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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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괴물이다. 나이 서른에 엄청난 명저를 써냈다. 맑스도 서른 살엔 뜨내기 공상가에 불과했다. 경의를 표한다.

 지구상의 자유민주주의국가 중에서도 상자유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맑스는 애보다는 증의 대상이다. 내가 봤을 때 이는 한반도 거주민들이 온갖 지정학적, 역사적, 정치적 문제로 인한 비극을 겪은 탓도 크지만 - 맑스가 자초한 면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양반은 늘상 폭력혁명을 주창했으며, 이에 따라 코뮌의 학살행위를 두둔 내지는 무시하고자 하여 많은 지성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폭력혁명은 악용될 소지가 대단히 많다. 이는 당장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만 봐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맑스는 이른바 '혁명가'들을 너무 물로 봤으며, 인간이 다른 어떠한 종보다도 잔학한 동물이라는 자각도 부족했던 것 같다.

 물론 맑스는 기본적으로 인류 구성원 다수의 행복을 바란 사람이다. 이에 따라 그는 오히려 일견 비정해보이는 어투를 장착하게 됐다.

「마르크스는 모든 종류의 낭만주의, 주정주의 및 박애주의적 요소를 혐오했다. ...그가 서명한 성명서나 선언문, 행동강령에는 도덕적 진보, 영원한 정의, 인간의 평등, 개인이나 민족의 권리, 양심의 자유, 문명을 위한 투쟁 등의 문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은 문구들이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사고의 혼란과 행동상의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허구라고 보았다.」

 그리고 맑스는 엄청난 독서광에다 온갖 종류의 이론들을 잘 배합하여 정립한 사람이지, 자기 혼자 갑툭튀한 천재가 절대 아니었다. 스피노자, 홀바, 포이어바흐, 랭게, 생시몽, 시스몽디, 슈타인, 헤스, 바뵈프, 블랑키, 바이틀링, 블랑, 로크, 애덤 스미스, 푸리에, 슈티르너, 헤겔 등등 맑스의 스승은 책 속에 무진장으로 있었다. 맑스는 이들의 이론들을 적재적소에 배열하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는 맑스의 개인사 - 그가 좋아했던 음식, 흥미로운 일화,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 따위에는 거의 지면을 쓰지 않았다. 그는 맑스가 상기한 스승들에게서 사사(?)를 받는 과정 - 역시 플롯이랄 게 없는, 해당 이론에 대한 배경과 해설, 그리고 맑스가 그 이론 중 최종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 에 대해 거진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맑스라는 사람의 전기를 진행하는 데에 이보다 적절한 방식은 없으리라 본다.

「이 이론의 구조와 기본 개념은 헤겔과 청년 헤겔주의자들에게서, 동적 원리들은 생시몽에게서, 물질의 우위에 대한 믿음은 포이어바흐에게서,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견해는 프랑스 공산주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이론은 완전히 독창적이다.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절충주의로 흐르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면서도 정합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맑스는 독일 사람이고, 인종으로 따지면 유대인인데,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싶어했다. 신기한 일이다. 유대인이란 종교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민족이다. 그들의 유일신은 현재 세계인구의 대부분을 - 다양한 형태로 통제하고 있다. 그런 유대인인 그가 스스로 유대인임을 부정하고자 한 것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고향, 그리고 조국은 전제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고 그나마 맑스 만년에도 비스마르크가 건재했다. 한마디로 프로이센은 맑스를 품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파이터는 파리에 머물게 되었고 엥겔스라는 파트너를 만나게 됐다. 엥겔스는 나중에 수급자나 다름없는 맑스 가족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후원을 해주기도 하고 공저한 모든 강령이나 책자 등을 맑스의 공으로 돌리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키다리아저씨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엥겔스가 없었다면 맑스도 없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성실한 학생처럼 마르크스가 가진 모든 지적 자양분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건강한 판단, 열정, 활력, 쾌활함을 마르크스에게 제공했으며 마르크스가 빈곤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질 때마다 생계수단을 지원했다.」

 저자는 맑스의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찰지게 표현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우주적 비전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단테의 작품에서 우주적 사랑이 차지했던 비중만큼이나 크다.」

