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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간혹 '로 앤 오더 SVU'나 ‘CSI’같은 인기 수사물들의 무궁무진한 소재 선정에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부분이 실제 사건을 토대로 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놀랍다.
몇 명의 여성들만 사는 집에 침입한 범인이 그들을 묶고 차례로 강간 살해한 사건은 CSI에서도 충격적으로 봤던 에피소드였는데 실제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니 끔찍하기만 하다.
오랜 세월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피로에 지친 수사관의 고뇌가 느껴졌던 존 더글라스의 책 ‘마인드 헌터’와는 달리 레슬러는 냉철한 이성과 함께 다소 거만한 듯 한 인상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지난 15년간 인질협상 훈련을 받은 미군의 90퍼센트가 자신의 손을 거쳤을 거라는 말이나 주요 강력범죄기관을 설립할 때 중심 역할을 했었다는 언급 등 자기자랑으로 들릴만한 말들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심지어는 자신이 한 일이 범인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직접 그를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조차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읽다보면 마법같은 프로파일링이 세심한 관찰과 치밀한 분석에 의한 과정으로 그 어떤 분야보다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적이 드문 곳에 버려진 시체를 통해서 범인이 피해자를 숲으로 끌고 들어갈 만큼의 힘도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거나, 범행의 특징이 불분명한 것으로 보아 첫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설명, 아침 6에 이뤄진 범행은 범인에게 가족이 없을 거라는 추론 등...
비싼 화분만을 남겨놓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보험 사기범의 이야기에서조차 프로파일링은 충분히 제몫을 해낸다.
'마인드 헌터'로 유명한 존 더글라스도 이 책에 종종 등장한다.
멘슨 사건과 관련된 여성수감자를 면담할 때 젊고 적극적인 존 더글라스 요원과 동행했다거나, 이후에는 최근 들어 가까워진 콴티코 훈련원 더글라스를 데리고 갔다, 자신의 뒤를 이어서 더글라스가 콴티코에서 인질협상법을 가르치기도 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살인자와 한방에 단 둘이서만 갖혔던 일 이후 절대로 혼자서 면담하지 않는 방침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읽는 이의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로 앤 오더 SVU'에 나온다.)
이 책에는 저자가 현대의 매스미디어와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충분하다.
살인자들이 범행현장에 돌아온다는 속설이 진리임을 확인하는 것도 그렇고, TV와 신문이 살인자에 관한 기사를 끊임없이 내보내면서 범행을 부추긴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주장, 살인범들이 가난한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생각의 어리석음 등을 이야기한다.
그밖에도 냉장고를 버릴 때는 아이들이 들어가 놀다가 갇혀서 질식하지 않도록 꼭 문을 떼어서 버려야 한다는 연방법의 사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맨슨 사건이 치밀하게 계획되고 배후 조종된 살인이 아니라, 정신이 몽롱한 가출 청소년들 내의 권력투쟁에 휘말린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는 읽을거리들이 충분하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사회에는 언제나 일정 비율의 비조직적 살인범이 존재할 것이라는 저자의 확신은 다소 마음 아픈 현실을 깨닫게 한다. 안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비정하고 비정상적인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