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홀로코스트 크로노스 총서 8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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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심히 불쾌한 책이다. 책의 소재도 그렇고 저자(유대인이다)의 편향된 - 한 맺힌 듯한 - 비난적인 어조에다 역자의 어설픈 번역문까지 완전히 삼박자로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실 책의 저자 프로필을 볼 때부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유대인이 쓴다면 그게 과연 객관적인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을 쓴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제삼자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꼼꼼한 사례 제시나 방대한 양의 참고문헌은 저자가 이 방면에 상당히 연구를 많이 한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나는 유대인들이 원래부터 기독교인들에 의해 박해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역사는 예수의 죽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옛부터 유대인들은 서양인들에 의해 배반자이며 세속적이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들로 치부되어 왔다고 한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그러한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자신들의 잘못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한 잘못 때문에 그들 모두가 학살될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앞서 내가 저자의 편향된 시각과 어조에 대하여 문제 삼았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보면 분명 내 말에 수긍이 갈 것이다.

「1933년에 유대인들은 독일 전역을 통틀어 의사 가운데 11퍼센트, 법률가 가운데는 16퍼센트를 점하고 있었다 - 대도시에서는 이 수치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이는 분명 직업상의 질투와 시기심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감옥에서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했는데, 펜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서 읽기 어렵고 조잡스런 이 책은 나중에 나치운동의 성서이자 반유대주의의 고전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너무 잘났기 때문에 독일인들의 질투를 받아 그것이 기존의 반유대주의와 맞물려 극단적인 곳으로 나아갔으며, 히틀러는 '감옥에서' 9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지 않은, 정리정돈 된 책조차 완성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9개월 동안 얼마나 깔끔한 책을 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이러한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 - 라고 할 가치나 있을지 모르겠다 - 는 나치즘의 핵심적인 요소였고 히틀러는 젊었을 때부터 유대인은 멸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조차도 '볼셰비즘과 유대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뭐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싸이코 같다. 평균적인 독일인 장교가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는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대인의 번식을 막기 위해서 근로 유대인 남성들을 즉각 거세시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여성이 임신하게 된다면, 그녀는 제거되어야 한다.」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금수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시 독일은 정책적으로 비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과 섹스하는 것을 아주 엄격하게 금했다. 금수와는 피를 섞을 수 없다는 논리다.
 나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가 서로 동맹국이었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대가인만큼 이탈리아도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하였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은 이와 반대였다. 다음은 1934년도에 무솔리니가 한 말이다.

「나는 히틀러를 잘 압니다. 그는 멍청이인 데다가 불량배, 그것도 미친 불량배이고, 비위에 거슬리는 공론가이지요.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정말 고역입니다. 당신들은 히틀러보다 훨씬 강합니다. 히틀러가 남긴 흔적이 사라질 때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위대한 민족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 군대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군대가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도 나와 있다. 

「게으름, 부패, 비효율성, 그리고 혼란스러운 무질서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인의 악습이 홀로코스트의 와중에서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명목으로 법을 자주 융통성 있게 처리함으로써 미덕이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이다. 그가 이스라엘인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자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온갖 한탄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입주로 인하여 쫓겨난 팔레스타인 원주민(이들이야말로 '원주민'이다)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조차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이 더 많은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 배려(?)를 해주지 않은 - 영국과 미국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1942년 7월 5일 처칠은..."유대인에 적대적인 아랍인들의 편을 들어주려는 선입견"에 빠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썼다...」 

