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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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처음 눈을 맞췄을 때부터 끌렸다.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이라는 재미난 제목도 그렇고 쭈욱 훑어 본 목차에 담긴 생동감 넘치는 제목들을 읽고 나니 더욱 읽고 싶어졌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사계절을 아우르며 고향의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사람살이가 그려져 있다. 변산이라는 바닷가 마을의 짭쪼름한 갯내음도 느껴지고, 농촌에서 키워지는 여러 곡식들, 채소들의 풋풋한 내음도 밀려 왔다. 이 책에 빠지는 순간은 나 역시 유년의 추억에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어린 시절 큰댁 해남에서의 추억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엔 큰댁에 가면 가마솥에 나무로 불을 지펴서 밥을 해먹고는 했다. 집도 옛날 기와집었고, 고구마 농사를 지어 사람이 기거하는 방에다가 저장했던 기억도 난다. 또 마을에 달랑 하나 있는 점방에 가기 위해 거의 고개 하나를 힘겹게 넘어가 과자를 사왔던 그림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재미나다. 시골에서의 알콩달콩한 추억은 곱씹을 수록 맛나다.

  지은이는 시인이자 농사꾼이다. 어릴 적부터 장성해서까지 땅에서 살고, 땅과 함께 호흡해 온 진짜배기 농사꾼이다. 또 그러한 삶의 자양분을 가지고 시를 쓰는 시인기도 하다. 그의 시는 이 책에 나온 <추석이 낼모레>라는 시가 처음이지만 그 시를 읽으며 그의 삶과 시에 담긴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난하고 소박한 살림살이를 정성으로 꾸려가며 힘겹고 고단한 삶을 건강하게 살아냈던 우리네 농사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계속해서 가슴이 묵직해져 왔다. 농사를 지으며 근근히 입에 풀칠하고 그러면서도 생명력있는 삶을 일구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과 같은 물질만능의 시대에 편리함과 안일함만을 좇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은이가 펼쳐 놓은 이야기 마당은 참으로 찰지고 쫀득쫀득하다. 변산바다 쭈꾸미 맛이 그러할까? 또 고구마 퉁가리의 살오른 고구마처럼 달크작작하기도 하다. 변산바다를 면한 농촌마을 사람들의 쉰내나고 땀내나는 이야기는 물론이요, 변변한 먹을 거리도 없지만 늘 입을 즐겁게 할 먹거리들을 찾아낸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또  농사꾼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신산함과 고단함도 묻어나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숨짓게도 된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신명이 넘치고 생명력이 넘친다. 그래서 읽는 중에 나도 모르게 키드키득 웃음 짓게도 되고, 맛난 먹거리들 이야기에 침이 입에 고이기도 한다. 요즈음 세상에 만나기 힘든 소박하고 질박하며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단지 추억 속으로 밀어 넣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는 우리에게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이 책은 나에게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  시인 박형진이 살아 냈던 삶의 면면을 보며 시란 문학이란 이렇게 신성한 노동가운데 영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의 체취가 묻어나는 시와 수필을 읽으며 글의 힘은 아무렇게나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의 삶과 고향사람들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 아름다운 삶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 보길 권유하는 것만 같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가운데 신명과 건강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행복하고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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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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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를 마무리했다. <우무메의 여름>때문일까? 이런 공포스러운 추리 소설은 그닥 즐기지 않았는데, <우무메의 여름>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소설이었기에, <망량의 상자>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생소하기 짝이 없는 '망량'의 존재를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망량은 요괴와 같은 존재로 볼 수 있는데, 명확하게 규정되는 요괴는 아닌 것 같다. 교고쿠도에 의해 규명되는 '망량'에 대한 사설은 장황하고도 무궁무진해서 무슨 뜬구름잡는 소리마냥 느껴졌다. 그러나  이야기를 쫓다 보니 작가가 상정한 '망량'에 대해서도 희미한 감이나마 잡을 수 있었다.어쩌면 망량은 외형적으로 존재하는 요괴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깃든 - 인간의 뿌리깊은 망상과 욕심을 먹고 사는 존재-요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큰 축은 가나코라는 소녀의 살인미수 및  유괴사건과 연속 토막 살인 사건이다.  사건은 혼란을 거듭하고 다양한 인물들- 교고쿠도, 세키구치, 기바, 에노키즈, 도리구치-에 의해 다양한 방향에서 해결을 모색된다. 고서점 주인, 소설가, 형사,탐정, 삼류잡지 편집자들인 주인공들은 다층적인 방식으로 사건과 연관되어 있고, 서로 하나하나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접점을 찾아 낸다.  이야기의 두 축인 두가지 사건의 배후엔 상자와 망량이라는 모티브가 등장한다. 계속되는 이야기는 미궁으로 치닫고, 기이한 사건들과 토막살인이라는 엽기적인 설정은 나를 계속해서 어지럽게 한다. 인간을 잔혹하게 토막내어 상자에 담는 인간의 내면을 계속해서 헉헉거리며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숨이 막혀 왔다. 이 소설은 사람을 강하게 흡입하면서도 그 독특한 세계관과 기이한 사건 설정으로 나를 밀어냈다. 다 읽고 나니 왠지 진땀이 나면서 어지러워졌다. 힘겨운 독서였다.

