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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평점 :
‘누명’은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이다.
등장인물, 배경, 사건, 해결방식까지 너무도 안전한 구성과 허를 찌르는 결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외딴 집에 낯선 손님이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2년 전에 의붓어머니를 살해하고 감옥에서 죽은 범인의 알리바이를 들고 나타난다.
이후 가족들은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사건을 끄집어내게 되면서 괴로움에 빠진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누명’은 무게의 상당부분이 추리과정이 아니라 가족들 간의 숨 막히는 심리적 갈등에 할애된다. 미스 마플이나 포와로같은 명탐정도 등장하지 않는 마당에 추리의 비중까지 줄어들었으니 독자로서는 맥이 빠질 만도 하다.
심리적인 갈등에 무게를 두었다고 해서 심리미스터리서스펜스(?)도 아니다. 그저 애매하게 추리극과 심리극 사이를 오가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실망스럽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대가의 작품답게 이야기는 긴박감 넘치고, 마지막에는 역시 의외의 범인이 밝혀진다.
그리고 작가는 친절하게도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범인에 관한 단서를 흘려준다.(눈치 빠른 독자라면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거듭 강조되는 어떤 인물에 관한 성격 묘사(!)만으로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런 자신의 성격을 범죄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누명’은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독특한 멋이 있는 나름대로의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