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 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길 출판사 2000년

옛날 일기장에도 쓴 바 있는 [전쟁과 인간]의 감상을 다시 한 번 쓰게 되었습니다. 이전 감상문의 자세한 내용은 옛날 일기장에서 검색하시면 오케이. 그리고 NOT DiGITAL님께서 훨씬 훌륭한 감상문을 써두셔서, 이 기회에 트랙백합니다. (이글루스 망해서 날아감...)

말했다시피 [전쟁과 인간]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어느 정도 훌륭하냐면 저자의 신변을 걱정할 정도로 말이죠...(먼 산) 인터뷰에 응했던 전직 일본군인과 헌병 여러분도, 지금까지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또 하나 인상깊은 문구가 있어서 발췌해둡니다. 전범 재판 당시 나치 치하의 의사회에 대한 저서에서 인용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이 재판의 피고들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냉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이 있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형식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논거는 될 수 없다. 타인의 죄를 끌어들여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우리의 죄를 작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 경시의 독재]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와 프류트 밀케 공저

...최근 모종의 범죄에 대해 사회가 끓어오르고 있지요.

저는 그 일에 대해 온전히 객관적인 보도를 접하지 않는 이상 코멘트는 삼가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죄에 벌을 가하는 일은, 어지간히 죄질이 나빠 피고를 사회와 완전히 격리하자는 의미에서 처하는 사형 이외에는, 대개 피고의 갱생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복수하고 싶어한다면,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너무나 파렴치한 일을 앞에 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있어서 온당하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미워하고 지금 괴로워하고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돌에 맞아죽었던 사람, 무참하게 뭉개졌던 사람이,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선한 일들, 베풀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기쁨, 감내했을지도 모르는 모든 슬픔을-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는 온전히 모두 고려하고 있었는가 하고요.

-뭐, 그렇다고 해서 피고들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살인은 물론이거니와 화제가 되는 모종의 범죄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가족들이 겪는 슬픔은, 돈이나 시간으로 보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쪽도 그만한 고초를 겪었다? 그게 어쨌다는 걸까요? 그 사람들은 그토록 슬퍼하고 괴로워했는데.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작게 만들거나, 그것을 부정하거나, 갚아 없앨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온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짊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긍정을 일구어낼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라고, 저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이 재판의 피고들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냉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이 있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형식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논거는 될 수 없다. 타인의 죄를 끌어들여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우리의 죄를 작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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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
월터 스콧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반호 / 월터 스콧 지음 ;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사 2004년

언젠가 방명록에서 psyche님께서 추천하셨던 책. 요전날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감상은....
psyche님, 저도 길베르 파 할게요!!!
랄까나요....

상당히 전형적인 중세 배경의 기사도 로맨스이지만, 파격적인 캐릭터와 유쾌한 상황이 등장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일단 주인공은 아이반호의 영지를 가진 색슨 인의 후예 윌프레드입니다만... '아이반호의 윌프레드? 그런 녀석이 있었나?=3=' 라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에요. [아이반호]가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쾌한 광대 왐바, 충직한 돼지치기 거스, 쾌활한 은자와 록슬리 씨, 게으름뱅이 흑기사(...), 수전노 유대인 아이작, 우르프레드 노파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 덕분이겠지요. 덧붙여 윌프레드와 로웨나라는 메인 커플링.. 즐. 꺼지삼. 저는 오히려 아이작의 딸 레베카와 브리앙 드 봐 길베르가 훨씬 좋았어요. 네네네.

스포일러를 빼면, 어쨌든 읽을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이!
레베카! 레베카! 레베카!
두말할 나위 있을까요! 레베카의 고결함과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은! 마음을 준 윌프레드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삽시간에 연애대상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어도 조용히 참아넘기는 그 마음씨란... 정조를 지키기 위해 줄 없이 번지점프 뛰려고 드는 그 결단력도 그렇고, 화형대 앞에서도 의연하게 견디는 강함도 그렇고. 아가씨, 멋져! 조금만 더 좋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으로서 로웨나 따위는 사단급으로 몰려와도 그 발밑에도 못 미쳤을 겁니다. 크캬캬.

그에 반해 브리앙 드 봐 길베르는 불신자에 흉악무도한 성전 기사이지요. 신을 믿지 않고, 야심만만하고, 사라센 사람을 300명이나 학살하는, 도의와 자비와는 거리가 먼 사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애처로운 실연도 해보았고, 레베카의 강경한 태도에 감명을 받기도 하며, 불타오르는 성에서 그녀를 구해내기도 하지요(레베카 쪽에서는 끌려간 것입니다만...(먼 산)). 마침내 운명의 시간 바로 그 화형대에서, 성전 기사로서의 자신의 명예와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면서까지 레베카를 구하려던 모습은 정말 훌륭했습니다.(애인의 위기에도 침상에서 뒹굴고 있던 어떤 얼빠진 기사놈과는 달리 말이지요... 도대체 명예 운운하면서 목숨 걸고 싸우더니 정작 중요할 때에는 운신도 못하는 것이 뭐가 기사냐?)