 저자가 처칠의 이 발언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잘났으면 다른 나라 이민 들어가서 노력해서 잘 살면 되지 도대체가 2천 년 전에 떠났던 팔레스타인에 느닷없이 빽(영국)을 등에 업고 나타나서 원주민들 쫓아내고 나라 세우는 것은 어디 법도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2천 년 전에 살았던 요동과 산동반도를 돌려받아야 한단 말인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때 고생하고 힘들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박해받고 학살을 당했다 해도 잘 살던 사람들 내치고 그 자리에 들어앉는 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도적질 당했다고 도적질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홀로코스트의 동기를 아주 복잡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일단 기본적인 전제로는 기존 기독교 사회내에서의 반유대주의를 깔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학살수용소 관계자들은 학살에 맛을 들인,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작자들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대단히 신사적이고 매너 있는 사람처럼 보이면서 학살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작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상 어딜 가나 똑같듯이 유대인들 중에서도 나치에 아부하여 동족들을 앞장 서 괴롭혔던 친일파 같은 놈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생물학적인 인종에 근거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 · 사무적 · 전문적으로 학살한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 남는 건 더러운 기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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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01-0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동물의 왕국에서 짝짓기를 마친 후 홀로 남겨진 미래의 여왕개미가 홀홀단신으로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개미왕국을 건설하는가 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번성하던 그녀의 왕국은 이웃 개미왕국의 침입을 받아 초토화되고 맨 마지막으로 여왕개미가 지상으로 끌어올려져 적군에 둘러쌓여 목이 잘립니다. 영토싸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휴머니즘을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은지...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잔인하지도, 유일무이하게 고상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방인 범우문고 71
A.까뮈 지음 / 범우사 / 198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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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 서평 같은 것을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인 뫼르소에 대해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캐릭터라는 점을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나에게는 그 점보다는 주인공이 - 모든 일에 - 권태를 심하게 느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뫼르소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는 논리적 일관성은 없을지라도 그 행동거지를 창출해내는 기본적인 감정 - 권태감 - 이 '일관'적으로 뫼르소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낸 것, 어머니 장례식에서의 태도, 친구들과의 사귐, 심지어는 살인행위까지도 전부가 권태 - 무기력까지 포함 - 로부터 비롯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뫼르소가 마리와 사귀면서도, 청혼을 받아들이면서도 끝까지 마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사랑을 하게 되거나 사랑을 인정하게 되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변화에 대처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 상사의 - 파리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도 귀찮아서 거절한다. 나중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변호조차 귀찮고 따분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는 가끔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게시리 적극적인 사람이 될 뻔도 하지만 내재하고 있는 권태가 너무 강해서 그 충동(?)을 눌러 버리곤 한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나는 이따금 끼여들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가 "잠자코 있어요. 그것이 당신 사건에 유리해요" 하고 내게 말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제쳐놓고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은 내 개입이 없이 전개되었다. 내 운명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결정되어 갔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나도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 할 말도 없었다.」 

 "내 운명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결정되어 갔다"는 말이 이 소설의 키워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은, 거기에 반발하여 무언가를 하려던 주인공이 그것을 하려는 일을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뫼르소라는 인간은 정말 구역질 나는 놈이었다. 그래도 그는 일단 사람이고, 감정이 대단히 건조하지만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경우 그나마 동정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을 무고해서 죽이는 검사는 또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 했다.
 마리의 뫼르소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도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뫼르소는 그녀의 면전에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 해놓고도 그녀와 아주 여러 번 섹스를 하고 결혼을 응낙하는 등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뫼르소를 사랑한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지속된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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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북한의 지도자 - 김일성과 김정일
서대숙 지음 / 을유문화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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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앞의 '파란만장'이란 영광이나 성공의 의미보다는 이 나라가 당해온 굴욕이나 피해의 규모, 상황면에서 유효한 단어이다. 이 나라에 영광스러웠던 과거는 없다. 사실상 내가 적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국력이 강성했던 때는 과거에서 찾을 필요없이 '현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 60년쯤 전에 이 나라가 분단만 안 되었더라면 아마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넓은 땅덩어리에 1억 정도의 인구가 사는, 상당히 강력한 국가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에는 대동강에서 수상스키를 즐기고, 겨울에는 개마파크(?)에서 보드를 타며, 휴가 때는 자가용을 끌고 중국으로 넘어가 만리장성을 보고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분단이 되어 버렸다. 그 원흉은 - 국외의 열강들도 있었겠지만 - 시류에 따라 부화뇌동하여 자기의 권력 키우는 데 급급했던 이승만, 김일성 이 두 인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일성은 꽤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 그는 불과 열다섯에 아비를 잃고 열여덟에 항일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잡혀들어갔다. 거기다 스물한 살 때는 모친마저 죽어 그야말로 고아에 밑천 하나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항일운동에만 전념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첫 아내 - 김정일을 낳은 - 김정숙도 항일 빨치산 동료라고 하니 그야말로 항일투사의 표본으로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해방 직전에 소련의 88여단인가에 복무하고 있던 김일성은 38선 이북에 소련이 진주하자 소련의 완벽한 하수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사람이란 게 권력에 맛을 들이면 버릴 줄을 모르는 것이 습성인 것 같다. 김일성도 한번 신세가 펴기 시작하니까 막 나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 의도를 순수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분단을 더욱 고착화시킨 한국전쟁까지도 벌이고 말았다.

