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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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올해의 책 특집,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세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다룰 책은 우리 역사의 큰 상처인 1948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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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대학 강사인 경하는 사진작가이자 영상감독인 인선과 20년 지기입니다. 최근엔 연락이 뜸해도 인선은 언제나 경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그런 친구죠. 영상 작업을 정리하고 목공일을 하겠다며 제주로 거처를 옮긴 뒤엔 연락이 더 뜸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자가 왔습니다. XX병원에 있는데 신분증 들고 와줄 수 있겠냐고. 인선은 목공일을 하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려 접합 수술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인선은 제주 집에 있는 반려 새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며 경하에게 부탁합니다. 경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인선의 요청에 제주도로 향합니다. 길에서 하염없이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인선이 옛날에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되짚어보며 인선의 어머니와 그 가족들이 제주에서 겪었던 기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방공간에서 우리 역사에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제주 4.3 사건을 여러 문학적 장치와 함께 제시하는 소설, 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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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제주 4.3 사건입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사건인 제주 4.3 사건은 이념적 저항, 국가 폭력, 사적 폭력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있어 정확하게 이런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평가하기에 무척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여러 사건들이 공식적으로 그 의미가 격상되는 와중에도, 이 사건만큼은 아직 공식적으로 제주 4.3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사건 전개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1948년 한반도 남쪽만 단독으로 총선거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됐죠. 여기에 여러 정치세력들이 저항했고, 공산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던 남쪽의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전면적인 선거 거부를 선언하고 시위와 봉기, 무장투쟁에 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당시 한반도 남쪽을 통치하던 미 군정과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경찰은 제주도에 인력을 급파하고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비공식적 조직인 서북청년단까지 가세합니다. 남로당의 지지세가 거셌던 만큼 진압과정에서 남로당원과 민간인을 구별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이를 구실 삼아 미 군정과 군인 경찰 서북청년단 단원들은 제주도민들을 무차별 진압 학살했습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 14000여명이 죽었고, 진압하려 온 세력 쪽에서도 1000명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도민 사망자 14000명 중 민간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영유아 청소년 노인이 2000명에 달하는 것을 봤을 때, 남로당 토벌을 빙자한 국가 폭력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성격이 뚜렷하다는 게 이 시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합의한 내용입니다.

제주는, 이 시기 동안 국가가 행사한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서,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그들이 폭력을 행사할 시간에 내가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아주 우연한 요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라진 그런 지역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감상에 따르면 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소재로 이 소설에서 눈이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제주는 한반도 본토보다 남쪽에 있지만, 해안에서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가 있는 화산섬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습하고 중산간지역은 춥기 때문에 눈이 많이 내립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눈과 닿으면 눈을 녹여서 물로 만들어버리지만, 생명이 없는 존재는 눈이 쌓이는 채로 내버려 둡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인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 어머니의 가족들이 국가 폭력을 경험하는 순간도 눈이 녹지 않는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이 표지도, 이야기의 어둡고 밝음 이런 것과 관계없이 이렇게 돼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밖에 소설이 보여주는 이런저런 비유와 표현과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지,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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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함께하면 좋을 콘텐츠는 현기영의 순이 삼촌지상에 숟가락 하나 입니다. 현기영은 제주 출신 작가이며 제주에 4.3 사건이 벌어질 때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두 작품은 그 기록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수능 문학을 공부하고 있을 고등학생 청취자는 한 번쯤 문제로 풀어본 경험이 있을 거라고 제가 장담할 수 정도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죠.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께도 익숙할 텐데, 그 기억 속 저편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바로 그 프로그램에서 2003년에 캠페인 도서로 선정하기도 했었죠. 사실상 국가가 폭력적으로 자행한 민간인 학살 현장을 상상해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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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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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이죠. 지난주 예고에서 오늘 다룰 책이 조선일보 선정 올해의 책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지난해 마지막 주 동안 각종 언론사에서 한꺼번에 리스트를 발표해서 다시 정리를 해보니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주간지 시사인까지 포함해 무려 언론사 네 군데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더라고요.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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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캐시 박 홍은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2세 여성입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자신의 인종을 작품에서 지워버린 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의 시도가 백인들이 세워놓은 정상성을 강화하는 효과만 낳는 것이 아닌가 고민합니다. 그래서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실험적인 작품을 구상하며 고민합니다.