 맑스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과거에 필요했던, 또는 미래에 필요할 사상보다는 현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과 사상을 설계하고자 했다. 그의 눈에 19세기 중반의 현실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노동력을 매매하고 노동자를 그저 노동 공급원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는 분명히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에 관한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하나의 계급 이익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분노한 희생자들의 결집된 힘에 의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는 체제이다.」

 맑스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 선동가이자 사상가였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 경제적으로는 하층민 중에서도 최하층민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1848년에 파리에서, 그리고 유럽 곳곳에서 혁명의 시도가 있었다. 맑스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부지런하게 펌프질을 했으나 역사는 그의 실패를 알고 있다. 그는 재판을 받게 됐고 그걸 PR 기회로 삼는다 - 이 점은 안중근 의사와 일견 유사하다.

「마르크스는 반란 선동죄로 체포되어 쾰른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는 이 일을 오히려 국내외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상세한 분석을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가며 일장 연설을 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재판의 배심장은 피고의 무죄를 선고하면서, 자신들 모두에게 교훈적이고 흥미로운 강의를 통해 커다란 도움을 준 데 대해 자신과 재판정의 이름으로 피고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도마께서는 맑스와 다를 바 없는 일장연설을 논리정연하고 일관되게 펼쳤음에도 미개한 왜놈들에게 사법살인을 당했을 따름이다. 이게 국격의 차이다.

 맑스라는 사고뭉치는 이제 프랑스에서도 거부 당하게 됐다. 그는 반평생을 보낼 잉글랜드로 망명하게 된다.

 맑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기본도구로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고자 했으며 찰스 다윈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이 인간 눈에는 아시아라든지 러시아 등지는 아직 진화가 덜 된 사회로 보였고, 영국의 식민지배는 악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해당 식민지가 더 빠르게 진화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혁명이 앞당겨질 수만 있다면 그리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식의 글을 쓰기도 했다. 얜 모든 목적이 혁명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자연히 Nationalism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정말 완벽해보이면서도 여하한 구멍이 많은 것이 맑스의 이론이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한다.

「대기업 - 마르크스는 대기업의 출현을 예견한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 은 그 동맹 세력인 군대와 함께 자유방임주의와 개인주의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고 그에 따라 민주적 저항이 증가하면서 생길 결과를 고려하지 못했다. 또한 정치적 민족주의가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을 방해하고 변형시키는 힘이나 무제한적인 착취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것, 혹은 부르주아지 중에서 점차 빈곤해지는 계층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게 될 운명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동 세력과 동맹을 맺게 될 때 그들이 구체제를 지키는 보루가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파시즘도 복지 국가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의 동물이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기존의 체제를 크게 파괴하지 않고도 상호발전하는 법을 아는 종족이다. 당대에도 비스마르크가 복지 국가를 만들기 시작했지 않은가. 모든 인간이 중세 몽골 전사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맑스가 주장하는 바는 매우 그럴듯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면이 있다.

「대자본가의 수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즉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빈곤, 예속, 타락, 착취의 강도는 점차 증가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계급의 역할도 꾸준히 강화된다. 노동계급은 갈수록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매커니즘 자체에 의해 훈련되고 단결되고 조직된다.

 생산 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는 양립할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한다.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하던 자가 수탈 당하게 된다.」

 인터내셔널도 망하고, 맑스는 평생을 바쳐온 작업의 결과가 생전에는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들고 나서는 러시아처럼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겠다고 느끼는 등 이른바 수정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공산주의 거두라고 해도 호르몬 변화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그러다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던 책 속에 파묻혀 잠들듯이 떠난 그가 부럽기도 하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계급투쟁을 말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한 계급이 오로지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정치 조직을 만들 계획을 구상하고 성공적으로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정당과 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역사 과정을 규정하는 요소는 관념이다'라는 명제를 논박하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스스로 테제의 힘을 약화시켰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개인이 환경이나 다른 개인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그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인식에 변화를 일으켰고, 또 그러한 관계 자체까지 변화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의 행위 방식과 사유 방식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적 힘들 중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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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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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가기 전이었던 거 같은데, '을지로 순환선'이라는 작품에 대해 신문에서 보고 인터넷 기사 들어가서 이미지를 저장해놨던 기억이 있다. "기가 막힌 그림이다." 처음 감상이다.

