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
정지우


고전에 대한 관심은 묘할 정도로 시대마다 이어진다. 고전교양 인문학 열풍이 불어 출판 시장을 휩쓰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고전 원전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늘어 원전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기도 한다. 대학의 인문학 관련 전공들은사라지고, 대학원생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할 정도로 위기라곤 하지만, 사람들은 잊을 만하면 ‘고전‘을 찾는다. 특히, 유가, 노장, 불가 등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은 돌고 돌듯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최근에는 AI가 전 세계를 휩쓸어 삼키면서, 인간
의 노동, 창작, 사회적 역할 등을 모두 대체할 거라는 공포가 가득하다. AI의 학습, 연구, 창작 능력도 가공할 정도여서 과연 종래의 인문학 연구 같은 것이 얼마나 유효한가에 대한논의도 치열하다. 당장 기존 인문학 관련 논문들을 AI에게학습시킨 후 새로운 연구 주제를 요청하면, AI는 하루종일 수천 개의 아이디어도 생성해 낼 수 있다. 연구자들이AI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되지못한다.
그런 와중에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고전‘에 대한 관심을가진다 할지라도, 고전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지않을 수 없다. 가령, 『논어』를 읽는다는 건 ‘공자님 말씀‘을 - P101

암기하고 지식을 쌓는다는 뜻일까? 챗GPT에게 물어보면 공자의 이야기쯤은 금방 요약할 텐데, 그것이 큰 의미가있을까? ‘공자님 말씀‘을 우리가 잘 안다고 해서 앞으로의 거친 미래에 도움이 될까? 이런 의문들을 마주하지 않을 수없다.
그럼에도 고백하자면, 나는 거의 매일 고전을 읽는다. 마음이 약간 허하다 싶으면 곧장 홍자성의 『채근담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상록』을 집어 든다. 가끔은 성경도 들춰 본다. 마음 깊이 내려가고 싶을 때는 카뮈나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다시 읽는다. 서양철학자인 니체나 라캉의 책은 거의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읽고 있다. 그 이유는 고전의 한 줄 한 줄에 챗GPT와의 채팅에서보다 더 유용하거나 많은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의 한 줄, 한 단어 속에 시대를 넘어선 어느 한인간과의 진실한 ‘대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우리 시대에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다른 시대 한 인간과의 진실한 대화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심지어 그 ‘인간‘은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또 읽히며, ‘대화할 만한‘ 가치가있다고 검증된 이들이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오랜 세월의 무게에 담긴 신뢰 덕분에, 더 진지하고 깊이있게 모든 단어와 문장을 대하게 된다. 나아가 그 무게감이 - P102

역으로 내 삶에 들어와 나를 바라본다. 챗GPT의 수많은 문장들보다도 고전의 ‘한 단어‘가 나를 뒤흔들며 내게 가하는 힘이 더 강력하다. 이 강력함을 느끼고자, 나는 고전을찾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이 고전에 부여하는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야기여도, 고전이 아니라 지하철 화장실에 써 붙인 문구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무게감 없이다가온다. 그러나 내가 고전에 그만한 무게감을 부여하고있기 때문에, 역으로 고전은 의미심장한 무게감으로 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는다. 즉, ‘고전‘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밤을 지키면서, 그들에게 지침을 제공하고, 때론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를 걸고 고민한 성찰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고전은 우리에게 진짜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고전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전을 대하는 태도‘다. 고전 속에 틀림없이 우리 삶에 의미 있을만한 통찰이 있다고 믿고 고전을 대하는 것, 그래서 그 고전을 기준으로 다시 우리 삶을 돌아보며 재구성하는 일이야말로 고전 읽기의 기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논어』나 『맹자』 원전을 집어 든다고해서, 곧바로 그런 태도가 장착되어 고전의 고유한 의미와 무게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단언하긴 어렵다. 오히려 고전을 - P103