일상에서는 여전히 만연한 인종 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겪는 인종차별의 양상은 다소 복잡합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받는 인종차별만큼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습니다. 몇몇 성공한 아시아인들이 모델이 돼 ‘아시아인들처럼 근면하면 인종차별을 겪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른바 모범적 소수자 담론의 주역이 되기도 합니다. 몇몇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이 담론에 적극 편승해 흑인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상에 만연한, 아프리카계에 대한 차별과는 또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설명할 단어를 찾아내지 못해 헤맵니다. 그 결과 수치심이나 우울처럼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해 생기는 감정, ‘마이너 필링’들을 안고 살아가죠.

이 ‘마이너 필링’을 시인의 손끝으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책,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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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모범적 소수자입니다.

모범적 소수자란 미국의 인종차별 양상을 가리킬 때 주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많이 쓰이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마약 강도 총기사고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이민자들에 비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적은 임금과 궂은일도 감내하며, 자식들의 교육에 온 힘을 쏟아 2대나 3대 자손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좋은 회사에 취직시켜 사회의 주류로 진출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죠. 이른바 ‘아시아적 문화’가 이런 노력을 공동체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언뜻 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캐시 박 홍도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이 모범적 소수자 이미지가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이미지가 보여주는 성취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아시아계 가족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문제를 감춰버립니다. 게다가 이 이미지는 아시아계의 성취를 인정하기보단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등 다른 인종을 차별할 때 훨씬 더 자주 동원됩니다. 우리나라의 ‘엄친아’ 담론과 비슷한 거죠. 이것은 이 이미지가 백인을 기준으로 설정됐다는 걸 보여줍니다. ‘모범적’이란 말은 ‘백인의 마음에 드는’이라는 말과 동의어일 뿐입니다. 겉으로만 칭찬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사회 주류가 ‘정상’으로 설정한 인종차별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모범적 소수자와 험한 소수자를 나누고 여기에 인종적 특징을 부여하는 그 권력은 스스로에게 ‘기준’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특성으로서의 의미를 지워버립니다. 그 많은 소수자들이 보기엔 백인 - 유럽계 미국인이라는 것도 분명히 어떤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범적 소수자 담론 때문에 아시아계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설명할 언어고, 얻은 것은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지 못할 때 생기는 감정인 ‘마이너 필링’입니다. 이른바 백인성을 내면화해 자신들에게 가해진 차별을 이제껏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설명할 필요를 못 느껴 생긴 상황인 것입니다. 이 책 전체가 바로 그 언어를 찾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지은이와 함께 그 과정을 함께 모색해보면서, 내 감정을 설명할 언어도 얻어가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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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콘텐츠는 스테프 차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입니다. 제가 오늘 꼽은 모범적 소수자라는 개념이나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사건으로 1992년 LA 폭동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해진 가운데 여러 이유로 시위대가 코리아 타운을 습격하고 미주 한인들이 여기에 대항해 싸웠던 사건이죠. 다만 이 사건 직전에 한인 마트 운영자가 근거 없이 손님으로 들어왔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를 총으로 쏴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습니다. 이 총격 사건과 LA 폭동을 모티프로 삼아 구성된 소설이라, 미국에서 소수 인종 간의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며 같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도 지난해 출간된 나름 따끈따끈한 신간이고요,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책 목록에 포함돼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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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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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4주, 한 달 동안은 2021년 한 해를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는데요. 그 첫번째 책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독자 투표로 선정된 올해의 책,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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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책을 만들다가 초등학교 중고학년을 대상으로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말하고 쓰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접합니다. 틀린 표현을 바꿔주며, 글을 함께 익히며, 동생과의 사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피아노를 배우는 입장이 돼 자신에게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기도 하며 아이들과 세계를 공유합니다.

단순히 귀엽다고만 할 수는 없는, 같은 세상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 세계를 존중하기도 하고 때로는 넘나들면서 지켜주려고 하는 한 어른의 이야기,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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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어린이입니다.

