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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프로파간다 - 안전신화의 불편한 진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0
혼마 류 지음, 박제이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0월
평점 :
일본의 원전이 어떻게 일본국민들에게 안전하다고 알려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세력이 어떻게 움직여서 어떤 정보를 선택 제공했는지, 원전 안전신화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추적한 책, 원전 프로파간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지성을 읽는 이와나미 문고 20번째 책이에요. 이와나미 문고는 이와나미문고에서 출간하는 지식·교양 시리즈인데요,정말 좋은 책이 많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지진대국에 어떻게 그 수많은 원전이 건설될 수 있었을까요? 일본 원전에 대해 끊임없이 분석해 온 혼마 류 씨의 문제제기를 읽는 순간 저 역시 '그러고보니?'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일본 원전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는데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 원전에 방문했던 경험이 컸습니다. 원전문제는 정부와 원자력발전소, 그리고 국민간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정말 많은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원자력 무라가 어떤 방법으로 원전 신화를 믿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그것을 실행한 주체자와 협력자, 나아가 그 수법과 사례를 소개한다
결국 원전 신화를 믿게 하기 위해 대대적인 프로파간다가 시행됐다는 주장이에요. 이를 저자는 '원전 무라'라고 명명하는데요, 우리에게는 '원전 마피아'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대량 광고는 겉으로는 국민에게 원전을 알리는 목적을 지녔지만 한편으로는 거액의 광고비를 받는 언론에 바치는 뇌물과도 같은 성격을 띠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가 지목하는 범인이 바로 광고에요. 생각해보면 광고와 프로파간다의 차이가 별로 없잖아요? 엄청난 예산이 광고대행사로 흘러들어갔고, 이는 국민에게 원전을 알림과 동시에 언론에 대한 뇌물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고 합니다. 읽어보면 우리나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서 더 꼼꼼하게 읽게 되더라고요.
이 책은 프로파간다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이 1968년도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일본국민들에게 스며들어갔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요,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설명에 도표가 많아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기우였어요. 이는 요즘 우리나라도 원전에 대한 이슈가 계속되고 있고 저 역시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료하고 나머지는 데이터입니다. 원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법이잖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원전마피아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에 대한 수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첫번째는 금액의 거대함이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이들 광고비의 기초 자금이 모두 이용자에게 걷은 전기요금이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원전은 이용자들에게 걷은 전기요금으로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합니다. 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전기요금을 통해 원전 홍보에 기여한 셈이죠. 사실 독점으로 공급되는 원전이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광고비가 포함된 요금을 내야 하고, 이에 대해서는 대안도 없으며, 또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이 원전 프로파간다의 사령탑은 누구였을까요? 이를 밝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정부와 행정기관, 전력회사 및 산하기업, 원전 제조업체 및 주변기업, 원자력 관련 연구기관, 언론, 광고대행사들이 얽히고 섥힌 일이니까요. 심지어 이들의 월급 및 대출을 처리하는 금융기관도 원전 프로파간다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모든 기관들의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원전은 안전한 것이 아니라 안전해야 하는 것이 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원전은 남녀노소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고, 또 엄청난 자본력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전의 안전성은 광고로, 영화로, 책으로, 퀴즈프로그램으로, 다큐멘터리로 다양하게 퍼져나갔고, 국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구요.
그렇게까지 절대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며 청정하다는 등의 환상을 뿌려왔는데 사고가 일어나자 그 증거를 지워야 할 정도로 자신들의 말에 책임도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돈에 혼을 팔아서 쉽게 만들어온 작품들은 자금이 끊기자 인연도 끊긴 것처럼 깔끔하게 어둠속에 묻혀 버렸다. 그곳에는 열렬하게 국민을 '설득해온'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었다
처음 후쿠시마에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방송인들이 보인 태도를 보면서 의아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을 보니 왜 그렇게 많은 방송에서 방사능의 폐해에 대해 안전하다고 이야기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전방위적인 프로파간다가 진행된 상황에서 누군가에겐 안전해야 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안전하다고 믿었을 테죠. 그래서 해당 지역의 농산물을 먹는 퍼포먼스까지 용감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테고요.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한 방송인들이 내부피폭으로 인해 사망하면서 공포심은 더욱 커지기도 했습니다.
규슈전력은 홈페이지상에서 그다지 적극적인 원전 PR을 하지 않고 있으며 지역 신문에도 광고를 내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최초의 재가동이라는 점에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아 지역에서의 반대 운동도 일었기에 잘못 PR했다가는 더 큰 반감을 살 테니 그저 조용히 재가동을 추진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광고를 하는 것도 프로파간다이지만, 또 광고를 하지 않는 것도 전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원전은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계속 파고들면서 안전을 외치고 있고, 그 사이에 우리의 세금은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원전을 반대하더라고 말이죠!
저자는 정부나 도쿄전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의 수습과 원인 규명, 나아가 현재까지도 피난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며 현 상황을 추인하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따위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기업이 아닌 공공성을 가진 정부기관의 경우,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영화 판도라가 개봉하면서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신고리원전 공사가 주민투표에 의해 재개되었죠.
카페에서 책을 한참 읽고 있는데 긴급재난문자가 왔습니다. 포항에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문자였습니다. 잠시 후 여진에 대한 문자가 또 왔구요. 포항은 이번에 건설재개된 신고리원전이 있는 울산과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 원전에도 신고리원전은 이상이 없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원전 프로파간다를 읽은 후라 그러한 보도에 신뢰를 갖지 못하겠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일본의 문제를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요. 일본 원전에 대한 정보는 일본 내에서야 공론화되는 문제겠지만 외국에서는 잘 모르는 문제잖아요? 제가 이 책을 보고 원전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처럼 외국에서도 저자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고 문제를 알게 될 수도 있겠죠. 또한 일본 방송에서 원전에 관해 어떤 뉴스가 나왔는지를 공유하면서 전세계의 전문가들과 정보의 시시비비 문제를 논의해볼 수도 있을테고요.
이와나미문고 시리즈 중에 읽은 책이 세 권이네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의 책은 눈여겨 볼 생각입니다. 괜찮은 책이 정말 많거든요. 특히 이 시기에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이 책을 이웃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