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 미디어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법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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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서평 [소통;미디어로 세상과 관계맺는법] 정여울, 홍익출판사, 2011

글쓰기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개인으로 시詩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자 수가 적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만, 글자 수가 적기 때문에 조사하나가 틀려도 좋은 시에서 그냥 평범한 운문으로 바뀔 수가 있다. 그래서 시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소설을 쓰고, 소설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평론을 쓴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물론 순위를 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같은 세상에 살지만 시인, 소설가, 평론가는 모두 다른 시각을 가진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다.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럼 평론가는 어떤 입장에서 이야기할까? 시인이나 소설가가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서 이야기를 한다면, 평론가는 자신을 버리고, 객관적인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를 일시적이고 말초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보고, 매일 접하는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미디어는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르키는 자체라고 한다. 미디어가 우리가에 주는 것은 살아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을 해소하거나, 언제가 살아내야만 할 삶을 예행연습이라고 한다.


이 책은 미디어와 관련된 56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장마다 다른 소재를 가지고 잘 읽히고 이해하기도 쉽게 정리 되어있다. 문학평론가의 평론이라기보다는 수필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 장에서 소셜 미디에서 벗어나 살갗과 살갗이 부대끼는 소통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젠 밤새 수십 장의 편지지를 찢고 다시 쓰는 편지는 사라졌고, 간단한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접속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발전이 비관적이기만 할까? 실천의 문제이겠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소셜 미디어가 거리를 넘어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지 않을까? 평론이란 객관적 논리와 논증이 앞서야 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보는 문학평론가의 통찰력으로 잘 쓰인 수필이다.


끝 201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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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 체계론적 부부.가족 상담 사례집
이남옥 지음 / 학지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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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서평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이남옥, 학지사, 2011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등을 너무 좋아한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모든 분야에 걸쳐서 세계 최고만을 목표로 살아왔다. 아이러니하게 나쁜 쪽으로도 일등이 많다. 출산율은 최고로 낮고, 자살률은 최고로 높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화병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화병(Hwa-byung)은 이시형 박사가 세계 정신의학학회에 등재시킨 용어로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한 병이다. 사전적 의미로서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으로 우울감, 식욕 저하, 불면 등의 우울 증상 외에도, 호흡 곤란이나 심계항진, 몸 전체의 통증 또는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느낌 등의 신체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난다. 원인으로 환자가 자신의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고, 그 억압된 분노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 유교질서 속에서 주로 여성들이 많이 가졌던 병이다. 물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화병이 생기는 남성도 있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부부 간의 소통부족과 질병이라는 인식의 부족에 있다. 문제는 부부 사이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문제들은 지금까지 종교적 차원에서 해결됐다. 기독교에서는 가계의 저주, 불교에서는 업(業), 무속신앙에서 귀신이 씌었다는 모호한 논리를 가지고 종교적 상담과 기도라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하지만 그 한계에 직면했다. 만약 순기능이 작용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문제가 생겨나서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심리 상담을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심리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당사자를 사이코패스 같은 괴물로 본다. 이러한 편견이 병을 더 키운다. 심리 상담은 병원의 정신 의학과에서는 약물과 상담을 통해서 치유하고, 심리학 쪽에서는 상담을 중심으로 치유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또한 양자 모두 종교적 치유에 비해서 좀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다.



이 책도 부부사이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많은 사례를 통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치유는 되지 않는다. 적극적인 상담을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상처와 반응이 자식들에게 대물림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부모의 갈등은 어린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의식 한쪽에 잠재해 있던 트라우마는 그와 유사한 상황이나 행동에 과민반응한다. 결국, 누구나 부닥칠 수 있는 상황에 이성적 행동보다 감정에 치우친 부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외적으로 보면 부모의 갈등이 대물림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부부의 행복뿐만이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자식에 대한 의무이다.


저자 : 이남옥

독일 올덴부르크 대학교 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같은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강의했다. ,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가족상담학과 교수·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이며, 심리상담, 가족치료, 갈등조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끝.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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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의 그래픽디자인 -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BIG IDEA
애너 거버 지음, 송성재 옮김 / 미술문화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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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서평 [50인의 그래픽디자인], 애너 거버, 미술문화, 2011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많은 광고는 대부분 컴퓨터를 활용한 그래픽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우리 생활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컴퓨터처럼 그래픽디자인도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깊이의 차이는 엄연하게 존재한다. 어떤 것들은 길가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되고, 어떤 것들은 대를 이어가며 회자하는 작품이 된다. 우리 기억 속에 남는 작품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대형 마트에서 대충 사 입은 스웨터 색깔은 어느 유명 디자이너가 고심한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편집장 미란다의 대사)


이 대사처럼 어떤 것의 원형이라는 것은 무수한 노력과 고심 끝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픽디자인을 이해하는 것도 원형을 통해서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12색 상의 포스터컬러 물감으로 그렸던 포스터가 그래픽디자인의 시작이다. 이 책에서도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인 프랑스의 쥘 셰레부터 그래픽디자인을 이야기한다. 아르누보, 미래주의, 모더니즘, 구성주의와 다다이즘을 포함은 미술주요 사조와 함께 리소그래피, 모노타이프, 디지털 폰트 등을 포함한 기술발전단계를 50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래픽디자인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것이다. 기존의 미술작품과 비교해서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중적으로 친숙한 것은 그래픽디자인이다. 쥘 세례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프랑스의 작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렇게 말했다.


