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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평점 :

내가 싫어하는 질문이 있다.
"너는 좌파냐, 우파냐"
"너는 진보냐, 보수냐"
왜 모든 무리가 이 둘 중 하나여야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둘 다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매일 신문 정치면을 훑어보고 있고, 뉴스도 관심있게 지켜보며, 썰전도(!) 매주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어느 특정 편에 설정도로 그 특정 편에 애정이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어느 편이 됐든 진심으로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내 생각과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떨땐 진보의 의견에 적극 찬성할 때도 있고, 또 보수의 의견에 공감할 때도 있다.
목수정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몇 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지금도 파리에서 살며 번역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몇몇 자료들을 보기도 했었는데, 당시에는 너무 좌파의 성향이 강한 사람 같아서 그녀의 책들도 웬지 그런 정치적인 성향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한번도 선택하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최근, 가뜩이나 세상 돌아가는 게 심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더욱 어이없는 일이 터지고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의 사태를 미리 알고 쓴 책은 아니겠지만, 아래 카피에 꽂혀서 읽게 되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 회복해야 할 정신은 무엇인가?"

출퇴근길에 읽었는데 초반 몇 페이지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읽으면서 눈물이 맺혔다.
그녀가 느끼는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이고 인간답지 않은 세상에 대한 분노는, 내가 요즘 느끼는 그것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이해 안되고 답답하면서도, 무조건적인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 역시 싫었던터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속에 분명 존재하는 그 분노는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기득권의 이기심으로 비난하며 넘겨버리는 것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모두 수장되었을 때, 그것을 방조한 것도 모자라 사고 수습 과정도 처참하리만큼 비인간적인 부분에 분노했던 것.
청년 실업은 늘어만 가고 아이를 낳은 엄마 직장인들이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늘어만 갈때 이런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며 위기 의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위안부 문제를 그렇게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의 입장은 묵살한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돈 몇 푼으로 피해자의 아픔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내가 분노했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목수정 작가는 이 책에서 하고 있었다.
그게 왜 분노를 느낄 일인지, 그 일들에 정부는 어떤 잘못을 한 것인지, 냉정하고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니라 그것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정의와 의식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번 결론에 화가 났던 가장 큰 이유는, 고작 10억엔이라는 금액도 아니고 도무지 진정어린 사과라는 걸 할리 없는 아베에 대한 실망감도 아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 국가의 나약함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 이렇게 그 희생을 짓밟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서글픔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모든 생각들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부분은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들은 너무 한 쪽만 생각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책을 덮으면서 나는 더이상 그녀를 단순한 좌파 작가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내 고민처럼 진심을 다해 걱정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몇 백배는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본 그녀는, 그 어떤 사람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더이상 좌파건 우파건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답답하고 희망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은 당장 나부터도 눈을 돌리고 싶기 마련이다. 그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을 한다고 당장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니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기 바쁜 인생이 될 것인지, 아니면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말도 안되는 현실을 직시해서 문제를 파고 드는 인생이 될지는 분명히 선택을 해야한다. 어느 선택을 하든 자유겠지만, 눈을 감는 인생이 되는 순간 영혼도 포기하며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도 비겁하고 이기적인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자기 배 불리기에 바빠서, 혹은 그러한 갈등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았던 사람들로 인해서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보이면 말이다.
역사 앞에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 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 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박근혜와 아베의 어리석음으로 세상은 이 새삼스러운 진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천박한 돈 따위가 감히 끼어들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기나긴 역사 전쟁의 승자는 이미 할머니들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것들이 점점 더 늘어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역사 앞에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 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 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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