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 위대한정복자
폴 카트리지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라문교나 불교에서 나오는 전륜성왕의 현신이었다. 그는 기원전 330년대 ~ 320년대라는, 차마 나로선 감도 오지 않는 옛날에 당시 문명이 존재했던 모든 곳을 정복했다(중국만 빼고). 물론 지금 보면 그 영토의 넓이가 엄청나게 넓지만은 않다. 종으로는 다뉴브강에서부터 이집트까지, 횡으로는 발칸에서 인더스강까지가 당시 마케도니아의 영토였다. 그러나 그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위업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것도 겨우 20세에 왕위에 올라 32세에 죽은 사람이. 다음은 저자의 말이다.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시저는 제국의 지역 사령관으로 스페인에 나가 있을 때 알렉산더의 조각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 직후 시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이유인즉, 알렉산더는 33세에 수많은 나라의 왕이 된 후 세상을 떠났는데, 그 자신은 나이가 되었어도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서 슬프다는 얘기였다. 나는 줄리우스 시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 쉰여섯이다. 그러니 독자는 내 심정이 어떤지 이해할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양의 고대와 현대의 사료를 섭렵하고 정리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료의 부족을 한탄하고는 한다. 사료의 양은 그럭저럭이지만 그 질에 있어 썩 만족스럽지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완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알렉산더 사후 300년 정도가 지난 후의 것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거 참 배부른 소리 하고는... 우리나라는 김부식이 자기 시대보다 무려 천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삼국사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데 말이다.
 아무튼 저자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에 대하여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며, 자기 자신이 대단히, 엄청나게, 무진장으로 경이롭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신의 경지에까지 오르려 했다는 설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관련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대하여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물해준 -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스와도 경쟁했고, 자신이 그를 능가했다고 생각되자 자기 왕조의 조상인 헤라클레스와, 나중에 인도 북부까지 진출해서는 디오니소스와도 경쟁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야말로 끝도 없이 상승하려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필리포스 2세가 남겨놓은 유산 - 강력한 군대, 확고한 정치경제 기반 등 - 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사업은 시작조차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가 칭기즈칸보다는 훨씬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아버지의 업적을 부러 부정하려 했다는 사실이 조금 언짢았다.

 또한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상당히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도, 앞집 형도 다 동성애 경험이 있는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여자보다도 남자, 전쟁, 말(부케팔라스)을 더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몇몇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의 뛰어남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가 전투에 임할 때 항상 앞장을 섰다는 사실이었다. 

「...알렉산더는 직접 전선의 맨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가 전열의 맨 앞에 서지 않은 것은 딱 한 번 327년의 소그디아나 암벽 정복 때뿐이었다. 이 위험한 작전에는 뛰어난 암벽 등반 기술을 가진 300명의 용사가...함락시켰다. 통상적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알렉산더는 늘 앞장섰다. 그는 일반 병사들보다 상처를 더 많이 입었고 장교들보다 더 고통을 당했다. 특히 그라니쿠스 전투 때는 사망 일보 직전까지 갔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인더스 계곡의 말리족과 싸울 때는 폐가 뚫리는 거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가 이렇듯 위험을 무릅쓴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그 자신 전투를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다음은 또 한 편의 멋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를 포함하여 전 부대원이 목마름으로 크게 고생했고 그 때문에 많이 죽었다. 어느 날 몇 명의 병사가 기적적으로 소량의 물을 발견하여 그것을 투구에 담아서 알렉산더에게 가져와 마시라고 했다. 그는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 물에 입도 대지 않고 뜨거운 사막에 쏟아버렸다. 병사들이 목마른 상태에서 자기 혼자 마실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 군대 간부나 장교 중에 저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 우리 중대에 있던 쓰레기 행정관 같았으면 좋다고 쳐먹었을 것이다.

 내 나이는 만으로 22세이고 23세가 될 날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20세 때 그리스를 평정하고 22세 때 페르시아와의 첫 전투에서 이겼으며 23세 때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대왕을 겁 먹고 도망가게 만들었다. 나는 22세 때 뭐 하고 보냈는지 기억도 안나고 23세 때는 건강하게 살고 국가고시 공부나 할 것이다... 이건 뭐 내가 - 신들과 경쟁하던 - 알렉산드로스를 이길 수 있는 건 수명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적어도 32세보다는 오래 살다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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