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북한의 지도자 - 김일성과 김정일
서대숙 지음 / 을유문화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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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앞의 '파란만장'이란 영광이나 성공의 의미보다는 이 나라가 당해온 굴욕이나 피해의 규모, 상황면에서 유효한 단어이다. 이 나라에 영광스러웠던 과거는 없다. 사실상 내가 적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국력이 강성했던 때는 과거에서 찾을 필요없이 '현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 60년쯤 전에 이 나라가 분단만 안 되었더라면 아마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넓은 땅덩어리에 1억 정도의 인구가 사는, 상당히 강력한 국가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에는 대동강에서 수상스키를 즐기고, 겨울에는 개마파크(?)에서 보드를 타며, 휴가 때는 자가용을 끌고 중국으로 넘어가 만리장성을 보고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분단이 되어 버렸다. 그 원흉은 - 국외의 열강들도 있었겠지만 - 시류에 따라 부화뇌동하여 자기의 권력 키우는 데 급급했던 이승만, 김일성 이 두 인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일성은 꽤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 그는 불과 열다섯에 아비를 잃고 열여덟에 항일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잡혀들어갔다. 거기다 스물한 살 때는 모친마저 죽어 그야말로 고아에 밑천 하나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항일운동에만 전념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첫 아내 - 김정일을 낳은 - 김정숙도 항일 빨치산 동료라고 하니 그야말로 항일투사의 표본으로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해방 직전에 소련의 88여단인가에 복무하고 있던 김일성은 38선 이북에 소련이 진주하자 소련의 완벽한 하수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사람이란 게 권력에 맛을 들이면 버릴 줄을 모르는 것이 습성인 것 같다. 김일성도 한번 신세가 펴기 시작하니까 막 나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 의도를 순수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분단을 더욱 고착화시킨 한국전쟁까지도 벌이고 말았다.

「한국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들이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의 분단을 한반도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고 민족의 독립을 성취하려다가 실패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조선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조선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방법, 즉 무력으로 분열된 민족과 분단된 나라를 통일해 보겠다고 남침을 강행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쟁에 그가 충성을 바친 소련은 기대만큼 도와주지 않았고,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분단된 것을 통일하자고 해방된 지 불과 5년만에 피를 나눈 이웃들에게 총을 쏴댄다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그 놈의 전쟁 때문에 휴전된 지 무려 50년이 지나서도 내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후 김일성은 북한에 일인 독재 체제를 정립하는 데에 온 정력을 쏟았으며, 그 목표를 아주 완벽하게,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성취하였다.
 저자는 이어 주체사상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나는 주체사상의 이름만 들었지 그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대충 감을 잡게 되었다. 내가 보았을 때 주체사상은 그 내용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성립 배경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도 주체사상이 당시에만 유용했던 사상이지 다른 시기, 다른 곳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사상이라고 쓰고 있다.
 주체사상의 성립 배경은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위 인용문에서 보이듯 소련은 한국전쟁 때 북한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았고, 이후에도 갖가지 문제로 북한과 소련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중국도 모택동의 아들이 전사하면서까지 전쟁을 일심전력으로 도와주긴 했으나 문화혁명인가 할 때 김일성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드세졌다. 따라서 김일성은 소련이나 중국에게 종속되다시피 하는 관계를 청산하고 자주, 자립, 자위하는 국가로 북한을 변모시키려 했으며 그것을 공공연히 표방하였다.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고, 김일성은 실제로 주체사상을 북한에 완벽하게 적용시켰다. 아무리 군대를 손에 쥐고 호령했다 하지만 2천만 명의 사람들을 거의 완벽하게 리드하였다는 것은 김일성의 리더십이 대단했다는 걸 증명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이 정도로 완벽한 사기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저자는 김정일의 권력 승계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에 책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김정일은 약 20년 정도의 권력 승계 준비를 하고서 김일성 사후에 매우 안정적으로 권력을 물려받았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일들이라 대부분 아는 내용이거나 지금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요컨대 이 책은 김대중이랑 김정일이 정상회담하기 2년 전에 씌어진 책이다.
 책에 나와 있는 북한의 실상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저자는 이런 시기에 각성하지 않으면 큰일날 수 있다고 김정일을 위협(?)하기도 한다. 

