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와 풍류 - 일본 헤이안시대 궁중 여인들의 삶
권혁인 지음 / 어문학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헤이안 시대에 대해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귀족이란 놈들은 다 볍신 아냐!?'라고 매도하는 등 애증의 관계이지요(먼산) 어째선지 재미있는 헤이안 시대 풍속 이야기. 그 중에서도 궁중 여성들의 생활을 중점으로 해서 그려진 [격조와 풍류]입니다.

헤이안 시대는 일본의 역사일 뿐더러, 천 년이라는 시간의 골도 있어서 현대의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생소하지요. 그렇듯 한 두 마디로는 설명하기 힘든 헤이안 시대 여성의 생활을 꼼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특히 여성의 옷차림이며 집 구조 같은 것은 용어도 복잡하고 실물도 볼 일이 없으니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알아먹기 힘든데, 이 책에서는 그림을 첨부해서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현대 한국인이 쉽게 이해하도록 편안한 문체와 표현을 쓰는 것도 매우 굿이었습니다.

고전 작품이나 학자의 해석을 많이 인용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마쿠라노소시], [겐지모노가타리]는 물론이고 그 시대 유명한 여류문인들의 이름은 대강 꿰고 있으니 저자가 가진 지식의 깊이를 대략 짐작할 만합니다.

.....남자고 여자고 대체로 찌질한데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헤이안 시대. 이건 대체 무슨 마성일까요...=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시 호숫가 숲속의 생활
존 J. 롤랜즈 지음, 헨리 B. 케인 그림,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전공책 찾으러 4층 올라갔다가 발견, 즉각 낚였습니다. [월든] 이래 이런 책에 낚이는 것은 저의 숙명입니다. 이렇게 말해봤자 [월든], [알래스카의 늙은 곰~] 두 권뿐이었지만.

이 책은 1950년대 존 롤랜드라는 사람이 캐시 호숫가에서 살아간 이야기를 귀엽고도 리얼한 그림과 함께 담고 있는 책입니다. [월든]보다는 철학적 이야기가 덜한, [알래스카의 늙은 곰~]쪽에 가까운 이야기이겠네요.

다른 점이 있다면 [알래스카의 늙은 곰~]은 사진 일색인데 이 책은 그림 일색이라는 점이랄까요. 시튼의 동물 이야기(정식 출판된 것)에 나오는 것 같은 작고 제법 리얼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 삽화처럼, 혹은 페이지 가장자리에 귀엽게 그려져 있습니다. 또 [월든]이나 [알래스카의 늙은 곰~]이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자연과 마주하는 이야기라면, 이 책의 저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기 못지 않은 괴짜 친구와 인디언 추장을 두고 시시때때로 찾아가고 맞이하여 노닥거리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주요한 개성은, 온갖 자질구레한 것을 손수 만드는 경험이 잔뜩 질려 있다는 것입니다! [알래스카의 늙은 곰~]은 가볍게 관광 태울 정도로 많습니다. 이 책을 읽은 캐나다와 미국의 꼬꼬마 청소년들 중 책 속에 소개된 소품을 안 만들어본 꼬꼬마들은 없을 거라고 단언해도 좋습니다. 그 나이에는 이런 이야기에 홀리곤 하지요. 지금까지도 쓰지도 않을 공구 상자를 사는 남자분이 많이 계시는 것을 생각해보면, 뭔가 만들고 싶은 습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남자의 본성일지도 모르겠군요.

1월부터 12월까지 캐시 호숫가에서의 생활과, 온갖 물건을 만드는 법-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것이 전부로 보일 수도 있지마는.... 멋들어진 말로 꾸미지 않아도, 철학으로 정제하지 않아도, 단지 사계절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맨손 맨몸으로 무엇인가를 깨작깨작 만들고, 깊은 숲과 오가는 동물들과 마음에 맞는 벗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곳에는 무엇인가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러가지 매력적인 것으로 꽉꽉 찬 책이지만, 제가 가장 먼저 보고 뒤로 넘어간 물건은 책 가장 첫 장에 붙어있는 지도였습니다.

