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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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발표된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번역서가 나왔다.
수상작으로 이 제목의 책이 발표되었을때부터 흥미진진하긴 했었다.
게다가 역대 아쿠타가와 수상작 중에서도 유난히 책이 많이 팔렸다는 얘길 들었기에 조만간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일찍 번역서로 나와주다니, 참 반갑네.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하지 않고 18년동안 계속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무려 같은 편의점에서 쭉.
그 사이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이 바뀌고, 점장도 몇 명인가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꾸준히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그녀.
일본에는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기 시간을 알아서 쓰는 '프리터'라는 개념이 있기에, 처음에는 프리터 얘기인가 보지 뭐 했었는데
그래도 18년은 좀 심하다 싶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렇게 같은 편의점에서 같은 일을 그토록 고집하는 건가.
그녀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 그 편의점이었는데, 매일매일이 정해진 규칙으로 돌아가고 그저 그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하면 특별한 문제없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그 일이 그녀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삶 역시 그 패턴에 철저히 맞춰져 있었고, 거기에 그녀는 편안함과 자부심까지 느꼈다.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은 삶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변의 시선과 말들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시집도 가지 않고 그렇다고 취직도 하지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십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시선을 사람들은 여과없이 그녀에게 퍼붓는다.

결혼은 왜 하지 않냐.
왜 여태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냐.
뭔가 문제가 있냐.

그녀는 이게 왜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편의점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시라하 라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취업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살고 있지만, 그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사는 삶이 문제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조몬 시대와 꼭 같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괴상한 사람 같지만, 그의 말을 찬찬히 곱씹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엄밀히 보면 정말로 다른게 없는 시대다.
일반적인 삶의 순서와 방법들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그와 더불어 그들에게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계급사회의 예전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조금도 평등해지지 않았고, 인간다워지지도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예전에 일본어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책을 취급하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문을 두드려본 곳이 신주쿠에 있는 "북오프"였다.
매장이 큰 편이라 파트타이머들도 꽤 많았는데, 외국인은 나뿐이고 모두 일본인이었다.
그 중 반은 대학생이거나 전문학교 학생들이었고, 반은 프리터였다.
한창 꿈도 크고 미래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그 때의 나는, 그 "프리터"라는 직업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식으로 사나, 인생이 아깝지 않나, 아르바이트로 나이들 때까지 산다는 건 좀 게으른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로 꽉 차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학생 아르바이트 동료들과는 가까이 지내면서 프리터 동료들에는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때 내가 실수를 했을때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던 사람들은 프리터 동료들이었고, 실수도 없이 정말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그들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일을 펑크내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여러 면에서 모범적인 선배들이었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서 그런지 그 일에서 만큼은 프로 못지 않았는데 단순히 나는 '프리터'라는 점에 잔뜩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기에 그런 모습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부끄럽고 바보같은 일인가.

그것도 벌써 십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일반적으로 비슷한 수순으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눈으로 보고, 그 사람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외면의 명함들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 속의 시라하 씨의 말에 적극 동감하는 것이다.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세상도.


길지도 않은데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읽듯 쉽게 금세 읽힌 책이지만, 고민의 무게는 굉장한 책이었다.
도대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누가 만든 것이며, 어디서 부터 그 경계가 그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그 둘을 판단하는 근거는 도대체 뭘까.
왜 나도 후루쿠라와 시라하를 자연스럽게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판단하며 읽게 된 것인지, 자꾸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두가 보조를 맞춰야만 하는 거죠.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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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
히구마 아사코 지음, 박문희 옮김 / 디자인이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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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와서 생선을 굽고, 간단한 반찬 몇가지를 만들어서 남편과 뚝딱뚝딱 저녁을 챙겨먹고

주방 정리를 끝낸 후 식탁에 앉아서 꺼낸 책들.

요즘 내 관심사를 가장 반영해 주는 책들이 아닌가싶다.

