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오늘 학교에서 들은 수업 중에 '서양문화사'라는 과목이 있었다. 과목명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역사학 교수가 가르치는 과목인데, 그 교수가 오늘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특정 사실(史實)을 역사가 버리면 그 사실은 사라지고 만다."

 맞는 말이고, 나로서는 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면서 한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여겨지는데, 특히 안타까울 경우는 이를 악용하여 역사를 왜곡시키는 행위를 일삼는 자가 있을 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자가 바로 나를 국민 중의 한 명으로 소속시키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다. 대한민국 정부하에서의 역사는 '특정 사실'을 매우 많이 버리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도저히 여운형을 버린 이 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다. 여운형이야말로 진정한 리더로서 중국의 손문이나 베트남의 호지명과 같은 인물임에 틀림없는데도 대한민국은 그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의 확실한 복권을 주저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은인을 도륙해서 야산에 유기하는 짓거리와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괴현상의 근본 원인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첫단추부터가 잘못 채워진 데에 있으며, 그 괴현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부터 되새겨 보아야 한다며 김구, 여운형, 장준하의 운상정담(雲上鼎談)을 시작하고 있다. 

김구 ...개인의 일이건 민족의 일이건 마찬가지지만, 미로에 빠져들어 벽에 부딪쳤을 때는 맨 처음에 들어섰던 길이 어디였는지를 생각해 내야 하네.」 

 저자는 아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책을 쓰고 있으며, 극렬한 반미, 반일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을 옹호하느니 북한을 옹호하고, 이승만을 칭찬하느니 김일성을 칭찬하는 노선을 택하고 있다. 또한 여러 분명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확실한 것으로 해석하여 늘어놓은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김구와 여운형을 살해한 것은 이승만이라고 아주 단정을 지어 버리거나 김구가 남북협상을 하러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의 할아버지와 만나 깊은 공감을 나누었다거나 하는 유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폐기되어 버릴 뻔 했던 진짜 사실일 수도 있는 것이고, 이것들을 기록하는 일을 두고 차마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은 내가 여운형 평전을 읽었을 적에도 확실하게 캐치한 기억이 없는 사건인데, 상당히 나의 흥미를 끌었다. 

여운형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지워버린 이른바 일장기 말소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일을 한 것은 우리 <중앙일보> 쪽이 먼저였지만 우리 쪽은 차마 총독부에 매달려 용서를 비는 짓을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간판을 내리고 신문을 폐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송진우 쪽은 <동아일보>가 정간 처분을 받자 매국노 이완용의 일족까지 동원해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하는 데 앞장 선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서...」

 내가 고향 집에서 살 적에 우리집은 동아일보를 구독했는데, 그 신문은 일장기 말소 사건을 두고 항상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곤 했던 것이다.
 책에 의하면 이승만은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하여 민족 통일을 팔아먹었으며, 김구를 보고 '영어도 모르는 촌놈'이라고 면전에서 모독하였고 스스로 그렇게 잘난 체 하던 영어 실력도 기실 형편없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승만의 악행은 수도 없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해방 후 남한의 가장 지랄 맞았던 점은 다름 아닌 친일분자들의 득세라고 할 수 있겠다.

장준하 ...제주도 4 · 3봉기가 그것인데, ...이 무장 항쟁은 1957년까지 1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동안 도민 25만 명 중 3분의 1인 8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 백범 선생님께서 조병옥더러 참으로 고약한 놈이었노라고 격한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 미 군정청 경무국장 자리에 있던 그 자는 "제주 도민은 휘발유를 뿌려 전부 태워 죽여라.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면 제주 도민쯤 말살시켜도 좋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합니다」 

 위의 조병옥은 그나마 독립운동가였으나, 당시 대부분의 경찰서에는 왜정 때의 고등경찰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쪽발이 개 노릇 하던 놈들이 그대로 남아 공권력을 행사하고 앉았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참, 그리고 1956년도에 이르러 이승만이 얼마나 인심을 잃었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실려 있었다.

