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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1. 자본의 핏빛 그림자, 테러

필자가 중학교 1학년 시절 TV로 본 911테러는 큰 충격이었다. ‘테러’라고 하면 흔히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벌이는 폭력적인 행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핏빛 그림자, 테러>에서는 테러에 관한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정치적 또는 종교적 틀을 벗어나 경제적 틀로 테러를 분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테러의 신경제’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테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테러의 주도권이 어떻게 해서 제3세계에 주어졌는지, 테러를 둘러싼 엄청난 자금의 흐름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테러의 신경제를 파헤친다.
2. 사랑은 왜 불안한가
2012년 가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란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남세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고 관능적인 묘사로 점철된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사랑은 왜 아픈가>로 유명세를 얻은 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호기심을 가졌다. 그 호기심의 결과물이 바로 <사랑은 왜 불안한가>이다. <사랑은 왜 불안한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로 ‘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의 사회학’이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불안한가>를 통해 사랑하는 남녀의 ‘침실’을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일명 ‘BDSM’으로 불리는 현대의 “은밀하고 괴이한” 기형적 사랑관계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발달의 다층적 산물이라는 예리하고도 깊은 통찰이 돋보인다. 나아가 에바 일루즈는 지극히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섹스조차 실은 다분히 사회적인 행위라고 역설한다.
3. 그의 기쁨과 슬픔
수년 전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쌍용자동차 사태의 전말을 제대로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 사태를 몸으로 겪은 이들의 이름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그의 기쁨과 슬픔>은 정혜윤이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한 르포르타주 에세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해고자, 노동조합, 빨간 조끼, 머리띠, 투쟁 구호 등의 상징으로만 인식되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과정에서 벗겨졌다는 것이다.
‘산 자’(해고되지 않은 자)와 ‘죽은 자’, 희망퇴직자, (‘산 자’였으나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된 자,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그날 이후’ 그리고 ‘그날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책은,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사건 앞에 놓인 평범한 인간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나치에게 억압받았던 홀로코스트에게 쓰인 ‘산 자, 죽은 자’란 표현이 쌍용자동차 사태에도 쓰였다는 것을 읽고 왠지 모를 스산함을 느꼈다.
4.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개인적으로 걷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집 주변을 걸으며 산책을 하다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풀리기도 한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은 이런 걷기의 오묘함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프랑스 파리12대학 철학 교수이자 미셸 푸코 연구자로 잘 알려진 프레데리크 그로란 학자가 썼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걷기를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이라고 보고, 걷기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걸으려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고찰해나간다.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걷기의 철학>이라는 책이 2007년에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책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다.
5. 마음의 그림자
일반적으로 마음이나 의식은 인문학이나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제다. 하지만 <마음의 그림자>는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마음에 대해 풀어나가는 책이다. 저자는 물리학, 수학은 물론이고 괴델의 논리학과 튜링의 컴퓨팅 기술, 생물학, 그리고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까지 전방위 학문들을 어렵지 않게 거론하고 서술하면서 두뇌와 의식에 대한 탐구를 이끌어나간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1부에서는 괴델과 튜링의 명제를 비교·조합하면서 "멈추지 않는 튜링 기계"의 알고리듬을 설명하여 컴퓨팅과 두뇌(의식)의 작동 상의 차이점을 서술한다. 2부에서는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마음과 의식을 기준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고전물리학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비국소성, 반사실성, 양자얽힘이라는 양자역학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현상들을 살펴본다. 인문학이나 심리학이 아닌 과학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