「북한의 경제 문제는...철강 생산도 뒤떨어지고, ...도로 공사 문제도...소비품 생산이 뒤떨어지고, 전력공업과 석탄공업도 퇴보하였다. ...이러한 경제는 누구 식의 사회주의 경제라고 하기보다는 파산된 경제이다. 북한은 그 국가의 이름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이러한 파산된 경제를 경험하면 감자 농사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지도자를 갈아치우는 혁명을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런 경제 문제로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주민을 세뇌했고, 김정일은 경제 파산으로 인한 국가 붕괴가 오지 않도록 군대를 강화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나름대로 북한에게 여러 분야에 대한 정책 조언을 하고 있는데, 그 중 남한과의 국교를 맺고 교류를 활성화하라는 이야기는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졌다. 입장을 바꿔서 자기가 김정일이라면 남한이랑 국교 맺고 민간 교류 계속해서 정권을 스스로 붕괴시키겠느냐는 말이다. 배 곯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 사는 모양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 자연히 대규모 월남이라도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김정일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고, 때문에 그 쪽으로는 생각도 안하는 것이다. 

 남한 사람이 평소에 상당히 접하기 힘든 자료가 북한에 대한 자료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자료는 특히나 그렇다. 이 책은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김일성에 대한 나름 객관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이 책이 남한 사람의 손으로 남한에서 출판된 책인만큼 그 '객관'성도 썩 장담하기 어렵기는 하다. 아무튼 어렸을 적 '김일성'이라고 하면 '일본놈'과 동급의 나쁜 욕으로 알고 자랐던 나로서는 색다른 독서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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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채운정 옮김 / 꿈꾸는아이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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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고르가 왜 딱정벌레로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카프카는 이 변신 - 의 이유와 과정 - 에 대한 그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고레고르는 변신을 했고, 자신이 왜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뇌와 억울함의 흔적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변신을 했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회사 결근해서 어쩌나 하는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지나치게 특이한 캐릭터였다. 나름 공감이 가기도 하였으나 그레고르의 행동거지나 생각하는 양이 하도 멍청해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가 생각이 있었다면 동생이 가져다 주는 음식을 가지고 바닥에 글씨를 만들거나 해서 자기가 머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도 알리든가, 아니면 작품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진작에 가족들의 곁을 떠나든가 했어야 했다. 그레고르가 도구적 존재에 불과하였던 것은 유도리 없는 바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고 하였으나 나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레고르와 같은 존재일까 두렵고,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 그레고르와 같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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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 위대한정복자
폴 카트리지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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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라문교나 불교에서 나오는 전륜성왕의 현신이었다. 그는 기원전 330년대 ~ 320년대라는, 차마 나로선 감도 오지 않는 옛날에 당시 문명이 존재했던 모든 곳을 정복했다(중국만 빼고). 물론 지금 보면 그 영토의 넓이가 엄청나게 넓지만은 않다. 종으로는 다뉴브강에서부터 이집트까지, 횡으로는 발칸에서 인더스강까지가 당시 마케도니아의 영토였다. 그러나 그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위업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것도 겨우 20세에 왕위에 올라 32세에 죽은 사람이. 다음은 저자의 말이다.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시저는 제국의 지역 사령관으로 스페인에 나가 있을 때 알렉산더의 조각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 직후 시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이유인즉, 알렉산더는 33세에 수많은 나라의 왕이 된 후 세상을 떠났는데, 그 자신은 나이가 되었어도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서 슬프다는 얘기였다. 나는 줄리우스 시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 쉰여섯이다. 그러니 독자는 내 심정이 어떤지 이해할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양의 고대와 현대의 사료를 섭렵하고 정리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료의 부족을 한탄하고는 한다. 사료의 양은 그럭저럭이지만 그 질에 있어 썩 만족스럽지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완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알렉산더 사후 300년 정도가 지난 후의 것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거 참 배부른 소리 하고는... 우리나라는 김부식이 자기 시대보다 무려 천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삼국사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데 말이다.
 아무튼 저자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에 대하여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며, 자기 자신이 대단히, 엄청나게, 무진장으로 경이롭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신의 경지에까지 오르려 했다는 설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관련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대하여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물해준 -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스와도 경쟁했고, 자신이 그를 능가했다고 생각되자 자기 왕조의 조상인 헤라클레스와, 나중에 인도 북부까지 진출해서는 디오니소스와도 경쟁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야말로 끝도 없이 상승하려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필리포스 2세가 남겨놓은 유산 - 강력한 군대, 확고한 정치경제 기반 등 - 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사업은 시작조차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가 칭기즈칸보다는 훨씬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아버지의 업적을 부러 부정하려 했다는 사실이 조금 언짢았다.