장준하 ...그는 개표 상황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표차가 엄청나서 등골이 오싹하더라는 겁니다. 어디를 보나 모두 조봉암의 표 뿐이었는데, 공무원조차도 대부분 이승만이 아니라 조봉암에게 표를 던졌다니까요. 하는 수 없이 조봉암의 표를 가운데 끼고 아래 위로 이승만의 표를 한 장씩 붙인 샌드위치 표묶음을 만들었지만, 이승만의 표를 위 아래에 붙일 것조차 모자랄 지경이었다더군요.」 

 이승만은 이후 조봉암을 북한과 내통한 스파이라고 모함하여 사형 판결 10여 시간만에 집행을 해 버렸다.
 여기서 이 이야기까지 더해진다면 이승만은 그야말로 개라고 하면 개한테 실례가 되는 놈이 되는데, 그는 김구를 보고 '반역자'라고까지 지칭했다고 한다. 

여운형 ...유엔 조선위원단이 '자신들이 뽑은 존경할만한 시민'의 대표로 백범 선생님과 면담해 가지고,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현황에 대해 의견을 묻고자 했을 때, 조병옥은 '반역자이며 배신자인 김구 같은...' ...이승만은 더욱 솔직하게 '김구는 테러행위에 종사했으니까 반역자로서 처치해야 한다'고 언명했습니다.」 

 자기 밥그릇에 거슬리는 자는 가차없이 죽여버린다는 논리이다.
 책은 후반부에 가서 북한을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는데, 거기서 김일성, 김정일의 독재를 가지고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심히 거슬렸다. 이는 저자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은데, 그는 민족적 자유를 획득하기 이전에는 개인의 자유 따위는 배제 내지 보류되어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쎄, 나는 그렇게 하면서까지 민족을 끌고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는 독재 정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또한 저자는 북한이 대단한 이유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즉 미국이나 일본 따위의 도움 없이도 나라를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꾸려간 것이 과연 제대로 꾸려간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물론 위와 같은 발상 역시 지나치게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인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하여 한국 정부의 형성 과정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이다. 반면 앞뒤 가리지 않는 저자의 민족주의가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히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 중 아이소포스가 지은 것이 확실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나, 그렇다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아이소포스의 작품이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는지라 어찌 보면 참 애매한 우화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우화들을 누가 지었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 시대에 그리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였던 우화들을 지금에 와서 접해보고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테니...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말티스'가 2500년 전에도 있었던 지중해 몰타 섬 원산의 개였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설화로 알려진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는 완전히 그리스 것을 베껴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2500년 전에 이미 아이소포스는 쇠도끼를 물에 빠뜨린 그리스인 나무꾼을 동정하여 도끼를 찾아다주는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근대에 들어 우리나라로 이 우화가 넘어오면서 누군가 마치 우리 전래동화인 것처럼 번역하여 교육한 것이 나중에 가서 진짜처럼 오도되어 버린 것 같다.

 각 우화마다 해설이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해설이 오히려 독자의 해석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역자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원판을 그대로 옮겨놓기 위하여 전부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타 석가모니 - 그 생애와 가르침
와타나베 쇼코 지음, 법정(法頂)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불교는 특정한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석가여래 부처님은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신자는 단지 부처님의 가르침 - 수행에 관한 최고수(부처님)의 수행방법 노하우 - 에 따라 자기가 잘하면 아라한이 되는 것이고 안 하면 윤회나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입적 직전에도 누구에게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수행자 스스로에게 의지하라고 설법하셨다. 

