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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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주변의 사람- 물고기를 닮은 여자, M, J 등에게 젊은 피는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도 느리게 느리게만 흐른다. 벌써 아련해지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었던 것도 같다. 학교에 묶여 있던 틴에이저 시절엔 스물 살만 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두 팔의 아래에 숨어 있던 날개 죽지라도 날개를 펴서 자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 스물이라는 나이에 필요한 것이 단지 '자유'만은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는 끝났다. 
 산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배우는 데 그 에너지의 9할을 소진한다. 그리고 나머지 1할로 그 말을 살아낸다--고, 나는 단지 그것만을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이런 상태였다.
152
 
 

그 스물의 시절을 살아내기도 힘든데 절망적인 어려움이 닥치고

 

나는 더 이상 나의 성장에 저항할 힘이 없다. 나는 자라는 데 지쳤다.
166
그렇다. 지독한 성장통 후에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징그러운 성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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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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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하지. 이미 살아 있으니까"
내가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제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대개."
"..... 너도 그래?"
그가 물었다.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라니?"
"제대로 산다는 건 좀 어려운 것 같고, 다르게 살아보고는 싶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려면 아무도 너를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할 거야."
"그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아무것도 아닌 컨쎕으로 사는 거야."
"아무 것도 나닌 컨쎕?"
그가 되물었다.
"응, 지금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고, 그때부터 그런 컨쎕으로 사는 거지."
- 오늘의 날씨 -34-35쪽

"너희들 나이에 필요한 건 자유가 아니야."
라고 했다.
"그럼 뭔가요?"
내가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근데 자유는 아니야."
나는 약간 실망했다.
-오늘의 날씨 -36쪽

"너, 사람 믿지 마라."
컵라면 대여섯 개를 껴안고 나는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정도 주지 마."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삶이 모토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생각했다.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믿지 않았다면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오늘의 날씨 -41쪽

나는 매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세상은 그 자체가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다시, M -44쪽

나는 그들을 대략 세 부류로 구분한다.
일단 고급담배파. 대나무숲 필터의 에쎄 순이나 가장 비싼 에쎄 곹든리프, 클라우드나인 따위의 제법 고가의 담배를 사는 중년남성들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몸을 좀 생각해볼까, 하는 저타르파. 주로 삼십대 초중반의 회사원들이 많다. 담배를 끊지는 못하겠으니 새로 출시된 0.1이나 0.5의 저타르 담배를 피우면서 스스로 위로해보려는 부류이다.
마지막으로 다분히 마초 느낌을 풍기는 고타르파. 말로보 레드나 던힐 라이트 같은 주로 빨간색의 담배를 산다. 이 부류는 딱히 픕연을 망설이지 않으며 본인들의 심신에 대해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나머지는 던힐 프로스트를 피우는 여자들, 한라산과 도라지 따위를 피우는 노인들 정도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난해한 담배는 디스다. 디스는 그렇게 많이 팔리는 편은 아니지만 노숙자 아저씨부터 고위급 간부로 보이는 남자, 복학생부터 공사판 아저씨까지, 구입하는 연령대와 직업군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 흡연의 계절 -72쪽

"........나는 그게 겁이 나."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사는 게 어렵지 않을까봐. 사는 게 쉬어질까봐. 그게 겁나.....식물처럼 아무데도 가지 못할까봐. 너는 정말 괜찮단 말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어."