 

 알고 보니 작가가 동문 선배님이다. 심지어 와우산 토박이라고 하는데, 84학번이니 어마어마한 분이다. 이 도록 같은 책에 실려있는 첫 작품이 '와우산'이다. 95년작이라고 하는데 우리학교 위에 있던 발칸부대부터 해서 아직 공사 중인 서강대교, 63빌딩만 우뚝한 여의도, 당인리발전소, 하늘공원이 되기 전 상암의 쓰레기장 등등이 펼쳐져있다. 아직 개발 안 된 와우산 달동네엔 삼성아파트도, 쌍용예가도, 금호아파트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풍속화이자 하나의 역사다. 나는 지금도 마포구 일대를 돌아다닐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 지나치게 생동하는 제2의 고향의 모습에 놀라곤 하는데, 기록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렇듯 추억의 모습을 새겨놓은 대선배님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대망의 '을지로 순환선'의 내선순환열차는 지금의 '구디'역 일대를 지나는 것으로 보인다. 스케일이 다르고 전하는 바도 남다르다. 이 그림은 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이 외의 그림들은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시민 - 주로 서울시민 - 들의 일상사들을 그려놓았는데, 나름 정감있고 전달하는바도 많지만 상기한 대작들에 비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림책이라 주절주절 쓰기도 애매하다. 난 여기서 '와우산'이랑 '을지로 순환선' 건진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다. 민족사학! 단결홍익! 마포의 아들, 마포의 추억,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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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우화
수잔 펠드만 / 선영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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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 시적이고 순수한, 석기를 다루며 문자를 쓰지 않던 - 원시인류의 모습을 간직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구비문학 모음집이다. 북아메리카 각지의 부족, 심지어 이누이트까지 포함하여 그들의 창세신화, 영웅신화 등을 실어놓았다(남미쪽 우화는 몇 편 안 됨). 대단히 흥미로웠다.
 이걸 보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이나 취향들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부족이 4라는 숫자를 좋아하여 등장인물이 뭘 시도하더라도 꼭 네 번은 해보거나, 넷째 아들이 훌륭하거나 하는 식이던데 얘네한테는 4가 극동 아시아에서의 3과 비슷한 이미지인 것 같다. 또한 고슴도치 가시로 신발 장식을 한다든지 주로 수렵 채집을 하는 통에 농사 관련된 내용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든지 하는 특징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경황없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동양의 구비문학들도 논리나 상황설정의 오류 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얘네들은 마치 꿈을 꾸는듯이 - 수시로 설정이 바뀌고 등장인물이 급작스럽게 변덕을 일으키는 등 실로 자유롭기 그지 없었다. 꿈같은 경우 - 이 표현이 가장 적당해보인다 - 가 대단히 많았다. 특히 동식물이나 갖가지 사물이 의인화가 되다 못해 사람으로 수시로 변하곤 하는등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없는 모습이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떠받들어지는 태양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결코 완전무결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태양이 - 빛을 도둑맞는 등 - 바보천치거나 - 사위를 죽이려고 애쓰다가 그마저도 실패하고 망신만 당하는 - 속좁은 소인배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 생각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주니족Zuni族 같은 경우 다음과 같이 근친상간을 경계하기도 했다.

 

 「"우리 옥수수족의 타락 때문에 홍수가 났어. 당신들은 키바에서 쾌락을 즐기곤 했지. 그래서 유령이 와서 키바를 보고는 홍수가 나게 한 거야. 같은 부족 사람들끼리는 형제 자매로 지내야지 결코 서로의 육체를 탐내서는 안돼."」

 

