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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뉴욕 - 영화와 함께한 뉴욕에서의 408일
백은하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글쎄다. 영화에 관한 책들은 시들해졌다. 한때는 영화광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나름대로 꽤나 영화를 사랑했던 나였다. 영화를 보고 느끼는 그 순간의 나는 내 영혼이 꿈틀대고 요동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영화가 나에게 주었던 고양감과 충일감이 이제는 그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이제는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잡지 키노도 사라졌고, 내가 가리고 혐오하던 영화들과도 많이 무던해졌다. 나만의 까다로운 영화 감식안도 많이 무뎌져버렸다. 이런 나의 변화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영화에 관한 책들. 영화라는 게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기고, 쉽게 잊혀지고, 쉽게 소비되기에 요즈음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과 책들이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영혼의 전율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해 줄만한 책들은 찾기 힘들다. <안녕, 뉴욕>은 씨네 21 기자인 백은하가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경험한 영화의 세계를 그린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잡지사의 기자였던 저자의 글은 꽤 촉촉하고 아름답다. 영화를 단순히 좋아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감수성이 만져진다. 백은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그 영화를 선물한 뉴욕이라는 도시를 스케치한다. 화려하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에세이이다.
이 책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백은하만의 고유한 감수성과 개성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홀연히 뉴욕이라는 낯선 곳으로 떠난다. 그것도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를 맘껏 감상하는 생활을 만끽하기 위해서.....그래서인지 그녀의 에세이에서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기분좋게 달콤한 자유로움이....아....부럽다. 떠나는 것이 자유로움의 절대적 지표는 아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을 위해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템포 멈춰 서는 것도 괜찮은 것같다.
뉴욕의 영화 풍경도 인상적이다. 일년 내내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 영화들, 유명한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가 단순히 소비되고 버려지는 느낌이 강한 한국 영화계의 풍토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영혼의 고양감과 충일감을 일깨워 주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들의 죽어버린 - 너무나 자기 편의주의적으로만 기능하는- 의식을 소생시켜 줄 수 있는 영화들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뉴욕의 영화 소녀, 백은하의 글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나이를 먹고 또 먹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언제가는 뉴욕에 가보고 싶다. 뉴욕의 공기, 사람들, 도시 풍경들 가운데서 영화를 보고 싶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