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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세계사 - 대량학살이 문명사회에 남긴 상처
조지프 커민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전쟁사 [잔혹한 세계사] 조지프 커민스, 시그마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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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와 19세기 미국인, 둘 다 집단 학살의 장본인들이다. 소수의 新(신)나치주의자들은 지금도 히틀러를 추앙하고. 대다수의 사람은 19세기에 있었던 미국의 행동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인디언보호구역을 만들고, 인디언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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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원전 로마인들의 대학살부터 1995년 스레브레니치의 대학살까지를 연구해서, 단일 국가나 정치적 집단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대량학살의 힘을 빌렸다고 주장한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人類史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권력투쟁의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가해자는 피해자를 비난했으며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함으로써 피해자들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책에서는 대량살육의 시작을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멸망한 것을 기원으로 잡고 있다. 당시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인들에게 가졌던 분노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쟁이 끝난 후 로마인들은 카르타고 땅에 소금을 뿌렸다. 다시는 그 땅에서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 소금은 눈 위에 뿌리는 값싼 염화칼슘이 아니다. 당시 로마병사에게 소금을 월급으로 줄 정도로 아주 귀한 것이었는데 로마인들은 그것을 땅에다가 뿌렸다.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사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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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량살육의 정의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또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역사기록으로 인정한다면, 대량살육의 기원은 그리스 시대이다. 중장보병 중심의 육지戰(전)에서 용병 중심의 해상戰(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변하면서 대량살육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도 있다. [역사]를 최초의 역사서로 본다면, 대량살육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고, 전쟁의 역사와 동일하다. 역사가 이긴 자의 전유물이었기에 승리한 사람을 기준으로 미화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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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징대학살과 비교할 수 있는, 일본에 미국의 핵폭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동학 전쟁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일은 대량살육이 아닌가? 좀 더 가까이 가보면, 한국전쟁의 직접 겪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 한국 전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같은 민족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살육을 저질렀다. 우리가 잘 알듯이 강원도 지역이나 지리산 지역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살육이 일어났다. 지금도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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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로마가 몰락하는 날, 프리아모스와 그의 사람들 모두 멸망하는 날이 올 것이다.
(카르타고의 정복자 스키피오가 호메로스의 시 구절을 인용해서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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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피오의 말처럼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전쟁 기술과 무기의 발전으로 대량살육이라는 단어는 현대 전쟁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후세의 사람들이 우리를 로마인으로 평가할지, 카르타고 인으로 평가할 지 궁금해진다. 역사서라고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부담 없이 읽어 보고 지금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