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를 드립니다 - 제8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2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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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동화집 [사료를 드립니다] 이금이, 푸른책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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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금이 작가다. [조폭 모녀]를 시작으로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동화가 있다. 모두 초등학교 고학년이 주인공인 생활동화이기 때문에 적합한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처음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너무 조숙하게 느껴졌지만, 이야기 소재인 학습지 ·이성 친구· 가족애 등으로 잘 엮여 있기 때문에 괜찮았다. [몰래카메라]는 동화의 특징인 판타지와 현실이 괴리되지 않고 잘 짜여있어서 동화를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네 번째 [이상한 숙제]는 소소한 일화지만, 장애인에 대한 따스한 묘사가 좋았다. 이렇게 작품을 배열한 것은 작가의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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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앞서 읽게 되는 4편의 동화를 통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동심을 일깨운다면, [사료를 드립니다]에서 큰 감동을 맛보게

될 것이다. 처음 읽을 때는 평범한 가정이 아닌 외국조기유학을 갈 정도로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어떤 감동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게 된다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짧은 단편들이기에 상세하게 책의 내용을 이야기한다면 미래의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그만두겠다. 누구나 강아지나 반려동물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나 역시 개를 오랫동안 키웠다. 그때 왜 그렇게 녀석들을 구박했는지 미안할 따름이다. 형편이 되어서 다시 기를 수 있다면 못다 준 사랑을 나누고 싶게 만드는 동화다.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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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말해주지 않는 그들만의 진실
데버러 L. 로드 지음, 윤재원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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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평 [대학이 말해주지 않는 그들만의 진실] 데버러 L, 로드, 알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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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을 누리는 분야는 돈을 공부하고, 돈을 끌어모으고, 돈이 보장되는 학문이다. 반면, 지식의 추구를 장려하고 단순히 직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평생학습에 가치를 두는 분야는 점차 소멸하고 있다. (중략)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예는 학문적 글쓰기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겉멋만 부린 문체, 난해한 주제 그리고 과도한 인용과 참조다. 2장에서 언급하겠지만, 현대 학문이 내놓는 글은 난해하고, 사소한 주제를 다루며,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읽지도, 읽히지도 않는다.”(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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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법대 교수의 말이다. 돈을 추구하는 대학, 일반인들과 멀어지고 있는 학문. 미국의 현실이며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대학의 목적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원서에서는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대학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장려하고 평생학습에 가치를 두는 학문을 반드시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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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것은 아니다. 대학은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지혜는 “사실의 현상적인 분석과 기술(記述)에 바탕을 두고 그 내면적 근거와 본질 및 전체적 의미연관을 통찰하여 더욱 근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태(事態)라고 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일어나기 전의 상태 즉 지식으로 확정되지 않은“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형편”을 말한다. 다른 말로 이야기한다면 돈도 안 되고 소모적인 논쟁을 바탕으로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학문의 근본목적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결국, 이것은 대학의 몫이다. 인간은 매일 같이 선택의 상황에 놓이고 그때마다 지혜를 갈구하게 된다. 평생학습이 필요한 것도 급속하게 변하는 현대사회의 선택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학습의 방편으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저자도 지적했듯이, 많은 책 중에서 적합한 책을 선택하는 자체도 어렵고, 책 내용 또한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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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대학교가 교육 법인으로 전환했다. 이익을 최상의 목표로 두는 회사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의 명문대학 상위에서 오르기 위한 자구책으로 보인다. 상위에 올라가서 돈을 많이 벌면 대학의 목적을 이룩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니 다 그만한 이유는 있겠지만, 학교는 학원과는 달라야 한다. 지식을 집약적으로 입력시키는 곳이 학원이라면 학교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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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교수가 대학교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대학교 신입생들은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책 읽기는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 서평의 활용과 남용] 부분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까지 오해했던 부분을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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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공적 지식인들이 반드시 가장 전문적이거나, 최고의 식견을 갖추었다거나, 학문적으로 존경할 만한 표준을 제시한다고는 볼 수는 없다. 미디어는 “명쾌한 답변”을 원한다. 복잡하고 주의 깊게 평가된 분석을 바라지 않는다. 뜻있는 전문가들에게 조언하건대 “미디어에서 잘 팔리는 것은 독설”이다. “당신의 논조는 비난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게 교수들에게 보내는 전략 기획자들의 충고다. 언론은 다툼과 언쟁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날 것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다. 그리고 뇌물을 먹은 장광설은 미묘한 담론보다 언론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다. 저널리즘의 이러한 특성은 공공 토론의 장에서의 대학교수의 참여를 저해하고 또 왜곡한다. 학문에 진지하게 임하는 학자들은 보통 미디어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기 홍보 의지가 부족하다. 기자를 교육하는 것은 지루하고 힘들며, 보람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교수를 불편하게 만들고, 시간만 잡아먹는 설명과 정신없는 인용을 요구한다. 그게 아니라며 편집실 바닥에 내팽개친다. (중략) “불편한 진실”을 전하고 기존의 도그마에 도전장을 내미는 공적 지식인들은 대중이 그들의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러한 대중의 속설을 설명하는데 바쁜 시간을 쪼개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194-195쪽