성당에 소속된 자의 이교도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 저 두 사람은 [노틀담의 꼽추]의 클로드 프롤로 신부와 에스메랄다가 생각나네요. 길베르는 클로드보다 억척스럽고, 레베카는 에스메랄다보다 현명하고 신앙심 깊은 처녀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레베카가 유대인이 아니고 길베르가 성전 기사가 아니었더라면, 혹은 레베카가 윌프레드를 사랑하지 않았고 길베르가 그토록 냉혹하고 난폭하지만 않았더라면,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차라리 그 두 사람에게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ㅜㅜ

아아... 역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거예요...
나무칼과 베이컨 방패로 훌륭하게 적을 물리친 왐바의 용맹.....(....)
그리고 자칭 검은 게으름뱅이라는 기사와 암자의 은자의 예배(.....)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최고는 프롱 드 봬프의 성으로 보내진 광대 왐바와 돼지치기 거스의 도전장....(.....)

웃기지 않은 장면은, 울리카의 복수로군요. 마지막에 불타는 성에서 무시무시한 이교의 찬가를 부르는 그 장면은 정말 오싹할 정도로 장렬했습니다.

결론: 주인공 커플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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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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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글루스 2004년 12월 24일 작성한 글입니다)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 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길 출판사 2000년

옛날 일기장에도 쓴 바 있는 [전쟁과 인간]의 감상을 다시 한 번 쓰게 되었습니다. 이전 감상문의 자세한 내용은 옛날 일기장에서 검색하시면 오케이. 그리고 NOT DiGITAL님께서 훨씬 훌륭한 감상문을 써두셔서, 이 기회에 트랙백합니다.

말했다시피 [전쟁과 인간]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어느 정도 훌륭하냐면 저자의 신변을 걱정할 정도로 말이죠...(먼 산) 인터뷰에 응했던 전직 일본군인과 헌병 여러분도, 지금까지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또 하나 인상깊은 문구가 있어서 발췌해둡니다. 전범 재판 당시 나치 치하의 의사회에 대한 저서에서 인용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이 재판의 피고들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냉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이 있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형식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논거는 될 수 없다. 타인의 죄를 끌어들여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우리의 죄를 작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 경시의 독재]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와 프류트 밀케 공저

...최근 모종의 범죄에 대해 사회가 끓어오르고 있지요.
저는 그 일에 대해 온전히 객관적인 보도를 접하지 않는 이상 코멘트는 삼가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죄에 벌을 가하는 일은, 어지간히 죄질이 나빠 피고를 사회와 완전히 격리하자는 의미에서 처하는 사형 이외에는, 대개 피고의 갱생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복수하고 싶어한다면,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너무나 파렴치한 일을 앞에 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있어서 온당하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미워하고 지금 괴로워하고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돌에 맞아죽었던 사람, 무참하게 뭉개졌던 사람이,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선한 일들, 베풀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기쁨, 감내했을지도 모르는 모든 슬픔을-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는 온전히 모두 고려하고 있었는가 하고요.

-뭐, 그렇다고 해서 피고들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살인은 물론이거니와 화제가 되는 모종의 범죄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가족들이 겪는 슬픔은, 돈이나 시간으로 보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쪽도 그만한 고초를 겪었다? 그게 어쨌다는 걸까요? 그 사람들은 그토록 슬퍼하고 괴로워했는데.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작게 만들거나, 그것을 부정하거나, 갚아 없앨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온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짊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긍정을 일구어낼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라고, 저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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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 -상 살림중국문화총서 7
유의경 지음, 김장환 옮김 / 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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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글루스 2004년 12월 12일 게시한 글입니다)

세설신어 / 유의경 지음 ; 김장환 옮김 ; 살림출판사, 2000년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집한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까지의 일화집입니다. 처음에는 [수신기]나 [요재지이] 같은 소설집(여기서 소설은 현대의 소설과 달리, 일화집 같은 의미입니다)인 줄 알았습니다만, 흥미로 몇 장 뒤적거려보니 소설은 소설이되 지인志人소설이더군요. 인간이 아는 것들의 일화를 엮은 지괴志怪(괴이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라는 정도입니다)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지요.

사실 진냥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우선 위나라.... 고백하자면 저, 나관중의 세뇌에 당해 촉한정통론의 똘마니였다구요?ㅜㅜ 삼국지에서 관공을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위나라는 주적. 그리고 뒤를 이은 진나라 역시 찬탈에 의해 정권을 잡은데다 사마의의 손자가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호감도 낮음. 또한 고등학교 세계사에 있어서 위진남북조 시대란 ① 혼란기 ② 청담사상 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으면 장땡이었지요. 네에, 진냥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 레벨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겁니다...ㅜㅜ

그런 상태에서 흥미 본위로 읽게 된 [세설신어]였습니다만... 글쎄 이게 의외로 재미있는 겁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식인들이란 난세에 시달려 무력해진 패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지독하다), 뭐...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어떤 난리 중에서도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혼란기 청담을 토론하는데 열을 올리고 산 속에 들어가는 것을 무슨 로망처럼 여기며 교묘한 말로 모욕과 칭찬을 주고받는 이야기들. 어떻게 봐도 술꾼에 난봉꾼으로밖에 안 보이는 이들이 존경받는 명사였고, 친애하는 벗의 장례식장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흉내내고, 아내와 거침없는 조롱을 주고받고. 제대로 된 유학자가 보면 기겁을 할 이야기들입니다만, 의외로 싫지 않았어요. 파격이라는 것이 아무런 신념도 생각도 없이 마구잡이로 자행되는 것이라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되기 십상이겠지만-
언젠가 유홍준 교수가 저희 학교에 와서 특강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제는 [완당 평전].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추사체를 온고지신에 견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옛 서체에 통달하였기에 추사체 같은 파격적인 기법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고...