「"아난다야, 교단이 내게 아직도 무엇을 기대한단 말이냐. 나는 지금까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진리를 설해 왔다. 법을 가르치는 데 힘을 아껴 본 일이 없다. 만일 내가 교단을 통솔한다든지 교단이 내게 의지한다고 생각했다면, 교단에 대해 지시를 내렸을 것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난다야,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또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법(진리)을 등불 삼고 법을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부처님의 그릇과 자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는 모조리 섬멸해 버리겠다고 수시로 공갈 협박을 일삼는 야훼의 그릇은 - 비교 자체가 모욕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 타종교를 비방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 불교를 접하면서 느끼게 되었던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다(물론 나 역시 불교의 독실한, 그리고 정통한 신자는 아니다. 하다 못해 의지할 곳을 찾아 부처님과 천지신명 아무에게나 마음 속으로 비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무튼 이렇듯 불교 신자 경력 15년 이상인 내가 부처님의 전기를 찾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와타나베 쇼코라는 일본인이 1965년도에 완성한 책을 최근에 법정 스님이 번역하여 내놓은 책이다. 현대에 나온 부처님 전기만 해도 그 수가 상당한데 그 중 엄선한 책이라고 법정 스님이 밝히고 있다. 부처님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했을 사람이 엄선하였으니 믿을만 하겠다 싶어 선뜻 책을 사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니 썩 새로운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다. 나 스스로가 불교를 믿고 불교 고등학교를 나와서 불교를 따로 수업 받기도 하였으니 부처님의 생애에 대하여 시나브로 여러 부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책 중간중간에서 발견한 특기할 만한 사실이나 훌륭한 가르침의 내용 같은 것을 옮겨 놓을까 한다.

 일단은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리지 않는다. 원한은 그것을 버림으로써만 풀어진다."는 말씀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부처님이 성불하기 전, 보살이었던 시절부터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다음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득도를 위한 마지막 섭정에 들어갔을 때 마왕이 건 싸움에 대한 기술 이후에 나오는 말이다. 

「보살과 마라의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마라 혼자 설치는 데 불과하다. 보살은 상대편에게 조금도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항상 자비의 눈으로 바라본다. 보살이 승리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 그리고 계족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계족산은 한마디로 닭발 모양의 산을 뜻하는데, 내가 대전 살 때 우리집 뒷산이 계족산이었다. 대전의 5대산인지 6대산인지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계족산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명칭이었나보다. 다음은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입적한 뒤 마하가섭은 율과 경의 결집을 끝내고 뒷일을 아난다에게 부탁한 다음, 드디어 입적할 때가 되자 라자그리하 교외에 있는 계족산鷄足山으로 간다. 산이 둘로 갈라진 사이로 들어가니 산은 다시 전처럼 합쳐진다. 마하가섭은 이렇게 해서 미륵불이 출현할 날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사람을 끄는 매력은 정말 엄청났었나 보다. 부처님이 성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왕인 슛도다나왕은 아들을 보고 싶어서 귀향을 종용하려고 사자들을 보냈는데, 보내는 사자마다 부처님을 만나면 출가를 해버려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마치 함흥차사 고사와 비슷하다. 물론 경우와 그 성격은 정반대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부처님이 출가를 하고 성불하면서 가족과의 연을 끊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는 다음 이야기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급히 카필라로 갔다...
 ...늙은 왕은 손을 내밀어 부처님의 손을 잡고, 그 손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누운 채로 합장해 만족하다는 뜻을 보이더니, 이윽고 숨을 거두었다.
 ...부처님과 난다는 머리맡에 서고, 아난다와 라훌라는 발 아래 서 있었다. 난다 등은 관을 메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청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뒷세상에 인심이 어지러워져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불효자식이 나올 것을 염려하여 모범을 보이려고 몸소 관을 멨다.」 

 부처님이 부왕의 임종을 지켰고, 그 상여를 직접 멨다는 건 지금껏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밖에도 미래불인 미륵이 실존했던 부처님의 제자였다는 점, 어떤 비구가 고뇌 때문에 자신의 남근을 잘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이 "잘라 버릴 것이 따로 있었는데, 그는 잘라 버릴 것을 잘못 골랐구나."라고 말씀했다는 사실, 부처님에게 침묵으로 승낙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 등 여러 흥미로운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거기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나에게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것을 계율로 정해 모든 출가 수행자에게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선이나 고기만 하더라도, 특히 스스로를 위해 잡은 것이 아닌 이상은 대접을 받으면 먹어도 좋다고 했다.」 

 부처님도 육식을 하셨던 것이다!!! 

