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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한동안 김전일식의 간결한 추리만화, 존 그리셤같은 템포 빠른 스릴러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로서는 꽤나 적응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파이로 번스는 무하마드 알리 못지 않은 떠벌이다. 현학적이고 박학다식하긴 하지만 말이 진짜 많다.
가장 압권은 메컴에게 그린 집안에 깃들인 암울한 분위기와 악의적인 기운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셜록 홈즈같았으면 두어 마디로 족했을 이야기를 한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그칠 줄 모른다.
어떤 부분에서는 포도주에 관한 지식을 한 페이지 늘어놓기도 한다.
이번 사건을 함께 맡은 지방검사 메컴도 걸핏하면 “자네의 호메로스적 해설은 잘 들었네만...", ”듣기 거부간 자네의 긴 수다를 늘어놓는 것은 사절하겠네"라면서 번스의 말을 끊는다.
더구나 일본식 번역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자어의 사용으로 책읽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파이로 번스의 수다를 참을 수 있다면 ‘그린살인사건'은 최근 유행하는 얄팍한 추리물과는 격이 다른 명품추리를 보여준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고, 가장 멍청해 보였던 사람이 사실은 천재였다는 식의 전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린 저택에서 벌어진 지극히 평범한 총격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독자에게 도전할 뿐이다. 기묘한 트릭도 없고, 불가능한 밀실살인도 없는 이 작품은 확실히 무게감있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