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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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발표된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번역서가 나왔다.
수상작으로 이 제목의 책이 발표되었을때부터 흥미진진하긴 했었다.
게다가 역대 아쿠타가와 수상작 중에서도 유난히 책이 많이 팔렸다는 얘길 들었기에 조만간 읽어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일찍 번역서로 나와주다니, 참 반갑네.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하지 않고 18년동안 계속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무려 같은 편의점에서 쭉.
그 사이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이 바뀌고, 점장도 몇 명인가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꾸준히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그녀.
일본에는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기 시간을 알아서 쓰는 '프리터'라는 개념이 있기에, 처음에는 프리터 얘기인가 보지 뭐 했었는데
그래도 18년은 좀 심하다 싶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렇게 같은 편의점에서 같은 일을 그토록 고집하는 건가.
그녀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 그 편의점이었는데, 매일매일이 정해진 규칙으로 돌아가고 그저 그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하면 특별한 문제없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그 일이 그녀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삶 역시 그 패턴에 철저히 맞춰져 있었고, 거기에 그녀는 편안함과 자부심까지 느꼈다.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은 삶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변의 시선과 말들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시집도 가지 않고 그렇다고 취직도 하지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십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시선을 사람들은 여과없이 그녀에게 퍼붓는다.

결혼은 왜 하지 않냐.
왜 여태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냐.
뭔가 문제가 있냐.

그녀는 이게 왜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편의점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시라하 라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취업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살고 있지만, 그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사는 삶이 문제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조몬 시대와 꼭 같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괴상한 사람 같지만, 그의 말을 찬찬히 곱씹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엄밀히 보면 정말로 다른게 없는 시대다.
일반적인 삶의 순서와 방법들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그와 더불어 그들에게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계급사회의 예전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조금도 평등해지지 않았고, 인간다워지지도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예전에 일본어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책을 취급하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문을 두드려본 곳이 신주쿠에 있는 "북오프"였다.
매장이 큰 편이라 파트타이머들도 꽤 많았는데, 외국인은 나뿐이고 모두 일본인이었다.
그 중 반은 대학생이거나 전문학교 학생들이었고, 반은 프리터였다.
한창 꿈도 크고 미래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그 때의 나는, 그 "프리터"라는 직업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식으로 사나, 인생이 아깝지 않나, 아르바이트로 나이들 때까지 산다는 건 좀 게으른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로 꽉 차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학생 아르바이트 동료들과는 가까이 지내면서 프리터 동료들에는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때 내가 실수를 했을때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던 사람들은 프리터 동료들이었고, 실수도 없이 정말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그들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일을 펑크내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여러 면에서 모범적인 선배들이었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서 그런지 그 일에서 만큼은 프로 못지 않았는데 단순히 나는 '프리터'라는 점에 잔뜩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기에 그런 모습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부끄럽고 바보같은 일인가.

그것도 벌써 십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일반적으로 비슷한 수순으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눈으로 보고, 그 사람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외면의 명함들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 속의 시라하 씨의 말에 적극 동감하는 것이다.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세상도.


길지도 않은데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읽듯 쉽게 금세 읽힌 책이지만, 고민의 무게는 굉장한 책이었다.
도대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누가 만든 것이며, 어디서 부터 그 경계가 그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그 둘을 판단하는 근거는 도대체 뭘까.
왜 나도 후루쿠라와 시라하를 자연스럽게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판단하며 읽게 된 것인지, 자꾸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두가 보조를 맞춰야만 하는 거죠.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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