「한국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들이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의 분단을 한반도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고 민족의 독립을 성취하려다가 실패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조선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조선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방법, 즉 무력으로 분열된 민족과 분단된 나라를 통일해 보겠다고 남침을 강행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쟁에 그가 충성을 바친 소련은 기대만큼 도와주지 않았고,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분단된 것을 통일하자고 해방된 지 불과 5년만에 피를 나눈 이웃들에게 총을 쏴댄다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그 놈의 전쟁 때문에 휴전된 지 무려 50년이 지나서도 내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후 김일성은 북한에 일인 독재 체제를 정립하는 데에 온 정력을 쏟았으며, 그 목표를 아주 완벽하게,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성취하였다.
 저자는 이어 주체사상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나는 주체사상의 이름만 들었지 그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대충 감을 잡게 되었다. 내가 보았을 때 주체사상은 그 내용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성립 배경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도 주체사상이 당시에만 유용했던 사상이지 다른 시기, 다른 곳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사상이라고 쓰고 있다.
 주체사상의 성립 배경은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위 인용문에서 보이듯 소련은 한국전쟁 때 북한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았고, 이후에도 갖가지 문제로 북한과 소련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중국도 모택동의 아들이 전사하면서까지 전쟁을 일심전력으로 도와주긴 했으나 문화혁명인가 할 때 김일성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드세졌다. 따라서 김일성은 소련이나 중국에게 종속되다시피 하는 관계를 청산하고 자주, 자립, 자위하는 국가로 북한을 변모시키려 했으며 그것을 공공연히 표방하였다.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고, 김일성은 실제로 주체사상을 북한에 완벽하게 적용시켰다. 아무리 군대를 손에 쥐고 호령했다 하지만 2천만 명의 사람들을 거의 완벽하게 리드하였다는 것은 김일성의 리더십이 대단했다는 걸 증명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이 정도로 완벽한 사기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저자는 김정일의 권력 승계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에 책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김정일은 약 20년 정도의 권력 승계 준비를 하고서 김일성 사후에 매우 안정적으로 권력을 물려받았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일들이라 대부분 아는 내용이거나 지금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요컨대 이 책은 김대중이랑 김정일이 정상회담하기 2년 전에 씌어진 책이다.
 책에 나와 있는 북한의 실상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저자는 이런 시기에 각성하지 않으면 큰일날 수 있다고 김정일을 위협(?)하기도 한다. 

「북한의 경제 문제는...철강 생산도 뒤떨어지고, ...도로 공사 문제도...소비품 생산이 뒤떨어지고, 전력공업과 석탄공업도 퇴보하였다. ...이러한 경제는 누구 식의 사회주의 경제라고 하기보다는 파산된 경제이다. 북한은 그 국가의 이름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이러한 파산된 경제를 경험하면 감자 농사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지도자를 갈아치우는 혁명을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런 경제 문제로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주민을 세뇌했고, 김정일은 경제 파산으로 인한 국가 붕괴가 오지 않도록 군대를 강화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나름대로 북한에게 여러 분야에 대한 정책 조언을 하고 있는데, 그 중 남한과의 국교를 맺고 교류를 활성화하라는 이야기는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졌다. 입장을 바꿔서 자기가 김정일이라면 남한이랑 국교 맺고 민간 교류 계속해서 정권을 스스로 붕괴시키겠느냐는 말이다. 배 곯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 사는 모양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 자연히 대규모 월남이라도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김정일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고, 때문에 그 쪽으로는 생각도 안하는 것이다. 

