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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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 [2012년 제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2

 

그녀는 경계에 서 있다. 작년에 등단한 그녀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의 새 작품을 기다리는 것은 나의 새로운 취미가 되어버렸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습작생이라고 자칭하기도 하지만, 소설을 즐기지 않고 특히 한국 소설을 절대로 읽지 않는 나에게 이러한 변화는 낯설기만 하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가 보면, 경계 서 있는 그녀를 만난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아슬아슬한 절벽 - 한 발 더 나가면 끝없이 추락하는 물리적 공간이나, 남한과 북한을 가로지르는 휴전선과 같은 시간의 산물이 아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우리가 함께 숨 쉬는 이성적 현실과 얼굴을 붉히며 혼자 상상하는 본능적 현실의 경계다.

한 일간지 기자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한번 점수를 매겨보시라. 읽는 즐거움도 커질뿐더러, 작품을 분별하는 눈도 밝아질 것이다.”라며 이런 문학 독서법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3등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1위라고 기사를 썼다. 그 기자가 생각하는 독서법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자기 내적 욕망의 단위를 물리적 점수에 끼워 맞춘 것이기에 자기만족일 뿐 타인에게 이해를 구할 수 없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은 롤랑 바르트의 [S/Z]에 나오는 코드를 사용해서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처럼 보이나, 자기 의견을 합리화시키는 무감각한 해설일 뿐이다. 소설은 한 문장 한 문장 뜯어서 읽을 필요는 없다. 독자는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텍스트로 통해서 그 일부만 읽고 있다. 지나간 이론을 가지고 텍스트를 분석해서 얻어낸 결론은 이면에 감춰진 콘텍스트를 왜곡해버릴 수도 있다. 1980년에 죽은 바르트가 1980년에 태어난 그녀의 소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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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잔하고 불안한 한 편의 연극은 그 어떤 단정적인 해석도 거부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그 잔상이 길게 남는다.”라고 말한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평가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가 말한 ‘잔잔하고 불안한’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잔잔한’ 일상日常이 소설의 주된 시공간의 배경이지만, 등장인물의 일탈은 자신이 꿈꿔왔거나 애써 외면한 것을 형상화 시켰기에 ‘불안한’ 독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들어내고 싶지 않는 은밀한 본능의 끝자락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인양 담담하게 소설로 써놓았기에 ‘불안한’독자는 소설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녀의 소설’에서 ‘독자의 이야기’로 넘어오기에‘어떤 단정적인 해석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작가이지만, 책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소설은 온전히 독자의 것이 된다. 결국, 책을 덮으면 독자는 감각적 본능과 위선적 이성의 경계에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나 페스트가 만연하는 도시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리유는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경계를 넘어서, 그 경계가 부조리한 세상이든 냉엄한 현실이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타협하는 것을 우리는 비난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그 경계를 넘지 않고 그저 그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를 경계로 밀어낸다. 타자他者가 아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까뮈를 존경하고 연모하듯이,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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