거리를 보라. 그곳에는 황금색 액자 안에 들어있는 그림이 아니라, 삶의 예술로 살아 숨 쉬는 다채로운 포스터가 있다.


이 말처럼 좋은 그래픽디자인은 원형 즉 우리 삶이 반영해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공해가 아닌 삶의 예술로서 더 많은 그래픽디자인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끝 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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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과학을 탐하다 - 우리가 궁금해 하는 그림 속 놀라운 과학 이야기
박우찬 지음 / 소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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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회화 서평 [미술 과학을 탐하다] 박찬우, 소울, 2011


인간에게 있어서 미술이란 어떤 것일까? 삶에 무게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미술은 다가갈 수 없는 한낱 몽상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미술작품 속에는 우리 삶이 녹아있다. 단지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모를 뿐이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은 보통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없는 비싼 작품들이다. 물론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지만, 그러한 것들은 원작이 주는 빛깔의 매혹적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작품의 크기가 어떤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책은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 한 번도 볼 수 없는 작품을 수학, 해부학, 카메라 옵스큐라, 사진, 광학, 상대성이론, 정신분석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가 보면, 마치 과학의 발달로 덕분에 미술작품이 변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과학은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서 발전되었고, 미술작품은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저자도 고백하고 있다.


미술은 과학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삶을 반영하고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최고의 걸작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드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주변에서 열리는 작은 전시회에서도 충분히 우리 삶이 녹아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책보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끝. 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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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영한대역문고 75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시사영어사 편집부 엮음 / 와이비엠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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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평 [구토] 장 폴 사르트르, 시사영어사, 1994


어떤 젊은 소설가의 말을 빌리자면, [구토]는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소설이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문체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단어들의 집합이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절망 그 자체였다. 혹시 ‘번역자의 나태함으로 책이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모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은 영문 번역판과 한글 번역판이 붙어 있는 이 책을 펼쳐보는 것이다. 역시 번역자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먼저 읽어본 사르트르의 단편 소설 [벽]은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형수들의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고, 마지막 부분의 극적 반전이 짧은 이야기에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바로 1년 뒤에 발표한 [구토]는 정말 참기 어렵다. 왜 이런 소설을 쓴 것일까? [고전탐닉]의 저자 허연은 사르트르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지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구토]는 주인공 - 30세의 고독한 지식인 로망탱이 실존적 자아에 찾아가는 과정을 일기체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는 본질보다 앞선다


이것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명제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존재는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이며, 본질은 규정된 이후의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인간이 만든 물건들은 일종의 필요성 같은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상태 즉 본질이 결정된 후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 속에 내버려진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가야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 때문이다.

이러한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외부적 상징인 노벨상을 거부 한다. 그는 사색만 하는 철학자가 아닌 실천하는 철학자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물체들은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용하고, 그러고 나서 제자리에 갖다 놓고, 그것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지만 그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를 만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마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들처럼, 나는 그 물체들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이젠 알았다. 얼마 전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주웠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콤한 역겨움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나빴던가! 그런데 그 역겨움은 조약돌에서 왔다. 확실히 그렇다. 조약돌에서부터 옮겨진 것이다. 그래, 그거다. 확실하다. 손안에 있는 일종의 구토다. 25쪽


이 부분의 의미를 생각한 것이 이 책의 전체를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내린 정의는 이렇다. 샤르트르는 조약돌같이 작은 사물이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할 때 구토를 느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구토는 데카르트가 이성을 넘어서, 샤르트르식의 육신의 반응이다. 생각하고 구토를 느낌으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살이 있는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배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왔다가는 나가고, 그뿐이다. 시작이란 결코 없다. 하루하루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운율도 없이 그저 계속되며, 그것은 끝이 없는 단조로운 덧셈이다. 49쪽


그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려는 것은 바보짓일 게다. 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사물의 한복판에 있다. 혼자서, 말없이, 아무 방어도 하지 않는 나를 사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물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사물은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한 줄기의 그림자, 한줄기 가느다란 검은 줄기가, 의자 쿠션 밑에 나무 옆에, 신비스럽고 장난스러운 거의 미소와 같은 모습으로 의자를 따라 뻗어 있다. 나는 그것이 미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한다. 그것은 뿌연 차장 밑으로, 차장의 덜커덩거리는 소리 아래로 뻗어 간다. 133쪽


한 권의 책. 물론 그것은 처음에는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고, 존재하는 것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을 막아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그것이 남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밝은 빛이 내 과거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 책을 통해서 나의 삶을 아무 혐오감 없이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어느 날, 바로 이 시간을, 등을 움츠리고, 기차 탈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이 침울한 시간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내 심장이 더 빨리 고동치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그날 그 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과거에서, 오직 과거에서만, 자신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232~233쪽


주인공 로망탱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사물에 구토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대화와 사색으로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가지는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이고 내 존재가 인정하고 자신을 받아드릴 수 있다.


이 책처럼 이 서평도 정리가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먼 훗날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Jean Paul Sartre (1905 ~ 1980)


프랑스 파리에서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 슈바이처 박사의 친척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다음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 집에서 성장했다. 1929년부터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시몬 드 보봐르와 사귀기 시작했고, 1937년 최초의 단편 [벽], 1938년 [구토]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과 희곡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42년 [이방인]의 저자 카뮈와 만나게 되고, 1952년 카뮈로 논쟁을 하고 결별했다. 1964년 노벨상을 거부했고, 실천하는 철학자로서 역사에 남아있다.

20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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