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임솔아는 시와 소설을 쓴다. 장편소설 「최선의 삶이있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아름다움」에서 - P-1

핏줄이 입술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고구마 순처럼 자라나작했다. 핏줄에서 잎사귀 같은 것이 생겨났다. 수백 개의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년 후에도
십 년 후에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는 말과

눈이 와,
눈이 많이 와.
죽여버릴 거야,

같은 말들이 우수수 피어났다.

벌레들이 핏줄을 타고 올라와 잎사귀를 감아 해났다. 구멍이 났고 찢어졌다. 새들이 날아왔고 새들이 집을 지었다. 아침마다 나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가을에는 잎사귀들이 떨어졌다. 겨울에는 새들이 날아갔다. 나는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아 사라진 입술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젠더, 나이, 신체, 지위, 국적, 인종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합니다. - P-1

시인의 말


언니가 열쇠라는 것만 알았지.
방 열쇠를 나눠 가지면 된다는 걸 나는 몰랐어.

내 방에선 끔찍한 다툼들이 얽혀
겨우겨우 박자를 만들어내

언니는 말했지.
이런 세계는 풀 수 없는 암호 같고,
그런 건 낙서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그건 얼마나 옳은 생각인지.

언니와 나 사이에 사는 사람들과
열쇠를 나누어 가지면 좋을 텐데.

2017년 3월
솔아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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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와 당국


목련은 안개 속에서 있었다 불투명과 반투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안개는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막 밤과 헤어진 강물은 새벽과 몸을 섞고 있었다 목련 앞에서 웃음도 울음도 없는 얼굴이 반쯤 파묻히고 있었다 먹히느냐 먹느냐 그것만으로는 정의되지 않았다 당국은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구하여도 구할 수 없었다 괴로워도 괴로웠다 목련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공정이냐 공정이 아니냐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았다 중대재해도 중대처벌도 중차대하지 않은 당국은 미래가 현재와 현재가 과거와 과거가 미래와 악수하듯 아침엔 주천강 점심엔 동강 저녁엔 한강으로 이름을 바꾸며 흘러갈것이다 목련은 안개 속에서 있었다 불투명과 반투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안개는 흘러나오고 있었다 삶처럼 죽음처럼 죽음처럼 죽음처럼 - P-1

글쎄가 물음처럼 쌓여 가는 여름밤이었다


빚을 빛으로 돌을 금으로 술을 피로
시를 신으로 바꿀 수 있다고?

반려견도 반려묘도 못되는 주제에?

빛을 빚으로 금을 돌로 피를 술로
신을 시로 바꿀 수 있다고?

반려신도 반려자도 못되는 주제에?

*"글쎄"
막상 살아 보면 재밌을 거라고?

반려시도 반려술도 못되는 주제에?



*글쎄는 얼어 죽을 - P-1

취향 없음


쇄빙선을 타고 북극으로 떠나는 남자가 있고 눈물을 얼리러 시베리아로 향하는 여자가 있다 국적도 없이 다시 돌아온 계절은 기후 위기와 함께 봉착했고 오늘 아침 지나간 장례 행렬은 지구 종말의 알레고리로 리사이클링 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처음처럼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참이슬을 마신다 소주 취향조차 없는 나는 소설가를 만나면 처음처럼을 시인을 만나면 참이슬을 마신다 위기와 종말도 사고파는 사람들은 다국적펀드로 무자비적 약탈도 서슴지 않는데 이념 취향도 없는 나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 듯 산다 쇄빙선을 타고 북극을 향해 가는 남자가 있고 눈물을 얼리러 시베리아로 떠나는 여자가 있다 - P-1

장마


애플제라늄 옆에서 하루 종일 장맛비 소리를 듣는다

큰 틀에서 전생이 있다면 저 우중의 거리와 
같을까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들 물안개처럼

잠깐 잠깐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큰 틀에서 생각하면 그게 다 꿈이었을까?

