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내가 아는 밑바닥이 있다. 물이 가득하지. 나는 한 번씩 떨어진다. 물에 젖어 못 쓰게 되는 노트. 집에는 빈 노트가 너무 많다. 버릴 수가 없네. 밑바닥이 들어 있다. 자꾸만 가라앉지. 어디도 내 집은 아니지만. 첨벙거리며 잔다. 베개가 둥둥 떠내려간다. 괜찮아. 어차피 바닥이라 다시 돌아와 그가 이마를 쓰다듬어준다. 그는 손이 없고 나는 머리가 없지만 침대는 둘이 누우면 꽉 찬다. 투명해질수록 무거워지는 침대. 빈 노트, 빽빽하게 무엇이든 쓰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무너지는 창문 밑에서 나는 썼다. 늘 물에 젖었다. 알아볼 수 없어서 너무 행복하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한 번씩 떨어져서 내부로 들어가본다. 여럿이 함께 잠들면 더 고요하고 적막해서 무서웠지. 그 사이로 물결 소리가 난다. 죽은 그가 아직도 책상에 엎드려 있다. 너는 모든 것을 쓰기로 했어. 나에게 보낸 편지처럼. 모든 것을 낱낱이 쓰기로 했지. 하지만 아무리 써도 채워지지 않는 물속. 아무리 쌓아도 그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한심한 놈. 죽은 그가 중얼거리며 나를 본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떠날 수가 없구나. 나는 너의 신발을 썼다. 무거워서 다시 신을 수가 없는데, 나는 자꾸만 - P20

신발장에서 쓴다. 한 번씩 들어오는 내부라니. 비밀은 제대로 씌어지는 법이 없지. 쓸 수 없어서 조금씩 마모되는것. 죽은 그가 나를 통과해 걸어간다. 부식되어가는 발로걸어간다. 아무것도 쓰지 못해서 너는 이곳에 도달할 수가 없어. 진창에서 잠만 자는 너는 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그의 신발을 신고 있다. 둥둥 떠내려간다. 밑바닥에는 모든 것이 돌아올 텐데. - P21

유리 공장


너는 늙고 어려운 마음.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 너는유럽식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어두운 굴뚝 위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너는 먼 곳을 걷다가 얼음 속에 갇힌 적이 있다. 깨끗했고 추웠지. 너는 모자를 고쳐 쓰며 말한다. 그때 나이를잃었나. 부정否定을 잃었나. 끈끈한 어둠도 갇혔지. 죽지않는 소년이고 싶어서 말이지.

나는 유럽식 찬장에서 너를 보고 있다. 불에 구워졌다가 빠져나온 딱딱한 얼룩처럼. 무력한 곰팡이처럼.

유리 안에 갇힌 나를 보며 너는 웃는다.

뛰어난 유리 제조공이었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불투명한 유리를 끼워놓은 자. 먼 곳을 돌아와 그릇처럼 조용히 시간을 쌓아놓은 자. 유리 제조공은 말했지. 불순물은 닦아낼수록 깊어진다니 너무 깨끗하게 닦지 마시오. 더께가 쌓이면 유리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빚 - P32

는다고 한다.

너는 모자를 벗으며 유리 안을 본다. 얼음 속에서 죽지않는 소년을 제조하고 싶었지. 너는 사라지는 표정을 들여다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 수건으로 유리 찬장을 닦는 어렵고 긴 마음. 매번 실패하는 것은 나이를 가둬서인가 부정을 버려서인가. 무늬로 뒤덮인 불멸의 강화 유리가 되고 싶었지.

너는 굴뚝을 향해 걸어간다. 얼음에 갇혀 무엇을 잃었나. 흰 구름, 흰 얼룩, 흰머리, 흰 이…… 너는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말고 굴뚝 사이로 빠져나간다.

