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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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시 읽기 [오늘은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장석주, 21세기북스, 2012

 

책의 부제가 ‘서른 살을 위한 힐링 포엠’이다. Healing Poem은 치유의 시를 말한다. 저자 장석주는 “말과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시에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며 휴식과 위안을 주고, 실제로 통증을 줄이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시’대신 ‘언어로 이루어진 어떤 행위나 결과물’을 집어넣어도 이 명제는 성립한다. 음성언어로 이루어지는 상담이나 강연(설교)과 문자언어로 이루어진 소설 성경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고전에서도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좀 더 나가면 영화, 그림, 음악을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있다.

詩는 무엇이 다를까? 문학 예술 치유를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적 논리를 앞세우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시는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다. 시집보다 더 싼 책이나 영화는 없으니 값이 싸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짧은 시간에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 詩다.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은 시를 어렵다고만 생각한다. 그건 어려운 시만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과 몇몇 시인들마저 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위치에 놓으려하는 시도의 결과이다. 시집을 보면 뒤편에 비평가들이나 시인의 해설이 붙어있다. 독자는 자신이 아는 만큼 느끼며 시를 읽었지만,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해설을 읽고 절망한다.

해설은 정답이 아니다. 비평가 김태환은 “비평가를 결혼식에서 의무적인 덕담을 건네주는 주례에 견주는 비유법이 대중적 호소력을 얻고, 작품집 뒤의 해설을 책값을 비싸게 만드는 사족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느끼는 독자가 늘어난다. 비평은 인기 없는 문학을 구원하려다 스스로 신뢰를 상실하고, 신뢰의 상실은 비평의 효력을 감퇴시키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빠져든다.”라며 자신의 책 [문학의 질서]에 써놓았다. 이러한 문학과 비평의 불안한 동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문학이 생겨나면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 책도 해설의 형식으로 쓰였다. 치유를 위한 시가 나오고, 저자가 시인의 언어를 빌려 와 해설을 한다. 그 해설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치유 경험을 써놓은 것에 불과하다. 치유를 받고 싶다면, 독자 자신의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처음부터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고, 차례를 펼쳐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찾아가며 읽던지, 눈길이 닫는 제목의 시를 읽던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손길이 가는 페이지에서 이야기하는 시를 읽으면 된다. 그 시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해설을 읽지 말고 다른 시를 찾아라. 어떤 시에서 작은 울림이 생기면 그때 저자의 해설을 읽으면 된다. 저자의 해설과 내 느낌이, 무엇은 같고 다른지를 해설에서 읽으면 된다. 치유가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치유 받기 위해서는 작은 울림을 큰 울림으로 만들어야 한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이렇게 자신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시 한편 읽고 치유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치유 받고 다시는 상처를 입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시인 장석주의 힐링 포엠 컬렉션일 뿐이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좋은 안내서이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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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니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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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기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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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처음 나오는 시 ([수선화에게], 정호승, 열림원, 199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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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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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야생의 것들이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작은 새는 가지에서 얼어죽어 떨어질 것이다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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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렌스 [제대로 된 혁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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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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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알베르 카뮈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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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전락] 알베르 카뮈, 책세상,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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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피에-누아르’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표현하자면, 조선족과 같은 의미다. 그 역사적 원인은 모두 제국주의에 있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물론 프랑스 내에서도 ‘피에-누아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차별은 존재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 비교적 안전하게 정착을 했다. 그들이 집단으로 이주한 지역의 출생률은 증가했고 경기는 활황기였기에 그들에 대한 적대감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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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작품 배경 대부분은 프랑스가 아니다. 이 소설의 배경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이며, 술집 ‘멕시코 시티’가 주 무대이다. 카뮈가 프랑스어로 썼기에 프랑스 문학으로 분류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알제리와 프랑스,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작가의 내적 모순이 내재되어있다. 특히 이 소설에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물론 그의 대표작인 [이방인], [페스트]에 비해서 이 작품은 난해하다. 전체를 다 읽어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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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무질서를 정리하고 때로는 작가 자신도 예견하지 못했던 어떤 의미를 작품에 부여한다는, 비평의 중요한 국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에르-루이 레의 ‘해설’에 있는 이 말은, 특히 이 작품을 읽을 때,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굳이 비평을 따라 읽을 필요는 없다. 문학에서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눈으로 읽고,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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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이방인]과 [페스트] 때문에, [전락]에서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를 상상하기가 조금은 쉬웠다. 물론 ‘부조리’의 인간이라는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지만, 그 부조리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도 부조리하다. 어쩌면 뫼르소의 또 다른 분신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책에 등장하는 다리에서 자살하는 여인이나 그와 밤을 보낸 여인들, 모두를 조국祖國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자. 주인공이 그들의 대할 때, 그것이 방관이든 연민이든 욕정이든, 그의 태도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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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부조리한 시스템이 젊은 여인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나는 그것이 그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그 죗값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조선족과 관련지어서는 안 된다. 조선족이라는 단어 자체도 사라져야 한다. 그들은 ‘중국 교포’다. ‘피에-누아르’처럼 식민지로 간 사람들이 아니고, 무능한 조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났던 사람들이다. 망상에 젖은 국수주의자의 논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모두 껴안아야 할 우리의 핏줄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체 방관하고 있는 우리다. 우리가 ‘부조리한 인간’이다. 20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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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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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 [2012년 제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2

