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우화
수잔 펠드만 / 선영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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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 시적이고 순수한, 석기를 다루며 문자를 쓰지 않던 - 원시인류의 모습을 간직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구비문학 모음집이다. 북아메리카 각지의 부족, 심지어 이누이트까지 포함하여 그들의 창세신화, 영웅신화 등을 실어놓았다(남미쪽 우화는 몇 편 안 됨). 대단히 흥미로웠다.
 이걸 보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이나 취향들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부족이 4라는 숫자를 좋아하여 등장인물이 뭘 시도하더라도 꼭 네 번은 해보거나, 넷째 아들이 훌륭하거나 하는 식이던데 얘네한테는 4가 극동 아시아에서의 3과 비슷한 이미지인 것 같다. 또한 고슴도치 가시로 신발 장식을 한다든지 주로 수렵 채집을 하는 통에 농사 관련된 내용을 거의 찾을 수가 없다든지 하는 특징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경황없고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동양의 구비문학들도 논리나 상황설정의 오류 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얘네들은 마치 꿈을 꾸는듯이 - 수시로 설정이 바뀌고 등장인물이 급작스럽게 변덕을 일으키는 등 실로 자유롭기 그지 없었다. 꿈같은 경우 - 이 표현이 가장 적당해보인다 - 가 대단히 많았다. 특히 동식물이나 갖가지 사물이 의인화가 되다 못해 사람으로 수시로 변하곤 하는등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없는 모습이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떠받들어지는 태양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결코 완전무결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태양이 - 빛을 도둑맞는 등 - 바보천치거나 - 사위를 죽이려고 애쓰다가 그마저도 실패하고 망신만 당하는 - 속좁은 소인배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 생각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주니족Zuni族 같은 경우 다음과 같이 근친상간을 경계하기도 했다.

 

 「"우리 옥수수족의 타락 때문에 홍수가 났어. 당신들은 키바에서 쾌락을 즐기곤 했지. 그래서 유령이 와서 키바를 보고는 홍수가 나게 한 거야. 같은 부족 사람들끼리는 형제 자매로 지내야지 결코 서로의 육체를 탐내서는 안돼."」

 

 그리고 대평원에 살던 블랙풋족Blackfoot族은 - 마치 창세기처럼 - 조물주(노인)가 진흙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윈네바고족Winnebago族 같은 경우엔 아예 창조주가 진흙으로 본인과 꼭 닮은 형상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산토끼의 모험'이라는 에피소드는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들을 여러 번 보여주는데, 토끼가 칠면조도 잡고 철갑상어도 죽이더니 급기야 사람과 곰도 때려잡는다. 게다가 같이 사는 할머니는 토끼가 누구 죽이고 왔다는 얘기만 하면 니가 내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느니 하면서 화를 내는데 - 여기에 토끼의 대답이 걸작인 게, "오! 이런 사악한 늙은이 같으니. 내 당신도 쏘아 죽여서 태워버릴 거예요."라는 전례없는 패드립을 날리곤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농담이었다느니 잘죽였다느니 하는데 참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또한 위시램족Wishram族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윤회를 했는데 코요테가 정한 규칙에 따라 그것이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이밖에 널리 알려진 박쥐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게 아메리카 원주민 우화였는 줄은 몰랐다. 개미가 누가 가장 센 지 부등호 놀이를 하다가 눈<태양<바람<집<쥐<고양이<막대기<불<물<소<칼<돌로 결론이 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건 내가 아는 이야기랑은 결론이 좀 다르긴 하다.

 

 참 오랜만에 북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서적을 읽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직접 접해 보니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매우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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