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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평점 :
서평집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 현암사, 2010
요즘이야 당연하게 학생들이 선생을 평가하지만, 물론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그 제도 도입 초기였지만, 나는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전에 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수십 년 동안 같은 내용을 강의하고, 심지어 매년 똑같은 시험 문제를 내는 선생도 있지만, 학생은 선생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문제를 가르쳐주어도 100점을 받는 학생이 없는데, 누가 어떻게 평가한다는 말인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학생은 선생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필요 없이, 좋은 선생을 찾아가 배우면 된다. 내가 쫓아다니는 선생님은 나보다 많이 읽은 사람이다. 읽는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다독多讀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좋은 글을 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줄기차게 일급의 학자들이 쓴 책만을 읽으라고 협박하는 강유원, 있는 돈 모두 털어서 코뮌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고미숙, 도스또엽스키를 닮은 이현우 그리고 요즘 잠정적 유토피아를 설파하기에 바쁜 홍기빈. 이 네 분이 내가 쫓아다니고 있는 좋은 선생님이다. 물론 선생님들은 날 알지 못하고, 나도 몇 번 안 되는 공개강의와 책을 통해서 선생님들을 알 뿐이지만, 그들은 내게 최고의 선생이다. (여기에 소개한 순서는 좋아하는 순서가 아닌, 한글순서대로 적어놓았다.)
다른 세 분에 비해 이현우는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책을 좀 읽는다고 하면 로쟈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데, 한두 번 그의 블로그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공개 강연회에서 참석하기 위해서 그의 책을 처음 읽었다.
나는 서평집이나 남의 서평은 잘 읽지 않는다. 읽어야 할 좋은 책이 수없이 많은데, 서평을 먼저 읽으면 신선한 감동도 뚝 떨어지고, 선입견에 사로잡혀 오독할 것이 염려도 되고,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책을 사면, 바로 읽는 것이 아니라, 나는 먼저 책을 구경한다. 책 표지도 훑어보고, 목차도 보고, 서문과 추천사 같은 것도 대충 보고, 참고 문헌이 있는지도 본 다음, 책을 바로 읽을 것인지 천천히 읽을 것인지 결정을 한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읽어도 머릿속에 한 글자도 남지 않을 때였다. 책장을 갉아 먹고 사는 책벌레에게 책이 맛없어질 때보다 더 끔찍한 순간은 없지 않겠는가.”
밝은 회색빛 책표지에 희미하게 쓰인 이 글은 그 때 내 심정과 똑같았다. 책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한 글자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애인이 바람나서 다른 남자랑 도망갔을 때와 같은 것이다. 재활용도 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된 느낌. 다행히 저자처럼 책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그런 것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나 같은 시골 서생은 그래도 조금 낮다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여기에 도스또엽스키를 만나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말과 처음 소개하는 샤르트르의 [구토]에 대한 평가를 시작으로 많은 부분에서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과 공감이 되었다. 이 책은 바로 읽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 중 반 정도는 읽었거나, 읽기 위해서 책을 구경해본 것들이다. 나머지는 생소했고, 언제 읽어 볼지 기약도 없는 책이지만, 그 중에는 애타게 찾던 책도 있었다. 서평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했다.
매년 수 없이 쏟아지는 책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결국 그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좋은 선생은 만나는 것은 좋은 책을 찾는 것처럼 어렵다. 나는 이 서평집 한 권 때문에 좋은 책도 만났고, 좋은 선생도 만난 것 같다.
서평집은 스포일러가 아니라, 마담뚜다. 책벌레에게 좀 더 좋은 책을 소개하는 마담뚜다. 나는 이 마담뚜를 통해서 [번역의 탄생]을 소개 받았다. 여기에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구토]를 읽으면서, 비록 구토를 하면서 일독을 했지만, 내가 느꼈던 구토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서두에서 도스또엽스키를 닮은 로쟈라고 했다. 그의 책을 밤새 읽고, 다음날 그를 만나본 느낌이 그랬다. 이 책이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면 곧 나올 책은 [죄와 벌]이 될 것이다. 책을 읽을 자유를 외치는 로쟈와 구원을 외치는 지하인간, 도스또엽스키와 이현우.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책을 읽을 자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쁜 아니겠는가.
이것은 선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서평집에 대한 서평을 쓴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숙제를 내어주셨으니 쓰지 않을 수 없었다. 2012.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