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헤밍웨이
힐러리 헤밍웨이.칼린 브레넌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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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끄럽게도 제대로 읽은 헤밍웨이 작품이 하나 없는 것 같다. <노인과 바다>를 읽기는 했지만, 중학교 때 읽은 축약본이 다다.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 봐도 헤밍웨이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예전에 알던 언니의 화실에서 본 숀 코네리를 닮은 초상화만 내 기억의 한 자락을 점유하고 있을 뿐....헤밍웨이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의 작품 이름들, 사진을 통해 본 중후한 외모, 쿠바에서 체류했었다는 정도이다.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헤밍웨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이야기이도 하지만, 바다 사나이로서의 그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백파운드나 나가는 청새치를 잡아 올리기 위해 온 정력을 다 쏟는 헤밍웨이의 면모라니....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그의 그런 실제적인 낚시 체험은 그의 작품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쿠바에서 그는 끊임없이 청새치를 잡기 위해 애쓴다. 몇시간 동안 낚시줄을 잡고, 상어떼들로부터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다. <노인과 바다>역시 그의 체험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다. 직접 바다에 나가보고, 바다와 싸워 본 그리고 청새치를 잡아 본 후에 그는 작품을 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극적이고 멋지다.

 그는 굉장히 체험을 중요시했던 작가였던 것 같다. 그가 했던 낚시, 그가 만난 사람들, 그의 연인들 등등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그는 작품활동도 열심이고, 낚시도 열심이고, 사랑에 빠지는 것도 열심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는 넘치는 활력, 정력, 에너지 뭐 이런 단어들을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문약한 작가의 이미지가 아닌 쿠바에 입양된 바다 사나이 헤밍웨이의 면모는 확실히 이색적이다.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왜 쿠바에 살았을까? 그는 '쿠바가 세상 다른 어떤 곳만큼이나 그곳의 서늘한 아침이 글쓰기에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시나 작가다운 대답을 했다. 쿠바의 핀카 비히아에서 서늘한 이름 아침에 타자기 앞에 앉은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 그의 서재에 있다는 수많은 책들도 그려진다. 그는 책의 여백에 수많은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책에 대한 짧은 논평은 물론 그의 건강상태, 근황 등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교유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편지 역시 남아 있다. 그의 인생의 흔적은 이제 쿠바 핀카 비히아에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쿠바의 핀카 비히아에 들러 헤밍웨이의 흔적을 감상하고 음미한다.

  쿠바의 헤밍웨이는 진정 삶을 즐길 줄 알았던 듯 하다. 바다에서 낚시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고....그는 한순간도 약동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살아 있는 체험들은 그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헤밍웨이가 왜 쿠바에서 살 수 밖에 없었는지, 쿠바에 있었기에 그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짐작케 된다. 지리적 공간이 한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도 새삼 느낀다. 이제 쿠바와 헤밍웨이를 자동적으로 연결짓게 될 것 같다. 언제가 쿠바에 가게 된다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핀카 비히아에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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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8-0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수가 쓴 '원더랜드 여행기' 를 읽었는데요, 헤밍웨이가 머물렀다는 동네가 나와요. 굉장히 썰렁한 곳인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쿠바의 헤밍웨이는 디비디 부록 준다고 해서 잽싸게 샀던책인데, 의외로 재밌게 읽었더랬지요. 쿠바인들의 헤밍웨이 사랑 이야기가 흥미로왔어요. 헤밍웨이의 여자 이야기들도. ^^

Ruth 2006-08-01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낚시하는 이야기며, 연애담이며 하나같이 흥미롭네요. 헤밍웨이의 열정과 에너지를 담뿍 느끼게 해 준 책이네요. 좋았어요....
 
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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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수 생활 백서'라니....넘쳐나는 백수들의 세상 속에서 나 역시 백수. 잠정적인 백수 상태이긴 하나, 백수 생활을 두 다리 뻗고 즐길 만큼 여유롭진 않다. 백수들의 고뇌와 한숨, 절규가 절절한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책을 내놓은 저의가 뭘까? 자발적 선택에 의한 백수는 행복하고 자유롭다 이건가? 물론 백수라고 해서 아무 목표도 계획도 없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의 백수 서연에게는 끊없는 독서욕과 책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 갈망과 욕망이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목구멍이 막힌 듯 답답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서연의 모습에 자꾸만 내 모습이 중첩된다. 20대 후반의 나이, 백수, 책에 대한 끝간 데 없는 욕망과 허기, 갖고 싶은 책은 꼭 소장해야만 하는 욕심, 생의 허무를 느껴버린 친구들......이 모든 이야기가 어쩐지 너무 낯익고 어색하지 않아 뜨악하기만 하다. 나도 포켓북에 이렇게 끄적거린 적이 있었다. '아, 책만 읽고 살 순 없을까?' 물론 책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지만, 괴롭고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자기만의 방으로 삼아 그 속에 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 속에서라면 우울하고 슬픈 나 자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백수의 삶을 선택한다. 그러저럭 사는 아버지를 둔 덕에 큰 돈을 벌 필요는 없는 서연, 오직 자신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소소한 아르바이트만 할 뿐이다. 약간의 노동의 시간 외엔 그녀는 오직 책을 읽는다. 서연이 읽어대는 수많은 책들의 제목이 등장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신빙성을 더해 줄 많은 책의 구절들이 각주처럼 등장한다. 그렇게 신선할 것 없는 구성방식이다. 문장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백수 생활에서 길어 올린 듯한 잠언 투의 대사도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진다. 백수인 자신을 끊임없이 변호하는 것도 왠지 '뒤가 켕긴 거 아니야?'하는 의심만 증폭시킨다.