 그리고 대평원에 살던 블랙풋족Blackfoot族은 - 마치 창세기처럼 - 조물주(노인)가 진흙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윈네바고족Winnebago族 같은 경우엔 아예 창조주가 진흙으로 본인과 꼭 닮은 형상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산토끼의 모험'이라는 에피소드는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들을 여러 번 보여주는데, 토끼가 칠면조도 잡고 철갑상어도 죽이더니 급기야 사람과 곰도 때려잡는다. 게다가 같이 사는 할머니는 토끼가 누구 죽이고 왔다는 얘기만 하면 니가 내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느니 하면서 화를 내는데 - 여기에 토끼의 대답이 걸작인 게, "오! 이런 사악한 늙은이 같으니. 내 당신도 쏘아 죽여서 태워버릴 거예요."라는 전례없는 패드립을 날리곤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농담이었다느니 잘죽였다느니 하는데 참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또한 위시램족Wishram族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윤회를 했는데 코요테가 정한 규칙에 따라 그것이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이밖에 널리 알려진 박쥐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게 아메리카 원주민 우화였는 줄은 몰랐다. 개미가 누가 가장 센 지 부등호 놀이를 하다가 눈<태양<바람<집<쥐<고양이<막대기<불<물<소<칼<돌로 결론이 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건 내가 아는 이야기랑은 결론이 좀 다르긴 하다.

 

 참 오랜만에 북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서적을 읽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직접 접해 보니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매우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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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긴 한국인
장훈 지음, 성일만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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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쯤 전인가, 한일레전드매치 혹은 그와 비슷한 명칭의 이벤트 경기가 잠실구장에서 치뤄진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걸 생방으로 봤는지 다시보기로 봤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어찌 됐든 국민의례부터 풀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레전드측 인솔단장(?)이 바로 장훈이었는데, 기미가요가 나오는 동안 눈 감고 따라부르는 왜인들과 달리 장훈은 그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다음으로 애국가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대표 인솔단장인 장훈이 태극기를 향해 서서 잘 알려진 그 조막손을 왼가슴 위에 얹는 게 아닌가! 난 성씨도 같고 재일교포로서 NPB 레전드에 오른 그를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 날 이후로 장훈을 충무공 급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23시즌/2,752경기/타율 0.3191/출루율 0.399/OPS 0.933/안타 3,085개/홈런 504개/타점 1,676개/도루 319개/사사구 1,274개/WAR 116.4(테드 윌리엄스(123.1)보다 조금 낮고 루 게릭(112 정도)보다 높다)/타격왕 7회/19시즌 연속 올스타/500-300클럽(NPB 유일)... 통산기록만 봐도 빤스 갈아입고 와야할 정돈데 이걸 재일교포로서, 장애인으로서 해냈다. 게다가 기록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의 멘탈까지 생각해본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존경하고 우상으로 삼기 딱 좋은 대상이다.

 

 이 책은 장훈이 일본에서 출간한 자서전을 일간스포츠에서 발췌 및 번역하여 연재한 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93년도에 초판이 나왔고 이건 07년도 개정판이다.
 장훈은 40년생인데,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창녕 출신이었다. 어릴 적에 화상으로 인해 오른손이 굽어 왼손잡이로 바꾸고, 핵 맞아서 누나 한 명 먼저 보내고 부친도 고향 갔다가 요절하고 하여간 영화 같은 스토리로 인생을 시작한다. 당시에는 뭐 민단이니 조총련이니 없었을 거고 한국인학교 따위도 없었을 테다. 왜인들과 똑같이 정규교육을 이수하고 자란 장훈이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게 된 데엔 모친 덕이 크다.

 

「오가와 구단주는 언젠가 나에게 양자 입양을 제의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어린 나는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야구만 할 수 있다면, 양자 입양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한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 몰래 양자 수속을 밟을 수 없어 상의를 드렸더니 단번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따위 짓을 하려거든 당장 야구를 그만두고 히로시마로 돌아오너라."」

 

