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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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명한 간서치인 이덕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읽기 쉽게 그러면서도 고아한 멋과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엮은 책이다. 학문을 향한 깊은 열정과 나라를 바로 세우고 싶은 크나큰 포부를 간직하고 있지만 서얼 출신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조선 중기의 선비 이덕무와그의 벗들의 이야기가 잔자하게 펼쳐진다.



1. 조선 선비 이덕무의 고뇌

이덕무는 너무나 가난해 <맹자>를 팔아 쌀로 바꾸어 먹을 처지이다. 서얼이라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갈 수도 없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늘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가난은 그를 더욱 남루하게 만들고 서얼의 운명은 늘 그의 마음을 어둡고 그늘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책만 보는 바보'이다.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그는 늘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학문의 엄정함에 한 발 한 발 다가선다. 그의 모습이 처연하지만 그의 고뇌가 너무 쓰겁게 느껴지지만, 간서치라 놀림 받으면서도 책을 깊이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아...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을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이야....그의 삶의 방식과 그의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순수함에 감탄을 거듭하며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겼다. 나도 모르게 책에 깊이 몰입하며 조선 중기의 이덕무라는 한 순수한 영혼에 매료되어 갔다.



2.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덕무는 백탑 마을로 이사간 후로 여러 친구들과 교유하게 된다. 그는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등과 정말 마음 따스한 우정을 나눈다. 이서구를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 서얼 출신이라 같은 운명의  굴레를 지고 있기에 더욱 살갑고 다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서로의 학문을 격려하고, 서로의 관심사 - 역사, 경제, 정치 등등-를  나누며 서로 성장을 북돋아 주었다. 이들은 서로 책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서로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이덕무와 그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엿보며 '아 저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나.'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또한 이덕무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이 그들이다. 연암에세게서는 선입견을 버리고 세계를 보는 눈에 대해 배우고, 담헌에게서는 자연과학의 새로운 이치를 전수 받는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 역시 범상치 않으니, 스승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이덕무나 제자를 사랑하는 두 스승의 마음도 정말 일품이었다.



3. 조선 후기 사회상과 풍경들

이덕무는 조선 중기인 18세기 사람이다. 정조가 왕위에 올라 '탕탕평평'을 주창하며 새로운 개혁정치를 꾀하던 시기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고된 일상의 노동에 허덕이고 있었고, 신분질서에 얽매여 차별받는 신세였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생활과 유리된 공허한 학문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공자와 맹자를 읽으면서도 늘 백성과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고, 어떻게 하면 백성을 편리하고 안락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들은 진정한 실학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청나라에 가서 본 새로운 문물들을 받아 들여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고자 끊임없이 책을 쓰고 그러한 정책을 입안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치부하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의 발달된 문물을 수용하려는 개혁적이고 선진적인 학자들이었다. 이덕무의 이 책을 통해 조선 중기의 경제상, 사회상, 정치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으며 그 당시 소장파 학자들의 면면도 살펴 볼 수 있게 되었다.



