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새해다. 12월의 책들은 11월에 비해 약간 무게가 떨어져보이지만 여전히 재밌는 것들이 많다.
1. 맬컴 불 엮음, 종말론, 문학과 지성사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2012년이 오고야 말았다. 12월쯤 망한다니 아직 여유도 있다. 새해 벽두부터 왜 종말론이 횡행하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담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은 12개의 글을 모은 것인데,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하여 기독교, 중세를 거쳐 칸트, 푸코, 데리다, 아도르노까지 근현대의 철학까지를 아우르는 종말론에 대한 종합 학술서다. 세상의 종말, 종말하는데 무엇이 끝난다는 것인지, 끝이면 끝인지, 그 다음이 있는 것인지 종말론에 대해선 따져볼 일이 많다. 2012년이기 때문에 앞으로 유사한 제목의 책들이 더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이 책은 가벼운 가십이 아니라 종말론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한 책으로, 연말에 세상이 끝나건 끝나지 않건 올 한 해를 살아가며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
2. 브루스 커밍스, 미국 패권의 역사, 서해문집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너무나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의 미국 역사서다. 비슷한 책이 너무 많아 식상한 주제지만 커밍스는 미국 역사를 해양을 중심으로 서술한다고 한다. 즉 대서양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세워서, 대서양 건너 유럽과의 관계를 통해 발전한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한 이후 태평양으로 진출해 세계의 패권국이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관점의 특이성을 논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저자가 한국 전문가인 이상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를 잘 설명했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국가의 의미는 여전히 한국에 너무나 중요한 주제이기에 커밍스의 이 책은 가벼이 지나칠 수는 없을 듯 하다.
3. 정민, 삶을 바꾼 만남, 문학동네
좋은 책을 많이 내신 정민 선생님의 새 책이다. 내가 읽었던 책은 <미쳐야 미친다> 밖에 없지만, 정민 교수는 다산에 대한 많은 책을 썼다. 이번에는 다산과 그의 제자 황상의 이야기다.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의 좋은 사례가 펼쳐져있는 듯 한데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공부하며 스승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책으로 보인다.
4. 김인호, 조선의 9급 관원들, 너머북스
조선 사회는 불과 100여년 전까지 존속했지만 그 실상이 어땠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사회가 급변해서 조선 사회뿐 아니라 20년 전 일도 생경하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드라마나 책을 통해 접하는 조선 시대사는 보통 왕을 중심으로 하는 고급 관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그 밑에서 실제로 백성들과 대면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실상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 하급 관료들의 삶을 각 직업별로 다루고 있다. 비구니, 광대도 포함된 걸 보면 관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인구의 다수를 차지할 사람들에 근접한 이들의 실제 삶을 보여주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 앙드레 버나드, 빌 헨더슨, 악평 - 퇴짜받은 명저들, 열린책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를 많이 갖고 있는데, 이번에 이 출판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서양 고전들이 퇴짜를 받았던 이색적인 사례들을 소개한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출판업의 등장은 비평가라는 직업군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신인 작가들은 날카롭고 많은 경우 가혹한 비평을 감내해야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고전들이 처음부터 찬사를 받았던 것도 아니고, 어떤 고전은 생계를 위해 찍어내듯 써낸 것이기도 하다. 책 표지를 보면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 키플링, 셰익스피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숨막힐 사람들과 작품들이 적혀있다. 이 모든 사람, 작품이 퇴짜를 당했다는 의미리라. 이들, 이 작품들이 어떤 악평을 견뎌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출판이 되어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이외에도 리스트에 넣지 못한 책들이 많다. 박홍순의 "사유와 매혹 1"권은 다루고자 하는 규모 때문에 매우 흥미로우나 선정 도서는 되지 못할 것 같아 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