 장훈은 시쳇말로 '인자강'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한 유전자의 힘 말고는 온통 악조건 - 장애, 가난, 자이니치 - 뿐이었다. 이걸 이겨낸 데엔 강직한 모친의 가정교육과 더불어 야구선수로 성공하여 가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동기가 큰 역할을 한 듯 싶다. 본인도 처음에는 돈 많이 벌어서 가난을 벗어나 모친께 효도하고 싶었다고 쓰고 있다.
 장훈은 신인 시절부터 연습벌레에다가 선진 훈련법도 적용했다고 한다. 당시 야구선수는 웨이트가 금기시됐다고 하는데, 장훈은 몰래 역도산네 체육관에 가서 훈련을 하곤 했다고 한다. 같이 운동하던 가네다는 도중에 힘들다고 그만 뒀다는데 장훈은 웨이트를 계속 했다고 하며 톡톡히 효과를 본 것 같다. 여기 나온 가네다가 김경홍인지는 잘모르겠는데 - 작중에 '대투수'라고 하는 거 보니 맞는 것 같다. 김경홍은 귀화한 재일교포인데, 통산 5526.2이닝, 400승, 4,490탈삼진, 14년 연속 20승을 한 양반이다. 한마디로 일본의 사이 영이라고 보면 되는데, 반강제로 귀화 당했다는 설이 있다. 심지어 별명이 '덴노'다. 그런 사람도 힘들다고 포기한 것을 묵묵히 해낸 장훈이니 진작부터 대성할 그릇이었던 셈이다.
 데뷔 시즌부터 신인왕에 2년차 때는 일본 올스타에 뽑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랑 친선경기에도 나갔다는데, 당연히 펄펄 날아다녔다고 한다. 이때 무려 윌리 메이스랑 경기를 뛰었다는데 Say Hey Kid의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고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장훈이 싸움을 정말 잘했고 야쿠자가 될 뻔 했다느니 성격이 불같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게 과연 허명이 아니라 장훈은 감독에게 항명하는 스케일도 남달랐다.

 

「난카이전에선가 경기 종반 수비 위치로 들어가 있는데 벤치에서 교대 신호를 보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그 길로 우리팀이 아닌 상대팀 더그아웃을 거쳐 합숙소로 달려갔다. 상대팀 선수들은 성난 표정으로 씩씩대며 자기네 더그아웃으로 뛰어든 나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나는 합숙소로 돌아가 배트로 유리창문을 모조리 박살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장훈이 돌글러브 이미지가 있어서 이기고 있는 경기 때 대수비로 교체가 되곤 했다는데 그걸 감독이 미리 좀 바꾸든가 자꾸 수비 들어가고 나면 바꾸니까 성이 난 거다. 이 사건 있고 나서 감독이랑 금방 화해했다고 한다.

 그밖에 온갖 에피소드들 - 슬럼프 탈출기, 각종 선수 및 감독들과의 일화 등등 - 이 많이 실려 있었다. 특히 장훈이 선수 겸 수석코치를 하고 있을 때 스스로 번트 사인을 내서 성공했던 일화는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워낙 강타자라 프로 1,885경기만에 처음으로 댄 번트라고 한다.
 장훈은 "23년간 내 야구 인생에 결코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알렉산드로스나 칭기즈칸을 보면 위화감이 들지만, 장훈을 보면 그 삶의 자세를 귀감으로 여기게 된다.

 

 마무리는 국내 야구인들의 헌사로 꾸며져 있었고 현재 파이낸셜뉴스로 가 있는 성일만 기자가 옮긴이의 말을 써놓고 있다. 야구팬이면, 아니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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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 이시백 자유단편 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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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국어 내지는 문학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명퇴하고 작품활동하는 사람 같은데, 주로 7,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 꽁트 같기도 한 단편소설을 거의 50편 정도 엮어놓았다. 누가 봐도 전교조 출신인듯한 필자는 7, 80년대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랑천이고 모란시장이고 청계천이고 모든 곳이 우중충한 고담시 같다. 이게 어떤 소린지는 책을 봐야 안다. 특히 학교, 교사, 군대 얘기가 많은데 군대는 심히 악의 축 수준으로 나온다. 나도 물론 대한민국 군대, 특히 하사관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혐오한다.


 물론 글빨도 좋고 주로 장삼이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점도 좋았다. 그 시절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와 사람들을 그려놓았다. 필자가 전교조이든 교총이든, 독자는 그 현장감에 몰입하고 풍자에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사상이 편향적이다 뿐이지 잘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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