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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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녕 천재인가 보다. 이 책을 통해 다빈치의 새로운 면모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빈치가 요리에도 꽤나 정통했었으며, 여러가지 조리기구 발명에 힘썼다는 사실을...이책은 다빈치가 자신의 요리에 대한 식견. 요리 레서피, 각종 식재료에 대한 설명 그리고 각종 조리기구의 도안과 쓰임새에 대해 적어 놓은 책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위대한 화가 다빈치는 때론 그림이나 조각을 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요리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니....참 재미있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500년 전 이탈리아 상류층들의 음식문화 및 연회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 주는데, 식탁의자에 토끼를 매달아 놓고, 더러워진 손을 닦았다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했다. 또한 그 사실을 기록해 놓은 다빈치의 냉소적인 말투하며.... 다빈치는 스포르차 가문에서 요리와 연회준비를 총괄하며 쉬는 막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했다고 하는데....위대한 예술가의 자못 엉뚱한 면모가 아닌가 싶지만, 요리 역시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를 보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는 당시의 온갖 재료를 뒤섞은 요리를 비판하며, 식재료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 앞서 가다 보니 당시 사람들의 욕구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음식의 미학적인 면도 꽤나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음식을 아름답게 조각하고 장식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음식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 버리는 요즈음의 음식문화는 다 이렇게 선구자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조리기구 발명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각각의 조리기구의 삽화를 보고 있자니 왠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조리기구치고는 그 몸피가 너무 거대하기도 하거니와 말이나 다른 짐승들이 기계를 작동하는 것을 보자니 쿡쿡쿡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이론상으론 그럴 듯했으나, 그 실효성은 미지수였던 기계들도 많았지만, 오늘날에도 쓰이는 기계들도 많은 것을 보니 역시 다빈치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포크도 만들었고, 스파게티도 개발했다고 한다. 또한 냅킨을 고안해 내기도 했으며, 다양한 요리법과 장식법등을 연구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고 생각하는 그의 면모를 보자니 재밌기도 하지만 그 기상천외함과 열정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이 책을 서술한 방식을 엿보자니 다빈치의 성품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집요함과 끈기가 놀라웠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나 요리에 대해서도 악평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니 괴팍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 앞서가다 보니 빚어지는 마찰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다양한 분야에 능란했으며 그의 작품과 발명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었다.

  다빈치의 열정과 끈기, 한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는 점 등은 꼭 따르고 싶다. 또한 생활의 작은 부분일지라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 미의식 역시. 다빈치는 유쾌하고 괴팍한 천재였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이처럼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를 다룬 다양한 저작들도 찾아 읽어 봐야 겠다. 다빈치가 펼쳐 놓은 세계는 아마도 무궁무진할 것만 같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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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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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 사건>이라니? 마치 무슨 추리소설 제목 같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사료에 입각해 진실을 파헤치고 추리해 본 역사서의 제목이다. 요즈음 통 역사서를 잡지 않았었는데, 제목도 상당히 구미를 당겼고, 여러 리뷰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책은 기대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게 느껴졌는데, 다만 성리학 관련 용어라든지, 궁중용어, 예법에 관한 용어등이 생소해 자꾸 멈칫거리기도 했다. 특히 예송논쟁에 등장하는 기년복이니, 대공복이니 하는 용어들이 반복해서 나오니 헷갈리기도했다.

 