애플제라늄 옆에서 하루 종일 장맛비 소리를 듣는다

큰비 속에 나를 세워 놓고 가만히 울다 보면

누구에게 받았는지 모르는 가시가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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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유럽의 이민노동자들은 한 가지 점에서 그와 다르다. 이들의 대다수는 자기들이 일하는 나라에 영구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애당초 금지되어있거나 그럴 마음이 나지 않도록 교육되어 있다. 각국 정부나 다국적 기업들은 지구 전체를 염두에 두고 그들의 정책을 짜고 있으며, 일시적인 이민노동자로부터 얻어 내는 자본주의의 이득은 상당한 것이다.

그는 자기와 같은 역사적 선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일시적인 이민이라는 자본주의의 편의가 자기 자신의 희망사항과도 일치하고 있다. 그는 분명 여기 아주 살려는 의도로 온 것은 아니었다. 여기 남아서 영구적으로 정착을 하는 편이 더 안정된 삶이 될 것이라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런 사람들 중에서 국가별로 가장 큰 집단은 이탈리아인들이다. 왜냐하면이탈리아는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일원이어서 거주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결정에 대해 확신이 없는 채로 남아 있다. 이제는 귀국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어요. 그는 이렇게 설명하면서 체념화된 저항의 표시로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인다. 내가 어떻게 할수 있단 말이요?

그가 만약 어떤 흐름, 자신의 자유의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어떤 조류를인식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특별히 차별하지 않고 ‘인생‘으로만 생각 - P-1

한다. 이같이 전체를 보는 관조의 시각과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의 불가해함이 일종의 운명감을 지탱해 주며 특별한 지구력과 용기를 준다. 이건 그가 결코 저항하지 않으며 모든 불의를 감수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설명보다는 비극 자체가 보다 더 실감이 난다는 얘기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알지도 못하며 알려고 애써 보지도 않는 역사는엄연히 거기 있다. 그 역사는 그의 상황의 일부분이며, 이미 그의 경험에도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그의 비극의 한 부분이다.

그의 열등한 지위의 자연스러움 - 그가 사람들에 의해서, 기관들에 의해서, 대도시의 일상적인 생활 예법에 의해서, 기성품 구호나 주장들에 의해서, 너무도 쉽게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그 자연스러움은 그의 기능, 그리고 그 기능에 따르는 열등한 지위가 새로운 것일 때 가장 완벽하고 즉각적인 것이 된다.

그는 애초부터 여기에 존재해 왔던 것이다. - P-1

이민들은 크게 나우어 지게우너(짚시), 룸펜파크(누더기부대), 카멜트라이버(낙타 타는 자), 지트로넨 쉬틀러(레몬 짜는 자) 또는 쉴랑엔프레써(뱀 먹는자)로 불린다.

그는 겉으로는 이것을 감수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자부심을 환기시켜 자기가 누구인가, 이미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상기해 낸다. 그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은 그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무엇하러 오는가? 그 간단한 논지는 다음과 같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특히 지난 15년 동안 서유럽의 경제는 그 인구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왔다. 이것은 노동력의 부족을 낳았다. 그와 대조적으로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개발된 국가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곳에서 유아사망률과 질병을 감소시키고 있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해 ‘인구과잉‘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일어난 일은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일거리가 있는곳으로 오기 시작한 것이었고, 그 일거리란 대체로, 그리고 그들의 수준으로 봐서는 확실하게, 보수가 좋은 것이었다.

위의 논지의 어떤 이야기도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을 위장시키고 있다. 언어의 위장이란 얼마나 불투명한 것인가. - P-1

그가 국경을 건너고 나자 사람들이 말하거나 쓰는 모든 말은 그에게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맨 처음에는 그도 그 말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추측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건네지는 말들의 대부분은 지시 아니면 명령이었다. 만약 그가 추측을 잘못할 경우에 그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추측 같은 건 안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그 미지의 언어의 음향을 마치 그것이 침묵인 것처럼 취급했다.

그의 침묵을 깨뜨리기.

그는 새로운 언어의 단어를 스무 개 배웠다. 그러나 처음에 그가 경악을했던 것은, 그가 말했을 때는 그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는 커피를 청했다. 그런데 그 커피라는 말이 바텐더에게 의미하는 것은 그가 커피를 청해서는 안 되는 바에 와서 커피를 청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여자도 배웠다. 그가 사용했을 때 여자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그가 음란한 개새끼라는 뜻이었다.