201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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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전해 준 쪽지 탐 청소년 문학 4
게리 폴슨 지음, 정회성 옮김 / 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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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개가 전해 준 쪽지] 게리 폴슨. 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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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4살짜리 핀의 여름 방학이야기이다. 흥미진진한 판타지도 아니고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한 그런 이야기도 없다. 아빠와 둘만 사는 핀, 이번 여름 방학 목표는 사람들과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는 것이다. 핀이 이렇게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남학생이기 때문이다. 지루하기만 할 것 같았던 여름방학은 유방암에 걸린 대학원생 조해나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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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게리 폴슨이 1939년생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흔이 넘은 노작가가 14살 소년의 심리를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이야기는 재미있다. 조해나를 위해서 유방암 기금을 모금하면서 겪는 에피소드, 부모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매슈, 아빠의 새 여자친구. 당면한 문제들을 너무 쉽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쾌하다. 심각한 갈등이나 사건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결말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른들 눈에 뻔한 스토리라고 해서 아이들도 같이 느낄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이 책은 청소년 소설로 분류하지만, 주인공이 중학생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읽는 것은 문제가 없다. 물론 고등학생이 보면 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이혼이나 암, 여자 친구 등의 문제를 겪은 친구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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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 방법을 보여준다. 핀은 조해나의 권유로 정원 가꾸기를 시작한다. 도서관에서 가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그것을 바인더 노트에 정리한다. 처음에는 조해나가 정리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핀이 직접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마무리한다. 마지막에는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정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인더 노트다. 바인더 노트는 우리가 잘 앍고 있는 3공 혹은 4공 노트를 말한다.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한 장 한 장 손으로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중간 중간 추가해서 삽입할 수 있도록 만든 바인더 노트가 공부할 때는 필수적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많은 새로운 공부법이 나오지만, 공부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한 글자씩 써가면서 무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서 추가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법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에게도 이 책은 도움을 줄 것 같다.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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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룰렛에서 이기는 법 - 수학으로 배우는 논리 수학 아카데미아 시리즈 1
톰 캐시디, 토머스 번 지음, 제효영 옮김 / 보누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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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퀴즈 [러시안룰렛에서 이기는 법] 톰 캐시디·토마스 번, 보누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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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를 한다는 것이 당황스럽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읽었던 조잡한 퀴즈 책을 생각하다가, 이 책에서 나오는 문제를 제법 심각하게 풀어놓고 정답을 보니 황당하다. 일단 저자가 문제다, 한 명은 옥스퍼드 물리학과 출신의 전직 수학교사이다. 이 사람만 본다면 수학문제를 재미있게 만들다 보니 실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또 한 명의 저자가 문제다. 말문을 트기 시작하면서 수학을 문제를 풀었다는 수학의 천재, 거기에다가 영국 킹스 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문제의 형식이나 정답에서 허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모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번역자가 한두 문장을 오역할 수도 있겠지만, 아라비아숫자로 된 정답을 오역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데도 정답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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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단한 수학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덧셈 정도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 즉 말이 문제다. 수학문제가 아니라 언어로 나열 해놓은 설명과 조건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정답이 달라진다. 이 문제 중에서도 작가의 말에 의하면 ‘정신적 자살’까지 부를 수 있는 별 5개 단계의 문제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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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의 아내가 몇 명의 남편을 살해할까?’ 104 쪽

80쌍의 부부가 있다. 남편이 불법을 저지르면 그의 아내는 그 사실을 인지한 후 24시간 내에 남편을 죽여야 한다.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제외한 나머지 79명의 남편이 불법을 저지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자들끼리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마을은 지금까지 평화롭게 지냈다. 어느 밤 파티에서 외부인이 “남편 중 적어도 한 명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라고 까발려버렸다. 외부인이 떠난 후 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전제 조건은 마을의 아내들이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들이다.