  조선 역대 왕들 중 독살설에 휘말린 왕들은 무려 8명이다. 4명 중 1명 꼴로 독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니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분석해 놓은 바에 의하면 조선의 왕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황제나 다이묘에 비해 그 권력이 약했다고 한다. 하긴 내가 기억하는 사극 속의 왕들은 늘 신하들의 견제와 붕당간의 알력 관계에서 외줄타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등은 독살되었을 걸로 추정되고 있다. 저자는 독살설에 대한 사료와 야사를 먼저 제시해 놓고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 간다. 그 과정은 마치 탐정이 수사를 해 나가 듯 치밀하고 분석적이어서 흥미진진하다. 고루하고 현학적이지 않고 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쓰여졌다는 점도 이 책을 더욱 친숙하게 만든다. 독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왕들과 대척점에 서 있던 반대 정당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노론과 소론, 서인과 남인 등 붕당들간의 견제와 대립은 조선 시대 내내 계속되어 왔다. 임금 역시 이런 붕당간의 정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늘 자신을 지지하는 붕당의 비호와 협력을 필요로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절대왕권이란 조선왕들에게는 요원한 것이었다. 왕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붕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면 늘 전전긍긍해야 했고, 자신의 소신대로 정사를 볼 수가 없었다. 왕들 역시 자신의 지지세력이 약하면 과감하게 제거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왕의 권위와 힘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독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들 중 소현세자나 정조는 독살되지 않고 오래 살아남았으면 조선시대를 크게 개혁할 만한 군주로 꼽힌다. 소현세자가 왕위를 이었다면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 들여 좀더 개화된 조선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또한 정조 역시 좀더 제위에 있었다면 자신이 단행하려던 개혁정치를 꽃피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역사적 가정 즉 만약 이러이러했다면 하고 생각해 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랬을지언정 이런 식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현실정치는 물론 일상의 삶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일을 처리할 것인지 자그마한 실마리 또는 단초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정적들에 의해 힘없이 독살되어 자신의 큰 포부와 이상을 실현시켜 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들어 버린 왕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또한 그들 개인적인 불행은 곧 국가나 백성들의 불행으로 이어졌으니 이는 역사적으로 큰 비극일 것이다. 성리학의 현실과 유리된 이데올로기는 양반 사대부들의 의식을 부패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행복한 삶을 우선으로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랬기에 붕당간의 정쟁은 날로 치열해졌고 그 와중에 왕들은 필연적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을 엿보며 인간의 추악함과 사악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인륜도 의리도 없이 오직 권력을 틀어 쥐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사화와 옥사를 일으킬 수 있는 인간의 내면에 놀라지 않을 수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으로 여행을 다녀 온 느낌이다. 물론 역사적 비극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우리는 마냥 추악한 역사를 냉소적으로 바라 볼 수 만은 없다. 현명한 군주들이 독살당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우리의 역사가 좀더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도 있었을테니 그것만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의 거울로서 역사적 사실을 반추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왕들이 그렇게 많이 독살되었던 데에는 어떠한 정치체제의 취약점과 문제점이 있었는지, 우리가 거기서 어떤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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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많아요
존 마스든 지음, 김선경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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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은 것이다. 왠지 <할말이 많아요>라는 제목이 내 마음을 끌었다. 책 날개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니 호주의 청소년 소설계를 대표하고 있는 작가의 책이었다. 책은 참 자그마한고 예쁘다 하늘색 표지에 말라깽이 인형같은 소녀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누워 있다.

  주인공 소녀는 기숙사 학교에서 생활하며 하루하루 일기를 쓴다. 이 소설은 일기체 소설인데, 열다섯 살이 되어가는 한 연약한 소녀의 아픔, 두려움, 슬픔이 말갛게 투영되어 있다. 나는 일년간 정신병원 신세를 졌지만, 아직도 말을 하지 않는다.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로 인한 징후인 것이다. 나는 말을 잃었다. 말도 잃었고, 웃음도 잃었으며 누군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잃어 버렸다. 어짜다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벽을 붙잡고 걸어가며, 자기 안에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약하고 파리한 소녀가 그려진다.

 나에게는 어떠한 정신적 상처가 있는 게 분명하다. 또한 소녀의 얼굴에도 상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움츠러 들고 홀로 외롭게 자신을 고립시킨다. 그 하나의 방편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소녀는 정신병원에서 기숙사 학교로 옮겨 왔지만 -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카운슬링도 받고, 좋아하는 선생님도 만나지만-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다. 마음의 빗장을 걸고 타인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린젤 선생님의 따스한 친절과 호의에 마음이 녹아 버린다. 또한 친구인 캐시도 소녀에게 조금씩 다가온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와 관심을 받으면서 소녀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고 미소 지을 뿐이다.

 소녀는 아빠가 엄마에게 겨냥했던 황산에 맞아 얼굴이 일그러져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교도소에 가 있고, 엄마는 새로운 남자와 재혼한 상태이다. 소녀는 아빠로 인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그 정신적 충격으로 말을 잃었던 것이다. 가정의 불화가 여린 한 소녀는 얼마나 참혹하게 옭마 매 버린 것인지.....소녀의 두렴움, 공포심, 미움 등의 감정이 일기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엄마에 대한 원망, 아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까지도....소녀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빠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소녀는 아빠를 만나러 떠난다. 일 년 가까이 말할 수 없었던 소녀는 아빠를 보자마자 말문이 트이고 만다. 소녀는 말한다.' 난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라고.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아빠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소녀의 마음에 눈물이 난다. 그 눈물때문에 눈 주변이 따갑다. 소녀는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새로운 삶을 얻는다. 그들의 따스함으로 얼음처럼 냉랭했던 소녀의 마음은 드디어 녹아 내리고 겨울을 지나 여름을 맞게 된 것이다. 소녀는 늘 사랑을 갈구했다. 외롭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신뢰해 주고, 손을 꽉 잡아 주고, 안아 주기를 원했다. 어리고 상처입은 소녀에게그것만이 치유의 방법이었다. 소녀가 새롭게 자기안의 벽을 허물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사랑만한 약이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누군들 외롭고 싶고, 누군들 상처에 무덤덤할 수 있는가? 더구나 어린 영혼에게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가족, 친구, 선생님 그리고 사회의 사랑과 관심 배려가 가장 절실할 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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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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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문화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엔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이들은 부르주아 지식인의 자식들인 탓에 궁벽한 시골로 재교육을 받으러 떠난다. 이들은 한창 피끓는 18살의 젊은이들이다. 사랑과 성 그리고 문화와 지식에 대한 욕구로 내면이 가득 달구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락되는 것이라고는 고된 나날의 노동과 약간의 바이올린 연주, 촌장에 의해 명령된 영화 감상이 전부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했던 세상과 고립되어 공산당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온갖 다양한 욕망과 이상과 꿈의 열망에 몸을 내맡겨야할 이들에겐 다시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마저도 희박하다