나는 늙은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흰 포자를 퍼뜨린다. 이제 소년은 살아나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흰 소년은 살아 있기만 할 것인데 이것은 유리의 마음이 될 것인데 - P33

여름의 애도


비 오는 밤 슬레이트 지붕 밑에서 어머니는 부서진날개를 깁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옆구리일까요. 그때 나는 어머니의 바구니에 담겨 있는 털 뭉치처럼 온몸이 가려웠었죠. 죽은 사람이 두고 간 것인데. 어머니는 중얼거리다 말고 빗물이 쏟아지는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발자국이 지워졌습니다. 어두운 자리 하나만 남아서 점점 깊어지고 있었죠. 모든 게 빗길을 따라흘러가는 것인데, 너의 할머니는 이것을 두고 갔구나. 우산을 들고 어머니는 마당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머니의울음을 듣지 못하고 나는 털 빠진 개처럼 옆구리를 긁고있었죠. 개다 만 빨래가 다시 축축하게 젖어드는 시간. 떠내려가지 못한 날개를 건져 올린 것은 어머니입니다. 찢기고 바스러진 이것을 어떤 자리에서 다 완성할 수 있을까요. 물에 젖은 어머니의 발자국이 천천히 지워지고 있습니다. 슬레이트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 이 다정한 악몽의 시간에 잠깐 쉬었다 갈게. 죽은 사람의 날개가 모조리힘없이 부서집니다. 어머니의 등에서 흰빛이 흘러나오고있습니다. 나는 그제야 컹컹 웃기 시작합니다. 목이 아프도록. 장대비 쏟아지는 소리.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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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영주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으며,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차가운 사탕들이 있다.


이영주는 밑바닥에 내려가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전환해내며, 그렇게 기록되지 않는 것, 저 밑바닥 물에 젖은 무언의 말들을 발화하고, 할 수 없음과 쓸 수 없음을, 너-나-그의 목소리로필사하듯 새기는 데 성공한다. 시는 이렇게 불행과 비극의 상실을 바라보는 외부의 소실점을 오로지 나를 통과하여 당도할 내부의 사건으로 전환해내면서, 마침내 타자의 입술에 내 차가운 슬픔을 달아놓고, 혼자만의 중얼거림을 너의 중얼거림으로 치환하는 어려운 일을 수행한다. - P-1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내는 저 별에는 독가스가 가득하고 황산비가 내리지. 그 말을 듣고 영화의 주인공은 말한다. 바로 저거야! 저걸 들여다봐야겠어! 때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복 재생되는 장면이 있다. 새장에서 태어나는 새도 날개가 있다. 새장 문은 열리지 않는다. 친구는 자신의 바다에 썰물이 없다고 썼다.
빠져나가고 싶어 하던 그 친구는 노르웨이로 갔다고 한다. 그때, 나는 그 책을 왜 껴안고 있었을까. 그런 방식으로 시간이 쪼개졌다. 아름다운 괴물도 그렇게 지나갔다. - P-1

시인의 말


우리가 아름다움으로 기우는 것은
약하고 슬프기
때문일까

2019년 가을
이영주 - P-1

십대


불과 물, 우리는 서로를 불태우며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는 망해가는 나라니까. 악천후의 지표니까. 우리는 나뭇가지를 쌓아놓고 불을 붙였고, 오줌을 쌌고, 자주 울었고, 나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 P-1

연대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있다. 흙 속에 발을 넣었다. 따뜻한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나는 망가진 마음들을 조립하느라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 옆에 앉아 있다. 어둠을 나누고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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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도가 아니라 산경도가 더 정확하다는데, 정말일까요?


산맥도와 산경도는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이 아니라, 산줄기를 무엇으로 보고 또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표시된지도일 뿐이에요. 산맥도가 동일한 지각운동을 통해 형성된 산줄기를 산맥으로 보고 그린 지도라면, 산경도는 분수계를 산맥으로 인식한 지도예요.
현대 지리학에서 산맥은 지각운동 또는 지질구조를 통해 일정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산지를 말해요. 즉 산맥도는 산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으며, 지질시대에 만들어진 유용한 지하자원을 찾기에 용이해요.
조선시대에는 분수계, 즉 물길을 나누는 능선을 산맥으로 여겼어요. 18세기 실학자 신경준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산경표를 만들고, 산맥을 대간·정간.정맥으로 구분했어요. 산경표의 산줄기 체계가 독특한 이유는 가장 큰 산줄기는 대간, 그다음 산줄기는 정간, 마지막은 정맥으로 산맥에 서열을 매겼다는 점이에요. 산경표를 지도로 표현한 것이 산경도예요. 산경도는 하천의 유역을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어, 전통적인 문화권 구분에 유용해요. - P-1

영동과 영서는 어떻게 하나의 강원도가 
되었나요?


