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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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문화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엔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이들은 부르주아 지식인의 자식들인 탓에 궁벽한 시골로 재교육을 받으러 떠난다. 이들은 한창 피끓는 18살의 젊은이들이다. 사랑과 성 그리고 문화와 지식에 대한 욕구로 내면이 가득 달구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락되는 것이라고는 고된 나날의 노동과 약간의 바이올린 연주, 촌장에 의해 명령된 영화 감상이 전부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했던 세상과 고립되어 공산당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온갖 다양한 욕망과 이상과 꿈의 열망에 몸을 내맡겨야할 이들에겐 다시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마저도 희박하다

  그러나 나와 뤄는 상당히 느긋하고 유연해 보인다. 자유와 권리는 약에 쓸래도 없는 상황이지만 마냥 당의 압제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그건 그들이 그만큼 젊음의 왕성한 혈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친구인 안경잡이에게 서양의 다양한 고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발자크'의 소설을 입수한 그들은 발자크가 그려내는 새로운 세계에 깊이 매료된다. 오죽하면 자신의 양털가죽 안쪽에 소설의 구절들을 적어 놓겠는가?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까운 첩첩산중에서 그들이 만난 발자크는 어쩌면 자신들의 암울한 상황을 돌파해줄 하나의 돌파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뤄는 자신들의 끓어 오르는 문화적 욕구를 억누르지 못한다. 그래서 급기야는 안경잡이의 책을 훔쳐내고 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섭렵하게 된다. 나는 로맹롤랑에, 뤄는 발자크에 깊이 빠진다. 그들은 훔친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나는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면서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자못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까닭은 소설의 구조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 후에 적확하게 주제와 기교를 꿰뚫는 경지에 이른 나가 느끼는 기쁨에 나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구축해 놓은 하나의 세계를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해 낼 수 있을 때 기쁘지 않은가....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체험을 발단으로 이야기의 세계에 입문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까?

 나와 뤄에 이어 책들의 영향을 받은 이는 바느질하는 아리따운 소녀이다. 이 소녀는 연인인 뤄에 의해 서양 고전을 접하게 된다. 산골 마을의 순박한 처녀였던 바느질하는 소녀는 사랑을 알게 되고, 성에 눈뜨게 된다. 또한 자신이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존재함을 감지하게 된다. 그녀는 소설의 마지막에 도시로 길을 떠난다. 자신을 만류하는 두 사람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발자크 때문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바느질하는 소녀 역시 자신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다름아닌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서.

 

 이 소설은 하나의 성장 소설로도 읽힌다. 나와 뤄 그리고 바느질하는 소녀는 책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다. 그 세계는 낭만적인 사랑이 있고, 진한 성애도 있고, 문화적 향취도 있었다. 자신들에 내면에 내재해 있던 강렬한 욕망과 꿈에 기름을 끼얹은 책들을 통해 그들은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했고 비약했다.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만약 내가 책을 전혀 볼 수 없는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떨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해 보았다. 책이 보여 주는 미지의 세계는 한발도 들여 놓을 수 없고, 책 자체가 주는 따스한 안정감은 맛볼 수도 없었을테지.... 나와 뤄는 발자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 안에는 달뜬 환희와 열망 또한 쓰거운 고통과 고뇌마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대리체험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꾼의 자질, 낭만적 사랑의 수호자로서의 자질 등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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