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에 시작된 콜레라는 이렇게 한 달 정도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마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을에 상을 당하지 않은 가족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콜레라에 대한 주민들의 무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처음 당하는 일이라 간단한 설사병으로 여기고 하루 이틀 저절로 멎기를 기다리다 병원에 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변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며 정말 무서워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물질주의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병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이 무지는 콜레라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병적으로 생명보다 물질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의 질병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66-67쪽
‘원수 같은 가난이 사람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이 일을 생각하면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게 하는, 나눔의 정신이 부족한 이기주의적인 사회 구조가 그 ‘화’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는 이곳은 말 그대로 빈부의 차가 없는 곳이다. -72쪽
‘없는 것이 없는’ 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말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 곳이다. 옷과 신발이 부족해 벌거벗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부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생전 처음 보는 사탕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껍질도 벗기지 않고 입속에 넣어 버리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화장실은 물론 화장지도 없다. 넓은 들판에 나가 뒤를 해결하고 마무리를 한다. 팬티라는 것도 모르고 부끄러움 별로 느끼지 않는다. -81쪽
멋진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순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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