공격을 받는다.
갑자기 일어난 욕조안에 그 시체는 죽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아들도
아닌 바로 아들과 마지막까지 살아있었던 갇혀있던 여자 중 한명이며.
그녀는 전편에서 유일하게 직쏘의 게임에서 살아남은 여자였다.
동시에 직쏘를 검거한 바로 그 장소. 직쏘가 처음 게임을 할때 약속한
3시간 후 문이 열린다. 그 문은 바로 직쏘가 검거된 장소뒤에 있는 금고의 문
열리는 문은 모니터안에 비취지는 집의 문이 아닌 바로 금고의 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기진맥진 해진 매튜스형사의 아들이
들어있다.
한편 매튜스를 공격한 그녀.
그녀 역시 마약을 하며 생을 허비한 일로 직쏘의 타켓이 되었던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일로 인생의 전환점을 갖고 직쏘의 수재자가 되어
인간의 생존본능을 위한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첫 번째 대상으로
메튜즈형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직쏘는 말기암으로 죽어가면서 자신이 살고자 하는 본능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방법은 불멸. 즉 자신의 일을 연이어 해 줄
대린인을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는 그녀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직쏘의 말을 빌리듯이 인간은 죽음의 직면해서야
인생의 참뜻과 자신의 인생의 즐거움을 깨닫고
죽음의 시기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삶을 비관하고 허비하며 사는 인간들에게
사소한 한 가지라도 살아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껴야 하며
감사하라는 것이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멋진 주제에도 불구하고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법이다.
섬듯한 납치와 폐쇄된 공간에 갖혀있는 공포, 죽음으로 다가오는 시간..
잔인한 폭력의 표현법이 오히려 주제는 그저 감독의 핑계일뿐이고
여느 폭력이 난무한 영화, 관객에게 자극을 주려는 충격적인 장면의 수단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 만큼 이 감독의 표현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편에서는 헐리우드식 결말이 아닌 의외성과 원래의 내용이
상투적인 연쇄살인마가 아니라는 점때문에 나름의 점수를 주었지만
2편을 계기로 그 것 마저도 거두고 싶은 욕심이다.
그리고 절대로 청소년이나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인간이 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연쇄살인범이 무슨 세상의 진리를 알리는 자처럼
묘사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직쏘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것에 대한 분풀이로
괘변을 늘어놓는 연쇄살인마일뿐이며 그녀 또한 이에 물든
연쇄살인마일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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