하지만 사실은 그랬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나는 이미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식물도 가끔은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식물은 자신이 뿌리내린 땅을 결코 의심하지 못한다. 그게 바로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이다. 나는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 이상한 나라의 물고기 -96-97쪽

"근데 도대체 그 녀석은 그때 나한테서 뭘 봤던 걸까? 그리고 지금 와선 왜 그게 보이지 않지?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
"......그냥 간단히 생각해. 선배가 변한 게 아니라 세상이 변한 거라고.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만두었다. 당신이 세상을 원해야 세상도 당신을 원하는 거라고, 그도 이미 알고 있을 그 명확한 진리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자격이 없었다.
- 이상한 나라의 물고기- 103쪽

"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가 뭔지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그곳에 두고 올 것."
그녀는 한 모금을 더 빨았다.
"난, 내가 그냥 이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이제껏 모두를, 그냥 여행하듯 만나왔어. 언제든 헤어질 사람, 그런 전제로."
"왜 굳이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가벼우니까."-146-147쪽

"하지만, 그럼 아무 의미가 없잖아."
"어떤 의미?"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의미."
그녀는 순간 노인처럼 웃었다.
"그런 게 어딨어. 그냥 그걸로 된 거야. 화분의 무게도 즐겁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묵직한 인연은 없어. 추억 같은 건 나프탈렌같이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엔 사라지는 거야. 그냥 한번 엇갈렸단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지."
-14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는 끝났다.

산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배우는 데 그 에너지의 9할을 소진한다. 그리고 나머지 1할로 그 말을 살아낸다--고, 나는 단지 그것만을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이런 상태였다.-152쪽

나는 더 이상 나의 성장에 저항할 힘이 없다. 나는 자라는 데 지쳤다.
-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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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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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삐뇽과 같은 환자를 만날 때보다, 많은 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훨씬 더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꾸뻬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마침내는 그 자신 역시 점점 불행해져 갔다. 자신이 과연 좋은 직업을 선택한 것인지,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어떤 것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자 꾸뻬는 약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불행한 사람들의 병이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새삼 의심이 들었다. 그는 약을 복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몇 동료 의사들이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깊이 생각해보고는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곧 깨달았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한 사람들 -20-21쪽

꾸뻬가 장 미셸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는 그 질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질문이 남자들은 잘 웃게 만들지만, 여자들은 울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96쪽

장 미셸이 말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난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다, 그 일을 잘하고 있고, 또 여기서는 내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아. 사람들도 내게 친절히 대하고, 너도 봤지. 우리가 진정한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걸."
장 미셸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말했다.
"여기서의 내 모든 나날들은 의미가 있어."
-행복은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96-97쪽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만일 지금 죽는다고 해도 이미 좋은 삶을 살았다고. 그에게는 다정하고 따뜻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셨고,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몇 번인가 진정한 사랑도 했으며, 자신에게 열정을 주는 일을 갖고 있고, 아름다운 여행도 했다. 자신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도 자주 받았으며, 한 번도 큰 불행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물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풍족한 삶을 살아왔다. 물론 꾸뻬라는 성을 가진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만일 그에게 자식들이 있었다면, 오늘로 그들은 고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꾸뻬 씨, 죽음에 대해 명상하다 -114쪽

얼마간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삶이란 어느 한 순간에 정지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 -122 쪽

노승은 한바탕 그 특유의 웃음을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진정한 행복은 멋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겁니다."
노승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가난이나 부, 과거와 미래의 일들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었다.
-다시, 노승을 만나다. -190-191쪽

꾸뻬는 너무 깊은 슬픔이나 큰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정말로 불행한 사람들 또는 불행하지 않으면서도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났다. 여행을 다녀온 후 그는 자기 일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발견한 배움들을 자신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그의 삶이 되었다.
-에뜨 부 꽁땅- 당신은 행복한가 -208-20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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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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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없게도 이 책을 만나게 된 이유는 잘못 배달된 책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제목의 책을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서점에서 출판사도 전혀 다른 신간인 이 책을 도서관으로 보내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세계지도를 펼쳐 수단을 찾아보게 되었고, 수단의 상황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비종교인인 내게도 자랑스런 수단의 슈바이처 쫄리(John Lee) 신부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에서 아프리카의 이야기들을 익히 보아 왔지만 힘든 곳에서 직접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쓰여진 이 책은 좀더 다르게 읽힌다.