통일신라시대에는 영동과 영서를 각각 명주와 삭주라는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했어요. 그러다 995년 고려 성종 때 당나라 태종이 전국을 지리적 조건에 따라 10도로 나눈 것을 참고해서 우리도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명주와 삭주를 합쳐 삭방도로 이름 붙였어요. 삭방도란 이름은 삭주에서 따왔다고 해요.
그러다 고려 현종 때에 이르러 고려의 행정구역은 5도와 양계로 재편되는데요. 5도가 일반 행정구역이었다면, 북계와 동계를 뜻하는 양계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이었어요. 그중 태백산맥을 따라 길쭉한 모양을한 동계는 여진족의 침입을 대비해 설치했어요. 삭방도에서 군사적 이유로 동계가 분리되고 남은 지역은 교주도를 비롯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1389년 고려 공양왕 때 교주도와 동계 일부를 합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로 합쳤어요.
강원도江原道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1395년 조선 태조 때였어요.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이전의 고려시대 행정구역을 새롭게 개편하는데요. 이때 영서의 교주도와 영동의 강릉도를 하나로 합쳐 강원도라 이름 붙인 것이에요. 조선시대 강원도 일대를 관동지방關東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요.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유래와 철령관의 동쪽이라는 유래가 있어요. - P-1

남북한 행정구역의 근간이 되는 조선 팔도는 하천과 하천 주변의 도시를 중심으로 구획된 행정구역 체계였다. 하천 주변에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한 과정을 살피면, 왜 조선이 이런 체계를 세웠는지 이해할 수 있다. 비교적 친숙한 한반도 남부의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충청도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두 도시는 7세기 말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신라가 오늘날 광역시에 해당하는 소경을 설치한 지역으로 각각 중원경과 서원경이 설치되었다. 충주는 남한강과 남한강의 지류큰 강으로 흐르거나 큰 강에서 갈려 나온 물줄기인 달천이 만나는 분지에서 발달했다.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면 한강 하류까지 곧바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죽령을 통해 영남으로 연결되어 예나 지금이나교통의 요충지로 통한다. 금강의 지류인 무심천 주변에 자리한  - P-1

청주는 비옥한 미호평야를 발판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로서 충청북도의 정치·경제·행정·문화 중심지이며, 청주 인근의 오송역은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가 갈라지고
중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사통팔달의 길목이다.
조선시대 경상도慶尙道의 중심은 경주와 상주尙州였다. 형산강 분지에 자리한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고려시대부터 한반도 동남부 행정의 중심지로 역사가 유구하다. 낙동강 지류인 북천과 병성천 유역의 커다란 분지에 위치한 상주는 고대국가 진한의 여러 소국 중 사벌국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시대에도 경상도 내륙의 중심이었다. 오늘날 도청에 해당하는 경상감영이 경주에 설치되었다가 상주를 거쳐 대구로 이전했는데, 감영이 옮겨진 이후에도 상주는 경상도의 중심 도시로 계속 기능했다. 낙동나루에서 출발하는 뱃길이 낙동강 하류까지 이어졌고, 북으로는 죽령을 통해 한강 유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길목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 P-1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 바로 전라도全羅道이다. 전주천 주변 분지에 형성된 전주는 견훤이 후백제의수도로 삼은 도시다. 전주 이씨의 본관이라 조선시대에는 태조의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을 전주에 설치했으며, 전라감영도 이곳에 배치했다. 나주는 영산강 옆에 자리한 도시로 배를 이용해 서해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교두보였다. 조차가 큰 서해의 영향으로 배가 오가기 편리하고, 영산강 하류에 비옥한 나주평야가 자리해 도시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나주는 고려시대 성종이 전국에 설치 - P-1

한 행정구역 12목 중 하나로서 호남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으며, 조선시대에도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도시로 발달했다.

하천이 도시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강경의 흥망성쇠다. 금강변에 자리한 강경포구 주변에서 열리는 강경시장은 대한제국 당시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번영을 누렸다. 강경에 포구가 설치되고 시장이 발달한 원동력은 강경과 뱃길로 이어진 서해의 커다란 조차에 있었다.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 높이의 차이를 조차라고 하는데, 조차가 큰 바다와 하천이 만나면 바닷물이 하천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흐른다. 조차가 큰 서해의 바닷물은 금강을 타고 강경을 지나 부여까지 이동했다. 이렇게 내륙까지 바닷물이 흐르면 배를 움직이기 무척 편리하므로, 강경에 포구를 설치하고 뱃길을 이용한 것이다.
강경은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과 충청남도 제일의 식량창고었던 논산평야를 배후에 두고 성장했다. 금강의 뱃길을 이용해 논산평야와 내륙에서 온 농산물과 서해에서 들어오는 수산물이 강경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경기도 남부의 안성, 충청남북도, 전라북도와 전주의 상인들까지 강경시장을 이용했다. 강경 황산대교  - P-1

