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 소설집 [여름의 흐름] 무라야마 겐지, 예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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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리만큼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이 작가는 기존의 소설언어에 대한 불신감, 그 한계성에 대한 인식에 입각해서 영상보다 더 영상적인 이미지 구축에 몰두한다. 사랑, 사랑, 자아, 주체와 같은 어휘는 상황으로, 영상적 이미지로 그려질 뿐이다. 도시를 그리든 산골 마을을 그리든 안이한 타협이나 교감은 배제된다. 따스한 정이 오가는 곳쯤으로 믿겨온 산골 마을을 그리면서 마루야마는, 실은 시골 역시 도회지 이상으로 퇴폐되어 있다는 현실과 온갖 인간적 약점과 추악함을 지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시켜 우리의 신화를 무너뜨린다. (옮긴이의 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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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책의 제일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한낮의 피리새]에 대한 설명으로 보인다. 어느 초여름 따스한 햇볕이 들고 마을이 잘 보이는 툇마루에서 주인공은 피리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게 눈에 보이는 공간은 아늑하고 평화롭지만 실상 그 공간은 살벌하고 냉혹한 공간이다. 피리새를 공격해서 뇌를 한 번에 쫓아먹는 때까치가 마당 안 나무에 앉아 있듯이, 이 평화로운 농촌의 내면에는 병에 걸린 노인들이 어느 골방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짝인 있는 노인들은 뒤늦은 열애를 위해 풀숲으로 향한다. 충격이라기보다는 가려진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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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과 땅을 연결하는 팽팽해진 끈의 직선이, 천천히 커다란 시계추처럼 죄수의 죽음을 새기면서, 흔들거렸다. 그 흔들림에 맞추어 천장의 활차가 삐꺼덕 삐거덕 소리를 냈다. 기름이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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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형 집행하는 현장을 묘사해놓은 것이다. 팽팽해진 직선이 죽음의 순간을 보여준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인위적인 규칙을 가지고 타인을 구속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인간들은 그것은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해서 무감각해진다.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소멸되었을 때도 우리는 삐꺼덕 삐거덕 거리는 활차 소리에만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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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감성을 자극하는 어떤 대사도 없이 짧고 익숙한 단어를 나열해 놓았다. 작중인물들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 인물을 스며들게 해놓고 책을 덮으면 이야기의 공명(共鳴) 귀속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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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유난히 쉼표가 많이 보인다. 처음 읽으면서 쉼표가 많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쉼표가 문장을 정확하게 구분해주는 것이 좋았다. 이 작가의 다름 작품에서도 쉼표가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지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201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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