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 - 이젠 그를 만나고 싶다
신경림 외 지음 / 책만드는집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고 한다. 사랑의 시들로만 모여 있는 이 책을 한참이나 읽으면서 사랑, 그리움 따위들의 언어들의 홍수 속에 마비되어 오히려 무감각해져 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접하지 못하는 젊은 시인들과 새로운 시들의 만남은 참신했고, 학교 시절 우연히 알게 돼 원문을 찾아 헤매던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이나 문병란 시인의 <호수> 등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책머리도 맺음말도 없어서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단락을 나누고 순서를 배치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시인의 성명 순도, 시의 제목 순도 어떤 정보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단락을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다소 촌스런(?) 제목에 겉 표지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을 만한 책이었다. 그러나, 모둠집이다보니, 원 시에 그렇게 띄어쓰기가 돼있었던 건지, 편집의 실수인지 의아스러웠던 여러 시의 부분에서의 의문을 풀 수 없어서 서운(?)했다. 이런저런 불평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에 두고 자주 읽고 싶은 그런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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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반의 역사 - 역사는 그들을 역모자라 불렀다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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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고르게 될 때 나름대로의 여러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 있는데, 나의 경우엔 저자와 출판사가 아주 비중이 크다. 저자가 <한국역사연구회>라고 나와있는 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모두 좋았던 기억이 있어 찾아 읽게 되었다. 잘되면 혁명 못되면 쿠데타가 된다고 했던가? 바로 고대부터 쿠데타로 설정되어 묻혀버린 역사 속의 사람들을 불러낸 이야기였다.

책머리에 나와있는 내용에도 '집필을 한 연구자 개개인의 개성을 살린 글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 글의 성격이나 서술 방식이 통일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체제와 내용 면에서 상당히 다양성을 띠고 있는데,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다.(7p)'라고 쓰여 있는데, <십팔자가 왕이 된다·이자겸>에 대한 내용에서 사건의 두 주인공인 이자겸과 인종을 역사의 판정 무대에 불러내 변론과 진술을 들어보는 장면은 아주 흥미로웠다. 옛날 고서 모양의 편집 디자인은 예뻤다. 하지만, 원래 편집 시에 투톤(two tone)을 사용했었는지 다른 책을 인용할 때 색상이 흐린 것이 나처럼 시력이 나쁜 사람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일상적인 방법으로 글씨체를 바꾸는 방법이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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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
줄리언 반즈 지음, 권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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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뭐라 적혀 있었던 건지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일간지 북 코너에서 소개되어 적어뒀다가 구입을 하게 된 책이었다. 원체 북코너에 소설이 소개되는 경우가 드물고, 또다른 이유론 오랜만에 소설이나 한 권 읽어볼까 하고 쥐었다고나 할까?

처음엔 그저 그런 통속적인 가벼운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다. 영국 작가인데도 진행하는 내용에서 프랑스 소설류의 분위기를 많이 풍기네 하면서 읽다가 갈수록 숨가빠지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어떤 스릴러물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질투'란 단어 자체가 남자란 연관지어지는 모습이 갈수록 추악스러워지는 모습을 읽으면서, '그레이엄 넌, 미쳤어'를 외칠 만큼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랑이라 착각한 감정, 자기 몽상에 빠져 점차 빠져드는 늪, 그 싫어하던 영화를 일부러 찾아가서 보면서 자기 착각을 합리화시키는 미련함. 그 마지막을 예견한 듯이 흘러가 드러나는 끔찍한 결말.

작가 후기에 나와있는 말처럼 '한번 잡으면 새벽녘까지 놓지 못할 소설'이란 말에는 공감할 만하지만, 뒷맛이 좋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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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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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과연 순간의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인가? 처음엔 짐 나쉬의 이야기가 로드 무비 스타일로 진행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왜냐면, 폴 오스터의 책은 처음 대한 터라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읽게 됐으니.

정말 제목에 우연이라고 적혔듯이 우연히 책을 접하게 되고, 음악이란 뒷 단어에도 매료되어 읽게 됐는데, 작가 폴 오스터도 제목 그대로 손이 움직여 가는 대로 적혀진 우연의 산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연의 연속이었다.

우연(Chance)이 생각지도 않은 유산에다 가지고 있던 집까지 몽땅 털어 차로 바꾸어서 다니게 되는 이야기....그렇게 구 개월을 다니다가 재산을 거의 털어버릴 즈음 젊은 포커꾼 잭 포지를 만나면서 다음 우연에 몸을 싣게 된다. 턱없는 투자를 하게 된 후 그것도 모자라 전 재산인 자동차를 걸고서 만 달러까지 빚지게 된다. 엉뚱한 부자들과의 계약에 의해 황당한 벽 쌓기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그렇게 머물기 싫어 차에서 잠을 잘 정도인 나쉬가 잭을 혼자 보내면서까지 계속 떠나지 않으려고 머무르는 내용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서른 네 살이 되는 생일날 자기 집처럼 여기던 자동차를 오랜만에 직접 운전하게 되면서 빛의 순간에 뛰어들게 되는 라스트는 우울했다.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살았던 나쉬는 행복하다?

우수의 분위기와 유머러스가 묘하게 범벅이 된 이 책은 잘 읽혀지긴 했지만 유쾌하게 읽을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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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북라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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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부터 작가는 의도한 바를 얘기했다. 서로 상반되는 개념들을 묶어놨다꼬.
흔히 알고 있는 사항들이 묶여 잇는 것도 많았지만 - 남자와 여자, 동물과 식물, 물과 불, 오른쪽과 왼쪽이 그러했다.- 그 개념을 풀이하는 데 있어서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도 없지 않았다.

지하실과 다락방 같은 경우엔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지하실은 삶의 장소이며, 다락방은 죽음의 장소이다.(90p)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아해서 곱씹어가며 읽었던 짝으론, 쾌락과 기쁨, 말과 글, 기호와 이미지, 순수와 순결, 역사와 지리 등이 있었다. 일상적 관념을 뒤집어보기가 이렇게 나타날 수 있다니 놀라웠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사랑과 우정>이었다. 상반된 개념이라고?? 의아해하며 읽다가 고개가 끄덕여지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었다.

사랑과 우정을 비교해 보면, 처음에는 사랑이 우세한 듯하다. 사랑의 정열에 비하면, 우정 관계는 가볍고, 싱겁고,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호성이 없는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로 나누는 우정을 나누는 경우가 아니면, 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사랑은 서로 나눌 수 없다는 불행으로부터 자양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멸은 우정은 죽여 버린다. 반면에 사랑의 격정은 사랑하는 대상의 어리석음, 비겁함, 천박함 따위의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고? 때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탐욕·욕심 등의 가장 나쁜 단점들 때문에 더욱 격렬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추잡한 것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22~23p)

이 얼마나 신랄한 어투인가?
책 처음부터 망설여지다가 내게 온 후 한참이나 지나 읽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라는 제목으로 새로 출판된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 생각나고, 또 한 책이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찾아보니 에고에고 바로 그 책 아닌겨.
한뜻에서 98년 출판된 <상상력을 자극하는 100가지 개념>이란 제목의 바로 그 책이었던 거다. 출판사가 바뀌었다고 제목이 이리 바뀌었다고 해줌 좀 안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원제는 <이상의 거울> 내지는 <생각의 거울>정도가 될터인데...

하지만, 책제목이 바뀌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번역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읽히는지 확실히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그 전에 읽을 땐 좀 지루한 느낌이 많았던 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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