대하는 그러한 태도를 만들어 가는 데 일정한 안내자가 필요할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그 안내자가 있다. 바로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부제로 내놓은 신영복 교수의「강의」다.
신영복 교수는 『강의』에서 자신의 ‘고전 독법‘에 대해 명료한 관점을 제시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는 ‘관계론‘이라는 화두에 따라 『주역』, 『논어』, 『맹자』, 노장, 묵자, 순자, 법가등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고전들을 읽어 내겠다고 밝힌다. 이는 막스 베버 이후 서양의 사고관에 익숙해진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다시 돌아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것은 베버의 체계에는 동양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있는 관계론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고 있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강의』, 36쪽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읽다 보면, 확실히 고전이 고전에만 머물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동양고전들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돕는 걸 넘어서, 끊임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삶을 묻게 한다. 특히, 어느덧 - P104

부인할 수 없는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한번 그의 길 안내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주역』은 물론 점치는 책입니다. 점쳤던 결과를 기록해 둔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앞의 책, 88쪽

『강의』를 집어 들기 전까지만 해도, 『주역』만큼은 내 관심 밖이었다. 책에서 말하듯 『주역』은 어디까지나 점치는 책이고, 아무래도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게 ‘현대인‘인 나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사주팔자나 점성술 등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것들을 진지하게 믿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책을 제쳐 두고 『주역』을 읽고 공부하는데 관심이 가긴 어려웠다. 그러나 강의』에 등장한 다음 구절을 읽자마자, 내 생각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 P105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앞의 책, 89쪽

점치는 걸 단순히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우주에 대해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겸허함‘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지적하자, 그 이야기에 곧바로 공감이 갔다. 그는 인간 마음에 공통된 어떤 ‘약함‘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모든 걸‘ 안다는 자만에 빠지기도 했다가, 그 속에서후회하고 다시 불안에 떨기도 한다. 사실, ‘점‘을 친다는 건 그 자체로 내가 현재나 미래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겸손을 전제에 두고 있다. 타인이 찾아낸 어떤 원리에 경의를 표하고 그에 따라 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즉,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타자에게 기대어 보겠다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강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자기중심성‘의 세계관을 집요하게 경계하면서, 우리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내 안에 먼저 바로 서야 함을 강조한다.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P106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다른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을 인仁이라 합니다. 자기가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의 책, 42쪽


이러한 이야기는 듣기 좋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 같은것이어서, 어쩐지 우리 시대에는 ‘귓등‘으로 들릴 것만 같다. 그러나 『강의』를 따라 동양고전의 세계로 젖어 들수록,
그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각자도생‘하며 자기만의 안위와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시대에, 과연 우리 삶을 보다
‘살리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을 생각하며 관계에서의조화를 찾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영복 교수가 『주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관계의 기술‘은 뭘까? 그것은 ‘절제와 겸손‘이다.

『주역』에서는 ..."항룡유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경계입니다. 초로 만들어진 날개를 달고 있는 이카루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자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 P107

