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로 읽는 명시 100편
박영만 지음 / 프리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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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패러디로 읽는 명시 100편] 박영만, 프리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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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선택한 명시 100편과 저자가 쓴 패러디 시를 읽으면서, 서평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야기 한, 最古 문학으로서의 시詩를 소재로 쓰기에는, 이 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패러디와 패스티쉬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서평을 써 볼까 싶어, 패스티쉬에 대해서 찾아봤다. 가진 책 중에서 패스티쉬를 다룬 것도 없고,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원론적인 이야기뿐이었다.

단지 작년 시 창작 수업시간에 패스티쉬와 패러디에 대해서 들었던 적이 있다. 시 쓰기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를 조금씩 고쳐 써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쓰는 것이 패스티쉬라고 했다.

모방이라는 측면에서 패러디와 패스티쉬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의도적인 비틀기가 있는 패러디와 달리 패스티쉬는 의도적일 수는 있지만, 비틀기라고 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세부적인 것들이야 문학 비평가들의 몫이니 접어두고, 패러디나 패스티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에 익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원작을 모른다면, 특히 패러디 시는 어쩌면 유치한 글 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책도 그런 우려를 고려해서 원작을 앞에 두고, 바로 뒷부분에 패러디를 배치해놓았다.

책의 시작은 류시화 시인의 [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이고, 패러디의 시작은 [새우깡에게 바치는 노래]다. 류시화 시인은 고구마를 통해서 삶의 의지나 희망을 보았다면 저자는 새우깡에서 그런 것들을 보고 있다. 류시화 시인에게 익숙한 간식이 고구마였다면, 작가에게는 새우깡을 즐겨 먹었을까? 그러나 이 소재들은 자연물과 인공물의 차이도 있고, 의미를 더 확대해보면 발전에 따르는 생명경시 풍조와 물질주의에 대한 경고까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패러디 시를 이런 식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양장본에 어울리지 않는 책표지 디자인과 성의 없어 보이는 목차이다. 특히 목차를 정리할 때, 눈이 잘 띄도록 구분을 하고 시인의 이름까지 넣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가끔은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고, 가끔은 인생에 조언자도 필요한 데, 일일이 책장을 넘기면서 찾는 것이 좀 불편하다. 그럼에도 졸린 오후 손이 가는 대로 책을 펼쳐놓고 읽어보면, 명작의 감동과 패러디의 위트 때문에 몰려드는 잠을 깨울 수 있을 것 같다.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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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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