 

그녀는 경계에 서 있다. 작년에 등단한 그녀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의 새 작품을 기다리는 것은 나의 새로운 취미가 되어버렸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습작생이라고 자칭하기도 하지만, 소설을 즐기지 않고 특히 한국 소설을 절대로 읽지 않는 나에게 이러한 변화는 낯설기만 하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가 보면, 경계 서 있는 그녀를 만난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아슬아슬한 절벽 - 한 발 더 나가면 끝없이 추락하는 물리적 공간이나, 남한과 북한을 가로지르는 휴전선과 같은 시간의 산물이 아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우리가 함께 숨 쉬는 이성적 현실과 얼굴을 붉히며 혼자 상상하는 본능적 현실의 경계다.

한 일간지 기자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한번 점수를 매겨보시라. 읽는 즐거움도 커질뿐더러, 작품을 분별하는 눈도 밝아질 것이다.”라며 이런 문학 독서법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3등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1위라고 기사를 썼다. 그 기자가 생각하는 독서법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자기 내적 욕망의 단위를 물리적 점수에 끼워 맞춘 것이기에 자기만족일 뿐 타인에게 이해를 구할 수 없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은 롤랑 바르트의 [S/Z]에 나오는 코드를 사용해서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처럼 보이나, 자기 의견을 합리화시키는 무감각한 해설일 뿐이다. 소설은 한 문장 한 문장 뜯어서 읽을 필요는 없다. 독자는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텍스트로 통해서 그 일부만 읽고 있다. 지나간 이론을 가지고 텍스트를 분석해서 얻어낸 결론은 이면에 감춰진 콘텍스트를 왜곡해버릴 수도 있다. 1980년에 죽은 바르트가 1980년에 태어난 그녀의 소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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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잔하고 불안한 한 편의 연극은 그 어떤 단정적인 해석도 거부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그 잔상이 길게 남는다.”라고 말한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평가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가 말한 ‘잔잔하고 불안한’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잔잔한’ 일상日常이 소설의 주된 시공간의 배경이지만, 등장인물의 일탈은 자신이 꿈꿔왔거나 애써 외면한 것을 형상화 시켰기에 ‘불안한’ 독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들어내고 싶지 않는 은밀한 본능의 끝자락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인양 담담하게 소설로 써놓았기에 ‘불안한’독자는 소설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녀의 소설’에서 ‘독자의 이야기’로 넘어오기에‘어떤 단정적인 해석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작가이지만, 책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소설은 온전히 독자의 것이 된다. 결국, 책을 덮으면 독자는 감각적 본능과 위선적 이성의 경계에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나 페스트가 만연하는 도시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리유는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경계를 넘어서, 그 경계가 부조리한 세상이든 냉엄한 현실이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타협하는 것을 우리는 비난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그 경계를 넘지 않고 그저 그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를 경계로 밀어낸다. 타자他者가 아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까뮈를 존경하고 연모하듯이,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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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판사 교수의 스카치 위스키 - 그 전설의 고향을 찾아서
우판사 지음 / 세림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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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필 [우판사 교수의 스카치 위스키] 우판사, 세림출판사, 2011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을 읽고 싶어 질것이다. 분명 저자도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여행하며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이다.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자주 여행을 못하고, 모처럼 여행을 해도 글을 써 본 적이 없기에 사진만 찍는다.