있습니다.-앞의 책, 131쪽


우리는 대체로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를 생각한다. 상대가 내게 이익을 주는가, 필요가 있는가, 나의 성공에도움을 주는가, 같은 생각으로 관계를 따지고 배치한다. 그렇게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상대의 쓸모를 고민하며 관계를 맺는다. 상대가 ‘나로 인해‘ 어떤 도움을 얻는지, 내가 상대에게 주는 것은 오히려 ‘희생‘이라 생각하여 마이너스(-)적인 면으로 본다.
그러나 신영복 교수는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볼 게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의 존재란 결국 타인들과의 관계망 속에 위치해 있는 하나의 점이다. 그 전체적인 면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나의 존재가 ‘적절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나 혼자만 도드라져 보인다고 좋은 게 아니다. 나 혼자 하늘 끝까지 오르면 결국 후회한다. 오히려 주변인들과의 조화 속에서 잘어우러져 있어야 하는 게 ‘관계‘를 고려할 줄 아는 태도인것이다. 영화로 친다면, 주연 배우 하나만 튀어서는 곤란하고 조연 배우들과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고 보는 셈이다.
그런 조화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는점에서, 우리 스스로 인생과 관계에서의 ‘감독‘이 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 P108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제대로 배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학창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과의 조화보다 일단 공부 열심히 해서 1등 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후에도 취업에서든 면접에서든 다른 이들과의 조화보다는 나 혼자 도드라져서 1등 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비로소 동료 관계나 팀에서의 역할 등이 중요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 조차 각자도생이 흔해지고 있으며, 다른이들을 누르고 혼자 정치와 실적을 통해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속에서 결국 관계의 조화는 이루지 못하고, 서로를 ‘자기중심적‘으로만 대하는 문화가 확산되기도 한다.
신영복 교수는 그런 점에서 동양의 고전들을 ‘관계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고전 독법‘에 대한 하나의 전범을 본다. 그의그 집요한 시도는 결국 고전이 그의 삶에, 그리고 그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나아가 그와 독자가 형성하고 있는 한 사회와 문화에까지 어떠한 ‘무게‘로 전달된다. ‘나‘ 중심으로 모든걸 사고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인생과 사회 전체에 하나의 무게 있는 관점이 던져지는 것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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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시간을
시간이 미래를


봄이 오면 봄꽃 피고 여름 오면 수영하고
그런거 말고

존재의 바다로 풍덩 빠져드는
그런 시

쓰고 싶었는데요

아침에 뜨는 해가 만드는
벽의 빛

그런 거 말고
그런 시시한 거 말고

그런데 이상하게 감동적인 거 말고

정직하게 좋은 시
쓰고 싶었는데요 - P-1


점심 먹고 산책 갔습니다

햇빛이 쓴 것과 햇빛이 지운 것
검은건반과 흰건반처럼

허리가 길고 검은 개
긴 전신주 그림자

그런 것 뭉텅뭉텅 밟고 지나갔고요

한의원 한약방 냄새
구구구 비둘기들

지나가며

혁명!
이라고 쓰인 책과

혁명! - P-1

없는 세상 사이에서

전기세 오르고 가스비 오르고
월급이 삭감되어도

해를 보며
이상하게 마음 안에 빛이 가득 차 있어요

미래없음 전망없음
희망인력 힘찬잡부

마치 하나의 말인 것처럼
지나가면 지나가겠지요

희망이 시간을요
시간이 미래를요

냉장고 안에는
애호박이 양상추가 - P-1


썩어가고 있어요 천천히 조용히
살아 있음을 다하는 형태로

대파를 한단 사면
대파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떠올리듯이

머리 위의 빛이 나지 않는 비행기를
계속 문지릅니다

그러면 날아갈 수 있다는 듯이

반박자 빠른
제멋대로 느려지는
그런 리듬

그런 발자국
속에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있어요 - P-1

보고 있습니다

반은 그늘에 반은 햇빛에
잠긴 채로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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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현

2017년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가 있다.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이다. - P-1

ㅣ시인의 말


물속에 일렁이는 빛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빛은 만질수 없고 두 손에 가둘 수 없고 그래서 신비롭구나.
만질 수 없는 장면과 마음을 붙드는 게 시라면 다정하게열린 창문, 흐르는 노래였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컵 속 얼음이 찰랑거린다. 여름이다.
이 시들을 쓰며 나의 시간은 조금 더 갔다. 이것을 읽으며당신의 시간도 조금 더 가기를. 그래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빛을 함께 볼 수 있기를.