4. 새로운 이상을 펼치는 이덕무와 벗들

이덕무는 나이 40이 되어서야 드디어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일을 맡게 된다. 그는 자신도 쓸모 있는 존재임을 인정 받고 너무나 기뻐한다. 자신의 신분의 질곡에서 조금은 해방되어 열심히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박제가나 유득공 그리고 백동수 역시 임금의 부름을 받게 되어 자신들의 이상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어려운 와중에도 늘 자신을 갈고 닦으며 열심히 노력했더니 나중에나마 뜻하던 바를 하나씩 이루어
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심히 부끄러웠다. 끝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목표를 붙잡고 놓지 않았던 그들이기에 세상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우연히 잡아 들긴 했지만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멋진 지식인상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더불어 그들의 따스한 우정과 교유는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었다. 자신의 운명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책을 놓지 않았던 '간서치'들과의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고 유익했다. 그들은 책만 읽는 바보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늘 책과 함께하고, 책을 사랑하고, 책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갔기에 그들은자신들의 이상을 마침내는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의 면면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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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길을 묻다 - 혼자 떠나는 세계도시여행
이나미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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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정취와 풍경을 책으로나 대신 맛보고 싶은 마음에 엄청 기대를 하고 구입한 책이었으나....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비껴가 버린 이 책을 어쩌란 말인가? 저자는 두번의 프라하 여행기를 '1. 길을 잃다 2. 길을 찾다'라는 2개의 챕터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저자는 시간에 쫓기고 쫓기다 급기야는 시간때문에 피해 망상증에  시달리고 만다. 자신의 비정상성에 위기감을 느끼며 일상에서의 작은 탈출을 감행한다. 그 목적지는 두번 다 프라하였으며, 두번째 여행에서 저자는 프라하를 마치 고향으로 인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서점에서 첫대면한 책은 멋진 표지사진과 우수어린 제목 탓에 나의 시선을 꽤나 끌었다. 여행기를 읽는 사람의 기대심리는 무엇일까? 대리만족에 다름아니겠지. '아...나도 한번 프라하라는 낯선 공간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싶은데....'하는 망상과 공상에 빠질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책속에 수록된 프라하의 풍경은 코발트 블루의 색채로 물들어 있다. 날씨는 꽤나 궂어서 추위와 비와 바람이 계속된다. 유명한 까를교, 마쿨리쉬 성당은 물론 프라하 시가지의 아기자기한 풍경은 물론 그 곳 사람들과 관광객들의 모습도 스케치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서 연신 감탄했다. 그 곳의 우수 어린 풍경과 정취가 까닭없이 내 마음 한켠을 자꾸 자극했기 때문이다. 미미한 한숨을 내쉬며 사진을 자꾸 들여다 봤다.


프라하는 또한 <변신>을 쓴 카프카의 도시이기도 하다. 생전엔 인정받지 못하고 이방인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며 문학을 했던 그가 살았던 곳이다. 카프카의 아우라탓일까? 프라하가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러나 솔직히 저자의 글은 실망스러웠다. 자기고백적인 성격의 글들이 지배적이었고, 지나치게 긴 문장들이 독서의 흐름을 깨곤 했다. 물론 여행기라는 것이 지극히 사적인 성격의 글이긴 하지만, 독자들은 그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던가? 그런 면에서 이 여행기는 감정이입과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여행기를 통해 '마음으로 하는 여행'을 시도해 보려했건만 거기까지는 이 책의 능력밖이었나 보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프라하는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다. 그 곳으로 미래의 어느 순간 나도 나 혼자만의 여행을 감행해 보고 싶다. 낯선 곳에서 홀로 떠나야지만 길을 잃기도 하고 찾을 수도 있다지 않은가...몸과 마음으로 가득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반드시 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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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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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에 관한 책'이다 평소 책이라는 존재 그자체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이곤 한다. 처음 보는 작가와 생소한 제목이었지만, 특이한 책표지와 제목이 구미를 당겼다.

책의 화자는 다름아닌 '책'이다. 책의 목소리로 책의 삶을 기술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거 동어반복이 너무 심하잖아...) 인간의 시각이 아닌 책의 시각에서 '책'을 바라 볼 수 있도록 해 주려는 작가 나름의 장치인 것 같다.


책은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손놀림과 무식함에 치를 떤다. 자신들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쓰다듬고 내팽개치는 인간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씩씩거린다. 서점 판매대에 놓여 있는 책들을 아무렇게나 만져대는 인간들을 심하게 비웃는다. 이 책을 읽은 후 서점에서 책을 만지는 행위가 심히 조심스러워졌다. ㅋㅋㅋ


또한 도서관에 갇힌 책들의 신세를 마치 매춘부에 비교하기도 한다. 기발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입맛이 쓰다. 그리고 책은 자신을 만들어내는 출판사 사장, 편집자, 작가, 인쇄공들을 쉬지 않고 조롱하고 풍자한다. 책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으면서 오직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책을 찍어내는 자들을 침튀기며 고발한다.