캐시 호수와 주변 지형을 그린 것인데, 이게 제법 원주민식으로 그려진 지도였습니다. 장소의 이름, 일어난 사건 등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현한 물건이었지요. 불타는 투자개발회사의 짐마차가 귀여운 그림으로 표시된 멀고어의 지도가 생각나더군요. 아니 근데 왠 와우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속의 성적소수자
케빈 제닝스 / 이연문화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저는 이런 글을 곧잘 읽습니다. 특정 취향의 여성 전용 취미(...)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소수의 역사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중세의 나병환자도 그래서(이하하략)

각설하고. 원래 하도 제목에 낚이는 체질인지라 이번에는 목차를 스윽 훑어봤더니,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버다취 풍습에 대한 대목이 있더군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버다취 풍습은 전부터 궁금한 점이 많았는지라 과감히 읽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버다취 풍습보다 더 큰 수확이....

저보고 이 책의 제목을 지으라고 한다면 '성적소수자 투쟁의 역사'라고 붙일 겁니다. 그만큼 근현대 들어서 성적소수자가 박해받은 증거, 법률, 판례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매카시즘 시대 동성애자의 공직 진출 금지 법안, 2차대전에서 불명예 제대한 동성애자 군인, 독일 제국 의회의 비역(금지)법 등.... 또한 성적소수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개인의 기술도 많이 수록되어 있죠.

한편으로는 그런 잔인한 현실 속에서, 성적소수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얼마나 힘겹게 열심히 싸워왔는지- 그것 또한 그려져 있어서,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사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히틀러가 동성애자에게 분홍색 별을 붙여 강제수용소로 보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지금 당장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혐오범죄의 대상으로 무고한 동성애자가 희생당하는 일이 종종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혐오 의식이 보편적이고 공공연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가 뜻밖의 경우 접하게 되었을 때 부지불식간에 혐오와 적의를 드러내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저는 이 문제가 개인의 성적 취향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용인할 수 있는가- 그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증오할 때에는 묻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진실로 순수하게 나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감정인가? 누군가가 이것을 이용하지는 않는가?

나 자신이 온전하게 다룰 수 있는 감정인가? 자칫 날뛰어 죄없는 이를 상처입히는 그런 것은 아닌가?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상처주는 이 감정 대신에-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에서 단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자신에게 묻는 법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서남동양학술총서 3
조동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보통 이런 책은 4층 사회과학-민속학 서가에서 곧잘 찾을 수 있는데 어째 3층 인문과학 서가에서 봐버렸습니다. 그런 책이 종종 있지요. 보석 관련 서적이 4층과 3층에 모두 분포해있다든가, 고려 시대 역사서의 한 가지인 [제왕운기]가 고전문학 서가에서 발견된다든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배치한 것이겠지만 땡기는 주제를 찾아가서 제목을 보고 책을 골라오는 취미가 있는 저로선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겉보기에도 꽤 깊숙이 들어가는 일종의 논문서라, 읽어볼 마음은 안 들었습니다만... 이게 슬쩍 들춰보니 한국의 제주도 뿐만 아니라 유구(현재의 오키나와), 아이누, 동남아시아 제민족에서 인도 타밀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서사시를 다루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떡밥을 물었습니다.

이 책은 서사시에 대해 상당히 신선한 정의를 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서사시가 소수 민족의 저항정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지방 분권을 통제하고 주변 민족을 지배하려고 했던 일본, 중국 등지는 서사시가 소멸했다는 것이며, 고대 서사시는 개인적이고 영웅적이지만 중세 서사시는 위민적이고 국가적이라는 등의 내용이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글에 감정이 너무 들어간 점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서사시가 사멸한 일본 중국에 대해서는 자못 비난조의 말을 퍼붓고 있었어요. 또 서구 중심의 문화 거대 담론을 타파하는 것이 정치적 물질적 우열과는 반대 급부를 가지는 서사 문학의 연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게 또 서구 중심의 거대 담론에 얽매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란 말이죠. 하긴, 완전히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은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또한 서사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규칙성도 일일이 보편적 학설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저로서는 떨떠름하더군요. 보편보다는 특수라는 말을 너무 듣고 살아서 그런가... 아니 뭐, 서사시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 아니겠어요? 아이누의 가무이 유카르든 제주도의 삼성 설화든 말이지요. 하긴 이렇게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제가 학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겠습니다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허경진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얼마나 문화사 자료에 숑가는지는 뭐 말할 것도 없으니 제쳐놓고....

