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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영한대역문고 75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시사영어사 편집부 엮음 / 와이비엠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소설 서평 [구토] 장 폴 사르트르, 시사영어사, 1994
어떤 젊은 소설가의 말을 빌리자면, [구토]는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소설이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문체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단어들의 집합이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절망 그 자체였다. 혹시 ‘번역자의 나태함으로 책이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모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은 영문 번역판과 한글 번역판이 붙어 있는 이 책을 펼쳐보는 것이다. 역시 번역자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먼저 읽어본 사르트르의 단편 소설 [벽]은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형수들의 심리묘사가 잘 되어있고, 마지막 부분의 극적 반전이 짧은 이야기에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바로 1년 뒤에 발표한 [구토]는 정말 참기 어렵다. 왜 이런 소설을 쓴 것일까? [고전탐닉]의 저자 허연은 사르트르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지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구토]는 주인공 - 30세의 고독한 지식인 로망탱이 실존적 자아에 찾아가는 과정을 일기체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는 본질보다 앞선다
이것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명제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존재는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이며, 본질은 규정된 이후의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인간이 만든 물건들은 일종의 필요성 같은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상태 즉 본질이 결정된 후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 속에 내버려진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가야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 때문이다.
이러한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외부적 상징인 노벨상을 거부 한다. 그는 사색만 하는 철학자가 아닌 실천하는 철학자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물체들은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용하고, 그러고 나서 제자리에 갖다 놓고, 그것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지만 그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를 만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마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들처럼, 나는 그 물체들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이젠 알았다. 얼마 전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주웠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콤한 역겨움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나빴던가! 그런데 그 역겨움은 조약돌에서 왔다. 확실히 그렇다. 조약돌에서부터 옮겨진 것이다. 그래, 그거다. 확실하다. 손안에 있는 일종의 구토다. 25쪽
이 부분의 의미를 생각한 것이 이 책의 전체를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내린 정의는 이렇다. 샤르트르는 조약돌같이 작은 사물이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할 때 구토를 느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구토는 데카르트가 이성을 넘어서, 샤르트르식의 육신의 반응이다. 생각하고 구토를 느낌으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살이 있는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배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왔다가는 나가고, 그뿐이다. 시작이란 결코 없다. 하루하루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운율도 없이 그저 계속되며, 그것은 끝이 없는 단조로운 덧셈이다. 49쪽
그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려는 것은 바보짓일 게다. 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사물의 한복판에 있다. 혼자서, 말없이, 아무 방어도 하지 않는 나를 사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물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사물은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한 줄기의 그림자, 한줄기 가느다란 검은 줄기가, 의자 쿠션 밑에 나무 옆에, 신비스럽고 장난스러운 거의 미소와 같은 모습으로 의자를 따라 뻗어 있다. 나는 그것이 미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한다. 그것은 뿌연 차장 밑으로, 차장의 덜커덩거리는 소리 아래로 뻗어 간다. 133쪽
한 권의 책. 물론 그것은 처음에는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고, 존재하는 것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을 막아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그것이 남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밝은 빛이 내 과거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 책을 통해서 나의 삶을 아무 혐오감 없이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어느 날, 바로 이 시간을, 등을 움츠리고, 기차 탈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이 침울한 시간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내 심장이 더 빨리 고동치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그날 그 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과거에서, 오직 과거에서만, 자신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232~233쪽
주인공 로망탱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사물에 구토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대화와 사색으로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가지는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이고 내 존재가 인정하고 자신을 받아드릴 수 있다.
이 책처럼 이 서평도 정리가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먼 훗날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Jean Paul Sartre (1905 ~ 1980)
프랑스 파리에서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 슈바이처 박사의 친척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다음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 집에서 성장했다. 1929년부터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시몬 드 보봐르와 사귀기 시작했고, 1937년 최초의 단편 [벽], 1938년 [구토]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과 희곡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42년 [이방인]의 저자 카뮈와 만나게 되고, 1952년 카뮈로 논쟁을 하고 결별했다. 1964년 노벨상을 거부했고, 실천하는 철학자로서 역사에 남아있다.
201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