작가의 신랄한 풍자와 입담은 실소를 머금게 한다. 재밌고 기발한 소설이면서 책의 탄생, 성장, 소멸에 대한 작은 역사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것이다.

 

책을 깨끗이 보고, 소중히 모셔 놓기만 하는 것이 책에 대한 예우일까? 책은 물질이라는 형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용이라는 문화적 자산으로도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에 즐거이 향유하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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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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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는 상당히 청순해 보이는 옆모습과 아릿아릿한 문체로 기억되는 작가이다. 그녀의 투명한 에세이를 재밌게 읽은 탓에 <도쿄타워>도 주저없이 고르게 되었다. 어떤 남모를 기대감을 안고....그녀의 소설은 왠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이 소설엔 두명의 20살짜리 남자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토오루와 코우지이다. 20살이지만 왠지 아직도 어리디 어린 철부지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이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 구조는 이 두 사람의 두 가지 사랑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랑 지상주의자인 토오루와 쾌락 탐닉주의자인 코우지의 사랑 이야기가 교차되며 펼쳐진다. 토오루는 연상의 여인 시후미에게 단단히 빠져든 상태이다. 엄마의 친구인 시후미는 토오루보다 훨씬 연상이며 유부녀이다. 그들은 흔히 일컫듯 불륜관계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불륜으로 단죄하기엔 왠지 석연치 않아 보인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플라토닉하게 느껴지기에....토오루는 자신의 전존재를 열어 두고 시후미를 느끼고 사랑하려 한다. 그녀를 통해 음악과 책을 만나고,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려 한다. 토오루는 모든 것을 시후미와 함께 하고 싶어하며, 불가능한 현실 가운데서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시후미는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한다.



토오루의 사랑은 가슴 아리다. 그 순수성과 맹목성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든다. 그것이 비록 불륜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을망정.....그의 사랑에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만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쓸쓸한 집 거실에서 그는 오후가 되면 시후미의 전화를 기다린다. 시후미란 존재 외엔 그에게 다른 일들은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의 무미건조한 일상과 맹목적인 사랑은 일견 허무주의적 그림자를 느끼게 만든다. 아무리 사랑보다 더 큰 가치가 없다지만, 그의 일상은 왠지 터무니없어 보인다. 낭만적이고 이상적 사랑이 낳은 부작용일까? 알 수 없다. 그래도 아름답다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반면에 코우지는 일상의 삶에 충실한 생활인처럼 보이다. 그러나 그는 이중생활을 즐긴다. 건실한 학생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의 내면엔 쾌락에 탐닉하는 한 인간의 다중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유리라는 애인을 사귀면서도 기미코라는 유부녀와의 육체관계에 탐닉한다. 또한 친구의 엄마와 사귀었던 전력도 가지고 있다. 코우지는 연애를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자신의 순수성을 저버리는 소모적인 사랑에 골몰한다. 그러나 이런 걸 사필귀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기미코에게도 버림 받고, 유리에게도 차인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의 엄마와 사귄 벌도 톡톡히 치르게 된다. 그가 견고하게 꾸려가는 것만 같았던 관계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모든 게 그의 쾌락에 탐닉해 절제를 몰랐던 삶의 방식에 기인한다. 그는 사랑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또한 사랑의 순수성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두 가지 사랑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한 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또 한 사람의 방종한 사랑(?)이 나를 생각케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나? 토오루의 투명하디 투명한 사랑은 아름답지만 현실인으로서의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허무감과 나도 모르게 밀려 드는 슬픔에 멈칫거리게 된다. 또한 코우지의 방종한 사랑 역시 공감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말은 단순히 성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두 가지 사랑 모두 조금은 아프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아직 미완의 사랑이어서일까? 그들은 아직 사랑을 모르고 있으며, 배우고 있는 단계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울컥하는 문장들을 간간이 만났다. 특히 토오루가 시후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적으로 토로하는 장면들은 단연 빛이 났다. 그의 말과 생각에 공감하고 때론 전율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랑은 왜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걸까?'하고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것이 사랑의 속성일까? 사람들은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사랑에 매달린다. 아픔 뒤엔 치유가 고통 뒤엔 환희가 밀려드는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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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인사 갈마들 총서 1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오두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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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한잔 아니면 두잔 커피를 음미하는 나 자신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개운치 않은 상태가 나타났으니.....내 자신의 개인적 기호는 물론이거니와 커피를 권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 탓인지 어느새 자연스레 나는 '커피 의존형 인간'이 되고 말았다. 커피가 뿜는 묘한 분위기와 세련미때문일까? 커피는 묘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커피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묘한 마력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감성을 자극한다. 그런 힘때문인지 요즘 커피 의존형 인간들이 갈수록 증가해 가는 추세인 것 같다.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는 우리 사회에 커피가 최초로 들어 온 개화기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배경으로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풍속사를 그리고 있다. 커피는 우리 나라에 들어 올 당시부터 꽤 인기를 끌었다. 고종황제 역시 커피를 즐겼다고 하니.... 커피는 처음에는 선교사나 외교관들과의 사교 장소에서 많이 음용되었는데, 일제시대때부터는 많이 대중화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다방의 역할 때문이었다. 서울 명동 일대에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다방은 우리나라 지식인들과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작가 이상이 다방을 차려 운영했을 정도이다. 쟁쟁한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모여 예술을 논하고,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논했으니 다방은 그 당시의 공론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50년대에 6.25가 터지면서 미군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구호물품 속에 들어 있던 커피가 일반대중들에게 퍼지게 되었다. 처음에 커피의 용도를 몰랐던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 후에 복통이 나고 설사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해충약으로 썼다고 한다.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는데....커피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한껏 고조시켰으며 다양한 관심을 받았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서양 신식 문물의 한 상징인 커피였으니 두 말할 것도 없다.