이 책은 작가 김소영 선생님이 겪고 생각한 일을 짤막하게 적은 에세이를 묶은 책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읽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고, 대형 서점에서도 통근 시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건과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여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고,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죠. 특히 나름 작가와 같은 업계 종사자인 저로서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떠오르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가벼운 문제만 짚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는 어른들과 같은 세상을 공유하기에, 어린이는 우리 사회가 겪는 다양한 문제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나쁜 어른들은 어린이가 약자라서 어린이를 노립니다. 판결로, 노키즈존으로, 어른만을 위한 디자인으로, 어른들은 우리 사회가 너희를 보호해주지 않을 거라는 신호를 자꾸만 보냅니다. 어린이는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먼저 배워야 살아남습니다. 그걸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가르치기엔, 좀 서글프지 않나요?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 우리는 어린이들이 세계를 넓히도록 도와야지 어른의 세상에 맞추라고 강요하거나 세계를 바꿔버리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이게 어린이라는 세계를 보호하는 바람직한 방식인 거죠. 때로는 무조건적인 선의로, 때로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로, 우리 모두가 이 세계를 보호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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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함께 하면 좋을 콘텐츠는 따로 없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책 취지에 걸맞게, 어른과 어린이, 부모님과 아이들이 앉아 같이 고요함 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시끄러울 수 없는 연말을 보내는 의식처럼 말이죠. 같은 책을 읽고서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고, 서로 다른 책을 읽으면서 각자 느낀 점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2021년이 정말 가네요. 이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각자 올해를 나름의 방식으로 견디거나 즐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 속에 제가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 전해드린 말씀이 적으나마 도움이 됐다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교육진담 수요독서 코너와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2022년에도 항상 열심히 뛰는 책배달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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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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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니저 스크루지는 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이지만, 마음씨가 곱지 않고 야박하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스크루지도 그 점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멍청하고 세상을 제대로 살 줄 모른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파티를 하자고 찾아오겠다는 조카의 제안도 거절하고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것에 몰두하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쏘아붙이며 잠에 듭니다.

그날 밤, 스크루지의 방으로 먼저 죽은 동업자 말리가 찾아옵니다. 죽은 말리가 찾아오다니 스크루지는 깜짝 놀라고 말죠. 온몸에 쇠사슬을 친친 감은 말리는 ‘너는 지금 죽어도 나보다 더 많은 쇠사슬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두려움에 떨던 스크루지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말리는 내가 떠나고 난 뒤 세 영혼이 찾아올 것이라고 안내하고는 스르륵 사라집니다.

세 영혼은 각각 스크루지의 과거, 스크루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 스크루지가 죽은 뒤에 펼쳐질 미래를 보여줍니다. 구두쇠가 아니었으며 착하고 행복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했던 에브니저, 빈부와 지위를 가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신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따뜻한 한때를 보내는 스크루지의 이웃들, 스크루지가 죽은 뒤에 구두쇠 영감 가게를 터니 신나는군 하면서 가게를 도둑질하는 범죄자들까지. 에브니저 스크루지는 이들을 보며 구두쇠 같은 태도를 버리고 베푸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면서 펑펑 웁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성탄절 아침이었고요.

우리가 아는 그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최초로 선사한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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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크리스마스의 세속화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연구자들이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만들어진 원인으로 찰스 디킨스를 주목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인데요.

