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쯤 부업으로 하는 일로 인연을 맺은 S와는 작년 봄 즈음부터 엉켜지내기 시작했다. 함께 발레를 배우기도 하고, 삼박사일동안 합숙을 하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가끔은 미술이나 사진 전시회에 가기도 하다가 급기야는 언젠가 페루로 떠나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홀로 사는 S네 집은 'S아카데미'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공부방이 되었고, 나는 주말 오후마다 가방에 초급자를 위한 스페인어 교본과 사전을 넣어가지고 덜렁덜렁 놀러가게 된 것이다. 교재에 달린 테잎을 듣다가 갑자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OST를 들으며 언젠가 이 노래를 멋지게 음미하며 부를 날을 꿈꾸기도 하고,  요기나 하자고 차린 저녁상이 곧장 술상이 되기도 하지만, 술잔을 탕탕 내리치며 '뽀르 빠보르'라는 낯선 발음을 해댈 때면 나도 모르게 너무나 기분이 좋아지곤 하는 것이다.

번 전철이 끊길 시간이 되면, 나는 가야겠다며 가방을 챙기는 척 하지만, S의 귀여운 제지에 저지당할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는 채이다. 따라서 몇 번 사양을 하다가 결국 S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 떨어져 버린 맥주를 사러 나가는 것은 의례 당연한 순서이고, 이어 밤새 나른하고 평온한 주말은 계속된다.

께 음악을 듣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영화를 보다가, 자려고 누운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을 눕히게 되면 갑자기 고마운 감정이 든다. 이런 황송한 주말이 있나. 갑자기 이 행복이 끝날 것을 염려하면서 조바심을 내기도 하지만, 이내 차분해지려 애쓴다.


난 주말에는 S가 뿌려두었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아주 작고 귀엽다. 곧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겠지. 날이 따뜻해지면 한강에라도 나가 바람을 좀 쐬야지. 한 여름에는 마당에 자리를 깔고 쌈도 싸먹고 놀 수 있겠다.

젠가 이 나른하고 평온한 주말이 끝나버리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S와 나를 위해 주중을 열심히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화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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