  그러나 나와 뤄는 상당히 느긋하고 유연해 보인다. 자유와 권리는 약에 쓸래도 없는 상황이지만 마냥 당의 압제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그건 그들이 그만큼 젊음의 왕성한 혈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친구인 안경잡이에게 서양의 다양한 고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발자크'의 소설을 입수한 그들은 발자크가 그려내는 새로운 세계에 깊이 매료된다. 오죽하면 자신의 양털가죽 안쪽에 소설의 구절들을 적어 놓겠는가?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까운 첩첩산중에서 그들이 만난 발자크는 어쩌면 자신들의 암울한 상황을 돌파해줄 하나의 돌파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뤄는 자신들의 끓어 오르는 문화적 욕구를 억누르지 못한다. 그래서 급기야는 안경잡이의 책을 훔쳐내고 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섭렵하게 된다. 나는 로맹롤랑에, 뤄는 발자크에 깊이 빠진다. 그들은 훔친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나는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면서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자못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까닭은 소설의 구조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 후에 적확하게 주제와 기교를 꿰뚫는 경지에 이른 나가 느끼는 기쁨에 나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구축해 놓은 하나의 세계를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해 낼 수 있을 때 기쁘지 않은가....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체험을 발단으로 이야기의 세계에 입문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까?

 나와 뤄에 이어 책들의 영향을 받은 이는 바느질하는 아리따운 소녀이다. 이 소녀는 연인인 뤄에 의해 서양 고전을 접하게 된다. 산골 마을의 순박한 처녀였던 바느질하는 소녀는 사랑을 알게 되고, 성에 눈뜨게 된다. 또한 자신이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존재함을 감지하게 된다. 그녀는 소설의 마지막에 도시로 길을 떠난다. 자신을 만류하는 두 사람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발자크 때문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바느질하는 소녀 역시 자신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다름아닌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서.

 

 이 소설은 하나의 성장 소설로도 읽힌다. 나와 뤄 그리고 바느질하는 소녀는 책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다. 그 세계는 낭만적인 사랑이 있고, 진한 성애도 있고, 문화적 향취도 있었다. 자신들에 내면에 내재해 있던 강렬한 욕망과 꿈에 기름을 끼얹은 책들을 통해 그들은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했고 비약했다.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만약 내가 책을 전혀 볼 수 없는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떨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해 보았다. 책이 보여 주는 미지의 세계는 한발도 들여 놓을 수 없고, 책 자체가 주는 따스한 안정감은 맛볼 수도 없었을테지.... 나와 뤄는 발자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 안에는 달뜬 환희와 열망 또한 쓰거운 고통과 고뇌마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대리체험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꾼의 자질, 낭만적 사랑의 수호자로서의 자질 등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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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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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그 애의 머리에 보이지 않는 손을 올려 놓은 진짜 마법사야. 그애는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몽상에 잠긴 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지. 그러고는 네 점퍼를 자기가 입었어. 꽤 어울리더군. 그 애는 자신의 살갗에 닿는 발자크의 말들이 행복과 지성을 갖다줄 거라고 말했어."

-86-87쪽

뤄와 나는 여자들이 가봉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흥분과 조바심과 가슴 저 밑바닥에서 터져나오는 거의 본능적이라 할 욕망에 질색하고 말았따. 그 어떤 정치제도나 경제적 압박도 여자들에게서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아마도 모성애만큼이나 오래됐을, 옷을 잘 입고 싶은 욕망을 빼앗지는 못했다. -168쪽

차츰차츰 거장 뒤마의 뛰어난 마력에 이끌린 나머지 나는 손님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나의 문장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밀도도 더 높아져갔다. 나는 되도록 첫문장의 간결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소설의 구조, 복수의 주제를 얽어놓은 짜임새, 확고하고 교묘하면서도 대담한 솜씨로 결론을 끌어내는 복선에 이르기까지 소설가의 기교를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어 내심 몹시 놀랐다. 그것은 유쾌한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멋진 들걸, 무성한 나뭇가지, 굵직한 뿌리를 드러낸
채 땅에 누은 뿌리 뽑힌 거목을 보는 것과 같았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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