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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한평생
허경진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3월
평점 :
제가 얼마나 문화사 자료에 숑가는지는 뭐 말할 것도 없으니 제쳐놓고....
그런 의미에서 읽은 [사대부 소대헌·호연재 부부의 한평생]입니다. 제목을 유심히 보면서 '우리나라에 소 씨와 호 씨가 있었나?'라고 생각하신 분은... 저와 소울 브라더.
이 책은 송촌에 있는 송씨의 종가에서 보존하고 있는 유물과 기록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것을 통해 송요화와 그의 부인 김씨의 생애를 재구성한 책입니다. 소대헌과 호연재라는 호칭은 그들이 생전에 주로 지내던 사랑채와 안채의 당호에서 따온 것이라는군요. 여자는 이름조차 남겨지기가 쉽지 않은 18세기 초와 남녀평등이 절대 명제가 된 요즘 사회 분위기 사이에서 적절하게 절충한 호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부의 생활을 중심으로 그려진 사대부의 삶이니, 평범한 역사 개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부의 살가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조선 시대 사대부에게 좀 많은 것을 바란 것 같군요.
더군다나 이 송씨라고 하면 무려 우암 송시열의 친척입니다. 서인에 노론의 영수였던 집안이니 얼마나 옛 예법에 대해 철저했겠슴까?ㅇ<-<
그렇지만 또 한 번 놀란 것은,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호연재 김씨의 자기주장이 아주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한문을 배웠고, 한시도 빼어나게 잘 지었다는군요. 뿐만 아니라 [자경편]이라는 제목으로 부인의 덕을 가르치는 글을 지었는데 이 내용이란 게.... 부인의 덕을 훈계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남편의 패덕을 꼬집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부부의 은혜가 비록 중하지만 제가 이미 나를 깊이 저버렸으니, 나 또한 어찌 홀로 구구한 사정을 보전하여 옆 사람들의 비웃음과 남편의 경멸을 스스로 취하겠는가?'
-> 한 줄 해석: 남편 님 뭥미? 깝 ㄴㄴ
무서워.... 이 사람 무서워! 소대헌씨 빨랑 잘못했다고 빌어요!
요즘같으면 황혼이혼 당할까봐 울면서 매달려야 합니다. 소대헌에게 있어 18세기에 태어난 것은 실로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대헌은 음사로 벼슬에 나아가기 전까지 과거에서 번번히 낙방했는데, 호연재는 과거에서 남편이 지은 글을 가져오게 해서 가만히 읽어보고는 '합격할 수 있는지 몰겠는데 ㅉㅉ'하고 말했다는군요. 무섭다.....
그 밖에 재미있었던 것은,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도 보드 게임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윷놀이 말고요. 예를 들어 '종정도'라고 해서 주사위를 굴려 관직 관계상에서 승진을 해나가는 게임도 있고, '남승도'라고 해서 명승지를 나아가는 게임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규칙도 아주 재미있는데, 예컨대 '남승도'에서는 여섯 종류의 말이 다 직업이 다릅니다(시인, 무사(한량), 승려, 미인, 농부, 어부). 여기서 시인 말을 택해 게임하는 사람이 주사위를 굴려 과거 많은 시인이 시를 남겼던 평양의 연광정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얻은 수를 다 차지해서 나아가는 식입니다. 무사인 한량이 임진왜란의 격전지인 진주 촉석루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의 수를 다 차지하고, 승려는 미인이 먼저 들어가 있는 칸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이죠. ...이거 팔린다! 조금 개량해서 요즘 만들어도 재미있을 거 같군요!?
제가 이런저런 책을 읽어봤지만, 일본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책을 찾는 게 힘들었지요.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양 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유적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자료가 되어준 송촌의 송씨 종가도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귀중한 문화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흥미를 가지고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즐겁게 빠져들 수 있는 사대부의 세계가 그곳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