또한 인상깊었던 것은 역자의 평이었습니다. '유가사상의 속박을 받던 지식인들이 마음껏 개성을 표출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청담사상은 난세에 대한 도피이고, 지식인들은 무력할 뿐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덕분에 전혀 관심없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관련서적을 뒤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논문 주제도 못 정했는데.....

허연이 젊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왕구자와 비교하자, 허연은 크게 불만스러웠다. 그때 여러 명사들과 지법사가 함께 회계의 서사에서 불경을 강론했는데 왕구자도 그곳에 있었다. 허연은 마음 속으로 몹시 분이 나서 곧장 서사로 가서 왕구자와 변론을 벌여 우열을 결정하고자 했다. 격렬하게 서로 논쟁한 끝에 마침내 왕구자가 크게 패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허연이 왕구자의 논리를 사용하고 왕구자가 허연의 논리를 사용하여 다시 서로 변론을 벌였지만 왕구자가 또 패했다. 허연이 지법사에게 말하길 "제자(허연 자신)의 방금 전 의론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자, 지법사가 조용히 말하길 "그대의 의론은 훌륭하긴 하지만 어찌 그리 심하게 하는가? 이것을 어찌 진리의 중정(中正)함을 구하는 담론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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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집
벨마 월리스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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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따뜻한 집(원제 Two old women) / 벨마 월리스 지음 ; 이은선 옮김 ; 홍익출판사, 2000

저는 학교 도서관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의를 기울여 뒤적거리는 곳이 4층 사회과학자료실 390번대 서가입니다. 왜인고 하니, 그곳에 민속학 관련 서적이 집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엡 저 옛날이야기 좋아합니다... 민담 설화 문화사 아주 껌벅 죽습니다. 아아 졸업 때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390번대 서가를 배회하던 어느 날.
'세계민담전집' 이라든가 '~~~ 풍속사', '짚문화' 같은 서명이 득시글거리는 책꽂이에서, 눈에 띄는 제목을 발견하였던 것이에요.
[가장 따뜻한 집]
헤에? 무슨 책이지? 하고 뽑아서 펼쳐서 책 날개를 보았습니다.
'벨마 윌리스. 1960년, 알레스카에서 태어났다. (...)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통에 따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실제로 들은 이 실화는, 알래스카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화제를 (....)'

바로 대출 GoGoGo

죄송합니다... 새삼 말하기도 뭣하지만...
저는 극지방 너무 좋슴다.
북극 탐험 이야기 좋아하고, 알래스카 원주민 이야기 좋아하고, 시베리아 좋아하고. 추운 거 잘 견디지도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엄청 좋아요. 네네네.(자타공인 늑대 펫치인 것은 이미 블로그 로고를 봐도...)

그래서 읽는 것도 아까워 들추지도 못하기 며칠.([로키산맥의 늑대]때도 이랬지....)
어제 비로소 다 읽었습니다. 이에이-!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이야기는 알래스카의 툰드라 위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다 못한 어느 부족이 무서운 결단을 내리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80세와 75세의 할머니인 치드지그약과 사라를 버리고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무정한 풍습은 굳이 혹독한 알래스카에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장이 있었고, 일본에서도 그러한 풍습이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로 두 번이나 제작된 바 있지요.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버려진 두 할머니입니다. 두 할머니는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덫을 놓고 옷을 만듭니다. 황량하고 무서운 툰드라는 저렇게 나이든 할머니 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얼어붙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두 할머니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마지막으로 남겨준 손도끼와 사슴가죽 주머니가 있습니다....

벨마 윌리스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옛날 이야기를 이야기로 엮었다고 합니다. 분명 처음 전해내려온 이야기는, 그 무시무시한 툰드라에서 살아남은 두 할머니의 행적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내는 내용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벨마 윌리스는 그것을 비참한 환경에 직면한 사람의 각박한 심정, 피붙이에게서 배신당했다는 치드지그약의 슬픔, 무엇이든 해보리라 생각하는 사라의 결의, 그런 감정들을 그려내는 데에 치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앞에 직면한 시련이 너무나 끔찍해서, 우리는 분명 사람된 도리를 잊어버릴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165페이지의 이 얄팍한 책은, 사람이 그런 고난과 비극에 얼마나 훌륭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요.
상처는 싸맬 수 있습니다. 부서진 것은 고칠 수 있어요.
인간은 지상에 낙원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가장 따뜻한 집 정도는 세울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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