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전집 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열정과 사랑 없는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루한 편견과 사회적 인습에 파묻혀 살아 가다 보면 진정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열정과 사랑을 사장시켜 버릴 수도 있다. <전망 좋은 방>에는 두가지의 대조적인 세계관을 가진 인물군이 등장한다. 아직도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습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물들과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서 열정과 사랑을 길어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대척점에 선 인물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와 그 가치를 온 몸으로 대변하며 20세기 초의 영국 사회의 현실과 풍경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소설은 당시의 영국 사회의 인습, 편견은 물론 고루한 구시대적 가치를 깨트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가려는 움직임까지 포착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이 생생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구현되는데, 이는 읽는 재미를 주는 데 손색이 없다.

 루시와 그녀의 샤프롱 샬럿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베르톨루치 펜션에 머무르게 된 그들은 첫번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이 원했던 '전망 좋은 방'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또다른 투숙자인 에머슨 씨 부자가 루시와 샬럿에게 자신들의 방을 양보하려 한다. 거기서부터 두가지의 사고방식은 충돌하게 된다. 영국식의 고루한 예의범절에 따르면 방을 바꾸는 것은 영 찜찜한 일이었던가 보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에 비춰 보면, 루시와 샬럿의 사고방식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지만, 그것이 당시 영국인들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영국 상류층들만의 예의범절과 허영심, 편견과 인습에 대항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에머슨씨 부자이다. 아버지 에머슨씨와 그의 아들 조지는 함께 투숙했던 영국인들에게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 에머슨씨가 베푸는 격의없는 친절과 관심은 마음이 굳어버린 영국인들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머슨씨는 사회주의자이며 신문기자인 것으로 설정 되어 있는데, 그의 사상적 배경이나 직업 역시 베르톨루치 펜션 사람들에게는 못마땅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에머슨 씨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회적 인습과 질서에 매몰되어 진정한 자신의 열정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연민과 사랑을 건네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선각자와 같은 인물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늘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며, 먼저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조지는 어둡고 우울한 표정의 방황하는 젊은이처럼 비춰지지만 그의 내면에는 불타는 열정이 있다.

 주인공인 루시는 중간자적 인물로 상정되어 있다. 음악을 통해 구현되는 그녀의 열정은 아직은 미약한 상태이다. 아직 어린 나이인 루시는 이탈리아라는 신세계로 떠나 왔지만, 샬럿이라는 기성 세대의 가치관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이다. 루시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그리고 영국인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경험하게 되지만, 아직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데 서툴다. 그래서 조지와의 사랑에서도 뒷걸음치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룰에 적당히 안주하려 한다. 그러나 에머슨씨가 설파하는 열정과 사랑이 지배하는 삶에 깊이 감동받는다. 그럼으로써 조지의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눈뜨게 되며, 그 사랑을 받아 들이게 된다.

  <전망 좋은 방>은 20세기 영국의 사회사를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로맨틱한 연애 이야기를 얼개로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가감없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인물들은 갈등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길인가? 어떤 삶을 살아 내는 것이 좋은가? 루시도 고민하고, 샬럿도 고민하고, 의식이 있는 자라면 모두들 갈등과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에머슨씨가 보여 주는 진실함, 정직함, 진보적 사고는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 준다. 더불어 조지와 루시의 젊은이다운 순수한 열정과 패기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마지막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조지와 루시는 모든 현실적 어려움을 뒤로 한 채 다시금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탈리아의 전망 좋은 방에서 이제는 함께 그 전망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참 아름다운 결말이다. 새로운 세대인 조지와 루시는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들은 앞으로의 전망을 갖고 삶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전망 좋은 방에 머물고 싶다. 새로운 전망을 맛보고, 넓고 깊은 시야를 확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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