힘든 가정 형편에 의사를 하게 되어 집안의 자랑이었던 쫄리가 신부님이 되어 대학생 시절에 자원 봉사를 갔던 아프리카에서도 내란으로 힘든 수단에서의 생활을 수수에 소금과 식용유 조금을 부어 만든 음식이 매일의 주식(168)인 음식을 먹으며, 남수단 톤즈에서 하나밖에 의사로, 또 새로 지은 고등학교에 교사가 모자라 수학교사로도 근무하다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2010년 선종하신 신부님이 아픈 와중에도 수단을 생각하며 쓰신 책이란다.

딩카족의 별난 성인식 행사로 이마 앞쪽에서 시작해 후두부까지 이어지는 긴 줄의 상처(198) ‘고르놈’과 멀쩡한 아이들의 생니를 여섯 개에서 여덟 개를 마취 없이 칼끝으로 후벼 파(199)는 ‘생니 뽑기’는 너무 힘들어보였다. 별난 여아 선호 사상을 읽어보고는 익히 듣고는 있었지만 결혼을 할 경우 30마리에서 많게는 200마리의 소를 건네야 하기 때문에(25p)재산으로 취급되어 남의 딸아이조차 데리고 와 키우는 장면은 어이가 없다.

또,  딸이 나병에 걸린 줄 알고 강냉이와 식용유를 받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ㅠ.ㅠ.) 온 아낙네를 보면서
‘원수 같은 가난이 사람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이 일을 생각하면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게 하는, 나눔의 정신이 부족한 이기주의적인 사회 구조가 그 ‘화’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는 이곳은 말 그대로 빈부의 차가 없는 곳이다.  

72p
하며 안타까워 하는 쫄리 신부의 마음이 짠하게 느껴진다. 

 

아주 특별한 여행에서 브라스밴드 아이들이 힘든 여행을 마치고 생전 처음 보는 휴지로 싸서 잡고 콜라를-무려 5,000원이나 한단다.-마시는 장면은 정말 콜라를 좋아하는 내게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또, 내전 때문에 아홉 살 군인 소년병이 된  마뉴알의 이야기도 수단의 슬픈 역사의 한 희상자를 보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또, 생애 처음 보는 사탕을 받아든 아이들의 이야기를 쓴 부분도 인상적이다.

 

책에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나와 있지 않아 쫄리 신부님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찾다보니 올 1월에 암으로 돌아가신 그를 기리며 KBS 스페셜 2010년 04월 11일 방영된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를 다시보기로 보게 되었다. 25여 년 간의 북수단과 남수단의 내전으로 약 200백만의 희생자를 낸 그곳이 촬영을 하는 중에도 총성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줘 안타까웠다. 또, 영상 중에 톤즈의 아이들이 쫄리 신부님께 아이들이 보내는 마지막 인사 [사랑해] 연주는 너무 가슴이 찡하게 했다.

수단의 슈바이처. 남수단 톤즈 마을의 쫄리 신부님.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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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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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시작된 콜레라는 이렇게 한 달 정도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마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을에 상을 당하지 않은 가족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콜레라에 대한 주민들의 무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처음 당하는 일이라 간단한 설사병으로 여기고 하루 이틀 저절로 멎기를 기다리다 병원에 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변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며 정말 무서워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물질주의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병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이 무지는 콜레라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병적으로 생명보다 물질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의 질병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66-67쪽

‘원수 같은 가난이 사람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이 일을 생각하면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게 하는, 나눔의 정신이 부족한 이기주의적인 사회 구조가 그 ‘화’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는 이곳은 말 그대로 빈부의 차가 없는 곳이다.
-72쪽

‘없는 것이 없는’ 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말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 곳이다. 옷과 신발이 부족해 벌거벗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부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생전 처음 보는 사탕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껍질도 벗기지 않고 입속에 넣어 버리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화장실은 물론 화장지도 없다. 넓은 들판에 나가 뒤를 해결하고 마무리를 한다. 팬티라는 것도 모르고 부끄러움 별로 느끼지 않는다.
-81쪽

멋진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순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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