 또한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상당히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도, 앞집 형도 다 동성애 경험이 있는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여자보다도 남자, 전쟁, 말(부케팔라스)을 더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몇몇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의 뛰어남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가 전투에 임할 때 항상 앞장을 섰다는 사실이었다. 

「...알렉산더는 직접 전선의 맨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가 전열의 맨 앞에 서지 않은 것은 딱 한 번 327년의 소그디아나 암벽 정복 때뿐이었다. 이 위험한 작전에는 뛰어난 암벽 등반 기술을 가진 300명의 용사가...함락시켰다. 통상적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알렉산더는 늘 앞장섰다. 그는 일반 병사들보다 상처를 더 많이 입었고 장교들보다 더 고통을 당했다. 특히 그라니쿠스 전투 때는 사망 일보 직전까지 갔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인더스 계곡의 말리족과 싸울 때는 폐가 뚫리는 거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가 이렇듯 위험을 무릅쓴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그 자신 전투를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다음은 또 한 편의 멋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를 포함하여 전 부대원이 목마름으로 크게 고생했고 그 때문에 많이 죽었다. 어느 날 몇 명의 병사가 기적적으로 소량의 물을 발견하여 그것을 투구에 담아서 알렉산더에게 가져와 마시라고 했다. 그는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 물에 입도 대지 않고 뜨거운 사막에 쏟아버렸다. 병사들이 목마른 상태에서 자기 혼자 마실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 군대 간부나 장교 중에 저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 우리 중대에 있던 쓰레기 행정관 같았으면 좋다고 쳐먹었을 것이다.

 내 나이는 만으로 22세이고 23세가 될 날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20세 때 그리스를 평정하고 22세 때 페르시아와의 첫 전투에서 이겼으며 23세 때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대왕을 겁 먹고 도망가게 만들었다. 나는 22세 때 뭐 하고 보냈는지 기억도 안나고 23세 때는 건강하게 살고 국가고시 공부나 할 것이다... 이건 뭐 내가 - 신들과 경쟁하던 - 알렉산드로스를 이길 수 있는 건 수명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적어도 32세보다는 오래 살다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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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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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학교에서 들은 수업 중에 '서양문화사'라는 과목이 있었다. 과목명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역사학 교수가 가르치는 과목인데, 그 교수가 오늘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특정 사실(史實)을 역사가 버리면 그 사실은 사라지고 만다."

 맞는 말이고, 나로서는 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면서 한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여겨지는데, 특히 안타까울 경우는 이를 악용하여 역사를 왜곡시키는 행위를 일삼는 자가 있을 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자가 바로 나를 국민 중의 한 명으로 소속시키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다. 대한민국 정부하에서의 역사는 '특정 사실'을 매우 많이 버리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도저히 여운형을 버린 이 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다. 여운형이야말로 진정한 리더로서 중국의 손문이나 베트남의 호지명과 같은 인물임에 틀림없는데도 대한민국은 그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의 확실한 복권을 주저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은인을 도륙해서 야산에 유기하는 짓거리와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괴현상의 근본 원인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첫단추부터가 잘못 채워진 데에 있으며, 그 괴현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부터 되새겨 보아야 한다며 김구, 여운형, 장준하의 운상정담(雲上鼎談)을 시작하고 있다. 

김구 ...개인의 일이건 민족의 일이건 마찬가지지만, 미로에 빠져들어 벽에 부딪쳤을 때는 맨 처음에 들어섰던 길이 어디였는지를 생각해 내야 하네.」 

 저자는 아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책을 쓰고 있으며, 극렬한 반미, 반일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을 옹호하느니 북한을 옹호하고, 이승만을 칭찬하느니 김일성을 칭찬하는 노선을 택하고 있다. 또한 여러 분명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확실한 것으로 해석하여 늘어놓은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김구와 여운형을 살해한 것은 이승만이라고 아주 단정을 지어 버리거나 김구가 남북협상을 하러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의 할아버지와 만나 깊은 공감을 나누었다거나 하는 유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폐기되어 버릴 뻔 했던 진짜 사실일 수도 있는 것이고, 이것들을 기록하는 일을 두고 차마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은 내가 여운형 평전을 읽었을 적에도 확실하게 캐치한 기억이 없는 사건인데, 상당히 나의 흥미를 끌었다. 