 모든 번뇌를 끊어버린 부처님도 입적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의 뒷일을 걱정하였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둘레에 모이게 한 다음 말씀했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부처건 법이건 교단이건 도건 수행방법이건, 의문이 있는 사람은 서슴지 말고 물어라. 뒷날에 가서, 여래가 세상에 있을 때 물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물어라."
 부처님은 몇 번이고 말씀했지만 누구 하나 질문하는 이가 없어 거기 있는 5백 명의 비구들은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까지 이르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럼 비구들이여, 너희들에게 할 말은 이렇다.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실로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씀이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저자가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던 점이 흠이었다. 마치 독자에게 계속 복습을 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처님의 신비화에 관한 이야기나 약점처럼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수와 비교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는 예수도 이랬으니 부처님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느냐는 식으로 - 정당성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졌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예수는 단명하였으므로 더욱 영웅시되고 신비화 될 여지가 많은 사람이었고, 부처님은 예수가 죽은 연배 즈음에 해탈하여 우리나라 나이로 여든한 살이나 살았는데도 이렇다 할 허물조차 잡히지 않았으니 그 관리가 얼마나 철저하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저자는 부처님이 서양 계통의 아리아 인종이 아닌 티베트인과 비슷한 몽고족 계통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처님 이전부터 불교는 존재하였으며, 그 불교에서 거명되던 부처님이 실제로 등장하게 되어 이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상당히 타당한 이론인 것 같다.

 나는 일개 중생인데, 적어도 이생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힘들 것 같다. 솔직히 끊어버리기에는 욕망과 미련이 너무 강하다. 내가 그것들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존경하고 고승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출가 문제도 가끔 생각해 보고는 있지만, 그때마다 욕심과 미련이 이를 가로막는다. 둘은 서로 모순되는 관계인데, 나에게는 후자의 힘이 너무 강한 탓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심일체 2007-12-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tribc 2008-02-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좋으시네용~ 리뷰 잘보고 갑니다~ 성불하세요 _()_
 
돈 끼호떼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6
미겔 데 세르반떼스 지음, 김현창 옮김 / 범우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알고 보니까 돈 끼호떼는 미친 놈이었다. 이 소설이 씌어질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기사도 이야기'라고 하여 전설적인 기사들의 기상천외한 모험담들을 온갖 이빨을 보태어 묘사한 소설책들이 유행을 했었던 모양인데, 돈 끼호떼는 이러한 소설들을 지나치게 탐독한 나머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봤을 때 이러한 '기사도 이야기'들은 현대로 들어와 무협지 내지는 판타지 소설로 변형 및 발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것 같다. 세르반떼스는 극중 여러 인물의 입을 빌어 이러한 기사도 이야기에 대하여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그의 기사도 이야기 및 당시 에스파냐 문단 일반의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은 본문의 47장 및 48장에서 신부와 교회 참사원의 대사로써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다.

 돈 끼호떼와 산초 빤사의 대화라든지 초기에 돈 끼호떼가 겪는 모험들은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정말 웃긴 장면들도 많았다. 하지만 소설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돈 끼호떼는 뒤로 물러나고 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나타나 - 특히 여인숙에서 - 헛된 사랑 이야기를 계속하여 늘어놓을 때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작품의 분위기가 연애소설 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러한 연애 이야기가 한 커플의 이야기도 아니고 비슷비슷한 내용이 서너 커플이나 이어지니까 자연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고 나에게서도 점수를 잃는 요인이 되었다.

 연애 이야기 중에 특기할만한 것으로 - 세르반떼스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캐릭터가 하나 등장하였는데, 바로 래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포로로 붙들려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탈출한 노예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르반떼스 역시 래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붙잡혀서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노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와 전역을 막 하였을 때 가장 절실히 느꼈던 사실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다.

 

「"그것 참 고마운 일이군요." 하고 포로가 말했다. "그런 은총을 하느님에게서 받다니, 뭐니뭐니해도 이 지상에서는, 나는 생각합니다만 잃었던 자유를 되찾는 기쁨에 비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연애 이야기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거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천하의 절색에다 행실도 올바랐으며, 남자들은 엄청난 부자이거나 귀족이었다. 그러니까, 현실성도 없고 공감도 쉽게 가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는 말이다.