 '아, 내 이야기같아'하는 공감은 있지만 생각만큼 스피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진 않는다. 어느 독서광의 일기를 훔쳐 읽는 것 같은 소소한(?) 즐거움은 있지만, 소설적 긴강감은 찾기 어렵다.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같은 게 없어 김이 빠졌다. 아직은 서걱거리는 문장도 책 읽는 속도를 늦추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까? 이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의 선택을 하는 듯하다, 백수생활을 즐기며 책을 읽는 서연,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가 된 유희, 낭만적 사랑을 찾아 홀연히 떠나 버리는 채린. 모두들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도 그들은 왠지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보이지 않는 현실의 자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선택을 변호하고 변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나는 만족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왠지 억지스러운 제스처인 것만 같다.

 이제는 행복하다고 주장하지만 어쩐지 슬프고 공허해 보이는 그들. 메울 길 없어 보이는  이 공허감의 정체는 대체 뭘까? 청춘만이 느끼는 허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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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뉴욕 - 영화와 함께한 뉴욕에서의 408일
백은하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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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다. 영화에 관한 책들은 시들해졌다. 한때는 영화광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나름대로 꽤나 영화를 사랑했던 나였다. 영화를 보고 느끼는 그 순간의 나는  내 영혼이 꿈틀대고 요동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영화가 나에게 주었던 고양감과 충일감이 이제는 그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이제는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잡지 키노도 사라졌고, 내가 가리고 혐오하던 영화들과도 많이 무던해졌다. 나만의 까다로운 영화 감식안도 많이 무뎌져버렸다. 이런 나의 변화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영화에 관한 책들. 영화라는 게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기고, 쉽게 잊혀지고, 쉽게 소비되기에 요즈음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과 책들이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영혼의 전율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 줄만한 책들은 찾기 힘들다. <안녕, 뉴욕>은 씨네 21 기자인 백은하가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경험한 영화의 세계를 그린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잡지사의 기자였던 저자의 글은 꽤 촉촉하고 아름답다. 영화를 단순히 좋아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감수성이 만져진다. 백은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그 영화를 선물한 뉴욕이라는 도시를 스케치한다. 화려하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에세이이다.

  이 책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백은하만의 고유한 감수성과 개성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홀연히 뉴욕이라는 낯선 곳으로 떠난다. 그것도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를 맘껏 감상하는 생활을 만끽하기 위해서.....그래서인지 그녀의 에세이에서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기분좋게 달콤한 자유로움이....아....부럽다. 떠나는 것이 자유로움의 절대적 지표는 아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을 위해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템포 멈춰 서는 것도 괜찮은 것같다.

  뉴욕의 영화 풍경도 인상적이다. 일년 내내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 영화들, 유명한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가 단순히 소비되고 버려지는 느낌이 강한 한국 영화계의 풍토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영혼의 고양감과 충일감을 일깨워 주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들의 죽어버린 - 너무나 자기 편의주의적으로만 기능하는- 의식을 소생시켜 줄 수 있는 영화들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뉴욕의 영화 소녀, 백은하의 글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나이를 먹고 또 먹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언제가는 뉴욕에 가보고 싶다. 뉴욕의 공기, 사람들, 도시 풍경들 가운데서 영화를 보고 싶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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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빵파랑 - My Favorite Things
이우일 글.그림 / 마음산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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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읊조리다 보면 괜스레 짠한 행복감을 느낀다. 모두들 그럴까? 아마 그럴테지...지치고 곤한 일상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 소소한 물건들, 안온한 풍경들을 떠올리다 보면 미소가 내 입가에 벙글벙글 머문다. 겉으로 뜨거운 열광을 표하진 않지만, 누구나 마음 깊은 구석에 자리매김한 좋아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이우일은 이 평범한 듯 유쾌한 자신만의 목록을 우리에게 공개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꼽아 볼까? 이런 하릴없어 보이는 소소한 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 아니 나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해 줄까? 아니면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애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걸까? 이우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재기발랄한 그림과 글로 풀어 낸다. 그의 심각하지 않고 잰체하지 않는 어조가 특히 마음에 든다. 그의 그림들 역시 상당히 귀엽고 재밌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소년의 감수성을 간직한 듯한 이우일의 그림과 글은 나에게 즐거운 선물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동네 마실 나온 듯 버켄스탁을 신고 앉은 나는 책을 읽고 맛보는 내내 키득거렸다. 물론 뒤로 갈수록 조금 흥미가 떨어지고 내용이 헐거워지는 듯한 느낌은 감출 수 없었지만....그래도 아무튼 좋았다. 특히 초반부 이야기들에 흥미롭고 웃긴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온다. 우울한 날, 생의 의욕이 현저히 떨어지고, 생의 낙이 없어 허덕이는 순간에 휴식이 되어 줄 책이다.