 이 소설은 공포스러운 살인사건을 추적해 가는 추리 소설이지만, 어쩌면 인간의 망상 -망량같이 끈질긴 존재-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겐 망량의 존재를 규명하고, 망량이 인간을 어떻게 옥죄고 괴롭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이 소설엔 망량에 사로잡혀서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인물들이 등장한다. 불사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 미친듯이 연구에 매진한 과학자이자 의사인 미마사카가 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상상불허의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죽어 가는 인간을 거대한 상자에 가두는 것인데, 그것은 지극히 비인간적인 방법이었다. 미마사카는 오로지 자신의 천재성이 빚어낸 광기에 사로 잡혀 인간의 진정성을 망각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에게 인간은 존엄성을 갖춘 존재가 아닌 생물학적인 실험 도구로써 기능할 뿐이다. 또 한명 구보 슌코는 비참한 인생행로를 걸어 오며 삐뚤어져 버린 인간인데, 기이하고 잔혹한 상자 속의 소녀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는 '상자 속의 소녀'모티브를 현실에서 체험한 후에 그것을 소설화한다. 그런 연후에 그는 현실에서 소녀들을 죽여서 상자 속에 박제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끈질기고 무서운 망량이어서 현실화시키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건의 중심축이 되는 두 인물은 모두 상자에 집착한다. 상자에 자신의 망량과도 같은 망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의 기묘하고 비뚤어진 욕망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안겨 준다. 한 인간의 망상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악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 이 소설은 섬뜩하게 보여 준다. 이 두 인물은 단순히 범죄자로 규정해 버리기엔 무언가 뒷맛이 좋지 않다. 그들은 범죄를 위해 살인과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망상과 비뚤어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찌 보면 아무 생각없이(?) 살인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준다. 소설의 외형적인 이야기는 잔혹하고 슬프고 역겹기 짝이 없다. 그러나 소설의 내면에 한 발 다가가 보면 무섭도록 슬픈 망량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내면이 만져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망량을 상자속에 집어 넣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완성하려 했지만, 그것은 파괴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았다.

 상자는 완벽한 정합체처럼 보인다.  미마사카와 구보에게 상자는 단단하고 정교하며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안온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상자는 파괴적이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들의 꿈과 이상을 담을 완벽한 그릇처럼 보였지만,  그 본질은 '망량이 깃든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망량의 존재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해 생각케 한 이 소설은 나에게 어지러움증과 울렁거림을 가져다 주었다. 끝없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이제는 나 스스로 답해 보아야 겠다. 아직도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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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 2006-01-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흑...마이 리뷰로 옮기다 보니 댓글도 사라져 버림...댓글 남겨 주시고 추천해 주신 아영엄마님 죄송해요...ㅜ.ㅡ
 
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밀리언셀러 클럽 22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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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것은 신선한 즐거움을 던져 준다. <실버 피그>를 통해 나는 로마 제정 시대의 탐정인  마르쿠스 디디우스 팔코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제 막 서른이 되었고, 여자를 좋아하며, 늘 집세를 밀려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지만, 탐정이 가져야 할 모험심과 지략을 적당히  갖춘 인물이다. 셜록 홈즈 이후로 나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은 탐정이다. 린지 데이비스가 창조해낸 팔코는 낡은 튜닉과 토가를 입고, 낮은 계급과 불우한 생활 가운데서도 결코 쳐져 있지 않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며, 자신이 맡은 사건을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 한다. 또한 그는 로마 제정에 찬성하지 않는 공화주의자이기도 하다. 신분의 질곡탓에 사랑하는 여인과 맺어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는 그것 때문에 안달하지 않는다.

 <실버피그>는 로마 제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 소설이다. 로마 시대의 풍속사와 사회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담은 소설적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여행을 하는 즐거움도 준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두 배의 즐거움을 안겨 준다. 새롭게 등극한 베스파시우누스 황제에 대항하고자 불온한 세력들이 브리타니아 광산에서 생산되는 은으로 만들어진 잉곳(실버 피그)를 빼돌린다. 그러는 과정 중에 소시아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납치되고 그 아가씨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팔코가 이 사건에 연루된다. 소시아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매혹된 팔코는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몸을 던지는데, 소시아는 괴한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팔코는 사건 해결의 의지를 불태우면 브리타니아로 떠난다.