 남한 사람이 평소에 상당히 접하기 힘든 자료가 북한에 대한 자료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자료는 특히나 그렇다. 이 책은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김일성에 대한 나름 객관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이 책이 남한 사람의 손으로 남한에서 출판된 책인만큼 그 '객관'성도 썩 장담하기 어렵기는 하다. 아무튼 어렸을 적 '김일성'이라고 하면 '일본놈'과 동급의 나쁜 욕으로 알고 자랐던 나로서는 색다른 독서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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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채운정 옮김 / 꿈꾸는아이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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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고르가 왜 딱정벌레로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카프카는 이 변신 - 의 이유와 과정 - 에 대한 그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고레고르는 변신을 했고, 자신이 왜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뇌와 억울함의 흔적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변신을 했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회사 결근해서 어쩌나 하는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지나치게 특이한 캐릭터였다. 나름 공감이 가기도 하였으나 그레고르의 행동거지나 생각하는 양이 하도 멍청해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가 생각이 있었다면 동생이 가져다 주는 음식을 가지고 바닥에 글씨를 만들거나 해서 자기가 머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도 알리든가, 아니면 작품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진작에 가족들의 곁을 떠나든가 했어야 했다. 그레고르가 도구적 존재에 불과하였던 것은 유도리 없는 바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고 하였으나 나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레고르와 같은 존재일까 두렵고,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 그레고르와 같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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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 위대한정복자
폴 카트리지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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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라문교나 불교에서 나오는 전륜성왕의 현신이었다. 그는 기원전 330년대 ~ 320년대라는, 차마 나로선 감도 오지 않는 옛날에 당시 문명이 존재했던 모든 곳을 정복했다(중국만 빼고). 물론 지금 보면 그 영토의 넓이가 엄청나게 넓지만은 않다. 종으로는 다뉴브강에서부터 이집트까지, 횡으로는 발칸에서 인더스강까지가 당시 마케도니아의 영토였다. 그러나 그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위업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것도 겨우 20세에 왕위에 올라 32세에 죽은 사람이. 다음은 저자의 말이다.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시저는 제국의 지역 사령관으로 스페인에 나가 있을 때 알렉산더의 조각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 직후 시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이유인즉, 알렉산더는 33세에 수많은 나라의 왕이 된 후 세상을 떠났는데, 그 자신은 나이가 되었어도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서 슬프다는 얘기였다. 나는 줄리우스 시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 쉰여섯이다. 그러니 독자는 내 심정이 어떤지 이해할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양의 고대와 현대의 사료를 섭렵하고 정리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료의 부족을 한탄하고는 한다. 사료의 양은 그럭저럭이지만 그 질에 있어 썩 만족스럽지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완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알렉산더 사후 300년 정도가 지난 후의 것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거 참 배부른 소리 하고는... 우리나라는 김부식이 자기 시대보다 무려 천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삼국사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데 말이다.
 아무튼 저자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에 대하여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며, 자기 자신이 대단히, 엄청나게, 무진장으로 경이롭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신의 경지에까지 오르려 했다는 설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관련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대하여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물해준 -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스와도 경쟁했고, 자신이 그를 능가했다고 생각되자 자기 왕조의 조상인 헤라클레스와, 나중에 인도 북부까지 진출해서는 디오니소스와도 경쟁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야말로 끝도 없이 상승하려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필리포스 2세가 남겨놓은 유산 - 강력한 군대, 확고한 정치경제 기반 등 - 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사업은 시작조차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가 칭기즈칸보다는 훨씬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아버지의 업적을 부러 부정하려 했다는 사실이 조금 언짢았다.

 또한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상당히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도, 앞집 형도 다 동성애 경험이 있는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여자보다도 남자, 전쟁, 말(부케팔라스)을 더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몇몇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의 뛰어남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가 전투에 임할 때 항상 앞장을 섰다는 사실이었다. 

「...알렉산더는 직접 전선의 맨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가 전열의 맨 앞에 서지 않은 것은 딱 한 번 327년의 소그디아나 암벽 정복 때뿐이었다. 이 위험한 작전에는 뛰어난 암벽 등반 기술을 가진 300명의 용사가...함락시켰다. 통상적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알렉산더는 늘 앞장섰다. 그는 일반 병사들보다 상처를 더 많이 입었고 장교들보다 더 고통을 당했다. 특히 그라니쿠스 전투 때는 사망 일보 직전까지 갔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인더스 계곡의 말리족과 싸울 때는 폐가 뚫리는 거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가 이렇듯 위험을 무릅쓴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그 자신 전투를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다음은 또 한 편의 멋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를 포함하여 전 부대원이 목마름으로 크게 고생했고 그 때문에 많이 죽었다. 어느 날 몇 명의 병사가 기적적으로 소량의 물을 발견하여 그것을 투구에 담아서 알렉산더에게 가져와 마시라고 했다. 그는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 물에 입도 대지 않고 뜨거운 사막에 쏟아버렸다. 병사들이 목마른 상태에서 자기 혼자 마실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 군대 간부나 장교 중에 저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 우리 중대에 있던 쓰레기 행정관 같았으면 좋다고 쳐먹었을 것이다.

 내 나이는 만으로 22세이고 23세가 될 날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20세 때 그리스를 평정하고 22세 때 페르시아와의 첫 전투에서 이겼으며 23세 때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대왕을 겁 먹고 도망가게 만들었다. 나는 22세 때 뭐 하고 보냈는지 기억도 안나고 23세 때는 건강하게 살고 국가고시 공부나 할 것이다... 이건 뭐 내가 - 신들과 경쟁하던 - 알렉산드로스를 이길 수 있는 건 수명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적어도 32세보다는 오래 살다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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