2023년 여름
주민현 - P-1

이 시집의 ‘넓은 테라스‘에는 당신을 위해 비워둔 의자가 하나있습니다. 그 의자는 밤의 물질로 만들어졌고, 그 의자에 앉으면 "세상이 몹시 외롭고 이상한 별처럼" 보이고, "어째서 신은/텅 빈 새장을 이렇게나 많이 걸어두었을까" 세계가 불가사의해지며, 당신은 "당신의 가장 외로운 부분을 향해 다가갈"겁니다. 그 ‘가장자리‘에서 당신은 한 시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화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하기에. 그 시인은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싶어요" 속삭이는 사람,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는 "삶의 외로운/구경꾼이자 싸움꾼"입니다. 당신은 의자에 앉아서 시인이 상영하는 ‘오래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 영화에는 떠도는 빛이 있고, 그것은 인간, 그것은 기억, 그것은 역사, 그것은한 영혼처럼 보입니다. 그 빛은 자신을 위해 비워진 의자에 앉아 자신의 삶을 지켜보는 자신을 응시합니다. "무언가 돌아본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끝났다는 것"이지만, 다시 "삶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이것이 제가 이 시집을 통해 쓴
‘유령‘ 이야기이고, 저는 당신께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 비워둔시집 속 의자에 앉아 ‘당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기를. "이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해"라는 시인의 전언에 "멀리가는 느낌이 좋아" 답하게 되기를. 그 대화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시작되기를.

김현 시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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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와 희철이에게
김중미


"만나서 하는 일이란, 무슨 할 일을 만드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만나서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이야기 나누는 그런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저 만난다는사실 그것이 그냥 좋을 뿐이었다."(「청구회 추억)
1988년부터 지금까지 공부방 큰이모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그저 계속 관계를 만들고 이어 갈 뿐이다. 처음 공부방 문을 연 뒤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공부방은 여전하다. 계속해서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흘러 고이기때문이다.
선생은 한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의 추억을 적으며 두려움과 절망을 잊었다고 했다. 선생에게 "청구회 추억은 그 절망의 작은 창문"(「담론』)이었다. 공부방이 38년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과 쌓은 추억, 그시간의 힘 때문이다. 사형을 앞두었던 선생의 그 절망에 댈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매 순간 두렵고, 버겁고, 지쳐 절망에 빠진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을 절망에서 구원한 청구회추억처럼, 나는 동호, 희철이와의 추억이 있어서 도망가지않고 계속 아이들을 만났다. 상도가 공부방 앞에서 11톤원목 트레일러에 치여 죽었을 때도, 79년생 아이들이 번갈아 구치소를 들락거릴 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고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청구회 아이들이 선생에게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던 것처럼 공부방 아이들이 - P93

내게 창문이었다. 그 창으로 보이던 별빛, 어둠을 밀어내고 기어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햇빛 덕분에 살았다.
청구회 회원들이 ‘어린이‘여서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여러 책에서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정대의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현대문학을 읽던 노인, 생계를 위해 피를 팔면서 헌혈 전에 물을 너무 마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청년,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던 목수, 치약 하나도 빌려 쓰지않으려고 위악을 부리던 청년. 선생의 눈과 귀는 청구회의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약자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에서 맹자의 ‘이양역지‘ 를소개하며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해말한다. ‘본 것‘과 ‘못 본 것‘은 생사가 갈리는 차이라고했다. 선생에게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 관계를 갖게되는 것이었다. 선생이 만난 청구회의 조대식, 이덕원, 손용대는 천진무구한 어린이가 아니라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상징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선생은 자신이 특별히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대답하지않았다. 나는 선생의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이를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존재로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로 - P94

어린이들을 대한다. 마냥 순수할 것만 같은 아이가 가시를드러내거나 되바라진 말을 하면 ‘애답지 않다‘고 혀를 찬다. 여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여남은 살이든, 어린이들 역시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 그들이 통과하는 시간으로부터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어린이의 삶에도 그 시대의 문화,
질곡과 정서가 고스란히 새겨진다. 원래 나쁜 아이, 원래 착한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선생은 "어떤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그 자체로받아들이기보다는 그 개인적인 아픔이나 고통 속에서 그것의 사회성 나아가서는 역사성을 읽어 내야 한다"고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 몸에 새겨진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여름방학이 되면 충북 괴산으로 공부방 초중고아이들과 대학생, 이모 삼촌들이 다 같이 여름 캠프를 간다.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우리를 품어 주는 ‘솔뫼농장‘은 시설이 매우 낡았다. 주변에 생수 공장이 생기고, 자연 하천이 사방공사를 하고, 논농사 중심에서 밭농사로 농사 형태가 변하면서 수자원까지 고갈되어 물 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은 리조트나 캠프장 대신 ‘솔뫼농장‘으로 가는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지만, 낡고 추레하고 불편한 그곳이 오히려 우리의 장을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 P95