 휴식이 아니라면, 생의 에너지를 조금은 불어 넣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우일만의 자유로움과 개성, 장난끼, 재기발랄함이 느껴지는 '옥수수빵파랑의 목록'들은 하나의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 해도 좋았다. 내가 즐기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그래서 이제는 어는 정도 나의 일부분이자 나의 특질이 되어 버린 것들.....이렇게 유쾌하게 자신을 분석해 보고 들여다 보는 일,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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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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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브루클린, 어딘가 모르게 낡았지만 따스한 느낌이 드는 지명이다. 이 곳에 은퇴한 생명 보험 회사 직원인 네이선이 깃든다. 그가 브루클린으로 이주하고 겪는 갖가지 모험담이 숨가쁘게 담긴 이 책 재미있다. 소설적 재미가 강렬해서 책을 꼭 붙들고 있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런데 이제껏 읽었던 폴 오스터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예전 작품들에 비해 폴 오스터만의 신랄함과 날카로움이 많이 누그러들고, 따스한 정감과 인간미가 철철 흐르느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이거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멜로 드라마같은 구성 아니야?' 하며 의아해 하다가도, 허를 찌르는 반전에 반전, 숨가쁘게 회오리치는 그의 펜놀림 앞에서 나는 마냥 헉헉댄다.

 폴 오스터의 소설, 매력적이다. 그가 내세운 주인공 역시 매력적이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네이선이라는 인물은 마치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발악(?)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의 지루할 것으로 예측되는 여생을 온갖 기묘하고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채워내는 그의 일처리 솜씨에 반하고야 말았다. 꼬일대로 꼬인 인생을 살아가는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게 네이선은 마치 비장의 히든카드같다. 우리네 인생에 이런 히든 카드가 있다면 우리는 얼마만큼 속이 편해질까?

 네이선은 히든카드 그 이상이었다.  노년의 함정인  남루함과 초라함, 지루함과 편협함을 그에게서 찾기란 힘들다.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에너지를 주변의 상처입고 한없이 무너져버린 인간들에게 쏟기로 결심한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즐겁게 즐기기 시작한다. 자신의 조카인 톰과 오로라, 오로라의 딸 루시 그리고 새로 친구가 된 해리, 연인이 된 조이스의 삶을 반짝이게 만든다. 그는 모든 사건을 조용히 관망하며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이 진정 필요한 시의적절한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자신의 지혜와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네이선은 만능 해결사는 아니지만, 주변의 사람들의 삶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조용히 돕는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과 행복을 되찾는다. 이렇게 기본 뼈대만 간추리다 보니, 네이선의 이야기가 진부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는 결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것이 네이선의 매력이고, 폴 오스터의 빛나는 재능일 것이다. 네이선은 소설의 말미에 사회의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결코 자신의 전기 따위는 꿈 꿀 수 없는 사람들의 전기를 쓰는  일을 계획하고 꿈꾼다.  그는 왜 이런 일을 꿈꾸는 걸까? 실패하고 뒤틀린 인생에 신음하던 사람들을 도우면서 그는 과연 무엇을 깨달은 걸까? 꼼짝없이 죽음 후에는 아무런 이름없이 묻혀버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을 회고할 만한 책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이 책은 풍자극이라기 보다는 끈적끈적하면서도 유쾌한 모험극같다. 인생사를 수놓을 다양한 사건- 이혼, 질병, 실패, 사기, 불의의 죽음, 광신적 믿음, 노년의 연애. 동성애 등등 -으로 범벅인 된 모험극 말이다. 이 모험의 기반에는 사랑이 있다. 네이선이라는 인물이 발하는 지혜로운 사랑이 주변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 과정이 따스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네이선처럼 평범하고 이름없는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삶을 긍정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을 나도 갖고 싶어졌다. 나이가 들어 가니 점점 편협해지는 것 같은 나에게 네이선은 좀 더 넓은 마음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것을 가르쳐 준다. 네이선의 따스한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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