 

 - 살림 (심플라이프)

 - 유아 식판식

 - 엄마의 역할


그 중 퇴근길부터 읽기 시작한 <엄마의 일>을 단숨에 읽었다.

사실 거의 사진들이 많아서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사진이 많다고 해서 건질 얘기가 별로 없지도 않았고,

꽤 유익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심플한 살림을 베이스로 깔고 시작한다.

집안을 둘러봐도 심플라이프의 몇몇 책에서 봤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

이 책은 심플라이프가 주된 주제가 아닌데도 그렇다.

그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살림 잘하는 사람들은 삶 자체가 심플하게, 미니멀하게 산다는 것.


 

기본적으로 집이 어수선하지 않고 난잡하지 않아야,

살림도 깔끔하고 매일매일 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에 요리에 육아까지.

정말 모든 부분들을 거의 완벽하다시피 해내고 있는 저자를 보다보니

넘사벽의 느낌에 좌절이 되기도.

 

 

 

 

 

 

인상 깊었던 부분.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내가 했던 결심과 딱 떨어지는 문구다.

우리 부모님이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내가 그리고 우리 언니와 남동생이 책을 좋아하는 것도 다 그 덕분인 것같다.

그렇기에 나도 내 아이에게 여러 책을 강요하기 보다는,

내가 그리고 남편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함께 거실에서 책 보며 뒹굴거리기도 하고 그런 삶을 꿈꿨다.


 

책 읽는 엄마. 책 읽어주는 엄마.

결국은 그 책들이 우리 아이에게 바른 거름이 되고 유익한 지혜들을 얻는 계기가 될 줄 믿는다.

 

 

 

 

 

이렇게 여러가지 생활의 팁을 주는 부분들이 좋았다.

에센셜 오일과 무인양품 아로마 디퓨저는 나도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라벤더 외에도 유칼립투스랑 피톤치드 향 등을 더 구매해서 적시적소에 써봐야겠다.

 

 

 

 

 

 

누가봐도 살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전업 주부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저자도 그렇고 미니멀라이프의 주인공들도 거의 주부들이었다.


그랬기때문에,

늘 그런 멋진 살림 솜씨들을 보면 나는 일을 하니까.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왔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위안을 삼는다고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우리집을 대신 정리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남편에게 아이에게 맛있고 건강한 걸 먹이기 위해선 아무리 퇴근을 하고 와도 내가 움직여야 했다.


집안일은 남편과 내가 서로 분담해서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혼자 독박을 쓰는 느낌은 별로 없는데다,

남편이 더 잘하고 내가 좀 부족한 살림들도 있고 해서 밸런스도 잘 맞는 편이다.

그러나 둘다 피곤해서 널부러지게 되면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는 하루들이 부지기수.

그래도 분명한건,

내 삶을 바꾸고 싶으면 내가 워킹맘이든 육아맘이든 내가 스스로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얼른 옷 갈아입고 저녁 준비해서 먹고

남편은 분리수거와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고,

나는 주방 정리를 하고 났더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시간이 문제가 아닌거다, 결국.

 

 

우리 아이에게도 그냥 '일하는 엄마'가 아닌,

엄마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면서도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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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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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하는 질문이 있다.

"너는 좌파냐, 우파냐"

"너는 진보냐, 보수냐"

왜 모든 무리가 이 둘 중 하나여야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둘 다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매일 신문 정치면을 훑어보고 있고, 뉴스도 관심있게 지켜보며, 썰전도(!) 매주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어느 특정 편에 설정도로 그 특정 편에 애정이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어느 편이 됐든 진심으로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내 생각과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떨땐 진보의 의견에 적극 찬성할 때도 있고, 또 보수의 의견에 공감할 때도 있다.



목수정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몇 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지금도 파리에서 살며 번역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몇몇 자료들을 보기도 했었는데, 당시에는 너무 좌파의 성향이 강한 사람 같아서 그녀의 책들도 웬지 그런 정치적인 성향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한번도 선택하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최근, 가뜩이나 세상 돌아가는 게 심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더욱 어이없는 일이 터지고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의 사태를 미리 알고 쓴 책은 아니겠지만, 아래 카피에 꽂혀서 읽게 되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 회복해야 할 정신은 무엇인가?"