곳이기 때문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시설 좋은 수영장이나 워터파크가 아닌 개울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논다. 깊은곳이나 물살이 센 데가 있어도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 이모 삼촌들이 함께하니 안전하다. 잠은 여자 방, 남자방에서 스무 명, 서른 명이 한꺼번에 자기 때문에, 예민한 아이는 코 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또 어떤 재미있는 하루가 펼쳐질까 기대에 찬 눈빛을 맞춘다. 누구도 외딴 점으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디서든 장을 이루어 함께한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힘찬 에너지를 뿜어낸다. 캠프3박 4일 내내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공부방 아이들이 웃는 모습은 어떤 분노와 슬픔이라도 다녹일 만큼 강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폭염 속에서 80인분의 세끼 밥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5월 햇살보다 눈부시고, 6월의 숲보다 더 싱그럽고,
9월의 하늘보다 더 푸르다. 그러나 아이들의 그 웃음 뒤에 어른들보다 더 깊은 상처와 상실, 두려움, 분노, 불안이 숨어있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 숨은 무기력과 불안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지 않으면, 그렇게 웃던 아이들이 드러내는 분노와 무기력까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경제적 결핍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른 결핍을 낳기도 한다. - P96

공부방이 있는 지역에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이주 배경을 가진 주민이 많다. 재개발로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기 전에는 가난한 이웃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았다. 먹을 것을 나누고, 불편한 몸을 대신해 주며 살았다. 가난한 동네의 골목은 생명의 연결망이었다. 그 연결망을 따라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여 ‘우리‘가 되었다. 골목에는 외딴 점이 없었다.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여러 개의 ‘장‘을이루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선과 장은 구제금융과 재개발의 파고를 겪으며 끊어지고 사라졌다. 팬데믹 이후에는 사람들이 각자 외딴 점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저마다 각자도생밖에 길이 없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외딴 점이 된다. 정부는 아이들이 외딴 점이 되지않게끔 학교 안에 돌봄교실, 늘봄학교를 만들며 생색은내지만, 그곳에서는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기 힘들다. 아이들을 그저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볼 뿐 주체로 여기지않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러 책에서 연대는 위에서 소수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모여이루는 낮은 연대가 진짜라고 했다. 나는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가 어린이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 P97

더 낮은 자리에 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연대하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 연결이 간절하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없다.

「청구회 추억을 다시 읽으며 만남과 연결에 대해, 그 이후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다. 「청구회 추억」을 통해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끈 만남을 추억하며, 내가 서 있는 길을 자각하고 다음 걸음을 생각한다. 「청구회 추억」 덕분에 추억 여행을 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을 선물한 ‘청구회‘ 주인공들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선생과같은 어른이 필요하다.
「청구회 추억」 말미에 있는 선생의 문장으로 추억 여행을 마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 - P98

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생각하면 명멸하는 추억의 미로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 역시 이윽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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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보내는 편지
김미옥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충격이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이 문장에서 나는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단칸방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요. 당신의 모든책을 좋아하지만, 그중 제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것은『더불어숲입니다. 논리가 정연한 글은 배움을 주지만 감동을 안기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뇌는 지식의 십분의 일정도만 언어화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정한 지식은 직관과 공감의 거대한 바다에서 일어선다는 말을 나는신뢰합니다.
당신은 논리를 앞세워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했을 뿐입니다. 알고있었으나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그 모든 것, 어쩌면 학습된 무기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쟁, 약육강식, 각자도생으로 덧칠된 우리가 만든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하여 당신은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 P15