  60, 70 년대에도 끊임없이 커피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음료의 전형으로 회자되었다. 사람들은 커피가 귀한만큼 귀한 손님들이 오면 어김없이 커피를 대접했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는데, 가정방문을 하는 교사들은 하루에 십수잔의 커피를 마시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70년대에 드디어 동서식품에 의해 국산 커피가 시판되었는데, 이로써 커피는 대중화되는 전기를 맞았다. 일본이나 대만 등지보다 우리나라에서 음용되는 커피수가 2배 정도 많은 것을 보니 얼마나 커피를 애호하고 즐겼는지 알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가 마치 커피의 대명사인 냥 알려졌던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원두커피가 새로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순수한 커피의 향기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원두커피는 보다 고급스러운 맛을 찾던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또한 에스프레소 커피도 대중화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커피들이 등장함으로써 점점 커피는 그 다양성을 맘껏 뽐냈다. 책 제목에도 언급된 스타벅스는 미국의 커피 전문점 체인인데, 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 진출했는데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스타벅스에 가서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세련된 미국취향을 대변하게 되었고,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끊임없이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반면에 우리들의 사랑방이자, 연락처의 역할을 했던 다방은 오늘날 티켓다방과 같이 퇴폐영업을 하는 온상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커피는 세련된 서구 지향 의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음료이다. 사람들은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자신이 세련된 감수성과 교양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자기만족 내지는 도취에 빠지게 된다. 물론 커피가 가지는 고유의 맛과 향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이건 커피가 갖는 묘한 아우라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거 같다. 이 책이 증명하듯 한국인들은 초창기부터 커피를 애호해 왔고, 오늘날 역시 커피는 질리지 않고 사랑받는 음료이다. 커피는 우리 사회의 의식과 사고관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커피가 갖는 사회사적 의미를 되짚어 봄으로써 한국인들의 의식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다음번엔 <커피 견문록>이라는 책에 도전함으로써 커피의 다른 면모에 대해 알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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