출퇴근길에 읽었는데 초반 몇 페이지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읽으면서 눈물이 맺혔다.

그녀가 느끼는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이고 인간답지 않은 세상에 대한 분노는, 내가 요즘 느끼는 그것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이해 안되고 답답하면서도, 무조건적인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 역시 싫었던터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속에 분명 존재하는 그 분노는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기득권의 이기심으로 비난하며 넘겨버리는 것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모두 수장되었을 때, 그것을 방조한 것도 모자라 사고 수습 과정도 처참하리만큼 비인간적인 부분에 분노했던 것.

청년 실업은 늘어만 가고 아이를 낳은 엄마 직장인들이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늘어만 갈때 이런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며 위기 의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위안부 문제를 그렇게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의 입장은 묵살한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돈 몇 푼으로 피해자의 아픔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내가 분노했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목수정 작가는 이 책에서 하고 있었다.

그게 왜 분노를 느낄 일인지, 그 일들에 정부는 어떤 잘못을 한 것인지, 냉정하고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니라 그것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정의와 의식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번 결론에 화가 났던 가장 큰 이유는, 고작 10억엔이라는 금액도 아니고 도무지 진정어린 사과라는 걸 할리 없는 아베에 대한 실망감도 아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 국가의 나약함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 이렇게 그 희생을 짓밟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서글픔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모든 생각들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부분은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들은 너무 한 쪽만 생각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책을 덮으면서 나는 더이상 그녀를 단순한 좌파 작가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내 고민처럼 진심을 다해 걱정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면 몇 백배는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본 그녀는, 그 어떤 사람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더이상 좌파건 우파건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답답하고 희망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은 당장 나부터도 눈을 돌리고 싶기 마련이다. 그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을 한다고 당장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니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기 바쁜 인생이 될 것인지, 아니면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말도 안되는 현실을 직시해서 문제를 파고 드는 인생이 될지는 분명히 선택을 해야한다. 어느 선택을 하든 자유겠지만, 눈을 감는 인생이 되는 순간 영혼도 포기하며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도 비겁하고 이기적인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자기 배 불리기에 바빠서, 혹은 그러한 갈등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았던 사람들로 인해서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보이면 말이다.



역사 앞에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 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 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박근혜와 아베의 어리석음으로 세상은 이 새삼스러운 진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천박한 돈 따위가 감히 끼어들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기나긴 역사 전쟁의 승자는 이미 할머니들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것들이 점점 더 늘어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역사 앞에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 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 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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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는 회사일에 정신이 없고,
퇴근 후나 주말에는 육아에 여념이 없다보니 
여행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부랴부랴 숙소를 예약하고,
결혼식이 열리는 님까지 가는 떼제베 예약까지 완료했다.
그리고 몇 권의 여행 책을 뒤적뒤적 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유명하구요, 어딘 꼭 가봐야 하구요, 여긴 꼭 먹어봐야 하구요,
이런 건 이번에 좀 지양하고 싶어서
<사랑하니까 파리>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것도 여행 책이긴 한데 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고,
반고흐의 고향인 오바르쉬르우아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찾아가는지 여기서 뭘 봐야하는지의 정보가 아니라,
그냥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참 재밌게 읽고 있다.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친구의 결혼을 가장 축하하는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가 4년 전에 느꼈던 그 추억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공유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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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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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인 유시민.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도 읽어본 게 없고, 그가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가 지금은 뭘 하며 지내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패널이 바뀌고 부터 재밌게 챙겨보고 있는 썰전에서 이 분의 매력을 느꼈다.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내되,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내가 전원책 아저씨를 참 좋아하지만, 가끔 그냥 우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이 분은 그런 게 없다.ㅋㅋㅋ

그러던 찰나, 이 분이 책을 내셨다.
그것도 심지어 <표현의 기술>.
당장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이 분은 책에서도 또렷하게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정치적"이라고 밝힌다.
다만 이 "정치적"이라는 게, 어떤 편을 가르고 이념으로 대립을 하자는 게 아니라,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꾸기 위한" 정치적인 글쓰기 라는 것이다.

