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 놓을 수 모든 곳에 종이들을 널어 놓았다. 이런게 된 지 일주일이다. 더럽고 복잡하다는 말 외에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이렇게 정신 없는 와중에도 밥은 꾸역꾸역 먹고, 틈틈이 잠을 자기도 했고, 무언가는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는 새에 심란했던 마음도 잦아들었고, 다시 즐거운 날들을 계획해보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괜히 왔다갔다하다가 전화기를 보니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다. 집이었다. 터울이 깊은 동생의 수능점수가 나왔나 보다 하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받으셨다. 외삼촌이 조금 전에 돌아갔다, 라고 말씀하셨다.

엊그제 외삼촌이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엄마는 오빠 마지막 모습을 놓칠 새라 부랴부랴 진부령을 넘었다고 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힘겨운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을 막 보고 나왔다고, 그날 밤에 전화를 했었다.

그러고 딱 이틀을 더 사시다가 오늘 가신 거다.

이것으로 조실부모한 엄마는 오빠 넷을 모두 잃게 되었다. 

사무실 계단을 어슬렁거리며 외삼촌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릴 때 기억에 외삼촌은 시골에서 대서소같은 걸 하셨던 것 같다. 시골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좋기로 소문도 났었다고 했다. 가끔 며칠 방학을 나러 가면, 무슨 말씀이 그렇게 많으신지. 어렸던 나는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삼촌은 애달프게 생각하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 엄마를 참 아껴줬던 사람이었다.

엄마, 괜찮아? 라고 물어보니, 늙으면 다 돌아가는데, 뭘. 하신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일축하거나, 세상의 이치를 그대로 받아들여 괜찮거나.

어떤 쪽이라도 엄마는 마음이 슬플 것이다.

내 주위를 둘러싼 종이 조각들을 빨리 다 해치우고, 나도 내일은 진부령을 넘어야겠다. 내 유년시절 유이한 외삼촌을 뵈러, 그리고 언제나 볼이 빨간 외숙모를 보러, 형제를 잃고 자식을 부르는 엄마를 보러.

 

-이게 다 며칠 전부터 입방정을 떤 내 탓인 거 같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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