  팔코는 직접 브리타니아의 은광산에 잠입해 노예로 가장하고 지옥같은 나날을 경험한다. 채찍과 성희롱 과중한 노동을 견디며, 사건의 추이를 살핀다. 그러는 와중에 은잉곳이 어떻게 빼돌려 지는지를 감지하게 되고, 불온 세력들의 명단을 파악하게 된다. 팔코는 몸으로 직접 부딪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다. 어찌 보면 미려하고 우직해 보이지만, 여기서 그의 순수한 용기를 엿볼 수 있다. 잔머리나 약은 꾀가 아니라, 직접 사건을 정면 돌파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팔코는 소시아의 사촌 언니인 헬레나를 만나게 된다. <실버 피그>에서 팔코의 사건 해결담과 더불어 또 하나의 큰 줄기는 그와 헬레나의 사랑 이야기이다. 헬레나는 원로원 의원의 딸로 아름답고 고상하지만, 냉담하고 명철한 여인이다. 팔코와 헬레나는 처음엔 오해때문에 티격태격하고 어긋나지만, 점차 사건을 함께 해결해감에 따라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헬레나를 향한 팔코의 사랑을 깊어만 가지만, 그들의 신분과 재산의 격차는 크기만 하다. 그래서 헬레나를 놓으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소설의 마지막에 팔코는 스스로 재산을 모아 자신의 신분을 2계급으로 높이고 헬레나를 맞이하겠다고 결심한다. 모험담도 모험담이지만, 나는 이들의 연애담에 큰 감동을 받았다. 팔코의 헬레나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갈등과 혼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끝내 용기를 내는 것을 보고 왠지 나도 힘이 났다.

 마침내 사건의 주모자들을 잡아 내게 되는데, 그들은 소시아의 아버지이며, 헬레나의 남편이었다. 그들은 베스파시우누스 황제의 둘째 아들과 함께 반역을 꾀한 것이었다. 팔코의 용기와 지략을 통해 사건을 해결되고, 로마는 다시 평화를 찾는다. 실버 피그를 찾는 과정 중에 팔코는 상처도 입고, 괴로운 경험도 하지만, 헬레나라는 값진 사랑을 얻게 되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실버 피그>는 역사 추리 소설의 매력을 가득 느끼게 해 준다. 로마 시대의  황제, 원로원 의원들, 군인, 관리, 중산층, 노예들과 같은 각계 각층의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 준다. 또한 로마 시대의 목욕탕, 연무장,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 저잣거리를 생생하게 묘파함으로써 먼 과거로의 생생한 여행을 가능케 한다. 이 소설은 로마로의 여행담임과 동시에, 팔코라는 한 탐정의 모험담과 연애담이다. 이 즐거움에 계속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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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전집 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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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과 사랑 없는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루한 편견과 사회적 인습에 파묻혀 살아 가다 보면 진정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열정과 사랑을 사장시켜 버릴 수도 있다. <전망 좋은 방>에는 두가지의 대조적인 세계관을 가진 인물군이 등장한다. 아직도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습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물들과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서 열정과 사랑을 길어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대척점에 선 인물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와 그 가치를 온 몸으로 대변하며 20세기 초의 영국 사회의 현실과 풍경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소설은 당시의 영국 사회의 인습, 편견은 물론 고루한 구시대적 가치를 깨트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가려는 움직임까지 포착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이 생생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구현되는데, 이는 읽는 재미를 주는 데 손색이 없다.

 루시와 그녀의 샤프롱 샬럿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베르톨루치 펜션에 머무르게 된 그들은 첫번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이 원했던 '전망 좋은 방'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또다른 투숙자인 에머슨 씨 부자가 루시와 샬럿에게 자신들의 방을 양보하려 한다. 거기서부터 두가지의 사고방식은 충돌하게 된다. 영국식의 고루한 예의범절에 따르면 방을 바꾸는 것은 영 찜찜한 일이었던가 보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에 비춰 보면, 루시와 샬럿의 사고방식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지만, 그것이 당시 영국인들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영국 상류층들만의 예의범절과 허영심, 편견과 인습에 대항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에머슨씨 부자이다. 아버지 에머슨씨와 그의 아들 조지는 함께 투숙했던 영국인들에게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 에머슨씨가 베푸는 격의없는 친절과 관심은 마음이 굳어버린 영국인들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머슨씨는 사회주의자이며 신문기자인 것으로 설정 되어 있는데, 그의 사상적 배경이나 직업 역시 베르톨루치 펜션 사람들에게는 못마땅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에머슨 씨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회적 인습과 질서에 매몰되어 진정한 자신의 열정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연민과 사랑을 건네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선각자와 같은 인물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늘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며, 먼저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조지는 어둡고 우울한 표정의 방황하는 젊은이처럼 비춰지지만 그의 내면에는 불타는 열정이 있다.