보통 정치적인 성향을 보이는 글을 보다보면,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읽는 사람들마다 성향과 의견이 다를 수 있는 건 당연한거지만,
유난히도 정치성이 들어가면 굉장히 과격해지고 감정적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렇다.
정말 좋은 글쓰기는,
그 사람이 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든,
그 성향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니 그랬다.

유시민 작가의 의견과 사상이 나와 꼭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는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서평을 쓰든, 소설을 쓰든, 내 의견을 피력하는 어떤 글을 쓰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솔직한 내 생각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어떤 이념이나 틀에 갇힌 생각이 아닌 자유롭게 펼친 나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한 비평이라면 타당한 이유나 근거들을 분명하게 들어야 하며,
나를 표현하는 글을 쓸 땐, 내가 누구인지 핵심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글을 쓸 땐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장은 생략하고,
그러면서 그 안에 내 의견의 핵심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아 나도 소설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면,(좀 건방지지만ㅋ)
이 책을 읽으면서는 생활 속에서 내가 많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글쓰기에 대한 팁을 많이 얻었다.
글을 좀 잘 써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고.
특히 서평을 쓸 때마다,
내가 읽었을 땐 분명히 훨씬 더 큰 임팩트가 있었는데 뭔가 글로 적고 보니 밋밋한 경우가 들 때가 정말 많은데,
이 책을 보면서 어떤 방법으로 써야할지 좀 배우게 되었다.
물론 그걸 연습하고 답습하는 것은 둘째 문제겠지만.

베스트 셀러 작가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아도,
감동이 넘치고 문학성이 높은 문학작품을 하나 써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어도,
이 책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팁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정치를 하던 시절에 질리도록 겪었는데, 욕설과 악플을 견디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죽은 후에 오래 기억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역사에 뭘 남기고 싶다는 욕망도 없고요.
그렇게 하려고 버둥거린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저, 살아 숨 쉬는 동안 열정을 쏟아서 멋진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넓고 깊게 교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고, 옳아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거나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하지만 악플이 겁나서 눈치를 보는 것은 다릅니다.
두려움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면 생각이 막히고 글이 꼬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늘 잘되는 건 아닙니다만, 저는 먼저 이견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공감을 표현한 다음 제 생각을 말합니다.
`나는 이런 사실이 중요하고, 이런 해석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누구든 상대방이 자기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느끼면 그 사람의 말을 더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대학생을 위한 동서양고전 100선`이나 `교양인을 위한 추천도서 100선` 같은 도서목록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그런 목록을 만든 대학 교수들 중에도 칸트의 이 책을 완독한 이는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통을 견디면서 끝까지 읽어 봤자 어차피 이해를 못 하니까요.
칸트 연구자가 쓴 해설서를 보고 정언명령이 무엇인지만 이해해도 됩니다.
인생은 짧고 책은 많아요.
재미있는 책을 읽기에도 인생이 짧은데, 뜻 모를 책을 읽느라 `셀프고문`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빠른 속도로 읽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어요.
`1년에 300권`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책을 읽어 치우는 사람도 봤습니다.
그렇지만 다독과 속독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닙니다.
지식을 배우는 데 집착하지 말고 몰입의 순간을 즐기는 데 집중한다면 굳이 빠르게 많이 읽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몇 권을 읽든, 마음을 열고 책 속으로 들어가 글쓴이가 전해 주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생각과 감정이 풍성해지고 삶이 넉넉해지는 기분을 맛보게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의 맛이에요.
이 맛을 즐겨야 감정 이입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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