아닌 ‘당신과 나‘로 연결되는 서간체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요. 당신의 글엔 문학과 음악이 있었습니다.
강제로 유배지의 정주민이 되어야 했던 당신과 유목민으로 성장한 나와의 만남은 『더불어숲이었습니다.
당신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늦은 편지를 씁니다. - P16

당신의 글은 내게 서간문의 힘을 생각하게 
합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유행했던 대중소설은 새뮤얼리처드슨의 파멜라나 장 자크 루소의 『신 엘로이즈등이었습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굴종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서간체의 감성 소설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이되면서 자신과 동일시하는 현상이 일어났지요. 사람들은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하며 평소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가치관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대중에게 균형감과 공감 능력을 향상하는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글을 사상이 아닌 문학으로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비극은 배타성이고, 특정 계층의 유대감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폭력‘일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과 연대에 대하여, 그리고 나무와 숲에 대하여 몰입했습니다. - P17

먼저 당신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정주민이었어요. 한곳에 정착해서 뿌리내리고 싶었습니다. 객지를 떠돌다 잠시 머무는 동네에서 원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만나면 우리 식구들은 주눅이 들었지요. 가난도 부처럼 눈에 띄어 불평등과 차별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의 목표는
‘평범‘이었습니다. 나의 ‘평범‘은 사람들 속에 묻혀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지요. 나의 성장 환경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는 까닭을 말하고 싶기때문입니다.
제도권 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내게 유일한 친구는 책과 음악이었습니다. 외딴섬처럼 홀로 떠돌던 습관은 ㅡ어디에도 심리적으로 소속되지 않는 자발적 고립을 불렀습니다. 오랜 고립이 정주를 부정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읽고 쓰고 듣고 떠나는 생활에 익숙했습니다. 소외는 조직속에 있으면서도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직은 개인의 합 그 이상이란 말도 경멸했습니다. 제게 집단은 ‘평균으로의 회귀‘였고 하향 평준화의 의미이기도했습니다. 내 생존 방식이 개인주의에서 기인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더불어숲」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개인의 능률과 효율을 우선시하며 공감과 연대마저 조직이나 집단의 논리로 가두는 우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 P18

어떤 이들은 제게 묻습니다. 왜 늘 길 위에 있느냐고. 그럴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아닌 저기가 내가 있을 곳 같다고, 그러니 언제든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아, 당신을 모를 때였습니다.


오래전 강연장 뒷줄에 서서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나는 끝내 당신에게 가까이 가지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내게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유일한 이였습니다. 존경하되 가까이하지않는다는 경이원지敬而遠之 당신은 내게 백석의 시에 보다 가까운 이였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하신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언제나 늦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아이가 자기 머리를 잡아당겨 스스로 자신을 구출하듯 혼자 결정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제도권 밖의 사람은 뭐든 타인보다 더 큰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답장이 이렇게 늦습니다. - P19

1997년 1월 1일부터 당신은 『중앙일보』 칼럼에 세계여행기를 싣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첫 글은 스페인의우엘바 항구에서 보낸 엽서였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이곳에서 신대륙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출항은 식민주의의 원년이었습니다. 오늘의신자유주의로 진화한 서구의 자본주의는 식민지에서빼앗은 부로 이룩되었습니다. 당신은 예감했던 걸까요?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구제금융을 신청했던 날이 1997년 11월 21일이었습니다. 달러와 함께 강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불평등과 양극화의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인간보다자본이 우선시되는 세상에서 당신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콜럼버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자본의 극대화와 이윤 추구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그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 P20