 주인공인 루시는 중간자적 인물로 상정되어 있다. 음악을 통해 구현되는 그녀의 열정은 아직은 미약한 상태이다. 아직 어린 나이인 루시는 이탈리아라는 신세계로 떠나 왔지만, 샬럿이라는 기성 세대의 가치관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이다. 루시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그리고 영국인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경험하게 되지만, 아직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데 서툴다. 그래서 조지와의 사랑에서도 뒷걸음치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룰에 적당히 안주하려 한다. 그러나 에머슨씨가 설파하는 열정과 사랑이 지배하는 삶에 깊이 감동받는다. 그럼으로써 조지의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눈뜨게 되며, 그 사랑을 받아 들이게 된다.

  <전망 좋은 방>은 20세기 영국의 사회사를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로맨틱한 연애 이야기를 얼개로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가감없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인물들은 갈등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길인가? 어떤 삶을 살아 내는 것이 좋은가? 루시도 고민하고, 샬럿도 고민하고, 의식이 있는 자라면 모두들 갈등과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에머슨씨가 보여 주는 진실함, 정직함, 진보적 사고는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 준다. 더불어 조지와 루시의 젊은이다운 순수한 열정과 패기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마지막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조지와 루시는 모든 현실적 어려움을 뒤로 한 채 다시금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탈리아의 전망 좋은 방에서 이제는 함께 그 전망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참 아름다운 결말이다. 새로운 세대인 조지와 루시는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들은 앞으로의 전망을 갖고 삶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전망 좋은 방에 머물고 싶다. 새로운 전망을 맛보고, 넓고 깊은 시야를 확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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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 2권 - 1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 쇼퍼홀릭 시리즈 2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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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 2번째 이야기 - 레버카 맨해튼을 접수하다. - 첫번째 권을 마무리하고, 두번째 이야기에 안착했다. 이야기의 구조는 1권과 패턴이 똑같다. 레베카의 방종한 쇼핑 중독을 한참 정신없이 그리고 맛깔스럽게 그린다. 레베카의 뇌속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쇼핑활동의 메커니즘은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소유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레베카를 보고 있으면 그건 남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방송활동으로 명성도 얻고, 멋지고 유능한 루크같은 남자친구도 생겼지만, 레베카의 쇼핑중독은 치유되지 않았다. 그게 어디 금방 낫는 병이던가? 루크와 함께 뉴욕에 상륙한 레베카는 또다시 불타는 쇼핑욕에 잠식당하고, 구게함임과 성패트릭 성당을 보는 대신 소호의 쇼핑가와 견본품 세일을 쫓아 다니느라 발에 불이 난다. 이러는 과정 중에 영국인 레베카는 미국에서의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기도 하고, 미국식 친절과 미국 상품에 매료되기도 한다.

 레베카라는 인물은 브리짓 존스나 아니면 영국식 코미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혼 여성처럼 보인다.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순진한(?) 거짓말에 능하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언제나 물먹는 조금은 어리버리한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조금은 멋지고 당당하게 보이고자 내질렀던 거짓말들 때문에 늘 바보가 되곤 하지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우리의 레베카...그녀의 모습을 하릴없이 보고 있노라면 왠지 위안이 되곤 하니 이 어찌 된 노릇일까?

 레베카는 미국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쇼퍼홀릭 기질을 잠재우지 못하고 드레스, 재킷, 화장품을 마구 사기에 이른다. 결국은 안부카드를 사는 데도 돈을 물쓰듯이 쓴다. 자신의 재정상태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제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데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만다. <데일리 월드>에 그녀의 이중 생활이 폭로되고, 속비고 머리 빈 쇼핑 중독자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만다. 그 때문에 그녀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남자친구 루크와의 관계도 깨어질 위기에 놓이는데.....

 아직 2권을 읽지 않은 상태이지만, 우리의 레베카는 또다시 이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기지와 무대뽀 정신을 발휘해서 사건을 해결하고야 말 것이다. 바보처럼 어리숙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레베카는 자신의 상황을 급반전시키는 타고난 순발력이 있다. 그녀의 위기 관리 능력(?)은 탁월하고, 기지와 용기는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이다..하하하~

 '정신없는 쇼핑중독 상태 - 급격한 추락- 다시 비상'이라는 상태를 반복하는 레베카가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자신의 삶을 잘 통제하고 계획적으로 꾸려 갈 수 있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가? 늘 재정곤란에 허덕이고,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상태에 머물러야 하는가? 레베카의 철없는 쇼핑벽은 어쩌면 쉽게 고쳐지지 않을지도 모르다. 상실된 통제능력을 되찾는 일은 정말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제가는 철들 날이 있을테고, 그녀만의 장점과 매력은 더 빛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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