첫째, 크리스마스는 분명히 종교적 의미를 띤 기념일인데도, 그 위에 비종교적인 이미지도 함께 입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신자도 아닌 사람들도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합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기독교 전통을 강하게 이어온 나라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걸까요? 디킨스가 성공한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요. 실제로 디킨스가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19세기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세속화가 진행됐을 때니까요. 하지만 디킨스는 이 소설 안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날, 행복을 공유하는 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의 이미지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세속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선 크리스마스가 지닌 종교적 색채를 그대로 이어가기도 합니다. 바로 기부와 선행이라는 부분이죠. 스크루지는 다른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지도 않고, 돈을 쓰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도 매우 인색하게 굽니다.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은, 특정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종교적 지침에 가깝습니다. 이전 예수 탄생 기념일에 종교인들이 그런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종교의 권능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됐을 때, 여전히 사람들이 선행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킨스가 이 소설에서 쓰는 이야기 구성 방식은, 영혼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차용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반성입니다. 나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인가 직시하게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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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다룬 에세이와 소설들입니다. 디킨스는 작가 생활을 하는 시기 거의 매해 크리스마스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보시는 이 책에 그 가운데서 유명하고 의미 있는 글이 실려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길고 대표적인 것은 스크루지 이야기인 크리스마스 캐럴이고 대체로 비슷한 주제가 변주된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의 ‘세속화 과정’을 직접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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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 죽음으로 완성하는 단 한 번의 삶을 위하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윤영호 지음 / 안타레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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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잘 사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합니다. 하지만 삶에 골몰하다 예기치 않는 상황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고 고단해 병원에 갔다가 당신의 육체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기도 하죠. 이 책에 따르면 이런 통보를 받은 뒤엔 대부분 6개월 안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잘 사는 삶에 골몰하던 사람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봐야 6개월이라는 뜻도 됩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짧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책의 저자인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 기간이 너무나 짧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죽음은, 죽음이라는 사태를 상상할 수 있는 그 순간부터 서서히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사태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지만 언젠가 들이닥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위해 점검해야 하는 체크리스트엔 무엇이 있을까요? 죽음을 준비하는 다른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요? 호스피스 의료 전문가가 전해주는 자세한 설명을 이 책에서 함께 확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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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웰다잉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윤영호 교수는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사이자 학자입니다. 그는 좋은 삶과 잘 준비된 죽음 즉 웰다잉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방법은 좋은 삶을 사는 것이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추상적인 이 말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표현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삶, 웰다잉을 성취하려면 크게 두 가지 부문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는 정신적 웰빙입니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계속해야 할 일이 꼭 거창하거나 위대한 일일 필요는 없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미뤄왔던 일을 하는 것, 그거야 말로 정신적 웰빙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윤영호 교수의 연구와 생각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분위기 상 보통 이 ‘가치 있는 일’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일을 잘해나가면, 죽은 뒤에 사회 전체에서 명예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이걸 ‘개인적 전설’이라고 표현하던데,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웰빙 못지않게 신체적 웰빙 또한 웰다잉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 정확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는 삶을 뒷받침할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윤영호 교수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신체적 웰빙 보장은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주장합니다. 육체적 생명을 늘리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건 분명히 법적인 문제입니다.

이 법적인 문제엔 여러 쟁점이 포함됩니다. 좁게 보면 연명치료를 중지하는 존엄사 문제가 들어갑니다. 더 넓게 보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간의 생명연장 가능성을 위해 환자에게 고통을 초래하는 치료법을 이용할지 결정할 권리를 환자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라든가, 이런 고가의 치료법을 이용할 때 비용 때문에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고통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살기 위해서 극심하게 아파야만 하거나, 살고 싶은데도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것 양쪽 모두 다 ‘좋은 죽음’과 거리가 먼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특히 최근에 간병 과정에서 발생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를 죽여버린 ‘간병 살인’ 사건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죠. 꼭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회 면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죠. 아버지도, 아들도, 그런 끝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생각해보고 그 모습을 잘 반영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바라면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몇 년 전에 욜로 열풍이 불면서, 버킷리스트 만드는 유행이 잠깐 불었던 적이 있죠. 죽기 전에 해볼 것 목록, 이런 뜻인 것도 잘 아실 겁니다. 이 책은 버킷리스트 대신, 죽기 전에 꼭 결정해야 할 10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해보고, 미리 자신의 의사를 남겨놓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게 오늘 아이랑 투게더 시간에 추천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이 책 130페이지에 나오는 목록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내 장례식이나 시신 처리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기

- 내 죽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편지 써보기

- 죽기 전에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 명단 만들기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기

- 재산 정리하고 유언장 쓰기

- 유산 기부 계획 만들기

- 꼭 하고 싶었던 것 생각하고 해 보기

- 가족과 여행 가기

-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 내가 기뻤던 순간과 내 활동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던 기억 정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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