스페인에서 보낸 당신의 두 번째 편지는 매일 12시면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오 성가로 시작됩니다. 잠시 내 어린 날 시골 초등학교 하굣길에 있던 수녀원을기억했어요. 나는 벚나무 담 위에 앉아 낯선 음악에 귀를기울이곤 했습니다. 성가는 내가 접했던 세상의 음악과달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음악으로 또 다른 세상에대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내게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이념의 잡화상 같았어요. 『누구를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헤밍웨이도 그 전쟁에 참여했었지요.
존 던의 시에서 가져온 제목이었습니다. 성당의 조종弔鐘소리는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그 시를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묻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며, 그 용서로 역사는진보하는 것이라고요. 핵심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행착오는 늘 같은 지점에서 반복되지요. 틀리는 문제를계속 틀리는 자에게 필요한 건 실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파악하고 해결하는 ‘메타인지‘일 겁니다. 알면서도 틀리는 건자만심과 어리석은 욕망이 우리 눈을 가리기 때문일 테지요.
세계의 많은 젊은이가 이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어요. - P21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은 옳았습니다. "역사적 실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지리적 실체이자 문화적 실체이기도한 동양 서양이라고 하는 장소, 지역적·지리적 구분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종과 종교, 국적이 달라도 인간은 공존해야 합니다. 파괴는 무력으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언어 제국주의‘에 정복당한것만 같습니다. 인문 계열에 있던 중문과나 독문과, 불문과등의 많은 학과가 경제성과 실용성이란 미명으로 대학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중국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어떤 교수는 학과가 폐쇄되자 교양 실용 언어를 강의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영어는 내게 언어 식민주의로 느껴집니다. - P25

당신은 누군가 장벽에 쓴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라는 문장을 적었습니다. 나는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그작품의 원제목은 ‘베를린의 하늘‘이었습니다. 감독과 함께영화 각본을 쓴 페터 한트케는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영화의오프닝은 그의 시 「아이가 아이였을 때를 배우 브루노간츠가 낭송합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로 시작해서 시냇물이 강이 되기를, 웅덩이가 바다가 되기를 소원했던 - P30

아이는 습관과 관념에 갇히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입니다. 모든 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시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흥얼흥얼 노래처럼 읊조립니다.
내친김에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 말고 카리 브렘네스의〈A Lover in Berlin>을 듣습니다. 지금 4월의 하늘은 푸르르고 햇살은 눈이 부십니다. 나는 일어나 베란다 창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But this falling made me fly, left me soaring for thesky.
그렇습니다. 때로 추락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게만듭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난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만큼떨어져 같이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곡이든 상관없습니다. - P31

당신은 템스강과 타워브리지, 아름다운 성과 
유적, 표준 시간을 독점한 그리니치 천문대를 둘러보며 막대한 금융자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사랑채에서 유유히 소일하며 장부를 넘기고 있는 양반을 연상했습니다. 나는 템스 강둑에 앉은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했어요. 20세기 런던의 대학 도서관은 남성 동반자 없는 여성이 혼자 출입할수 없었습니다. 그때 울프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여자가 읽고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탄식했습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합니다. 내가
‘여성‘이란 사실이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격합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젊은 층의 비혼주의를 지목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울프가 결혼으로 경력 단절과 경제적 위기를 겪습니다. 가부장적 문화와 성 역할은 여전하고 책임감과 경제적, 심리적 부담은 부모 세대와 다를 바없습니다. 그들이 택한 비혼은 그들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구조적인 해결 없이 관습과 문화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또다른 폭력이라고 생각됩니다. - P34

나는 당신이 보낸 46통의 편지에 다 답장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당신보다 더 많은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긴 여행을 떠난 지 십 년이 됩니다. 한시도 당신이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내가 떠나고 돌아온 곳에 관하여 얘기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겨울에 떠났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에도 봄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오래된 아파트 화단은 벚꽃과 목련이 한창입니다.
늘 그랬듯 나는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 여행하게 될 겁니다.
그때 <엘 콘도르 파사>를 함께 부를까요?
"길(street)이 되느니 숲(forest)이 되고 싶다."
이 부분은 제가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나의 선생님.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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