바로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정답은 00일 후 00명의 남편이 죽는다.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서 정답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저자는 정답 페이지에서 이 문제를 논증하고 있다. 논증이라는 것은 한 주장이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 정당함의 근거가 되는 다른 주장을 끌어들여, 근거가 되는 주장에서 애초의 주장이 결론으로 나오는 것을 보임으로써 주장을 듣는 상대방에게 그 주장이 정당함을 확신시키는 증명 방법이다. 즉 이 문제에서 문제 자체는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유의미한 문장 즉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논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제 조건은 진술이라고 할 수도 없고 논증할 수도 없다.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들’에서 이성(理性)이 문제다. 사전적으로 이성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보다 더 일찍이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한 비트겐슈타인이 이 문제를 보았다면, ‘이성’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정답은 없다고 했을 것이다. 저자가 킹스 칼리지 옆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면 그의 말에 동의를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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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성(理性) 전문가인 칸트가 이 문제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오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하며, 감성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양자가 결합함에 의해서만 인식은 나올 수 있다.” (순수 이성 비판 중에서) 결국, 정답은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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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천재 수학도이고 철학을 공부한다기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있고, 돈을 들여서 살을 빼는 사람도 있듯이 이 책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20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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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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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소설집 [여름의 흐름] 무라야마 겐지, 예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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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리만큼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이 작가는 기존의 소설언어에 대한 불신감, 그 한계성에 대한 인식에 입각해서 영상보다 더 영상적인 이미지 구축에 몰두한다. 사랑, 사랑, 자아, 주체와 같은 어휘는 상황으로, 영상적 이미지로 그려질 뿐이다. 도시를 그리든 산골 마을을 그리든 안이한 타협이나 교감은 배제된다. 따스한 정이 오가는 곳쯤으로 믿겨온 산골 마을을 그리면서 마루야마는, 실은 시골 역시 도회지 이상으로 퇴폐되어 있다는 현실과 온갖 인간적 약점과 추악함을 지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시켜 우리의 신화를 무너뜨린다. (옮긴이의 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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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책의 제일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한낮의 피리새]에 대한 설명으로 보인다. 어느 초여름 따스한 햇볕이 들고 마을이 잘 보이는 툇마루에서 주인공은 피리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게 눈에 보이는 공간은 아늑하고 평화롭지만 실상 그 공간은 살벌하고 냉혹한 공간이다. 피리새를 공격해서 뇌를 한 번에 쫓아먹는 때까치가 마당 안 나무에 앉아 있듯이, 이 평화로운 농촌의 내면에는 병에 걸린 노인들이 어느 골방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짝인 있는 노인들은 뒤늦은 열애를 위해 풀숲으로 향한다. 충격이라기보다는 가려진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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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과 땅을 연결하는 팽팽해진 끈의 직선이, 천천히 커다란 시계추처럼 죄수의 죽음을 새기면서, 흔들거렸다. 그 흔들림에 맞추어 천장의 활차가 삐꺼덕 삐거덕 소리를 냈다. 기름이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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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형 집행하는 현장을 묘사해놓은 것이다. 팽팽해진 직선이 죽음의 순간을 보여준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인위적인 규칙을 가지고 타인을 구속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인간들은 그것은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해서 무감각해진다.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소멸되었을 때도 우리는 삐꺼덕 삐거덕 거리는 활차 소리에만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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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감성을 자극하는 어떤 대사도 없이 짧고 익숙한 단어를 나열해 놓았다. 작중인물들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 인물을 스며들게 해놓고 책을 덮으면 이야기의 공명(共鳴) 귀속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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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유난히 쉼표가 많이 보인다. 처음 읽으면서 쉼표가 많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쉼표가 문장을 정확하게 구분해주는 것이 좋았다. 이 작가의 다름 작품에서도 쉼표가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지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201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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