인근에는 강경포구로 들어오는 배를 안내했던 등대가 남아 있다. 얼마나 많은 배가 강경포구를 오갔으면 바다도 아닌 금강변에 등대까지 만들었을까.
일본이 한반도를 수탈하려고 군산항을 개항하면서 강경은 전성기를 맞았다. 군산항을 통해 내륙으로 거래되는 상품의 80퍼센트가 강경을 지났다. 덕분에 강경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제일의 상업 도시로 발돋움했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상하수도와 전기가 설치된 지역이 강경이었다. 전기 공급을 위해 100평 규모 - P-1

의 화력발전소가 세워졌고, 1911년에는 처음으로 극장도 생겼다. 관공서와 은행도 자리를 잡았는데, 강경우편취급소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우체국이다.
금강의 편리한 뱃길 덕분에 크게 성장했던 강경은 경부선과 호남선 같은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급격하게 쇠퇴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논산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는 거점으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며 더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강경은 인구 1만 명을 유지하기도 어려워 읍에서 면으로 격하될 위기에 처해 있다. 도로교통의 발달과 1990년에 건설된 금강 하굿둑의 건설로 포구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결과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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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에 대하여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한때는 패배했기 때문에
분노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분노도 가을바람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무조건 항복하지는 않았다
인생의 패배자는 없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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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詩)‘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외 일본어 중국어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조지아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번역시집이 있고,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동시집 「참새』, 우화소설집 『항아리」 「연인」 「조약돌」 「산산조각』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다. - P-1

나는 언젠가 정호승 시인에 대해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의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시업 50여년 동안 진부함이라는 함정을 잘 피해왔다. 신선한 상상력이 있고 역설의 언어가 있고 선(禪)적인 일탈이 있고 반전의 힘을 지닌 덕분이다. 정호승 시의 상승과 비약의 지점에는 늘 역설과 일탈과 반전이 개입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낯익은 시인이자 낯선 시인이고 오래된 시인이자 새로운 시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설의 언어, 선적인 일탈, 반전의 힘이 느껴져, 마치 의미와 무의미의 정류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게패배가 없었다면/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봄이 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사랑은 천벌이므로/기꺼이 당신의천벌을 받으며 행복해질 것이다" 등에서 보듯 일상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역설의 힘이 여전히 강렬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익숙한 사물의 이름표를 떼어내고 그 본질을 향해 낯선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편의점은 더이상 편의점이 아니라, 어느 때는 지친 영혼의 시간을 재는 시계가 되고, 어느때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랑은 기꺼이 감당하는 천벌이자 어두운 부두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바로 그렇게 편의점이 편의점이 아닐 때, 정호승은 다시 한번 낯익고도 낮선 시인이자 오래되었지만 가장 새로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김승희 시인 - P-1

ㅣ시인의 말


신작 시집으로는 열다섯번째, ‘창비시선‘으로는 열두번째 시집이다. 시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시집을 출간하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이다. 내 인생에 열다섯번의 큰 기쁨을 선물해주신 절대자에게 감사드린다.
특별히 이번 시집 출간의 기쁨은 크다. 지난번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간 이후 더이상 시를 못 쓰게 될 줄 알았다. 50여년 동안이나 시를 써내 시의 샘이 말라버렸다고 여겼다. 누가 그 샘을 파묻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수원지(水源池)가 고갈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동안 시의 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물과 밥을 먹어야하듯 시인도 죽지 않으려면 시를 생각하고 써야 했다.
시를 쓰기 시작하자 말라버린 시의 샘에 조금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물을 꾸준히 퍼내자 샘은 마를 듯하다가 마르지 않았다. 퍼내면 퍼낼수록 샘물이 자꾸 고여 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내 시의 샘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시를 사랑한다기보다 시 - P-1

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다.
시인은 시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시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인간과 인생의 비밀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은유의 숲에 숨어 진실을 숨긴 침묵의 부분이 없지 않다.
무함마드는 "두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이 시집이 당신의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에 시의 모성적 사랑의 가슴은 따뜻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백스물다섯편은 스물다섯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발표 신작시다. 시집 출간도 신작시를 발표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2025년 가을을 기다리며
정호승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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