여운형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지워버린 이른바 일장기 말소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일을 한 것은 우리 <중앙일보> 쪽이 먼저였지만 우리 쪽은 차마 총독부에 매달려 용서를 비는 짓을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간판을 내리고 신문을 폐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송진우 쪽은 <동아일보>가 정간 처분을 받자 매국노 이완용의 일족까지 동원해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하는 데 앞장 선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서...」

 내가 고향 집에서 살 적에 우리집은 동아일보를 구독했는데, 그 신문은 일장기 말소 사건을 두고 항상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곤 했던 것이다.
 책에 의하면 이승만은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하여 민족 통일을 팔아먹었으며, 김구를 보고 '영어도 모르는 촌놈'이라고 면전에서 모독하였고 스스로 그렇게 잘난 체 하던 영어 실력도 기실 형편없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승만의 악행은 수도 없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해방 후 남한의 가장 지랄 맞았던 점은 다름 아닌 친일분자들의 득세라고 할 수 있겠다.

장준하 ...제주도 4 · 3봉기가 그것인데, ...이 무장 항쟁은 1957년까지 1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동안 도민 25만 명 중 3분의 1인 8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 백범 선생님께서 조병옥더러 참으로 고약한 놈이었노라고 격한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 미 군정청 경무국장 자리에 있던 그 자는 "제주 도민은 휘발유를 뿌려 전부 태워 죽여라.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면 제주 도민쯤 말살시켜도 좋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합니다」 

 위의 조병옥은 그나마 독립운동가였으나, 당시 대부분의 경찰서에는 왜정 때의 고등경찰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쪽발이 개 노릇 하던 놈들이 그대로 남아 공권력을 행사하고 앉았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참, 그리고 1956년도에 이르러 이승만이 얼마나 인심을 잃었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실려 있었다.

장준하 ...그는 개표 상황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표차가 엄청나서 등골이 오싹하더라는 겁니다. 어디를 보나 모두 조봉암의 표 뿐이었는데, 공무원조차도 대부분 이승만이 아니라 조봉암에게 표를 던졌다니까요. 하는 수 없이 조봉암의 표를 가운데 끼고 아래 위로 이승만의 표를 한 장씩 붙인 샌드위치 표묶음을 만들었지만, 이승만의 표를 위 아래에 붙일 것조차 모자랄 지경이었다더군요.」 

 이승만은 이후 조봉암을 북한과 내통한 스파이라고 모함하여 사형 판결 10여 시간만에 집행을 해 버렸다.
 여기서 이 이야기까지 더해진다면 이승만은 그야말로 개라고 하면 개한테 실례가 되는 놈이 되는데, 그는 김구를 보고 '반역자'라고까지 지칭했다고 한다. 

여운형 ...유엔 조선위원단이 '자신들이 뽑은 존경할만한 시민'의 대표로 백범 선생님과 면담해 가지고,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현황에 대해 의견을 묻고자 했을 때, 조병옥은 '반역자이며 배신자인 김구 같은...' ...이승만은 더욱 솔직하게 '김구는 테러행위에 종사했으니까 반역자로서 처치해야 한다'고 언명했습니다.」 

 자기 밥그릇에 거슬리는 자는 가차없이 죽여버린다는 논리이다.
 책은 후반부에 가서 북한을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는데, 거기서 김일성, 김정일의 독재를 가지고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심히 거슬렸다. 이는 저자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은데, 그는 민족적 자유를 획득하기 이전에는 개인의 자유 따위는 배제 내지 보류되어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쎄, 나는 그렇게 하면서까지 민족을 끌고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는 독재 정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또한 저자는 북한이 대단한 이유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즉 미국이나 일본 따위의 도움 없이도 나라를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꾸려간 것이 과연 제대로 꾸려간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물론 위와 같은 발상 역시 지나치게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인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하여 한국 정부의 형성 과정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이다. 반면 앞뒤 가리지 않는 저자의 민족주의가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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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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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 중 아이소포스가 지은 것이 확실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나, 그렇다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아이소포스의 작품이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는지라 어찌 보면 참 애매한 우화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우화들을 누가 지었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 시대에 그리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였던 우화들을 지금에 와서 접해보고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테니...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말티스'가 2500년 전에도 있었던 지중해 몰타 섬 원산의 개였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설화로 알려진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는 완전히 그리스 것을 베껴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2500년 전에 이미 아이소포스는 쇠도끼를 물에 빠뜨린 그리스인 나무꾼을 동정하여 도끼를 찾아다주는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근대에 들어 우리나라로 이 우화가 넘어오면서 누군가 마치 우리 전래동화인 것처럼 번역하여 교육한 것이 나중에 가서 진짜처럼 오도되어 버린 것 같다.

 각 우화마다 해설이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해설이 오히려 독자의 해석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역자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원판을 그대로 옮겨놓기 위하여 전부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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