글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문자를 만든 것이 아니고 문자가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즉 언어를 인간의 특징이라고 본다면, 간단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돌고래는 인간이다. 한 인간이 동물 무리 속에서 성장하면 동물에 가까워지듯이, 인간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류 최초의 교육시설인 “수메르의 학교는 인류문명에 대한 수메르의 가중 중대한 공헌인 쐐기문자체계의 발명과 발전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수메르 문명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인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는 그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의 결론은 확실하다. 그는 수메르인이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수메르의 모든 것이 ‘인류 최초’라는 명칭을 획득했고, 현재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모든 수메르인이 문자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특별한 능력을 냉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지만, 책을 읽지도 않고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는다.

이 책을 노벨 문학상 후보인 하루키의 책과 비교할 수는 없다. 정교하고 치밀한 글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과는 관계가 없는 사진이 뜬금없이 나타날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스코틀랜드의 낯선 도시를 배회했고 좋은 책도 소개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낸 지은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2012.04.27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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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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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 [칼 마르크스- 그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안규남 역, 미다스북스, 2012

 

마르크스를 다시 깨웠다. 일부 진보학자들조차 마르크스의 유령이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마르크스 평전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최소한 마르크스 관한 책을, ‘자본주의적’ 논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필부匹夫이기에, 경제적 논리로 생각해봤다. 인문학 서적이 안 팔리는 현 상황에서, 출판사는 이 책이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출판했을 것이다. 누가 이 책을 읽을까?

이 책은 19세기 서구 정치경제 사상사다. 일대기를 중심으로 쓴 평전이 아니다. 그러기에 기초적인 공부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 마르크스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은 프랜시스 윈의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진지하게 이 시대를 고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의 역자는, 지금 현실의 문제는 “[자본론]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자본론]은 이미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처럼 고전이 되었다.”고 말하며, 이 책의 가치를 규정하고 있다. [자본론]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이 책 또한 고전의 끝자락에 올라서고 있다. 이사야 벌린이 1939년 초판 서문을 쓴 이래로, 몇 번의 개정판이 나왔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 1980년대 이사야 벌린의 이 책의 원서를 먼저 번역한 신복룡 교수는 “세 자녀가 자신의 눈앞에서 굶어 죽는 모습 보면서 마르크스가 그토록 심취했던 사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라고 역자후기에 썼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이론의 구조와 기본 개념은 헤겔과 청년 헤겔주의자들에게서, 동적 원리들은 생시몽에게서, 물질의 우위에 대한 믿음은 포이어바흐에게서,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견해는 프랑스의 공산주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이론은 완전히 독창적이다.”(227쪽) 이렇게 복잡다단하고 본질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 위에 이사야 벌린은 자신의 사상사적 논리를 펼치고 있다. 책을 읽다가 보면 어떤 것이 마르크스의 말인지, 벌린의 평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보다 더 골치 아픈 것은 마르크스에게 가장 심오한 영향을 끼친 헤겔과 그의 논리를 반박하며 수용하기도 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쉬운 책은 없다. 방대한 마르크스의 저작을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는 이 책이 쉽고,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헤겔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철학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심지어는 미학과 문학에서도 연구되었다. 이렇게 세분된 학문을 모두 공부한다는 것은, 마르크스가 직접 가르쳐주어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 책보다 더 쉬운 책은 없다.

책을 읽으며 벌린의 평가를 걸러내고 헤겔철학을 따로 분리하며, 마르크스의 생각과 말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이 책을 계속 읽는 이유다. 앞서 읽어본 독자로, 처음 읽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하면 신복룡 선생이 번역한 평민사 발행본 뿐인 것 같다. 2012.04.25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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