 책은 돈 끼호떼가 두 번째 모험에서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의 계책에 의하여 소달구지에 죄인처럼 실려서 귀가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주고 있고, 그의 세 번째 모험의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며 속-돈 끼호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끝나고 있다. 속-돈 끼호떼는 실제로 있는 작품이고,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만약 읽는다 해도 그것은 꽤 나중의 일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의 삶과 죽음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
이브 코아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크고 강한 생물을 동경한다. 고래는 크고 강한 생물의 극단에 있는 녀석이다. 따라서 나는 고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학교 서점 앞에서 40프로 세일인가 하길래 바로 사뒀던 책이다. 이 책은 고래의 프로필에 대해서 그리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포경의 역사를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그러다 보니 돌고래 류는 거의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래는 흰긴수염고래와 향유고래인데, 그들이 바로 - 안타깝긴 하지만 - 지구상에서 가장 포경을 많이 당한 고래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포경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할 당시 - 수백만 마리의 개체가 존재하였을 때 - 에는 향유고래의 덩치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1841년에는 태평양에서 27.5 미터 짜리 향유고래가 잡힌 기록도 있단다. 그러나 고래사냥이 본격화되고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고래 스스로가 생식 가능 연령을 앞당기게 되었고, 따라서 덩치도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도 참 왜 그렇게 고래를 많이 죽여서 애들 체질까지 바꾸게 하는지... 환경파괴는 안 좋은 것이다.
 아무튼 책 중간에는 내가 고등학교 때 2년인가 3년간에 걸쳐서 독파하였던 <백경>의 주인공 '모비 딕'의 실제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모샤 딕이라는 이름은 1810년경, 칠레 근해의 모샤라는 섬에서 이 고래와 인간이 처절한 싸움을 전개했던 데서 유래했다.
 1840년 7월, 영국 포경선의 승무원은 혼자서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향고래를 발견했다. 수면에 나타난 그 고래의 길이는 22m나 되었다.
 모샤 딕이었던 것이다. 두 척의 포경정이 바다에 띄워지고, 곧이어 향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래가 정면으로 공격하여 포경정 한 척을 물어서 박살냈다. 고래가 잠수를 하자마자 다른 포경정의 선원이 서둘러 생존자를 건져 내려고 했다. 그 순간, 바닷속에서 모샤 딕이 솟구쳐 올라와 포경정을 덮쳤다. 포경정에서 선원들이 튕겨 나갔다. 이때 살아 남은 선원은 그 괴물고래의 이마에 백색 칼 자국이 나 있었다고 증언했다.
 한 달 후, 두 척의 포경정이 외따로 있던 고래 한 마리를 잡았다. 잡은 고래를 본선 쪽으로 끌고 가는데 갑자기 모샤 딕이 나타났다. 모샤 딕이 포경정 한 척을 부수는 동안, 다른 포경정은 간신히 그들이 잡은 고래 뒤에 숨었다. 본선이 다가와서 선원을 구조하고 떠날 때까지, 모샤 딕은 마치 죽은 고래를 보호하려는 듯이 그 곁에 머물러 있었다.
 모샤 딕에 관한 이처럼 놀라운 사실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일어났다. 이 고래는 1859년 스웨덴 포경정에 의해 마침내 피살되었다. 모샤 딕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19개나 되는 작살이 꽂혀 있었다. 이 고래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살아 있는 동안의 모샤 딕은 바다를 누비던 모든 포경선원을 공포에 떨게 했다...」 

 가끔 한 무리의 고래떼가 바닷가로 밀려와 죽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책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고래의 귀에 생긴 기생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고래 무리의 대장이 귀에 기생충이 생겨 버리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이를 무작정 따라가던 다른 고래들까지도 바닷가로 돌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고래의 물뿜기는 진짜로 물을 뿜는 게 아니라 숨을 내쉬는 것일 뿐인데 거기 포함된 수증기가 물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동식물들은 - 가축, 농작물 빼고 - 인류에 의해 멸종 위기까지 다 가 본 것 같다. 고래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고래를 보호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하는데 모든 포경업자들은 이러한 대세에 따르는 것이 지당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