언어의 불투명함을 꿰뚫어 보는 일은 과연 가능한가? - P-1

프랑스에서의 이민 공장노동자 사고율은 본국인 노동자들보다 8배나 더 높다.

이민노동자들의 사고율이 높은 데에는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다.

1. 이민노동자들은 거의 농촌 출신이므로 공장 노동에 익숙하지 못하다.

2. 대부분의 사고는 어떤 특정 작업의 훈련이나 적응기간 중에 일어나기때문에, 이민들은 서유럽 국가의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제 금방 도착한데다 본국인 노동자들보다도 일자리를 더 자주 바꾸기 때문에 그런 일을더 자주 당하게 된다.

3. 언어장애도 사고 빈발의 원인이다. 경고문의 간판을 읽지 못하거나 같이일하는 노동자들이 소리치는 경고의 외침을 못 알아듣기 때문에 일어나는사고도 많다.

4. 이민노동자는 사고 위험이 아주 높은 공장이나 그런 타입의 노동에 치우쳐 투입되어 있다.

5. 이민노동자들은 대단히 장시간의 노동을 한다. 대개의 산재사고가 하루일과가 끝날 무렵, 피로로 주의력이 떨어지는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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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시집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공기는 상처로 가득하고 
나를 덮은 상처 속에서
광대뼈는 뾰족하지만
당신이 세게 잡으면 뼈가 똑 부러지는
그런 작은 새가 태어나는 순서

새하는 여자를 보고도
시가 모르는 척하는 순서 - P-1

여자는 죽어가지만 새는 점점 크는 순서
죽을 만큼 아프다고 죽겠다고
두 손이 결박되고 치마가 날개처럼 찢어지자
다행히 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종종 그렇게 날 수 있었다고
문득 발을 떼고
난간 아래 새하는
일종의 새소리 번역의 기록
그 순서

밤의 시체가 부푸는 밤에
억울한 영혼이 파도쳐 오는 밤에
새가 한 마리
세상의 모든 밤
밤의 꼭지를 입에 물고 송곳같이 뾰족한
에베레스트를 넘는 순서

눈이 검고 작아진 새가
손으로 감싸 쥘 만큼 작아진 새가 - P-1

입술을 맞대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는 새가
새의 혀는 새순처럼 가늘고
태아의 혀처럼 얇은데
그 작은 새가
이불을 박차고 내 몸을 박차고
흙을 박차고 나가는 순서

결단코 새하지 않으려다 새하는 내가
결단코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라고 말하는 내가

이 삶을 뿌리치리라
결단코 뿌리치리라

물에서 솟구친 새가 날개를 터는 시집

시방 새의 시집엔 시간의 발자국이 쓴 낙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연필을 들고
가느다란 새의 발이 남기는 낙서 - P-1

혹은 낙서 속에서 유서

이 시집은 새가 나에게 속한 줄 알았더니
내가 새에게 속한 것을 알게 되는 순서
그 순서의 뒤늦은 기록

이것을 다 적으면
이 시집을 벗어나 종이처럼 얇은 난간에서
발을 떼게 된다는 약속
그리고 뒤늦은 후회의 기록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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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혜순은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리 돼지」 「죽음의 자서전」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 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장 첨예한 사랑의 유형은 이런 것이다. ‘당신‘이 누군지 감히 규정하지 못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자신도 모르면서 두려움을 넘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행위‘가 ‘나‘와 ‘당신‘의 구분을 없앤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작별의 신체‘임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새‘와 ‘나‘와 ‘시‘ 사이에서 주체와 객체의구분은 날아가버리며, 작별의 리듬만이 이것들을 연동coextension시키는 무한동력을 만든다. ‘이별부터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하기‘의 잠재성이다. ‘김혜순-하기‘의 층위에서라면, 이 시집 전체가 이미 작별의 신체이며, 작별의 리듬이다. 끝내 ‘김혜순‘의 정체성은 알 수없으며, ‘김혜순하기‘의 맥락 속에서 계속 탄생하고이별하는 ‘김혜순‘만이, - P-1

시인의 말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이제 보니
우리는
작별의 공동체

2019년 3월
김혜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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