그런 의미에서 읽은 [사대부 소대헌·호연재 부부의 한평생]입니다. 제목을 유심히 보면서 '우리나라에 소 씨와 호 씨가 있었나?'라고 생각하신 분은... 저와 소울 브라더.

이 책은 송촌에 있는 송씨의 종가에서 보존하고 있는 유물과 기록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것을 통해 송요화와 그의 부인 김씨의 생애를 재구성한 책입니다. 소대헌과 호연재라는 호칭은 그들이 생전에 주로 지내던 사랑채와 안채의 당호에서 따온 것이라는군요. 여자는 이름조차 남겨지기가 쉽지 않은 18세기 초와 남녀평등이 절대 명제가 된 요즘 사회 분위기 사이에서 적절하게 절충한 호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부의 생활을 중심으로 그려진 사대부의 삶이니, 평범한 역사 개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부의 살가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조선 시대 사대부에게 좀 많은 것을 바란 것 같군요.

더군다나 이 송씨라고 하면 무려 우암 송시열의 친척입니다. 서인에 노론의 영수였던 집안이니 얼마나 옛 예법에 대해 철저했겠슴까?ㅇ<-<

그렇지만 또 한 번 놀란 것은,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호연재 김씨의 자기주장이 아주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한문을 배웠고, 한시도 빼어나게 잘 지었다는군요. 뿐만 아니라 [자경편]이라는 제목으로 부인의 덕을 가르치는 글을 지었는데 이 내용이란 게.... 부인의 덕을 훈계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남편의 패덕을 꼬집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부부의 은혜가 비록 중하지만 제가 이미 나를 깊이 저버렸으니, 나 또한 어찌 홀로 구구한 사정을 보전하여 옆 사람들의 비웃음과 남편의 경멸을 스스로 취하겠는가?'


-> 한 줄 해석: 남편 님 뭥미? 깝 ㄴㄴ

무서워.... 이 사람 무서워! 소대헌씨 빨랑 잘못했다고 빌어요!

요즘같으면 황혼이혼 당할까봐 울면서 매달려야 합니다. 소대헌에게 있어 18세기에 태어난 것은 실로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대헌은 음사로 벼슬에 나아가기 전까지 과거에서 번번히 낙방했는데, 호연재는 과거에서 남편이 지은 글을 가져오게 해서 가만히 읽어보고는 '합격할 수 있는지 몰겠는데 ㅉㅉ'하고 말했다는군요. 무섭다.....

그 밖에 재미있었던 것은,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도 보드 게임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윷놀이 말고요. 예를 들어 '종정도'라고 해서 주사위를 굴려 관직 관계상에서 승진을 해나가는 게임도 있고, '남승도'라고 해서 명승지를 나아가는 게임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규칙도 아주 재미있는데, 예컨대 '남승도'에서는 여섯 종류의 말이 다 직업이 다릅니다(시인, 무사(한량), 승려, 미인, 농부, 어부). 여기서 시인 말을 택해 게임하는 사람이 주사위를 굴려 과거 많은 시인이 시를 남겼던 평양의 연광정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얻은 수를 다 차지해서 나아가는 식입니다. 무사인 한량이 임진왜란의 격전지인 진주 촉석루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의 수를 다 차지하고, 승려는 미인이 먼저 들어가 있는 칸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이죠. ...이거 팔린다! 조금 개량해서 요즘 만들어도 재미있을 거 같군요!?

제가 이런저런 책을 읽어봤지만, 일본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책을 찾는 게 힘들었지요.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양 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유적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자료가 되어준 송촌의 송씨 종가도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귀중한 문화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흥미를 가지고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즐겁게 빠져들 수 있는 사대부의 세계가 그곳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